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제주4・3항쟁 68주년이 다가옵니다. 제주4・3항쟁은 최근 제주에서 4・13총선에 출마하는 집권여당 후보가 첫째 공약으로 4・3 문제 해결 및 국가배상 촉구, 특별법 개정 요구를 들고 나올 정도로 제주에선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에 최우성 기자가 '제주 4・3평화기념관' 전시물을 상세히 찍어와 사흘에 걸쳐 연재합니다. 아마도 이 세 번의 연재를 모두 본다면 제주4・3항쟁이 무엇인지 정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편집자말) ▲ '제주 4.3평화기념관' 전경, 역사의 비극을 간직하였지만, 무심코 보면 아름답기만 하다. ▲ 기념관 정면 입구 ▲ 기념관 앞에 세워진 상징적 망주석. 모든 희생자들을 위하여 ▲ 전시관 들머리. 어두운 터널은 동굴의 재현인 동시에 암울했던 시대를 의미한다. ▲ 전시관내 설치된 백비를 해설사
▲ 성읍마을 남문과 성벽 ▲ 성문 앞에는 하루방이 수호신처럼 서있다. ▲ 성벽 아래에서 본 마을 바깥풍경 ▲ 관광객을 상대로 정성어린 마을 소개를 하고 또 정성껏 사진까지 찍어주는 주민 자원봉사 안내원 ▲ 대문 처마 밑에서 본 가옥 ▲정감이 넘치는 마을 안길 ▲ 낮은 돌담으로 된 마을의 집들. 안채 사랑채로 육지와 같은 공간구성을 하고 있다. ▲ 거목이 휘어늘어진 사이에 마을과 담장이 있다. ▲ 마을 중심에는 팽나무가 크게 자라고 있다. 당산나무인듯. ▲ 정의현 정사 ▲ 정의현 현감으로 업적을 남긴 현감의 비석 ▲ 성읍마을 내 무당집, 관청의 안에 있다고 하여 관청할망이라 부른
▲ 용연의 시원. 저 위는 제주의 시내가 펼쳐져 있다. ▲ 용연계곡에서 내린 물이 바위 계곡 사이로 흘러내린다. ▲ 용연 계곡의 안쪽에서 노니는 장닭이 마치 계룡인 듯... ▲ 용연 계곡의 안쪽에는 절벽에 바위들이 가득하다. ▲ 깎아지른 암벽 아래 용연이 있다. ▲ 용연 계곡의 안쪽에는 절벽에 바위들이 가득하다. ▲ 지금도 누군가는 기도를 드리는 듯, 촛불을 켰던 흔적이 있다. ▲ 용연에 놓인 구름다리. 많은 사람들이 넘나든다. ▲ 구름다리에서 본 용연에는 용이 살만한 듯 검푸른 물이 차있다. ▲ 용연 계곡의 중간쯤에는 절벽아래 바윗돌들이 있고, 용연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도 있다. ▲ 용연 사이에 놓인 구름다리
▲ 바다를 향해 포효하는 듯한 용머리바위의 전경 ▲ 용 잔등에는 가마우지들이 터를 잡고 있다. 이제 자리를 잡고 내려앉는 가마우지도 있다. ▲ 용바위를 다른 방향에서 봄. ▲ 용잔등에는 가마우지의 거름이 하얗게 쌓여있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세계자연유산으로 그 명성을 더해가고있는 제주도는 옛적에는 귀양보낸 사람들이 하루속히 빠져나오고 싶은 섬이었지만, 이제는 세계인이 앞다투어 찾는 한국의 보물섬이 되었다. 좌우로 길게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 제주도의 가운데 북쪽으로 제주시가 있고 그 중앙부근의 해변에는 용들이 살던 못인 용연이 있고, 용연에서 바다로 따라가면 바로 용두암이 있다. 지질학적으로는 화산폭발과 그 때 뿜어져 나온 용암이 굳아서 된 것이라 하지만, 그 모습이 어찌 이리도 멋지게 잘 생겼는지, 그 모습이 마치 용이 빠져나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듯하게 보인다. 언뜻 보면 말처럼 생겼지만 말보다야 용이 휠씬 더 좋고 신비롭기까지 하니 제격이다. 뿐만이 아니다. 용이 살던 용연까지 바로 옆에 있으니 물을
▲ 지장보살이 주존인 지장전 입면 지장전의 주존인 지장보살. 왼쪽에는 도명존자라는 스님과 무독귀왕이 받든다. 지장보살의 좌측에는 5대왕이 있다 지장보살의 오른쪽에도 5대왕이 있다. 지옥의 한 장면 지옥의 한 장면 지옥의 한 장면 지옥의 한 장면 지옥의 한 장면 지옥의 한 장면 지옥의 한 장면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사찰을 찾아보면 어느 절이건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있고, 그 다음으로 꼭 있어야 할 전각으로는 지장전(명부전)이 있다. 우리가 돌아가신 분의 극락왕생을 비는 곳도 지장전(명부전)인데, 지장전에는 가운데 머리를 깎은 스님 모양의 지장보살이 주존불로 모셔져있다. 지장보살은 48가지 크
논개의무덤과 사당 무덤 앞에 있는 사당 논개의 무덤 ▲ 최근에 함양군에서 관민이 세운논개의 위령비 ▲ 최근 함양군에서세운 위령비 상세 [우리문화신문= 최우성 기자]임진왜란 당시 진주 남강에서 승리에 도취했던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하여 한민족 여인의기개를 떨쳤던 논개의 무덤이다. 논개는 본래 전북 장수 태생인데 그녀의 고향인 장수군 장계면 주촌마을에는 논개의 생가와 그녀를 기리는 사당이 있다. 그런데 논개의무덤은 그녀가 투신해서 죽은진주도 아니고 그녀의 고향인 장수도아닌 이곳함양에 논개의 무덤이 있으니 무척 특이한 사연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 논개는 진주에서 죽은 뒤에 건져졌고, 뜻있는 진주민들이그녀의 유해를 걸머지고그녀의 고향인 장수 장계를 향하여산을 넘고 넘어 이곳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수 장계까지는 이제 50여리가 남은 거리였다. 이제 고향으로 가려면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가는 육십령만 넘으
