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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복수보다는 공동체로서의 배려와 보상

[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21] 사형과 종신노역형

[그린경제/얼레빗=이규봉 교수]  체사레 벡카리아가 말한 한 시민의 죽음이 필요하다고 간주될 수 있는 한 경우로서 한 사람의 죽음이 타인들의 범죄를 억제하는 유일한 방법일 경우를 살펴보자. 과연 사형만이 유일한 방법일까? 인간의 정신에 무엇보다 큰 효과를 끼치는 것은 형벌의 강도라기보다는 그 지속성이라 할 수 있다.  

범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억제력은 범죄자가 처형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는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짐 나르는 짐승처럼 취급받고 자신의 노동으로 그가 사회에 끼친 손해를 속죄하는 인간의 모습을 오래 보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 아닐까? 사형이 주는 인상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급속한 망각의 힘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형을 받을 만한 흉악한 범죄자에게 거기에 합당한 고통을 줄 뿐 아니라 일반시민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형벌은 사형일까? 종신노역형일까? 사형은 한 순간에 모든 고통을 집결시키고 종신노역형은 일생에 걸쳐 고통이 분산된다. 오랫동안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것은 순간에 사형을 집행하는 것보다 시민들에게 더 큰 공포를 안겨줄 수 있다. 

인간정신은 일시적 고통에 대해서는 전력을 다해 버티어내지만, 장기간 반복되는 지루함과 비참함을 이겨낼 만한 탄력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또한 사형제도가 있는 국가에서는 본보기를 제공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사형에 처할만한 범죄가 생겨나야 한다. 그러나 종신노역형은 단지 한 범죄자만 있어도 그를 통해 일련의 지속성을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이 사형을 폐지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사형보다 장기노역형이 더 효과적이다 


   
▲ 사형과 종신노역형,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일까?(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사형수는 죽는 날만 기다리다 죽는 그 순간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죽는다고 할 수 있다. 이것에 해당하는 함수가 앞에서 소개한 디락 델타(Dirac delta) 함수이다. 이 함수는 0에서는 무한히 큰 수를 갖지만 0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는 0이 된다. 따라서 0을 죽는 순간이라 생각하면 디락 델타 함수는 죽는 그 순간에 엄청나게 큰 고통을 받지만 죽기 전이나 죽은 후에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종신노역형은 죽는 순간만큼의 큰 고통을 주지는 않을지라도 죽을 때까지 강제노동을 해야 되므로 그 고통은 그가 살아있는 매순간 계속된다.  

사형은 죽는 그 짧은 순간에 최고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므로 적분의 개념으로 보면 사형수가 느끼는 고통의 양은 사형(t)’를 적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종신노역형은 죽을 때까지 오랜 기간 끊임없이 적당한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적분의 개념으로 보면 무기수가 느끼는 고통의 양은 노역에 따른 고통 '노역(t)' 를 모두 적분한 것과 같다. 그러나 아무리 고통의 강도가 강할지라도 느끼는 그 순간이 짧으면 고통의 양은 작을 수 있고, 고통이 그리 크지 않더라도 느끼는 시간이 길면 전체적으로 느낀 고통의 양은 더욱 클 수 있다.  

이처럼 사형을 받을 때의 고통의 양은 일정하므로 강제노역의 강도를 높여 평생 강제노역으로부터 나오는 고통의 합이 사형을 받을 때의 그 고통보다 더 크게 할 수 있다. 

노역(t)dt >사형(t)dt 

그렇다면 굳이 사형을 집행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따라서 피해자의 보복심을 순간적으로 만족시켜 주지는 못할지라도 사형보다는 종신노역형이 수형자에게는 더욱 큰 벌이 될 수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아주 큰 고통을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극형인 사형에 처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형은 종신노역형보다는 가해자에게 덜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사형보다는 종신노역형에 처하는 것이 피해자가 원하는 것에 더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일반 시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본보기로도 한 순간의 볼거리인 사형보다는 오래 지속되는 종신노역형이 더욱 좋은 형벌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길게 보면 사형보다는 종신노역형이 피해자의 마음을 더 헤아려 줄 수 있다. 이것이 사형을 폐지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사형이 아닌 다른 형벌은 후에 무죄로 판결나면 이미 지나간 고난의 세월은 어쩔 수 없지만 대신 물질적으로 모두 보상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사형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정적을 살해하는데 악용될 수 있고, 또는 잘못된 판단으로 사형에 처해지면 나중에 범인이 잡히더라고 그것은 돌이킬 수가 없게 되는 매우 큰 약점이 있다. 이 점이 다른 모든 형벌과의 차이점이다.  

더구나 유능한 변호사를 살 능력이 없거나 편견을 가진 판검사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사형을 폐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경우를 막을 수 있고 잘못된 판단으로 사라져 간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8년과 2002년에 유엔의 의뢰를 받아 사형제도와 살인범죄율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로저 후드 교수는 사형이 종신형보다 살인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는 가설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The Death Penalty: Word, A World-wide Perspective, 2002)고 결과를 발표했다. 

복수가 범죄를 근절하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범죄 피해자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사형제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가해자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 피해자 가족의 권리라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가족이 살해된 유가족도 모두가 범인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살인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가해자를 사형시켰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을 치유해주지 않는다.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은 범죄와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이 슬픔과 상실감을 이겨내고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도와야 하는 것이 중요한다. 복수는 답이 되지 못한다. 그 답은 폭력을 줄이는 것이다. 가해자를 죽여 또 다른 슬픈 가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악순환을 깨뜨려야 한다.  

우리가 가해자를 사형시키려고 하는 것보다는 정말로 관심을 둬야 하는 것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경제적이고 정서적인 지원이다. 진정한 해답은 범죄예방을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지, 또 다른 살인 피해자 가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 ~ 1778)는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어떤 사람이 살아 있는 한 위험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를 사형에 처할 어떠한 권한도 없다. 타인에게 본보기를 제공하기 위해서 일지라도 사형할 권한은 없다.”고 했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당한 피해자의 한 서린 마음을 푸는데도 순간에 그치는 사형보다는 두고두고 고통을 겪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종신노역형이 범죄자를 사형시키는 것보다는 더욱 효과적이라고 본다. 사형을 폐지하는 대신 종신노역형 등의 형벌로 대체하고 국가는 살인피해자의 유가족에 대해서는 공동체로서의 배려와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