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영월 단종의 장릉 장릉을 향해 걷는 왕릉 탐방객들 장릉의 정면 장릉 위쪽에서 장릉을 내려다본모습 왕릉으로 격을 갖추기 위하여 곡장을 두르고왕릉 수호를 위하여석호와 석양을 배치하였으나. 다른 릉에 비하여 석호와 석양의 수가 절반인 각각 2마리씩만 배치하였다. 장릉 앞에 있는 문인석. 장릉에는 무인석이 없다. 장릉의 장명등 능에서 본 정자각장판옥 배식단비각 수복실. 영천 등 단종에 대한 충성을 다하다 죽은 충신들에게 제사지내는 제단으로 배식단이라 부른다. 단종을 위하여 충성을 다했던 충신, 조사위, 환자노군, 여인 등 268위의 영령을 모신 장판옥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신도와 그 앞에 설치된 홍살문, 홍살문 앞 신도가 꺾이는 곳에는
상왕산개심사 일주문과 현판. 상왕산(象王山) 개심사(開心寺) 코키리왕이 살고 있다는 뜻의 개심사에는 봄을 즐기려는 탐방객들이 일주문을 나서고 있다. 고즈넉한 산길을 다정한 모습으로 걷는 상춘객의 주변에 연등이 걸려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탐방객들. 10여분 오르고 나면 연지가 있는 경내에 다다른다. 사찰의 연지는 극락세계에 피어나는 연꽃세상을 의미한다. 곧 이곳이 부처님이 상주하는 극락세계라는 것. 연지에서 5m 정도의 계단을 오르면 안양루가 있고 안양루에서 한 단 더 오르면 대웅전이 있는 본당이 나온다. 대웅전 주변에는 이제 막 담쟁이도 싹을 티우고 있다. 연지에서 올려다 본 개심사 범종루와 누각 연등이 걸린 개심사 경내 대웅전 오른쪽에는 스님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있다. 그런데 요사채 기둥과 보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
사려니 숲길 옆으로 난 찻길에서 사려니 숲길 주변에는 천연 그대로의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어 자연치유를 위한 산책로가 가꾸어져 있다. 15km의 상당한 거리지만 가파른 오르막이 없어 시간만 내면 누구나 걸을 수 있다. 사려니 숲길 안내판 사려니 라는 말은 신성한 곳이라는 뜻의 제주도 말 이라고 한다. 화산석 제주도에는 비가 와도 계곡에 물이 흐르지 않고 바로 흘러버린다. 송이모양의 나무조각. 주변에 죽은 나무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화산석 잔돌로 깔린 산책로 드물게 고인 계곡의 물 천미천 천미천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공룡시대에 번성했던 열대 소철이 봄을 맞이하여 싹이 나고 있다. 아빠와 함께 숲길을 걷는 다정한 부자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4사자석등(본래 화엄사에 세워진 석탑을 본떠 세웠다) 2560년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불자들이 바라는 세상에 대한 염원 기념탑의 주변에 세워진 주악상 궂은 날씨에 기념식을 위하여 펼쳐진 행사장 석탑모형을 향하여 행사를 진행중인 스님들과 서울시장 기념식 장면 축하 리본을 날리면서 점등하고 있다. 점등식 기념사를 하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 석탑 주변을 돌고 있는 탑돌이 탑돌이하는 신도들 어두워진 광화문광장 탑 주변을돌고 있는 신도들 [우리문화신문 = 최우성 기자] 무명(밝지 못함, 어두운 세상을 뜻함, 깨닫지 못한 중생계를 전체적으로 무명이라고 함)에 빠져있는 세상에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이
침몰한지 2년째되는 날 광화문광장에서 흩어질 줄 모르는 사람들. 진실을 밝히고 이제 그만 광장을 떠나고 싶지만... 진실이 묻힐까봐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잊지 않기 위하여, 잊지 말길 바라며,,, 너무도 힘들지만 그래도 국민들의 성원에 또 다시 힘을 얻는다는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서명을 부탁한다. 세월호 특별법의 시한이 다가오지만,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그래서 특별법의 시효를 연장하고, 특별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서명이 진행중.. 국민이 외면하지 않는 한, 진실을 결코 묻을 수 없다고 믿는다. 소망리본에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글을 쓰는 사람들 고사리 손으로 정성껏 쓴 소망리본을 달며. 희생된 언니 오빠들의 명복을 빌며... 저 어린 아이들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길... 소망리본들을 다는 모습들
