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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지사대학 교정에는 홍매화가 가득 피었다. |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윤동주 시인은 ‘한글로 시를 쓴다는 죄’로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어 생의 최후를 맞이한다. 후쿠오카로 잡혀 가기 전 1944년 7월 14일 그해 여름방학도 윤동주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누이 혜원을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픈 마음에 고향 북간도에 여비를 보내달라는 전보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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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시인 |
“오빠는 우리에게만 잘하셨던 게 아니에요. 대학생 신분이면서도 방학 때 집에 오면 할아버지의 삼베옷을 척 걸쳐 입고는 할아버지를 도와 소먹이, 닭모이 등을 만들기도 하고 산으로 소에게 풀을 먹이러 가기도 했지요. 그런가 하면 할머니와 어머니가 두부를 만들려고 콩을 맷돌에 가는 걸 같이 도와드리기고 했지요. 힘든 일을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그냥 넘기지 못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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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지사대학 교정에서 우에노미야코 시인과 함께 |
▲ 윤동주 시비 앞에서 일본시인들과 함께(가운데 한복차림이 글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