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틍소잽이 동선본의 독주회 이야기를 하였다. 퉁소 생활 45년을 기념하고 퉁소음악의 확산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준비된 음악회였다는 점, 퉁소는 듣기는 좋으나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해 전승이 활발하지 못한 상황이란 점, 퉁소는 단소에 비하면 보다 굵고, 긴 형태이고, 청공(淸孔)이 있어 대금과 유사하다는 점, 기록에는 고려 때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어 주로 당악(唐樂)계 음악에 편성되어 왔지만, 조선조 중기 이후에는 향악(鄕樂)에 도 쓰이기 시작하였으나 현재에는 민속음악에만 쓰이고 있으며, 특히 시나위나 산조, 함경도의 북청사자놀음에 반주음악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얘기했다. 동선본이 퉁소와 인연을 맺게 된 연유도 함경남도 북청에서 월남한 부친의 영향이 컸으며 본격적으로 북청사자놀음에 입문해서는 신선식, 전준식, 마희수, 김영곤, 변영호 명인들에게 직접 사사를 받아 현재 국가문화재 전수조교로 퉁소와 함께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는 점, 앞으로 퉁소음악의 저변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 공연활동, 음원개발, 음반제작, 등 퉁소관련 활동을 꾸준히 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 2017년 6월 30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포천의 소리꾼, 박영실이 포천 문화원에서 묵계월류 경기잡가의 소리판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묵계월은 자신만의 특유한 목구성을 지닌 명창이었고, 국가에서 인정한 예능보유자의 자리를 나이가 들었다고 스스로 용퇴한 최초의 양심적인 명창이었으며, 포천에서 발표회를 열게 된 박영실 역시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제자로, 선생의 경기잡가를 충실히 이어가는 동시에 <영평8경소리>를 활성화한 소리꾼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박영실은 포천시민은 물론, 우리 문화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 <적벽가>와 <출인가> <선유가>와 <방물가> 등 쉽지 않은 긴 호흡의 좌창을 12명의 제자들과 제창하였는데, 시종일관 자신있게 불러 주었으며 객석을 메운 포천시민들의 조용하고도 성숙된 감상태도도 훌륭했다는 이야기, 박명창은 포천의 <영평팔경>, 즉 여덟 개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한시에 현대적 언어로 재창작을 하고, 새롭게 곡을 얹어서 <영평팔경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이를 노래와 춤, 연극으로 입체적 무대를 꾸며 꾸준히 공연되고 있어서 포천의 명물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까지는 유지숙 명창이 불러주는 서도 좌창 <제전(祭奠)>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벽파 이창배의 《가창대계》에서는 <제전>의 노랫말을 표준어로 기록하고 있으나, 황해도 출신의 박기종 명창은‘오’를‘우’로 표기하며‘날 다려만 가렴아.’와 같은 부분도‘날 데려만 가소 구레’로 불러서 향토색이 짙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예전에는 인생무상을 강조하는 독백형식의 넋두리로 시작하는 형식이었으나 근래에는 곧바로 노래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 제전의 장단은 불규칙적이면서도 자유스런 리듬이나, 6박의 도드리 장단형태가 중심이 되고, 부분적으로는 4박, 5박, 7박의 형태도 있어 노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반주가 용이하지 못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묵계월 명창을 스승으로 모시고, 소리공부를 열심히 해 온 포천의 소리꾼, 박영실이 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한 여름(7월 26), 포천 문화원에서 묵계월류 경기잡가의 소리판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모두들 더위를 피해 피서를 떠나는 시기에, 경기북부 지방의 포천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비인기 종목으로 치부되는 잡가 발표회를 갖는다는 자체가 보통의 상식으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 좌창 <제전(祭奠)>의 끝부분이 이 노래의 절정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유지숙 명창이 불러주는 “잔디를 뜯어 모진 광풍에 흩날리며 〖왜 죽었소, 왜 죽었소, 옥 같은 나 여기 두고 왜 죽었단 말이요.