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박두진의 이름 높은 노래인 해는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이렇게 시작한다. 이 노래가 쓰인 1946년은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때인데도,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는 아직 솟지 않았다고 느꼈던가 보다. 그러고 보면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남과 북은 갈라져 원수처럼 지내자는 사람들이 많고, 정권에만 눈이 어두운 정치인들은 힘센 미국만 쳐다보며 셈판을 굴리는 판국이니, 우리 겨레에게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는 여전히 솟지 않았다고 해야 옳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는 솟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온통 ‘해가 뜬다’고만 한다. 그렇다면 ‘솟다’는 무엇이며, ‘뜨다’는 무엇인가? ‘솟다’는 제 힘으로 밑에서 위로 거침없이 밀고 올라오는 것이고, ‘뜨다’는 남의 힘에 얹혀서 아래에서 위로 밀려 올라오고 또 그 힘에 얹혀 높은 곳에 머무는 것이다. 그래서 ‘샘물’도 솟고 ‘불길’도 솟고 ‘해’도 솟는 것이지만, ‘배’는 뜨고 ‘연’은 뜨고 ‘달’은 뜨는 것이다. 샘물이 제 힘으로 밀고 올라오고 불길도 제 힘으로 밀고 올라오는 것은 알겠고, 배는 물의 힘에 얹혀서 밀려 올라오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속’과 ‘안’은 본디 아주 다른 낱말이지만, 요즘은 모두가 헷갈려 뒤죽박죽 쓴다. · 속 : ① 거죽이나 껍질로 싸인 물체의 안쪽 부분. ② 일정하게 둘러싸인 것의 안쪽으로 들어간 부분. · 안 : 어떤 물체나 공간의 둘러싸인 가에서 가운데로 향한 쪽, 또는 그런 곳이나 부분. 《표준국어대사전》 국어사전의 풀이만으로는 누가 보아도 어떻게 다른지 가늠하기 어렵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밖에도 여러 풀이를 덧붙여 달아 놓았으나, 그것은 모두 위에서 풀이한 본디 뜻에서 번져 나간 것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본디 뜻을 또렷하게 밝혀 놓으면 번지고 퍼져 나간 뜻은 절로 졸가리가 서서 쉽게 알아들을 수가 있다. 그러나 본디 뜻을 흐릿하게 해 놓으니까 그런 여러 풀이가 사람을 더욱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우선 ‘속’은 ‘겉’과 짝을 이루어 쓰이는 낱말이고, ‘안’은 ‘밖’과 짝을 이루어 쓰이는 낱말이다. “저 사람 겉 다르고 속 다른 데가 있으니 너무 깊이 사귀지 말게.” 하는 말은 ‘겉’과 ‘속’을 아주 잘 짝지어 쓴 보기다. 여기서 ‘겉’은 바깥으로 드러나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행동과 말 따위를 뜻하고, ‘속’은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소리’와 ‘이야기’는 본디 서로 얽히지 않고 저마다 또렷한 뜻을 지닌 낱말들이다. “번개 치면 우레 소리 들리게 마련 아닌가?” “밤도 길고 심심한데 옛 이야기나 한 자리씩 하면 어때?” 이렇게 쓸 때에는 ‘소리’와 ‘이야기’가 서로 얽히거나 헷갈리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데서는 ‘소리’나 ‘이야기’가 모두 ‘말’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면서 서로 넘나든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합디까?”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합디까?” 그러나 서로 넘나드는 것이 바르고 마땅할까? ‘소리’와 ‘이야기’는 본디 뜻이 서로 다른 만큼, 넘나들 적에도 뜻의 속살은 서로 다르다. 그 다름이 뚜렷하지 않고 아슬아슬하지만, 아슬아슬한 얽힘을 제대로 가려서 쓸 수 있어야 참으로 우리말을 아는 것이다. 국어사전들은 ‘말’과 비슷한 뜻의 ‘소리’와 ‘이야기’를 어떻게 뜻가림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1) · 소리 : 말.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 이야기 : ① 지난 일이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남에게 일러 주는 말. ¶내 이야기 들어 보소. ② 어떤 제목을 중심으로 한 이런 말 저런 말. ¶이야기가 오고 가다. 2) · 소리 : 말이나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우리나라는 지구라는 이 땅덩이 위에서 물이 가장 좋은 곳이다. 물을 받아 담아 두는 흙과 돌과 바위가 목숨에 좋은 갖가지 원소를 품고서 물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겨레는 물을 먹고 쓰려고 마련한 자연의 그릇도 여러 가지를 썼다. 