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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철인3종경기 고통의 끝은 무엇일까?

[그린경제/얼레빗 = 이규봉 교수] 나는 2003년 7월에서 다음 해 7월까지 뉴질랜드 남섬의 중심 도시인 크라이스트쳐어치의 캔터베리대학교에서 방문교수로 지냈던 적이 있었다. 뉴질랜드의 자연은 거의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었으며 많은 지역이 원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데 반해 뉴질랜드는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 관광을 나라의 주요한 정책으로 삼아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뉴질랜드의 후손들은 그들의 선조가 남긴 자연환경의 혜택을 계속 볼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후손들은 그들의 선조가 잘 먹고 남긴 쓰레기를 청소하느라 힘든 세월을 보낼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마라톤을 완주하다

 남북한 모두 합한 우리 땅보다 좀 더 큰 영토에 우리의 1/20도 채 안 되는 인구가 살고 있으니 그들의 생활은 바쁜 것 하고는 멀었다. 주민들은 여유가 있어 보였고 삶을 즐기는 것 같았다. 푼돈으로 골프를 즐길 수 있고 주말이면 늘 다양한 스포츠가 곳곳에서 행해졌다. 이른바 레저 스포츠의 천국이다.

 맥주회사가 주관하는 2월에 열린 <스파이츠의 해안과 해안 삼종 경기(Speight's Coast to Coast Multisports Race)>는 특별한 감동을 주었다. 이 대회는 뉴질랜드 남섬의 서해안에서 출발하여 우리의 대관령보다 훨씬 높은 아써스 고개(Arthur's Pass)를 넘어 동해안의 크라이스트쳐어치까지 가는 1박 2일의 매우 힘든 대회이다. 카약으로 67킬로미터의 계곡물을 건너고 36킬로미터에 이르는 산길을 달리며 자전거로 140킬로미터의 도로를 주행하는 경기이다. 이 대회에 나와 비슷한 연배의 한 아는 한국인이 참가해 완주하는 것을 직접 봤다.

 나는 2003년 11월에 <켄터베리 봄철 하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21.1킬로미터를 2시간 5분 29초의 기록으로 완주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의 삼종경기 완주는 나에게는 멀기만 했던 마라톤 완주의 꿈을 심어주었다. 나는 2004년 6월 6일에 열리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를 기념하는 크라이스트쳐어치 마라톤 대회에 도전하기로 했다. 100일을 준비했다. 매일같이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며 연습했다. 몸 구석구석이 아팠고 탈이 났다. 그것을 모두 극복하고 참가했다.

   
▲ 사진 (http://www.bing.com) 제공

 대회가 시작되면서 처음 25킬로미터까지는 룰룰라라였다. 거의 힘도 들지 않았고 즐기면서 달렸다. 그러나 30킬로미터가 되자 다리는 경직되기 시작했다. 나보다 뒤쳐진 사람들이 계속 나를 앞서갔다. 다리는 점점 뻣뻣해졌고 한걸음 한걸음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도대체 내가 왜 이걸 시작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온갖 곳에 모두 광고를 해놨으니 그만둘 수도 없었다. 아테네의 승전을 알리려 달려간 아테네 병사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도착지점이 멀리 보이면서 달리기 보다는 거의 발을 질질 끌다시피 가며 결국 테이프를 끊었다. 완주를 하자 밀려드는 기쁨은 그동안 겪은 고통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기록은 4시간 36분 17초. 마라톤 완주는 내 일생에서 내 의지로 성취한 뜻 깊은 3대 사건의 하나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라톤 완주는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맛을 나에게 보여 주었고 또한 그 이상으로 성취욕을 만끽하게 하였다.

 고생은 사서도 한다

 생활이 안정되고 경제가 점차 좋아지면서 비만은 현대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자동차와 도로의 발달로 걷는 것이 줄어들고 식생활의 양식이 변하면서 몸이 점점 불어난다. 비만을 해결하기 위해 다이어트 같은 식이요법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다. 나도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몸무게와 허리둘레가 10퍼센트나 줄었다.

