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인생일장은 춘몽이 되고 세상공명은 꿈밖이로구나 생각을 하니 세월가는 것 등달아 나어이 할까요 이는 서도소리의 대표되는 것으로서 남도의 ‘육자배기’와 함께 우리 민요의 쌍벽을 이루는 소리로 꼽지요. ‘수심가’는 섬세한 감정과 호흡을 담은 소리인데 지난 1월 26일 서울돈화문국악당 <일소당 음악회>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서도소리 전승교육사며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인 유지숙 명창의 소리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사의 내용은 대개 임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애틋한 심경을 읊은 것인데, 열자 안팎으로 된 '가'와 '나' 두 부분과 "생각을 하니…나 어이 할까요"로 된 '다' 부분이 1절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가ㆍ나ㆍ다로 나누어진 짜임새는 초장과 중장과 종장으로 된 시조나 남도민요 육자배기의 구성과 같아서 전통 음악의 노래에 나타나는 형식의 공통점을 보여 줍니다. 〈수심가〉를는 서도소리의 대표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공명가’와 ‘초한가’와 같은 잡가나 ‘엮음 수심가’의 끝에서는 수심가 한 절로 끝맺음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든지, 서도소리의 특징을 '수심가조'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으로도 증명됩니다. 소리의 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가무형문화재에는 옥 종류의 돌을 이용하여 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하는 장인 ‘옥장(玉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ㆍ중국ㆍ일본 등에서는 옥공예가 일찍부터 발달했는데 그 까닭은 중국에서 돌 가운데에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옥’을 ‘오덕(五德)’에 견줬기 때문입니다. 곧 옥에서 온화한 광택이 나는데 이를 ‘인(仁)’으로, 또 투명하고 맑은 빛깔을 보이는데 이는 ‘의(義)’로, 두드리면 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지(智)’로, 깨져도 굽히지 않는 성질을 ‘용(勇)’으로, 예리하면서도 상처를 내지만 절대로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을 ‘엄(嚴)’을 상징한다고 하여 이를 오덕으로 보았기 때문이지요. 옥으로는 옥피리ㆍ옥경(玉磬) 등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어 연극에 썼고, 의례에 쓰이는 도구로서는 대규(大圭)ㆍ규장(圭璋), 꾸미개(장신구)로는 옥비녀ㆍ옥가락지ㆍ옥구슬ㆍ패옥(임금ㆍ왕비의 법복이나 문무백관의 조복(朝服) 좌우에 늘여 차던 옥)ㆍ옥새(임금의 도장) 등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연회에 사용했던 그릇이 모두 백옥(白玉)으로 만들어졌다는 기록도 있으며, 조선 중종 때에는 옥장들이 몰래 옥을 캐어 옥기(玉器)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자한(自恨) 春冷補寒衣(춘냉보한의) 봄날이 차서 얇은 옷을 꿰매는데 紗窓日照時(사창일조시) 깁창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네 低頭信手處(저두신수처)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긴 채 珠淚滴針絲(주루적침사) 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 적시네 이는 매창(梅窓)이 연인 유희경을 오랜 세월 동안 만나지 못하여 애절한 속마음을 표현한 <자한(自恨)>이라는 시다. 아직 쌀쌀한 이른 봄, 갑창(甲窓, 추위를 막으려고, 미닫이 안쪽에 덧끼우는 미닫이)에 햇빛이 비치고 있지만, 머리 숙여 그저 손길 가는 대로 바느질만 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 눈물이 실과 바늘을 적신다고 표현하여 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애절한 속마음을 짐작게 한다. 매창(梅窓)은 부안의 기생으로 황진이와 더불어 시서화에 능한 조선 여류문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탕종(李湯從)의 딸로서 본명은 이향금(李香今)이며 매창은 호다. 계유년에 태어나 계생(癸生), 계랑(癸娘, 桂娘)이라고도 한다. 당대 문인이었던 유희경과 가슴 시린 사랑을 나누었고, 허균, 이귀 등과 교류하며 그녀의 문학적 재능을 널리 알렸음은 물론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다. 