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그제는 춥더니 어제(14일, 금)는 조금 날이 풀렸다. “11시 반까지 와서 차 한잔 하고 우리 함께 식사해요” 윤석남 화백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다정하게 들린다. 일주일 전에 전화 약속을 하고 화성시에 있는 윤 화백의 작업실을 찾았다. 두어 달 만이다. 언제나처럼 윤 화백은 앞치마 차림으로 천장 높은 작업실에서 그림에 몰두하고 있었다. “화백님! 그림 그리세요?” 반쯤 열린 작업실 문을 삐죽 열고 들어서며 물었다. “오, 이 선생 왔구나” 한참 작업에 몰두하던 윤 화백은 틀어 놓은 클래식 음악을 끄고 작업실 한켠의 소파로 우리를 안내한다. 오늘 윤 화백 작업실에 함께 한 이는 우리문화신문의 양인선 기자다. 찾아뵙기 전에 미리 전화로 소개를 했던 터라 윤 화백과는 금세 구면인 듯 우리 셋은 소파에 앉아서 한 시간 가까이 환담을 나눴다. 동행한 양 기자의 증조부께서 발안 만세운동의 선구자이신 이정근 의사(義士, 1991.애국장)라는 점과 벌써 여러 해째 여성독립운동가를 그리고 있는 윤 화백, 그리고 나 역시 여성독립운동가를 취재하여 책을 쓰고 있는 입장이기에 우리의 주제는 단연코, 독립운동가였다. 윤석남 화백은 지난해(2021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유공자 등록심의 과정에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진행한 「보훈심사 국민참여단 모집」에 청년, 여성 등 사회 각 분야 100명이 뽑혔다.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 이하 ‘보훈처’)는 보훈심사 국민참여단 100명 모집에 449명이 지원하여 4.5대 1의 높은 경쟁률로 많은 국민이 관심을 보였으며, 지원자 가운데 직업, 연령, 성별, 거주지 등을 고려하여 100명을 뽑았다고 밝혔다. 이번 국민참여단 모집은 국가유공자 등록 절차 가운데 하나인 보훈심사위원회 심의 과정에 국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유공자법 개정을 통해 시행(’21.12.9.)된 「보훈심사 국민참여제도」 신설에 따른 후속 조치로 지난 12월 3주 동안(12.9. ~ 12.29.) 진행됐다. 특히, 국민참여단 모집에 공정하고 객관적인 선정을 위해 13일(목)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국민참여단 선정위원회」를 통해 직업, 연령, 성별, 거주지 등 균형을 고려하여 마지막으로 국민참여단 단원 100명을 뽑았고, 그 결과를 14일(금)에 개별적으로 안내했다. 이번에 뽑힌 100명에는 60살 이상 고령자 24명뿐만 아니라, 29살 이하 청년도 19명이나 포함되어 세대통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 이하 ‘보훈처’)는 1942년 6월 30일에 한국광복군이 미국 연방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작성한 ‘대미(對美) 군사연대 제안 공식문건’을 처음 발굴하여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미국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 소장된 조지 맥아피 맥큔(George McAfee McCune)* 기증자료 일부로, 작년 12월 나라 밖 독립운동 사료수집의 하나로 보훈처가 직접 발굴해 온 것이다. * 조지 맥아피 맥큔(1808~1948) : 미국 출신 선교사이자 독립운동가로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조지 새넌 맥큔(George Shannon McCune)의 아들이며,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뒤 미국 전략정보국(OSS), 국무부 등에서 한국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한국독립운동 관련 문서를 다수 소장하게 된 것으로 알려짐 해당 문건은 당시 한국광복군의 참모장 이범석(1900~1972)이 미국 연방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1942년 6월 3일에 작성한 10쪽 분량의 보고서 형식 문서로,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적극적으로 펼쳐진 한국광복군의 대미 참전외교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신순애는 늙은 대학생이 되었다. 아니 학사인 나와 달리 석사학위까지 거머쥐었다. 천재 아니면 독종이다. 