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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텔레비전 없는 눈 덮인 산속에서

[체류기간 다변화 숲속의 집 체험기 1]

[그린경제/얼레빗 = 이규봉 교수]  우리 가족은 매년 연말연시를 함께 보내고 있다. 애들한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함께 했다. 2013년은 어느 곳으로 갈까 생각하다 1주일 이상 지낼 수 있는 체류기간 다변화 숲속의 집을 운영 중인 산림청 관할의 홍천 삼봉자연휴양림을 예약했다. 체류기간 다변화 숲속의 집은 20139월부터 시작하여 현재 시험 운영 중이다. 

12272시 쯤 대전에 있는 집을 나섰다. 거리를 계산해 보니 한 두세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아 늦게 출발했는데 의의로 길이 멀었다. 영동고속도로 속사로 빠져나와 홍천으로 가는데 이정표에는 다시 40여 킬로미터를 더 가야한다고 적혀 있다. 한 시간 채 안 걸릴 것으로 예상하며 가는데 매우 구불구불하고 높은 고개인 운두령이 나왔다. 겨울이라 눈이 곳곳에 쌓여있었다. 날은 저물고 이정표는 잘 보이지 앉아 6시 되어서 삼봉자연휴양림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숙소까지는 또 3킬로미터를 더 가야 했다. 길은 넓었고 눈은 치워져 있었으나 완전히 녹지는 않았음을 미처 감지하지 못 했다. 반가운 마음에 조금 속도를 빨리 낸 것 같아 약간 굽은길에서 살짝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순간 차는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중심을 잡지 못 하고 앞바퀴를 중심으로 완전히 180도 돌아 미끄러지더니 길가 도랑 바로 옆 눈을 치워 쌓아둔 곳에 뒷바퀴가 완전히 빠져버렸다. 쌓여있는 눈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길가 도랑에는 빠지지 않았다. 빠져나오려 했으나 바퀴는 눈에 미끄러져 헛돌았다. 

23년 전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끝내고 가족과 함께 여름에 놀러 가다가 매우 높은 다리 위에서 차의 앞바퀴가 터져 간신히 다리를 빠져나오자마자 산기슭을 들이박은 사건이 기억났다. 차가 비록 출고된 지 오래되긴 했어도 매우 크고 단단해 아무도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차는 폐차장으로 보내야 했다.
 

인터넷과 TV가 없는 숙소, 정말 좋다 

휴양림 사무실에 연락을 하고 좀 있으니 제설용 트럭이 왔다. 삽으로 바퀴 주변의 눈을 모두 치우고 트럭으로 견인을 하니 차가 움직였다. 차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천천히 휴양림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묵을 숲속의 집 오소리는 뜻밖에 시설이 좋았다. 지금까지 여러 번 자연휴양림의 숲속의 집을 이용해 보았지만 이렇게 좋은 시설은 처음이다. 보통 거실에 탁자 하나만 있는데 이곳은 방 1칸에 거실 겸 주방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고 특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책상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각자 탁자가 필요해 상 하나를 더 준비해 왔는데 필요 없게 되었다. 

숙소에는 인터넷은 물론 TV도 없다. 원래 있었지만 지금은 TV 없는 시설을 시험 운영 중이다. 처음으로 TV 없이 연말을 보내게 되었다. 난방은 아주 잘 되어 있다. 주변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고 나무들이 빽빽이 들이차 있다. 갑자기 딴 세상에 온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규칙을 세웠다. 애들이 오는 31일만 제외하고는 금주·금육을 하고, 적당한 양의 하루 두 끼 식사, 매일 등산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아내는 책을 읽고 팬플루트와 기타 그리고 단소를 연습하고, 나는 독서와 쓰고 있던 글 마무리 하고 클라리넷과 피리 연습을 할 예정이다. 

   
▲ 우리가 묵은 삼봉자연휴양림의 숲속의 집

밤새 실내 온도가 점점 떨어졌다. 알고 보니 온도조절기에 설명이 없어 이것저것 눌렀던 것이 화근이었다. 집에서는 외부의 어렴풋한 조명 속에 늘 어둡지 않은 곳에서 잠을 자야했는데 이곳은 깜깜했다. 오랜만에 빛이 거의 없는 어둠 속에서 잠을 잤다.  