 운동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 특정한 규칙 아래서 상대방과 겨루며 함께 즐길 수 있는 것과 오직 자신과 겨루며 힘든 것을 참으면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경우는 축구, 농구, 테니스, 골프 등을 들 수 있고,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는 달리기, 산악자전거, 등산, 삼종경기 등을 들 수 있다.

 달리기를 재미있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살을 빼고 체력을 좋게 하기 위해 힘든 것을 참고 꾸준히 달릴 뿐이다. 즉 자신과의 경쟁이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다 보면 달리는 자체가 점점 고통스러움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을 감내하며 달리다가 멈추었을 때, 숨은 차지만 고통이 사라진 그 느낌은 너무도 좋다. 특히 마라톤을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갈수록 달리는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나, 완주를 하게 되면 그 고통이 없어지는 쾌감과 아울러 성취감을 포함하는 즐거움은 인생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산악자전거를 타는 경우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올라가기도 하지만 끌고 갈 때도 있고 심지어는 메고 갈 때도 있다. 가파른 곳을 끌기도 하고 메고 가기도 하는 그 힘든 과정은 정상에서 심호흡하고 경치를 즐기며 다시 내려 달리는 기쁨을 준다. 오르막의 고통은 내리막의 환희로 바뀐다.

 등산도 그렇다. 우스개 말로 “내려올 거 뭐 하러 올라가냐” 하며 야유도 한다. 하지만 험한 산길을 올라가는 것은 정상에 올라가 본 사람만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오르는 것이 어려울수록 정상에서 맛보는 즐거움은 훨씬 좋다. 상쾌한 바람을 마시고 멀리 펼쳐진 경치를 구경하면서 잠시 숨을 돌릴 때 그동안 느꼈던 고통은 어느새 사라진다.

 철인삼종경기과 트라이애쓰론(triathlon)이라고 하는 경기도 역시 그렇다. 철인삼종경기는 1978년 하와이에서 성행하던 와이키키 바다수영 3.9킬로미터와 하와이 도로사이클 180.2킬로미터 그리고 호놀룰루 국제마라톤(42.195킬로미터)의 3개 대회를 한 사람이 쉬지 않고 경기하도록 구성한 데서 유래했다. 대회 제한시간인 17시간 이내에 완주하면 철인(iron man)의 칭호를 받는다. 올림픽 종목인 트라이애쓰론는 수영 1.5킬로미터와 자전거 40킬로미터 그리고 달리기 10킬로미터를 이어서 한다. 수영을 하고 난 후 자전거를 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리기를 하는 이 운동은 세 가지의 서로 다른 힘든 운동을 함께하는 것으로 이 역시 매우 힘드나 완주할 때 오는 기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는 그 후에 오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운동을 꾸준히 하면 몸이 좋아지지만 재미가 없으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그 고통을 한방에 날려주는 쾌감이 있기에 나는 이러한 운동을 좋아한다. 이러한 운동은 하면 할수록 체력이 보강되어 고통은 점차 줄어들고 즐거움은 점점 커진다.

   
▲ "장준하의 구국장정육천리 자전거순례 길" - 라오허커우에서 바둥, 오른쪽 끝이 필자-

 적분은 모두 합하는 것이다

 고통과 쾌감의 관계를 적분으로 알아볼 수 있다. 시간 t 에 따라 느끼는 고통과 쾌감은 시간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시간 t 에 따라 고통을 느끼는 함수를 y=고통(t)라 하고, 쾌감을 느끼는 함수를 y=쾌감(t)라고 하자. 그러면 고통이나 쾌감을 당하고 있는 시간 동안의 느끼는 모든 어려움이나 즐거움을 모두 합한 양이 바로 그 시간 위에서 적분이다.