▲ 기념관 연못에 비추어 본 기념관의 모습, 연못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 4.3 평화기념관과 기념비가 보이는 풍경 ▲ 각명비 광장 중앙에 있는 기념 조형물 ▲ 밝혀진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판들 ▲ 밝혀진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판들 ▲ 밝혀진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판들. ▲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긴 돌판이 들어선 각명부의 배치도 ▲ 희생자들을 봉안한 봉안당 ▲ 2006년 부터 발굴된 참혹한 장면의 은폐현장이 들어났다. ▲ 발굴된 참혹한 현장모습 재현. 보는 이의 눈을 감게하고, 보는 순간 구토가 저절로 나는 참혹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장면. ▲ 발굴된 참혹한
▲ 노고단 주차장에서 본 노고단 오르는 찻길. 노고단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 노고단을 오르는 도중에 마지막 쉼터인 성삼재대피소 앞에서 ▲ 멀리 노고단 꼭대기를 향하여 오르는 회원들 ▲ 노고단을 오르는 중 전망대에서 지리산 아래를 내려다 보는 회원들 ▲ 노고단 꼭대기에 새겨진 노고단이라고새겨진 석비앞에서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봄이 오자산 아래는 온갖 꽃들이 피어난 화려한 세상이지만, 해발 1507 m 높은 지리산 노고단에는 아직 봄소식이 잠잠하다. 그런데 이곳에 한 무리의 회원들이 아직 쌀쌀한 노고단에 올랐다. 이들은 왜곡된 한국의 고대사를 바로잡겠다는 신념으로 뭉친 사람들로, 지금 서술된 한국의 역사가 너무도 엉터리임으로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고대사를 공부도 하면서 한민족의 조상이 모셔지거나 자취가 있는 역사유적을 찾아 답사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지리산 노고단을 찾은 이유는, 노고단은 한민족의 성모인 마고할머니를 섬기던 제사터이기에 답사를 통하여 그 자취를
조천대로에서 본 불사리탑사의 일주문모습 불사리탑사의 안쪽에서 본일주문 푸른 초원같은 배경에 비쳐본 불사리탑사 불사리탑사의 본전에서 북쪽 조천 앞바다를 바라보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 불사리탑사의 본전 상부 돔의동서남북에는 부처님의 모습이 감실로 조성되었다. 상부 상륜에는 7층의 탑을 안치했다. 불사리탑사의 본전으로 최근의 건축자재인 콘크리트와 돌(화강석과 제주화산석)로 지었다. 불사리탑사는 평면은 원형이고 지붕은 돔형으로 원과 돔은완성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한민족의 염원이 통일이라지만, 그것도 전쟁이 아닌 평화적으로 해야만 한다는 의미가 표현된 것이다. 평화통일 불사리탑사를 이곳에 건립한 사연을 담은 표지석.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 아래서 살았던 고승들이 유생들의 핍박을 받아 갖은 고초를 당하고, 제주로 귀양까지 와서 고문을 받다가 죽어갔던 곳에 세워진 평화통일불사리탑사.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오늘은 역사에서 완전히 조명되지 않은 제주4・3항쟁의 날입니다. 제주4・3항쟁은 최근 제주에서 4・13총선에 출마하는 집권여당 후보가 첫째 공약으로 4・3 문제 해결 및 국가배상 촉구, 특별법 개정 요구를 들고 나올 정도로 제주에선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에 최우성 기자가 '제주 4・3평화기념관' 전시물을 상세히 찍어와 사흘에 걸쳐 연재합니다. 아마도 이 세 번의 연재를 모두 본다면 제주4・3항쟁이 무엇인지 정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편집자말)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제주4・3항쟁 68주년이 다가옵니다. 제주4・3항쟁은 최근 제주에서 4・13총선에 출마하는 집권여당 후보가 첫째 공약으로 4・3 문제 해결 및 국가배상 촉구, 특별법 개정 요구를 들고 나올 정도로 제주에선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에 최우성 기자가 '제주 4・3평화기념관' 전시물을 상세히 찍어와 사흘에 걸쳐 연재합니다. 아마도 이 세 번의 연재를 모두 본다면 제주4・3항쟁이 무엇인지 정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편집자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