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운데서 아리랑이란 의미는 첫째가 크다(大)는 뜻이라는 점, 랑(郞)은 '님'이어서 <크신 님>, <하늘 님> <하느님>이라는 주장이 있다는 이야기, 두 번째 의미로는 <고운 님>, 세 번째로는<사무치게 그리운 님>이고 쓰리랑은 마음이 쓰리도록 <그리운 님>이라는 뜻이라는 주장, 네 번째로는 나 아(我), 이치라는 뜻의 리(理), 즐거울 랑(朗)으로 해석해서 <나를 찾는 즐거움의 노래>, <나를 깨닫는 즐거움>이란 뜻으로 의미를 찾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리랑은 크다는 의미와 연계하여 큰 강을 뜻하기도 하는데, 한강수를 아리수라 부르기도 하였다는 이야기, 그밖에도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 등을 덧붙였다.
반드시 의미를 알고 아리랑을 불러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앞에서 소개한 여러 의미가 있다는 점을 참고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아리랑을 국내에서 듣게 되는 경우보다 해외에 나가 들을 때에는 그 감회가 남다름을 경험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80년대 이전 시기에는 그 감회가 특별했었다. 아리랑 뿐 아니라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만 봐도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어서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해외동포들에게 있어 아리랑은 각별한 노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세기, 우리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정책으로 주권을 잃고, 식민생활을 해야만 했던 뼈아픈 상처를 안고 있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위해서 또는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이유로 고향을 등지고 이국땅으로 떠나 살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해방이 되었어도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쉽게 돌아오지 못하고 외국땅에 머물러 살거나 전쟁이 끝났어도 돌아오지 못한 이웃들이 많았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재일교포>로, 중국에서는 <조선족>으로, 러시아에서는 <고려인>으로, 서양에서는 <코리안>이란 이름으로 아직도 이국땅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곳에 살고 있더라도 해외 동포들에게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후손이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재외동포들의 2세나 3~4세들은 한국어라는 모국어는 구사하지 못해도 아리랑은 애국가 이상으로 많이 부르며 살고 있다.
나는 중국의 연변지역을 비롯한 조선족 사회와 수교 이전(1991년도)부터 전통음악 전반의 상호교류를 해 오고 있어서 비교적 중국 동포사회의 상황을 조금 알고 있는 편이다.
그 곳에는 《연변예술대학》이 있고, 민요나 판소리, 가야금이나 피리, 젓대 등을 가르치는 교수와 배우는 학생들이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연길시에 시립단체로《조선족 예술단》이라는 단체가 조직되어 있어서 별도로 조선족들을 위한 다양한 예술 활동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선족 동포들의 자손들 중에는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에 놀라곤 했다. 그러나 더 놀라는 것은 비록 우리말을 구사하지 못하나 아리랑은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들의 할아버지 세대가 또는 부모세대가 이국땅에 살면서 슬픔을 당해도 아리랑을 부르며 이겨냈고,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도 아리랑을 부르며 함께 기쁨을 배가시켜 온 생활 속의 경험이 그렇게 된 배경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 아리랑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되고 있다. 한국어는 잊었으나 아리랑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은 이국땅에서 교포, 조선족, 고려인, 코리안으로 살면서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따라서 아리랑을 모르는 외국인들도 아리랑을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로 인식하고 있으며 <아리랑>이야말로 한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중앙아시아-시베리아-연해주-사할린 땅을 돌아보며 고려인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수집, 조사하고 돌아와 서용순 외 3인이 펴낸 《아리랑 로드, 10만 Km의 생생한 기록(The Colors of Arirang)》을 참고해 보면 아리랑과 관련한 가슴 아픈 생생한 기록들이 담겨 있다.
그 곳에 정착해 있는 고려인들은 황무지 연해주를 옥토로 바꾸었고, 러시아의 적인 일본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소련 사회에 이바지해 왔음에도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쫓겨났다.
냉대, 질병, 추위, 기아, 등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끈질긴 의지와 뚝심으로 살아남아 이제는 대한민국의 유라시아 진출에 필요한 인적 기반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고려인들의 생생한 역사가 담겨 있다. 작자는 오늘의 고려인으로 정착하기까지의 강제이주의 길을 따라가며 그들의 한 많은 삶 속에 녹아 흐르는 아리랑을 함께 불러보고 싶어 아리랑 로드 대장정을 시작했다고 술회한다. 국가나 기업의 지원 없이 그 어려운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그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아리랑에 관한 글을 쓰면서 새삼스럽게 옛 악서의 “대악필이(大樂必易)”라는 말이 생각난다. 큰 음악, 곧 “대단한 음악은 반드시 쉽다.” 라는 뜻의 이 말을 상기하면서 아리랑은 참으로 대단한 노래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고난의 땅에서 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갖가지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아리랑이야 말로 민족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고, 마음의 고향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가장 간단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엮어 부르는 《아리랑》이라는 전통의 민요를 활용하여 갖가지 교양물이나 교육프로그램, 또는 예술작품을 제작하여 국민에게 제공한다면, 남과 북, 동과 서, 진보와 보수, 빈자와 부자, 노년과 청소년, 본국과 해외교포와의 국민대통합은 확실하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