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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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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감성의 수학이고, 수학은 이성의 음악이다

[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24] 동서양 음계와 정수비

[한국문화신문 = 이규봉 교수] 수학과 음악은 전혀 다른 학문 분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뜻밖에 유사한 점이 많다. 수학에는 수많은 기호가 사용된다. 이 기호의 뜻을 모르면 수학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뜻을 명확히 알면 많은 내용을 간단하게 함축시킬 수 있어 논리 전개에 크게 도움을 준다. 마찬가지로 음악에도 수많은 기호인 음표가 이용된다. 수학과 마찬가지로 이 음표를 모르면 전혀 악보를 읽을 수 없고 소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뿐이다. 수학과 음악 사람은 감정을 느끼는 오관보다는 지성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이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 어떤 학문보다도 수학이 바로 그러한 이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수학은 자유롭게 사고하며 정신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칸토어도 그래서 ‘수학은 자유’라고 하지 않았나? 음악은 감성적이라 할 수 있고 이에 반해 수학은 이성적이라 할 수 있으니 서로 상반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영국의 수학자 실베스터는 “음악은 감성의 수학이고, 수학은 이성의 음악이다.”라며 상반됨에도 서로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했다. 18세기 프랑스 작곡가 라모도 “음악과 그토록 오래 함께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음악

무한은, 블랙홀 같은 심연이다

[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22] 신의 세계를 능가하는 수학의 세계

[한국문화신문 = 이규봉 교수] 인류가 생긴 이래로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자연의 위대함을 알면서 신에 의지하게 됐다. 강력한 자연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인간은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 넘으면서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인간은 신을 찾았고 만들었다. 인간이 처한 자연 환경에 따라 다양한 신들이 존재했다. 기성종교가 생기기 전에는 태양이라든가 동물 또는 자연의 형태를 숭상했다. 성경에 의하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구약성서에 근본을 둔 유대교가 생기면서 신은 오직 한 분이 되었다. 다양한 신을 믿던 사람들에게 오직 신은 하나뿐이라는 유일신 사상이 나타났다. 이것을 이어 받은 종교가 기독교와 이슬람교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사실 여부를 떠나서 무조건 이 말을 믿는 것처럼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서 신을 대할 뿐이다. 신은 존재 하지만 볼 수도 만질 수도 따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종교를 믿든 공통적인 점은 인간은 유한하고 신은 무한하다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신을 대하려 한다. 유한한 인간은 절대 살아서 신을 만날 수 없다. 바벨탑을 쌓아 신에게 가까이 가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인간은 유한

복수보다는 공동체로서의 배려와 보상

[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21] 사형과 종신노역형

[그린경제/얼레빗=이규봉 교수] 체사레 벡카리아가 말한 한 시민의 죽음이 필요하다고 간주될 수 있는 한 경우로서 한 사람의 죽음이 타인들의 범죄를 억제하는 유일한 방법일 경우를 살펴보자. 과연 사형만이 유일한 방법일까? 인간의 정신에 무엇보다 큰 효과를 끼치는 것은 형벌의 강도라기보다는 그 지속성이라 할 수 있다. 범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억제력은 범죄자가 처형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는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짐 나르는 짐승처럼 취급받고 자신의 노동으로 그가 사회에 끼친 손해를 속죄하는 인간의 모습을 오래 보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 아닐까? 사형이 주는 인상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급속한 망각의 힘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형을 받을 만한 흉악한 범죄자에게 거기에 합당한 고통을 줄 뿐 아니라 일반시민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형벌은 사형일까? 종신노역형일까? 사형은 한 순간에 모든 고통을 집결시키고 종신노역형은 일생에 걸쳐 고통이 분산된다. 오랫동안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것은 순간에 사형을 집행하는 것보다 시민들에게 더 큰 공포를 안겨줄 수 있다. 인간정신은 일시적 고통에 대해서는 전력을 다해 버티어내지만, 장기간 반복되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사형제도

[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20] 사형보다는 종신노역형이 돼야

[그린경제/얼레빗=이규봉 교수]정치적으로 사형제도가 악용된 경우는 전 세계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해방 이후 사형제도가 어떻게 악용되었는지 시대 순으로 살펴보자. 백범을 죽인 암살범은 백주에 명동거리, 친일부역자 김창룡을 죽인 암살범을 사형 ▲ 안두희에게 경교장에서 암당당한 백범 김구 선생의 피뭍은 저고리 1949년 6월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원인 육군 소위 안두희는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암살했지만 분명히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당시 특무대장 김창룡 등 그를 비호하는 세력에 의해 특별대우를 받았다. 안두희는 사형이 아닌 종신형을 선고 받았으나 15년형으로 곧 감형됐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육군장교로 복직했으며 대령으로 예편했다. 1956년 1월 허태영 대령은 특무대장 김창룡을 암살했다. 김창룡은 해방 전에는 만주에서 일본 헌병을 지낸 친일파로 수많은 애국독립투사를 투옥하고 고문한 자였고, 해방 후에는 특무대장으로 이승만의 총애를 받고 정치적인 사건을 조작하고 군대 내에서 군통수권과 지휘권을 유린한 자였다. 안두희와는 달리 허태영은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되었다. 허태영은 나의 행동은

실체는 볼 수 없는 절대자, 디락 델타 함수

[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18] 종교의 최고 가르침은 이웃 사랑

[그린경제/얼레빗=이규봉 교수]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자신이 믿는 절대자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그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은 예수라는 인간의 형태로 이 세상에 태어나 그 실체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부활한 뒤에는 아직까지는 그러한 일이 없고 단지 재림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디락 델타 함수 (t-t0)는 t0를 제외한 모든 수에서는 0이고 t0에서는 정의되지 않아 그 실체는 볼 수가 없지만, 적분한 값은 항상 존재하므로 그 존재감은 분명히 있다. 따라서 디락 델타 함수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는 절대자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함수 g는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을 나타내어 g(t)는 어떤 지점 t에서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여준다. 참다운 신앙을 가졌다는 것은 자기가 믿는 절대자를 믿고 마음에 품은 것이므로 그 사람 g가 있는 곳 t0에서 신자로서 보여주는 행동은 절대자와 함께 하는 마음으로 (t-t0)g(t)dt이 된다. 그런데 (t-t0)g(t)dt=g(t0)이므로 절대자의 실체는 보이지 않고 그의 행동만 보인다. 곧 절대자는 자신을 믿는 그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자

둘레길, 올레길, 산티아고로 가는 길 모두 소통

[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17]

[그린경제/얼레빗=이규봉 교수] 지리산 둘레를 걸으면서 지리산의 정취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을 돌아볼 수 있는 둘레길이 만들어졌고, 제주 둘레를 걸으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올레길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길이 인기를 끌면서 전국에 산책길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등산을 한다면 반드시 산 정상을 올라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제는 주변을 산책하며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자 제주 올레길의 모델이 된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일명 산티아고로 가는 길(Cameno de Santiago)이 관심을 끌고 있다. ▲ 지리산 둘레길 1 (남원시 제공) ▲ 지리산 둘레길 2 (남원시 제공) 산티아고로 가는 길 한 달을 넘게 걸어야 완주할 수 있어 끈기를 요구하는 이 낭만적인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는 역사적인 슬픔이 있다. 이 길은 9세기 초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알폰소 2세가 예수의 형제로 알려진 성 야고보의 무덤에 성당을 세우고,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봉하면서 유럽에 알려졌다. 유럽 기독교 국가들의 시민들이 성지 순례에 나서면서 자연스레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기 위한 국토수복운동(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