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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만주 독립의 어머니 정현숙생가 표지석 세워

서거 30주기 맞아, 용인특례시 처인구 이동읍 화산리 263번지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주 오랜만에 와보니 더욱 감개가 무량합니다. 나(오희옥 지사)와 언니(오희영 지사) 그리고 남동생은 모두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오인수 의병장)와 아버지(오광선 장군)가 사시던 원삼면 죽능리와 어머니(정현숙 지사) 생가가 있는 화산면 요산골에 오면 언제나 감회가 새롭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혼자 와보기도 어려운데 이렇게 와보니 마음의 고향을 찾은 것 같아 매우 기쁩니다. 다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사시던 집이 그 흔적조차 없어져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는 2012년 6월 1일, 붉은 장미가 화사하게 피던 초여름, 기자와 함께 친정어머니(정현숙 지사) 집을 찾았을 때 오희옥 지사께서 한 이야기다.

 

 

용인 출신의 여성독립운동가 정현숙(본명 정정산, 1900~1992) 지사는 열아홉 되던 해에 고향인 용인 화산리를 떠나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로 떠났다. 만주에는 정현숙 지사보다 먼저 고향을 떠나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을 지내고 있던 남편 오광선 장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아버지 오인수 의병장을 비롯하여 ‘용인의 3대 독립운동가문’의 며느리이자 ‘만주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렸던 정현숙 지사 서거 30주기를 맞아 광복절인 어제(15일), 정현숙 지사가 태어나 자랐던 용인특례시 처인구 이동읍 화산리 263번지 생가터에서는 “정현숙지사 서거 30주년 추념 및 표지석 제막식”(이하 제막식) 행사가 열렸다.

 

 

 

이날 제막식은 낮 3시에 정현숙 지사의 생가터(용인 이동읍 화산리) 앞마당에서 진행되었으며 이번 행사를 주관한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회 우상표 회장의 인사말과 함께 광복회용인시지회 최희용 지회장, 유진선 용인시의회 의원 등 내빈의 축사가 있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만주 독립군의 어머니 정현숙 지사 불굴의 독립정신과 나라사랑에 대한 강한 의지와 실천력을 존경한다. 아울러 여성독립운동가의 전형을 보여준 정현숙 지사는 오인수 의병장으로부터 시작된 ‘용인 3대 독립운동가 가문’의 일원으로 민족과 향토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올해 정현숙 지사의 서거 30주기를 맞아 생가터에 작은 표지석이나마 세울 수 있어 기쁘다. 앞으로도 정현숙 지사를 비롯한 용인 출신 독립운동가의 얼과 정신을 새기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축사가 이어졌다.

 

뜻깊은 이날 제막식에 참석한 외손자 김흥태 씨는 “외할머니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터에 표지석을 세우게 되어 마치 외할머니를 뵙는 듯 감격스럽습니다. 표지석 제막을 위해 애써주신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회 우상표 회장님과 여러 관계자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라고 했다.

 

 

 

한편, 정현숙 지사 생가터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임은진 (54살) 씨는 “오늘 제막식에 참석하고 보니 우리 고장에 이러한 훌륭한 여성독립운동가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지척에 사셨던 정현숙 지사의 생가를 표지석을 보고 알았으니 앞으로 자주 들러 보겠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표지석’은 작지만, 그 업적은 실로 위대한 일이었다. 더구나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설고 물선 만주땅에서 뿌리를 내려 광복의 꽃을 피운 정현숙 지사의 ‘독립 이야기’는 수백, 수천 번 되새겨보아도 부족할 것이다.

 

 

 

 

현재 여성독립운동가로 유일하게 생존해 계신 오희옥 지사(96살)는 정현숙 지사의 따님이다. 따님이 말하는 정현숙 지사의 지난한 삶을 살짝 엿보자.

 

“어머니(정현숙 지사)는 쌀 한 가마니를 번쩍 들 정도로 체격이 우람하고 힘이 센 여장부였다. 가족들이 처음에 도착한 만주 길림성 액목현에서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황무지를 개간하여 논밭을 일구었고 농사도 잘 지었다. 여기서 나온 쌀로 커다란 가마솥에 하루 12번씩 밥을 해내어 독립군 뒷바라지를 해냈다. 당시 어머니의 밥을 안 먹은 독립군이 없을 정도로 어머니는 독립군 뒷바라지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이 아버지를 안중근과 윤봉길 의사처럼 특수임무를 맡겨 북경으로 부르는 바람에 그만 아버지와 식구들이 헤어지게 되었다. 이후 10여 년이 넘도록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고 임시정부 피난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신한촌이라 불리는 토교에 살 때는 생활고가 극에 달했다. 어머니는 삼남매를 키우려고 남의 집 빨래와 허드렛일을 마다치 않았고 돼지를 키워 우리를 학교에 보낼 만큼 억척스럽게 일하셨다.”                                             - 2012년 6월 1일 기자의 대담 가운데 -

 

이를 입증하듯 정정화 애국지사는 그의 자서전 《장강일기》에서 정현숙 지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토교(중국 중경 근처)에서 정 씨(정현숙 지사)는 홀로 삼남매를 키우느라 늘 궁색한 처지로 형편 필날이 없었고 백범은 오광선의 가족들이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여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중략) 영걸 어머니(정현숙 지사)는 고생이 심했다. 내가 다른 이들보다 특히 영걸 어머니에게 정을 쏟고 희영이나(큰따님) 희옥에게(작은 따님) 좀 더 잘해주려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영걸 어머니는 만주에서 농사 경험도 있고 몸도 건강해서 내 밭일을 많이 도와주었으며 나는 그 대신 그 집 삼남매의 옷가지 손질이며 이부자리 등 주로 바느질일을 도왔다.”     - 정정화 《장강일기》 가운데서 -

 

 

빼앗긴 나라를 구하고자 끝없이 이어지는 고난 속에서도 오직 한가지 '조국 독립'의 열망을 놓지 않았던 독립투사 정현숙! 남편 오광선 장군을 비롯하여 두 따님, 오희영, 오희옥 자매를 광복군으로 키워낸 여장부 정현숙, 하루 12번씩 독립군의 밥을 해대던 만주의 억척 어머니 정현숙, 그의 생가는 용인특례시 처인구 이동읍 화산리 263번지에 있다.

 

10년 전, 생가터를 찾았을 때 표지석이 없어서 아쉬웠던 그 자리에 말끔하게 들어선 표지석을 등대 삼아 많은 이들이 찾아와 정현숙 지사의 '독립정신'을 되새겨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현숙 지사 생가터 주소 >

 용인특례시 처인구 이동읍 화산리 263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