책상이 있는 방은 내가 사용했고 화장대가 있는 거실은 아내가 사용했다. 숙소가 남향임에도 10시쯤 되어야 햇빛이 들이찼다. 오후 2시경 밖으로 나갔다. 휴양림에 접어들던 길 입구까지 거슬러 산책했다. 왕복 6킬로미터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공기는 차지만 기분은 매우 상쾌했다. 산속에 있다 보니 3시쯤 되어 해가 졌다. 

산골의 밤은 일찍 찾아와 6시도 되지 않아 어두워진다. 평상시와 달리 아주 이른 저녁을 먹었다. 방 한 칸, 거실, 부엌, 냉장고, 책상, 옷장, 서랍장, 화장대, 화장실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최소한 갖추고 있다. 이 다음에 아내와 둘만 있을 때 이정도의 공간에서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실 문 바로 앞은 산중턱이고 눈이 쌓여 있다. 부엌 문 밖으로 보이는 산과 눈, 그리고 온 사방이 눈으로 덮인 참으로 귀하고 드문 풍경이라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매우 여유로운 풍경에 내 자신도 함께 어우러져 그 풍광을 즐기고 있다. 언제나 겨울의 차가운 공기는 무엇보다 청량감을 안겨주어 좋다. 늘 겨울바다를 좋아하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겨울 휴양림과 산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책 읽고
, 글 쓰고, 산책하고, 악기연주하고 

1229일 일요일이다. 눈을 떠 보니 6시이다. 명심보감에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으니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하루를 다스릴 수가 없다(一日之計 在於寅 寅若不起 日無所辦)”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한 새벽은 인()시로 3시에서 5시를 가리킨다. 가능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 하고 있는 나에게 이 문장은 이론적인 확신을 주었다. 새벽에 몇 시간 할 일을 미리 하면 하루가 매우 여유롭다. 

오늘은 장준하 선생의 구국장정 육천리를 다녀온 여행기를 최종적으로 다듬었다. 20136월 중국 쉬저우에서 충칭까지 장준하 선생이 일본군 부대를 탈출해 임시정부까지 걸어간 그 길을 자전거로 돌았다. 그분의 애국심을 알리고 그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공식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아내는 거실에서 팬플루트를 연습하고 있다. 배우기 시작한 지 이제 2년이 넘어간다. 소리가 많이 좋아졌다. 기타도 배운지 3년 되어가니 점차 듣기 좋아졌다. 단소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해 매우 서툴지만.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고 한 시쯤 산책길에 나섰다. 본격적인 급경사의 길이 나타날 즈음 되돌아왔다. 두 시간 가까이 산책한 셈이다. 다섯 시에 오늘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아내는 눈 덮인 휴양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싸락싸락 내리는 눈발과 매서운 바람 그리고 짧은 일조량
시리도록 청명한 맑은 기운과 매서운 한파 있어 더욱 맑아 보이는 산중턱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밖의 풍경과 고요함
산속의 지극히 짧은 낮은 더욱 깊은 고요를 재촉하고
토끼와 노루는 어딘가에서 망보고 있을 듯하네
세상의 모든 탁한 공기를 정화시킬 것 같은
이 시린 공기의 맑음과 청량감 그리고 속까지 파고드는 이 끝없는 맑음
또 하루 산속의 밤은 침묵 속으로

1230일 월요일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겨울의 휴양림은 마치 홀로 외계에 있는 것처럼 황량하고 쓸쓸하기조차 한 풍경이었는데 이 휴양림은 거의 모든 숙소가 다 예약을 끝냈다고 한다. 아마도 주변에 스키장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루 더 숙박을 연장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 했다. 별 불편함이 없으니 집인 듯 편안하기까지 하다. 거실 밖의 풍경이 너무 평화롭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  

   
▲ 가칠봉을 올라가며

11시 쯤 숙소를 나와 어제 되돌아온 그 경사진 곳을 등산했다. 눈이 녹지 않아 푹푹 빠지면서 올라가니 힘들었다. 바람은 불고 기온은 차갑고 가칠봉 정상 1킬로미터를 남겨두고 내려왔다. 걷는 것이 목적이었지 정상을 정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으니 미련이 남지 않는다. 산길 10여 킬로미터를 3시간 30여분 동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