〗 대목의 애끓는 절규는 너무도 인상적인 소리로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백오동풍(百五東風)은 한식(寒食)때 불어오는 봄바람을 뜻하는 말로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 한식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다는 이야기, 상차림의 모습, 제물을 차리는 위치나 각 제물의 생산지가 소개되고 있어서 특산품의 정보도 소개하고 있다는 이야기, ‘함종 약률’이라는 표현에서 평안도 함종 지방의 밤이 유명하였음을 알게 되고, 또한 함종은 강서군의 한 면소재지로 평안도 민요 <긴아리>의 최초 발생지로도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제사상에 올리는 술 종류도 다양하다는 이야기, 벽파 이창배의 《가창대계》는 노랫말을 표준어로 기록하고 있으나, 황해도 출신의 박기종 명창은 양성모음을 음성모음으로 표기하고 있어서 투박한 느낌을 주며 끝부분의 ‘날 다려만 가렴아.’를 ‘날 데려만 가소 구레’ 등으로 불러 향토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6월 <돈화문국악당>에서 유지숙명창이 부른 서도 좌창 “제전(祭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한식 명절에 죽은 남편 무덤을 찾아가서 정성껏 제물을 차려놓고 수심가조의 창법으로 절규하는 노래라는 점, 서도소리에도 좌창이나 입창(선소리)형태를 비롯하여, 송서, 율창, 소리극, 재담, 신명나는 민요 등이 있으며 이에 따라 이름난 명창이 많았으나 1세대 명창들은 거의 작고한 상황이고, 지금은 남쪽의 2세대들이 이 소리를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제전”은 갖가지 음식이며 술을 준비해서 상차림을 한 후, 남편을 애절하게 회상하는 내용인데, 유지숙은 서도소리 특유의 시김새와 창법으로 청중을 감동시켰다는 이야기, 그 시작에‘백오동풍(百五東風)’은 한식(寒食)때 불어오는 봄바람으로 이는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 한식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제전”에서는 상차림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갖가지 제물을 차려놓되, 각각의 제물 이름이라든가 또는 그 제물들을 놓는 위치를 알려주고 있으며, 이와 함께 각 제물의 생산지가 소개되고 있어서 어느 지역에서 어떠한 물품이 특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일제의 강압정책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살던 사람들이 <교포> <조선족> <고려인> <코리안>이란 이름으로 이국땅에 살고 있으면서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특히 재외동포들의 2세나 3~4세들 중에는 모국어는 구사하지 못해도 아리랑은 애국가 이상으로 많이 부르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 그들의 할아버지 세대, 혹은 부모세대가 슬픔과 기쁨을 아리랑과 함께 하던 생활 속의 경험이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고려인들은 황무지 연해주를 옥토로 바꾸었고, 러시아의 적인 일본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구 소련 사회에 이바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냉대와 질병, 추위와 기아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저력은 아리랑의 힘이 컸다는 점, 대단한 음악은 반드시 쉽다는 대악필이(大樂必易)는 아리랑이 연상된다는 이야기,《아리랑》을 활용한 프로그램으로 남과 북, 동과 서, 진보와 보수, 빈자와 부자, 노년과 청소년, 본국과 해외교포와의 국민 대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번 주에는 유지숙이 불러주는 서도소리 중에서 좌창에 속하는 <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아리랑은 슬픈 감정으로 느리게 부르면 구슬픈 노래가 되고, 반대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경쾌하게 부르면 기쁜 노래가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아리랑이란 무슨 뜻이고 어떤 의미를 내포한 말인가? 하는 어원에 관한 이야기 등도 소개해 보았다. 