 고통을 처음 느끼는 시간을 0이라 하고 끝나는 시간을 b라고 하자. 그러면 그동안에 느낀 고통을 모두 합한 것은 y=고통(t)를 0에서 b까지 적분한 고통(t)dt로 나타낼 수 있다. 고통이 끝나면서 시작되는 쾌감이 끝나는 시간을 d라고 하면 그동안에 느낀 쾌감은 y=쾌감(t)를 b에서 d까지 적분한 쾌감(t)dt로 나타낼 수 있다. 사람의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니 고생한 사람 억울하지 않게 이 둘을 서로 같다고 보자. 즉 고생한 만큼 즐거움이 오는 것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식을 얻는다.

    고통(t)dt = 쾌감(t)dt

 고통을 느끼는 시간은 대체로 길고 쾌감은 짧은 순간에 느낀다. 마라톤의 경우 일반인은 4시간 넘게 달리며 꾸준히 고통을 받지만 완주를 하고 쉬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은 훨씬 작다는 뜻이다. 즉 즐거움을 느끼는 b와 d의 간격은 고통을 느끼는 b보다 훨씬 작다. 그러므로 위 식이 성립하려면 쾌감의 강도가 고통보다 훨씬 커야 한다. 그 뜻은 비록 느끼는 시간은 짧을지라도 쾌감의 크기는 모든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고통을 느끼는 함수를 아주 단순히 하여 시간이 갈수록 일정하게 힘들어진다고 하자. 즉 처음부터 10시간까지 느끼는 고통의 양은 시간에 비례하는 고통(t)=t/2라 하자. 10시간 후 고통이 사라지고 순간(계산의 편의를 위해 1시간 동안이라 하자)에 쾌감을 균등하게 느낀다고 하자. 그러면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는 고통의 양은 고통(t)=t/2을 0에서 10까지 적분한 것으로 그 값은 25이다. 이와 같은 양의 쾌감을 1시간에 균등하게 모두 느끼므로 쾌감은 상수이고 이를 c라고 하자. 이 상수를 10에서 11까지 적분한 값이 25이어야 하므로 c=25가 되어 쾌감의 강도는 한 시간 내내 25가 된다.

   
 

 위 그림에서 삼각형은 고통을 표현하고 사각형은 쾌감을 나타낸다. 그 두 면적이 같다고 했으므로 직사각형의 밑변의 길이에 해당하는 쾌감을 느끼는 시간이 삼각형의 밑변의 길이에 해당하는 고통을 느끼는 시간보다 10배는 크다. 사각형의 면적은 밑변의 길이 곱하기 높이이지만, 삼각형의 면적은 밑변의 길이 곱하기 높이의 반이므로 쾌감을 느끼는 그 강도는 고통을 최고로 느낄 때보다도 5배에 해당한다. 쾌감을 느끼는 시간이 순간이라면 순간에 일어나는 쾌감은 더욱 엄청나게 커진다. 그래서 그동안 겪었던 어렵고 힘들었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순간에 즐거움을 얻는다. 이 순간의 즐거움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즐거움의 여운을 남겨준다.

 이 맛에 사람들은 달리기를 하고 등산을 하고 산악자전거를 탄다. 아울러 인생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감내하고 희망을 갖고 노력하며 살면 지난날의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불교에서는 선행을 베풀라고 가르친다. 즉 덕을 쌓으라는 것이다. 덕을 쌓는 것이 복을 짓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덕을 쌓는 것이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것보다 힘들 수 있다. 그러나 힘 들여 덕을 베풀면 자기가 베푼 덕만큼 또는 복을 짓는 만큼 후일 다 돌려받는다. 자신이 못 받으면 자식이 받을 것이다. 자기가 베푼 덕은 차곡차곡 쌓인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저지른 악행 역시 차곡차곡 쌓인다. 이것이 인생의 적분이다. 자신이 못 받으면 자식이 또는 후손이 자신이 행한 덕이든 악행이든 다 물려받게 된다. 그래서 복을 받으려 하지 말고 복을 주어야 한다. 앞으로 새해 인사는 이렇게 바꾸는 것이 어떨까?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다음 편에는 법정스님이 말한 무소유를 수학에서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