매창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올해는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입니다. 그 용을 바라보는 눈이 동양과 서양에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드래곤(dragon)이라 하여 날개가 달리고 다리가 있으며, 입에서는 뜨거운 불을 내뿜는데 파괴를 의미하는 악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물을 관장하는 신성한 영물로 대접받습니다. 그러면 동양에서 구체적인 용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질까요? 중국의 오랜 문헌인 《광아(廣雅)》 익조(翼條)에 나온 용의 모습을 보면 머리는 낙타[駝]와 비슷하고,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와 비슷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 81개의 비늘이 있고, 그 소리는 구리로 만든 쟁반 소리와 같으며,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고, 목 아래에는 거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양에서는 용이 임금이나 황제를 상징한다고 생각하며, 황제는 발톱이 7개인 칠조룡(七爪龍)으로 표현하고, 제후들은 발톱이 5개인 5조룡(五爪龍)이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제후국임을 자처한 조선은 5조룡(五爪龍)을 썼습니다, 그러나 경복궁을 중건했던 고종은 제후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정조사(正朝使) 유수강(柳守剛)이 먼저 통사(通事)를 보내와서 말하기를, ‘황제가 희고 두꺼운 닥지[白厚楮紙]를 구합니다.’ 하니, 조지소(造紙所, 조선 시대, 종이 뜨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에 보내어 준비하게 하였다.” 이는 세조실록 30권, 《세조실록》 9년(1463년) 2월 19일 치에 보이는 것으로 명나라 황제가 희고 두꺼운 닥지를 요청했다는 기록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 중국인들은 신라시대 때부터 우리 종이를 ‘계림지(鷄林紙)’라 불렀고, 이후 ‘고려지(高麗紙)’, ‘조선지(朝鮮紙)’라고 부르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송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고려나 조선 사신들이 들고 가는 선물에 ‘종이’가 있었다는 데서 우리 종이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때 중국 사람들은 우리 종이를 비단으로 만들었다고 착각하기까지 했는데, 명나라 《일통지(一統志)》 때 와서야 비로소 닥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확인한 기록이 보인다고 합니다. 조선 영조 때 서명웅이 지은 《보만재총서(保晩齋叢書)》에 보면 “송나라 사람들이 여러 나라 종이를 견줄 때 반드시 고려지를 으뜸으로 쳤다. 우리나라의 종이는 방망이로 두드리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수 무렵 - 변경서 쑥물 드는 을숙도엔 여백이 남아있다 스스로 몸 낮추며 드러누운 저 강물 나란히 일렬횡대로 명지바람* 불어오고 쓰다듬고 매만지면 상처도 꽃이 된다 떠났다가 때가 되면 다시 드는 밑물 썰물 웃을 일 슬픈 일들이 찰랑찰랑 뒤척인다 돌리면 공든 탑도 모래성 되는 세월 겨울은 정이 들어 떠나기가 어려운지 갈대발 하구를 따라 멈칫멈칫 걷고 있다. 모레 2월 19일은 24절기 둘째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다. ‘우수(雨水)’라는 말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말로 이제 추운 겨울이 가고 이른바 봄을 맞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봄꽃이 피어나기 전 마지막 겨울 추위가 선뜻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아직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 이 무렵이다. 하지만, 봄은 이제 코앞에 다가와 있다. 이제 봄이 저 남녘에서 서서히 올라오고 있을 거다. 이때쯤 되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물이라며 한양 상인들에게 황소 60 마리를 살 수 있는 4천 냥을 받고 대동강을 팔았다는 김선달이 생각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이 땅을 휩쓸고 지나간 뒤 조선의 위정자들은 민생을 외면했고 백성은 고통 속에서 살아갔다. 