▲ 보호각 안에 있는 쌍사자석등 뒤에 보이는 모습은 법주사 주전각인 대웅보전 ▲ 대웅보전 측에서 본 쌍사자석등. 뒷쪽에는 팔상전이 있다. ▲ 석등을 받치고 있는 사자가 서로 배를 맞대고 있는 모습. 석등의 화사석 아래는 연꽃받침이 장식되었다. 연꽃 또한 극락세계를 뜻한다. ▲ 석등을 받치고 있는 사자의 머리과 앞발모습 [우리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속리산 법주사는 속세를 떠난 곳, 곧 극락세상에 있는 진리가 머무르는 사찰이라는 뜻이다. 법주사는 553년 의신 스님이 지은 절로 1500년 동안 불교사 살아있는 절이나, 역사속에서는 수많은 전란을 피하지 못하고 부침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 세월 속에서 살아남은 석조물들은 국보와 보물이 되어서 옛날 영화를 전하고 있다. 오늘 보는 대웅보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쌍사자 석등(국보 제 5호)은 법주사의 중심 축상에 가운데 버티고 있는 석등이다. 석등은 실제로 불을 밝혀 경내를 밝게 하기도 하였지만 진리를 밝힌다는 뜻이 더 크다. 곧 깜깜한 세상이란 중생계 사바세계를 뜻하는데,
▲ 미륵대불의 측면 ▲ 미륵불과 팔상전 ▲ 청동미륵대불입상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충북 보은의 법주사는 서기 553년 의신스님이 창건하였다. 이후 백제지역에서는 미륵신앙이 깊어졌는데. 김제 금산사를 중창했던 진표율사가 법주사도 증창하여 미륵불을 모시고 절의 규모와 격을 높였다. 미륵신앙은 미래에 이세상에 올 부처님을 뜻하는데, 늘 하루 하루가 살기 어려운 중생들이 이런 고통스러운 세상이 끝이나고 극락세계가 펼쳐질 것을 기원하는 신앙이다. 부처님이 있는 곳이 극락인데, 이 세상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 또 다시 끝없은 전쟁과 질병으로 고통속에 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신이 살아생전에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제자인 미륵이 세상을 떠난 뒤에 도솔천에 환생할 것이라 예언(수기)하였다. 그리하여 도솔천에 미륵보살로 오랜 세월 있다가 도솔천에서의 삶이 다 하고나면, 다시 이세상에 부처로 온다고 했는데, 그 미륵보살이 세상에 빨리 내려와 이세상을 살기 어려운 중생계가 아닌 극락세계로 변화시켜줄 것을 기원하고 믿고 의지하며
▲ 눈내린 오대산이 극락세계를 이른듯 보인다. ▲ 적멸보궁을 향하여 오르는 스님 ▲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계단을 쓸고있는 신도들 ▲ 적멸보궁에 이르는 마지막 계단 ▲ 오대산 상원사에서 올라가면 중대 적멸보궁이 있다. ▲ 적멸보궁에 스님이 예불을 드리려 준비하는 모습 ▲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라 하여 적멸보궁이라 부른다. ▲ 적멸보궁 내부에는 부처님이 없고 좌대에 방석만이 있다. ▲ 사리가 모셔진 곳 ▲ 자장율사께서 진신사리를 받아오는 장면, 사자암 벽화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신라시대 자장율사께서 당나라에 유학하였다가 관세음보살님으로부터 받아온 불사리를 모신 곳으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5대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라는 뜻으로 자장스님이 모셔온 사리를 모
▲ 움푹 들어간 포구와 조천진성 ▲ 해안에서 본 조천진성과 포구 ▲ 포구 안 마을에서 본 조천진성 ▲ 성벽 위에서 본 마을과 해변 ▲ 해안 마을에서 본 조천진성과 연북정 하늘에는 갈매기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다. ▲ 해안에서 본 조천진성 망대 연북정. 구름이 피어나는 하늘이 변화무쌍하였다. ▲ 성안 연병장에서 본 연북정 ▲ 성벽 위에서 본 바닷가 ▲ 연북정이 있는 조천진성 망대 ▲ 조천진성의 망대 연북정 ▲ 연북정 현판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제주시 동북쪽 해안가에는 조천진성이 있다. 조천이란 말은 옛날 기원전 3세기 진시황제가 불로불사약을 구하러 보낸 서불(서복)이 이곳에 당도하여 천기를 보고 그가 바위에 새긴 글자가 조천(朝天)이었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