중요한 것은 학위가 아니다. 1960~1970년대 한국 사회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밑바닥에서 무릎 꿇고 일하면서 두 손으로 한국경제를 떠받친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살아야 했던 팍팍한 삶과 척박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싸움 속에서 그들이 민주주의를 체득하며 성장해 가는 과정을 조금도 왜곡과 과장 없이 생중계로 보여주는 이 책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 《열세 살 여공의 삶: 한 여성 노동자의 자기역사쓰기》, (사) 청소년 탁틴내일 이사장 최영희 추천사 ‘어린 여성 노동자의 감동적 성장기’ 가운데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청계천 평화시장의 소녀 미싱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개봉일(1월 20일)이 곧 다가온다. 신순애(69살) 씨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이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전태일 말고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름들. 그녀들의 기억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정성스레 축복해 주는 영화적 손길. 빛과 어둠 속에서 눈물도 웃음도 하나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서는 해마다 1월 둘째 주 월요일에 20살을 맞이하는 성년을 위한 ‘성인의 날’ 기념행사가 열린다. 올해는 10일(월)이 성년의 날이었지만 ‘코로나19’로 지난해에 이어 기념식을 중단하거나 축소, 또는 비대면으로 치르는 지자체가 많다. 일본의 성인의 날은 1946년 11월 22일 사이타마현 와라비시(埼玉県 蕨市)에서 연 ‘청년제’가 그 뿌리다. 당시 일본은 패전의 허탈감에 빠져 있었는데 그 무렵 청년들에게 밝은 희망을 주기 위한 행사가 바로 ‘성인의 날’ 시작인 셈이다. 이때 행한 성년식이 성인식의 형태로 발전하여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지금도 와라비시에서는 성년식이라는 이름으로 기념식을 열고 있으며 1979년에는 성년식 선포 20돌을 맞아 와라비성지공원 안에 ‘성년식 발상의 터’라는 기념비도 세워두었다. 성인의 날은 1999년까지는 1월 15일이던 것이 2000년부터는 1월 둘째 주 월요일로 정해 행사를 치르고 있다. 이날 20살이 되는 젊은이들은 여성은 ‘하레기(晴れ着)’라고 해서 전통 기모노를 입고 털이 복슬복슬한 흰 숄을 목에 두른다. 그리고 남성들은 대개 신사복 차림이지만 더러 ‘하카마(袴, 전통 옷)’ 차림으로 성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당신은 정초 신사참배(하츠모우데)에 다녀왔습니까? 양력설을 쇠는 일본은 지금이 한창 정초 신사참배(하츠모우데, 初詣) 기간이다. 5일(수) <TOKYO FM> 프로인 ‘Skyrocket Company’ 에서는 청취자를 대상으로 “당신은 정초 신사참배(하츠모우데)에 다녀왔습니까?” 라는 내용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응답자 666명 가운데 다녀왔다가 46.7%, 안갔다가 53.3% 로 나타났다. 정초 신사참배율이 절반도 나오지 않은 가운데 ‘다녀왔다’는 사람들에게 다시 물었다. “새해 첫날(1일) 오전 중에 치바현 나리타시의 나리타산 신쇼지(成田山新勝寺)에 첫 참배를 다녀왔는데 줄이 엄청나서 30분 정도 기다렸습니다. 과연 이곳은 치바현이 자랑하는 절이란 걸 실감했습니다. 줄을 서서 참배를 기다리는데 바람이 강해 손발이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참배를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치바현 28세 남성 회사원)” “1월 2일에 정초 신사참배에 갔는데 한 꼬마 녀석이 신사의 운수 뽑기 통앞에서 큰소리로 울고 있었습니다. 순간, ‘넘어졌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싫어, 대길(大吉)이 아니면 싫어’라면서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는 결심과 각오가 있어서 한 일이니까 지금 와서 아무 할 말이 없다. 변호사의 변호도 나는 받지 않을 예정이다” -도쿄 일왕 왕궁에 폭탄을 투척한 뒤 재판에서 한 김지섭 의사의 말- 1924년 1월 5일, 김지섭 의사(1884.7.21. ~ 1928.2.20.)는 일본 도쿄 한복판 일왕이 사는 황거 앞 이중교(二重橋-니쥬바시, 일명 안경다리)에서 왕궁을 향해 수류탄을 힘껏 던졌다. 김지섭 의사는 일제 경찰에 잡혀 투옥되었을 때도 “조선 사람은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최후의 한 사람, 최후의 순간까지 항쟁할 것이다. 사형이 아니면 나를 무죄로 석방하라.”라며 당당히 일제를 꾸짖었다. 경북 안동 풍산읍 오미리에서 태어난 추강(秋岡) 김지섭 의사는 반평생을 민족의 해방을 위한 의열투쟁에 헌신한 독립투사다. 김지섭 의사는 1907년 이후 구국계몽운동에 헌신하며 상주보통학교 부교원을 지내기도 하고 교남교육회에 참가하는 등 활동을 하다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금산군수 홍범식(벽초 홍명희의 부친)이 자결하는 상황을 겪으며, 독립운동의 길에 뛰어들게 되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중국으로 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부춘화ㆍ김옥련ㆍ부덕량 선생을 ‘2022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고 밝혔다. 