그 가운데서 아리랑이란 의미는 첫째가 크다(大)는 뜻이라는 점, 랑(郞)은 '님'이어서 <크신 님>, <하늘 님> <하느님>이라는 주장이 있다는 이야기, 두 번째 의미로는 <고운 님>, 세 번째로는<사무치게 그리운 님>이고 쓰리랑은 마음이 쓰리도록 <그리운 님>이라는 뜻이라는 주장, 네 번째로는 나 아(我), 이치라는 뜻의 리(理), 즐거울 랑(朗)으로 해석해서 <나를 찾는 즐거움의 노래>, <나를 깨닫는 즐거움>이란 뜻으로 의미를 찾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리랑은 크다는 의미와 연계하여 큰 강을 뜻하기도 하는데, 한강수를 아리수라 부르기도 하였다는 이야기, 그밖에도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 등을 덧붙였다. 반드시 의미를 알고 아리랑을 불러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앞에서 소개한 여러 의미가 있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아리랑이 불리기 시작한 시기는 분명치 않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1800년대 중반, 경복궁을 중건할 때, 각 지역에서 차출된 인부들이나 또는 사당패를 불러 연희할 경우에 각 지역의 아리랑이 불려 졌고, 그 후 인부들에 의해 파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그 뒤 1896년는 외국인 선교사 헐버트(hulbert)가 당시의 아리랑을 5선보로 채보하였는데, 이 곡은 현재의 <구 아리랑>이란 점,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이라는 영화에서는 주제곡으로 <아리랑>을 편곡하였는데, 영화와 함께 아리랑 노래가 민족 감정을 폭발시키게 되어 민족의 노래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점, 이 아리랑은 기존의 <구아리랑>에 견주어 박자나 가락, 시김새의 형태를 간결하게 변화시킨 <신아리랑>이란 점을 얘기했다. 현재는 이 아리랑을 다른 지방의 아리랑과 구별하기 위하여 서울 경기지방의 <본조(本調)아리랑>, 또는 단순하게 <아리랑>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 본조아리랑의 음조직은 Sol-La-Do-Re-Mi의 5음으로 순차 상행이나 하행하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한국의 아리랑은 지난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14년에는 북한의 아리랑민요가 역시 등재되었기에 아리랑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인의 노래 유산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지난주에 하였다. 정선아리랑을 비롯하여 서울 경기지방의 본조(本調)아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전라도의 진도아리랑 외에도 문경아리랑, 상주아리랑, 해주아리랑, 대구아리랑, 공주아리랑, 영천아리랑, 용천아리랑, 등등 지역의 특징적인 아리랑은 수도 없이 많다는 이야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기도 했지만, 식민지 시절, 아리랑을 금지곡으로 지정하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각 지방에서 부르기 시작했으리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또 무엇보다도 아리랑의 음악적 특징은 간결하면서도 정제되어 있는 형식과 선율형이 간단해서 쉽게 부를 수 있다는 점, 3박자형의 리듬구조, 지역마다의 시김새가 다양하다는 점, 그 중에서도 특히 떠는 소리의 형태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즉석에서도 지어 부를 수 있는 풍부한 노래말이라든가, 박자의 조절이나 감정의 상태에 따라 슬픔과 기쁨 등 음악적 분위기를 바꾸어 부를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 불리고 있는 “아리랑”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4인, 즉 미국 유타대학 명예교수 이정면 박사, 사회사업가 류승호 씨, 사진작가 류승률 씨, 그리고 문학작가 서용순 씨를 소개하였다. 이들은 음악 전공자는 아니지만, 고려인들이 지켜온 아리랑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그들이 답사한 아리랑 로드 10만Km의 생생한 기록을 한 권의 책에 담으면서 6월 7일 인사동 소재 토포하우스에서 출판기념회와 사진전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53만 고려인들이 부르는 아리랑 속에는 과거의 아픈 상처가 묻혀있는데, 그 중에서도 1937년, 스탈린에 의해 18만 명의 고려인들이 영하 30도의 추운 카자흐스탄 벌판으로 강제 추방된 사건은 잊을 수가 없는 탄압이었다.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 질병과 싸우면서도 그들에게 가해진 탄압의 역사를 아리랑을 부르며 견뎌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민족을 하나로 묶어준 강력한 힘의 원동력이었으며 희망이었고, 부모였으며 조국이었고, 생명의 노래였던 것이다. 이번 주에는 그들이 그토록 처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