그런 그릇 가운데 가장 많이 쓴 것이 ‘샘’과 ‘우물’이다. 그러나 요즘은 샘과 우물이 삶에서 밀려나 자취를 감추려 한다. 삶의 전통을 지키려면 말의 박물관이라도 서둘러 만들어야 할 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샘’을 “물이 땅에서 솟아 나오는 곳”이라 풀이하고, ‘우물’을 “물을 긷기 위하여 땅을 파서 지하수를 괴게 한 곳”이라 풀이해 놓았다. ‘우물’을 ‘물을 긷기 위하여 괴게 한 것’이라 하면, 먹으려고 긷는지 쓰려고 긷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게다가 ‘지하수’라는 낱말의 뜻을 “빗물이 땅속에 스며들어 흙과 돌과 바위 사이 빈틈을 채우고 있는 물”이라 한다면, “물을 긷기 위하여 땅을 파서 지하수를 괴게 하는 곳”은 ‘우물’이 아니라 ‘둠벙’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둠벙’을 “웅덩이의 충청도 사투리”라 했지만, 둠벙은 삼남 지역에서 입말로 두루 쓰던 낱말이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사람은 불을 찾고 만들어 다스리면서 삶의 길을 가장 크게 뛰어올랐다. 겨울의 추위를 물리치고 밤의 어두움을 몰아내면서 삶은 날로 새로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날것으로 먹을 수밖에 없던 먹거리를 굽거나 삶아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삶의 길을 뛰어오르는 지렛대의 하나였다. 굽는 것은 먹거리 감을 불에다 바로 익히는 노릇이고, 삶는 것은 먹거리 감을 물에 넣어서 익히는 노릇이다. 삶다는 물에 먹거리 감을 넣고 푹 익히는 것이다. 감자나 고구마, 토란이나 우엉같이 단단한 뿌리 남새(채소)라면 삶아서 먹는 것이 제격이다. 그러나 단단하지 않은 것이라도 날것으로는 먹기 어려운 것들, 일테면 박이나 호박 같은 남새는 말할 나위도 없고, 무엇보다도 짐승의 고기는 삶아야 제대로 맛을 즐기며 먹을 수가 있다. ▲ 감자나 고구마 같이 단단한 뿌리 남새라면 삶아서 먹는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삶는 것에 아주 가까운 것으로 데치다가 있다. 데치는 것은 물에 먹거리 감을 넣고 살짝만 익히는 것이다. 삶아 버리면 너무 흐물흐물해서 먹을 수가 없을 만큼 여리고 부드러운 먹거리 감, 일테면 이른 봄에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사투리는 대중말(대중은 눈대중이 매섭다, 대중없이 왜 이랬다저랬다 해?에서처럼 가늠을 뜻하는 토박이말이다. 대중말과 같은 뜻으로 표준말을 쓰지만, 그것은 일본에서 온 들온말이다.)에 맞선다. 대중말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국민이 막힘없이 주고받도록 규정에 맞추어 마련해 놓은 말이고, 그런 규정에서 밀려난 우리말은 모두 사투리다. 사투리에는 어느 고장에서만 쓰는 사투리도 있고, 어떤 사람이나 모둠에서만 쓰는 사투리도 있다. 토박이말은 들온말(외래어)에 맞선다. 들온말은 가까운 중국과 일본과 몽고를 비롯하여 멀리 서양 여러 겨레(민족)에게서 들어왔다. 이렇게 남의 말에서 들어온 것을 뺀 나머지는 모두 토박이말이다. 토박이말은 우리에게서 저절로 싹트고 자라난 우리말의 알짜요 노른자위다. ▲ 사투리나 토박이말은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낱말이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토박이말에도 대중말과 사투리가 싸잡혀 있고, 사투리에도 토박이말과 들온말이 싸잡혀 있다. 그런데 사투리와 토박이말이란 낱말은 우리네 배웠다는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았다. 그들은 굳이 사투리를 버리고 방언/지역어라는 한자말을 쓰고,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뽑다는 박힌 것을 잡아당겨서 빼내는 노릇이다. 박힌 것이란 온갖 풀이나 나무나 갖가지 남새(채소), 곡식의 뿌리라든지 짐승이나 사람의 이빨같이 자연히 박힌 것을 비롯해서, 못이나 말뚝같이 사람이 박은 것까지 싸잡아 뜻한다. 게다가 뜻넓이가 더욱 번져 나가면서 몸에서 피를 뽑듯이 땅속에서 기름도 뽑고 물도 뽑는다. 게다가 거미 꽁무니에서 줄을 뽑고, 사람의 목에서 노래 한 가락을 뽑고,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버릇을 뽑듯이 속에 있는 것을 나오게 한다는 뜻으로도 쓴다. 그뿐 아니라 반장이나 대표를 뽑듯이 골라잡는다는 뜻, 장사에서 밑천을 뽑듯이 거두어들인다는 뜻으로까지 넓혀서 쓴다. 뽑다를 본디 제 뜻, 곧 푸나무와 남새와 곡식같이 땅에서 싹이 나고 자라는 것을 빼낸다는 뜻으로 쓸 적에는 비슷한 낱말이 여럿 있다. 캐다, 솎다, 찌다, 매다가 그런 낱말들이다. ▲ 무를 뽑고, 모를 찌고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캐다는 쓸모가 있으나 흔하게 널려 있지 않아 찾고 가려서 빼내는 것인데, 맨손이 아니라 칼이나 호미를 비롯한 갖가지 연모의 도움을 받아서 빼내는 노릇을 뜻한다. 