이때 사회 현실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해 정월대보름을 앞둔 25일 머니S라는 언론에는 “평택시는 '척사대회'라는 용어 대신 '윷놀이대회'를 사용할 것을 민간에 권고하는 한편, 시에서 진행하는 관련 행사에서도 '윷놀이대회'를 공식 명칭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가운데 줄임) 각 마을에서 펼쳐진 윷놀이대회는 '던질 척(擲)'의 '윷 사(柶)'를 사용해 '척사대회'로 불려 왔다. 하지만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에게 '척사'의 뜻이 쉽게 해석되지 않고, 쉬운 우리말인 '윷놀이'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평택시는 용어 순화를 민간에 당부했다.”라는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평택시는 우리말 앞장서고 있지만, 아직도 곳곳에 걸려 있는 펼침막을 보면 윷놀이대회가 아닌 여전히 ‘척사대회’라고 쓴 데가 많습니다. 한 작가의 글에 보면 문해력 곧 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강조하면서 ‘금일(今日)에 만나요.’를 금요일에 만나자고 잘못 인식하여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례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대부분 우리말 ‘오늘’이라고 하지 한자말을 써서 ’금일‘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쉬운 우리말(토박이말)을 쓴다면 한자를 몰라서 문해력이 떨어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2024년 갑진년 푸른 용해가 밝았다. 지난해 나라가 온통 어수선해 온 국민의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제 밝아온 새해는 지난해의 시름을 떨쳐 버리고, 힘찬 한 해가 되기를 비손해 본다. 설날,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여 세배하고 성묘하며, 정을 다진다. 또 온 겨레는 “온보기”를 하기 위해 민족대이동을 하느라 길은 북새통이다. “온보기”라 한 것은 예전엔 만나기가 어렵던 친정어머니와 시집간 딸이 명절 뒤에 중간에서 만나 회포를 풀었던 “반보기”에 견주어 지금은 중간이 아니라 친정 또는 고향에 가서 만나기에 온보기인 것이다. 설날의 말밑들 설날을 맞아 먼저 “설날”이란 말의 유래를 살펴보자. 조선 중기 실학자 이수광(李睟光, 1563~1628년)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설날을 “달도일(怛忉日)”이라고 했다. 곧 한 해가 지남으로써 점차 늙어 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말이다. 그리고 '사리다' 또는 삼가다.'의 `살'에서 비롯했다는 설도 있다. 여러 세시기(歲時記)에는 설을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표현하고 있는데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뜻으로 본다. 또 '설다. 낯설다'의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갑진년(2024) 새해 인사(그림 오희선 작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은 우리 겨레의 명절 설날이면서 십이지(十二支) 날 가운데 ‘갑진일(甲辰日)로 새해 ‘첫 용날’ 곧 상진일(上辰日)입니다. 이날 새벽 하늘에 사는 용이 땅에 내려와 우물에 알을 풀어놓고 가는데 이 우물물을 가장 먼저 길어다가 밥을 지어 먹으면, 그 해 운이 좋아 농사가 대풍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부녀자들은 이날 남보다 먼저 일어나 우물물을 길어오기에 바빴지요. 《동국세시기》에는 이러한 풍습을 ‘용알뜨기’라 했습니다. 용의 알을 먼저 떠간 사람이 그 표시로 지푸라기를 잘라 우물에 띄워두면 다음에 온 사람은 용의 알이 있을 딴 우물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전라남도 어떤 지방에서는 첫용날에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지 않는데 만일 물을 길어오면 농사철 바쁜 때 큰비가 내려 홍수가 난다고 믿었으며, 어촌에서는 어장(漁場)에 해를 입는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지방에서는 첫 진일 전날에 집집이 물을 넉넉히 길어다 두었습니다. 또 첫용날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털이 용의 머리털처럼 길어진다고 해서 이날 여인들은 머리를 감았으며, 농가 아이들은 콩을 볶아서 가지고 다니면서 먹었는데 그렇게 하면 그해 곡식에 좀이 슬지 않는다고 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