이번에 꼽힌 세분의 선생은 1931~1932년에 걸쳐 제주도 일대 해녀들을 중심으로 일제와 해녀조합의 수탈과 착취에 항거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한 분들로서, 국가보훈처에서 「이달의 독립운동가」선정사업을 시작한 1992년 이래 건국포장자로는 처음으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꼽혔으며, 제주도 출신으로도 처음이다. * 제주해녀항일운동 : 일제강점기 여성들이 주체가 된 민족운동으로, 연인원 1만 7천여 명이 참여한 제주도 최대 항일운동임 세분의 선생 모두 제주도 구좌면(현, 구좌읍) 출생으로, 부춘화 선생은 15살에, 김옥련 선생은 9살에, 부덕량 선생은 13살에 가족 생계에 보탬을 위해 어린 나이에 해녀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제주도의 토지는 척박하여 여성이라면 해녀 생활을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웠고, 근대 교육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들은 1928년부터 1931년까지 하도보통학교 야학강습소에서 함께 공부하고 근대 항일ㆍ민족의식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1930년 해녀조합의 우뭇가사리 해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눈꽃이 피었다. 순백의 눈꽃을 보러 온 사람들로 장관을 이룬 덕유산 향적봉(1,614미터)의 겨울은 후끈하다. 겨울 왕국의 눈꽃들은 서로 시샘하지 않는다. 서로 우열을 다투지도 않는다. 서로 더러운 진흙탕 싸움도 없다. 깨끗하여, 너무도 깨끗하여 흠잡을데가 없이 아름답다.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도 향적봉의 눈꽃을 볼 수 있는 길이 있어 다행이다. 무주리조트 스키장에서 곤도라를 타고 올라가 눈꽃 터널을 감상하면서 계단식 산행(600미터)을 하다보면 어느새 향적봉 정상에 오른다. 눈꽃이 아름다워 600미터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 눈이 나뭇가지에 쌓여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는 모습은 사진을 통해 많이 보았지만, 직접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말로 형언할 수 없다는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추운 겨울이 가끔 불만일 때가 있지만, 눈꽃나라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은 사계절이 있는 나라의 축복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마치 눈꽃 동굴을 지나는 듯, 향적봉을 오르는 좁은 등산로에는 '눈이 없는 나라 사람들' 로 보이는 외국인들도 제법 눈에 띈다. 아름답고 황홀한 눈꽃나라의 장관, 경험하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란 걸 새삼 느껴본다. 움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독립운동가의 집은 지켜주세요” “용인 3대 독립운동가의 집 대책없는 철거 웬말입니까?” “SK하이닉스는 독립운동가의 집을 빼앗고 허물지 마라” 위 문구는 광복군으로 활약한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인 오희옥 애국지사(95세)의 집 앞에 붙은 펼침막이다. 임인년 호랑이해를 이틀 앞둔 어제(30일), 용인시 처인구 보개원삼로 1640-2번지에 있는 오희옥 지사 집을 찾았다. 정작 집 주인인 오희옥 지사는 병환으로 서울 중앙보훈병원에 입원 중이고 주인 없는 집은 집 주위의 펼침막만 펄럭일 뿐 영하의 날씨처럼 썰렁했다. 오희옥 지사의 집은 ‘독립유공자의 집’으로 해주 오씨 문중이 땅을 제공하고 용인시 그리고 재능기부 기관과 시민 단체들이 십시일반으로 지은 집으로 지난 2018년 3월 1일 준공 테이프를 끊었다. 그러나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에서의 정착을 하기도 전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지 3년 9개월째 병원 치료를 받는 사이, 원삼면 일대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SK하이닉스ㆍSK건설ㆍ용인일반산업단지(주) 등 6개 기관, 이하 ‘SK하이닉스’)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발표되고 말았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