봄철이면 뫼나 들에서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 덕분(?)으로 요즘 우리 겨레의 옛 삶이 뚜렷이 드러나면서 중국 사람뿐만 아니라 온 천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고조선의 중심이었던 요하 가장자리에서 일어난 문명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로 손꼽혀 온 중국 황하 문명보다 오백 년에서 천 년이나 앞선 사실이 환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을 일으켜서 먹거리를 익히고, 그릇을 굽고, 청동기를 만들어 사냥과 농사를 바꾸는 일을 황하 언저리의 중원 사람들에게 가르쳤다는 사실 또한 드러났다. 이는 동이족인 염제 신농씨가 중국으로 불을 가져가 농사를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한갓 신화가 아님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겨레가 불을 쓰며 살아온 세월이 오래라 그런지, 우리말에는 불에 말미암은 낱말이 여럿이다. 부리나케와 불현듯이도 그런 낱말들 가운데 하나다. 부리나케는 [불+이+나+게]가 본디 모습이다. 그러니까 불이 나게가 하나의 낱말로 붙어 버린 것인데, 오늘날 맞춤법이 본디 모습을 밝혀서 적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기로 해서 부리나케가 되었다. 나게가 나케로 바뀐 것은 느낌을 거세게 하려는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나게가 낳게와 서로 헷갈려서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겨울 초입에서는 이른 추위가 닥쳐서 부랴부랴 김장들을 재촉하고. - 한수산, 부초 부랴사랴 외부대신 집으로 달려가는 교자가 있었다. - 유주현, 대한제국 부랴부랴와 부랴사랴는 생김새가 아주 닮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의 같은 뜻으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두 낱말의 뜻풀이를 아주 같은 것으로 해 놓았다. 부랴부랴 : 매우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 부랴사랴 : 매우 부산하고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 《표준국어대사전》 보다시피 그림씨 부산하고를 더 넣고 빼고 했을 뿐이니,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 알 도리가 없다. 외국인이라면 이런 뜻풀이 정도로 알고 그냥 써도 탓할 수 없겠지만, 우리 겨레라면 이들 두 낱말을 같은 것쯤으로 알고 써서는 안 된다. 선조들이 값진 삶으로 가꾸어 물려주신 이들 두 낱말은 저마다 지닌 뜻넓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부랴부랴는 느낌씨(감탄사) 낱말 불이야!가 겹쳐서 이루어진 어찌씨(부사) 낱말이다. 불이야! 불이야! 하던 것이 줄어서 불야! 불야! 하게 되었는데, 오늘날 맞춤법이 소리 나는 대로 적기로 해서 부랴부랴가 되었다. 이렇게 바뀐 것이 별것 아닌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두 낱말이던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배알과 속알은 오랜 업신여김과 따돌림 속에서 쥐 죽은 듯이 숨어 지내는 낱말들이다. 그런 가운데서 배알은 그나마 국어사전에 올라서 목숨을 영영 잃지는 않았다 하겠으나, 속알은 아주 목숨이 끊어졌는지 국어사전에조차 얼씬도 못하고 있다. 국어사전들에서 풀이하고 있는 속알의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알맹이. (평북) 2) 단단한 껍데기가 있는 열매의 속알맹이 부분. 3) 알맹이의 방언. (평북) 이런 풀이는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속알의 뜻과 사뭇 다른 엉뚱한 풀이들이다.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는 배알은 풀이가 또 이렇다. 1) ① 동물의 창자. ② 사람의 창자의 낮은말. ③ 부아의 낮은말. ④ 속마음의 낮은말. ⑤ 배짱의 낮은말. 2) 밸을 속되게 이르는 말. 3) ① 창자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 ② 속마음을 낮잡아 이르는 말. ③ 배짱을 낮잡아 이르는 말. 짐승의 창자라는 것 말고는 모조리 낮은말이니 속되게 이르는 말이니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니 낮잡아 이르는 말이니 해 놓았다. 배알은 제 뜻을 지니지도 못하고 겨우 다른 말을 낮추어 쓰는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배알을 얼마나 업신여기고 있는지 잘 알려 주는 풀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