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명대사께 예를 드리고 있는사람 ▲ 사명대사 동상을 아는지 모르는지사람들이 무심히 지나고 있다. ▲ 사명대사 동상 6환장을 들고 있는 모습. 육환장이란 끝에 6개의 고리가 달린 지팡이라는 뜻으로 6도 윤회를 하는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뜻. ▲ 동상 기단부의 승병상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조선시대 불교가 탄압받던 시대에도 국란을 맞이하여 외면하지 않고 그 국난의 최선봉에 섰던 스님들!. 당시 스님들은 그동안 받았던 수모에 아랑곳 하지 않고 아무 죄없이 죽어가는 백성들을 구하기 위하여 의연하게 나섰다. 불교의 가장 중요한 금기인살생금지를 어기면서까지 불의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국의 산간벽지에 숨어살던스님들이 각종 농기구며 죽창을 무기로 들고 왜병들의 신식병기에 맞서서 싸웠던 것이다. 그 최선봉에 섰던 사명대사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조선의 선비며 유생들이 가지 않으려 했던 일본으로 기꺼이 나아가서, 그들을 감화시켰고, 붙잡혀갔던 백성들과 조선의 보물들을 되찾아 왔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불교는 또 다시 탄압 받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누구보다도 조선을 사랑한 사명대사의 동상은 지금 장충단공원에서 동국대로 올라가는 언덕
▲ 달집 주변에 둘레를 치고 둘러서있는 시민들 ▲ 달집에 소원지를 달고 있는 모습 ▲ 달집 주변의 무대에서는 한바탕 풍물이 쳐지고 있다. ▲ 달집에 한해의 소망들을 묶어둔 모습의 소원지들 ▲ 달집에 불을 붙이기 전에 한바탕 놀아보자. ▲ 아이들과 엄마들이 달집에 불을 붙이고 ▲ 불붙은 달집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 한해의 액운을 다 태워버리자.. ▲ 월훨 타오르는 달집의 열기가 무섭다. ▲ 훨훨 타오르는 달집 주변을 돌면서 춤춘다. ▲ 달집 주면을 돌면서 한마음이 되어보기 ▲ 달집주변에 모인 사람들. 한옥마을에 가득했다.모두가 한해 소망 다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어제는 음력으로 1월 15일 정월 대보름날이었다. 매년 정월대보름은의 양력 날짜는 바뀌지만, 옛사람들은 새해가 바뀌고 난 첫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르면 한해의 무사와 소망을 떠오르는 큰 달에 빌면서 모두가 어우러져 흥겹게 놀았다. 정월 보름이 되면 농촌에서는마을의 한 복판에 커다란 달집을 만들었는데, 이 달집은 움집처럼 둥근 평면에 5m 이상의 긴 나무들을 서로 기대 세워서 끝이 서로 맞닿게 한 뒤, 윗부분을묶어 형태를 만들고,
▲ 비각의 전경 ▲ 비각의 정면 ▲ 비각 현판 ▲ 비각의 모서리기둥 상부 공포 ▲ 비각의 내부 천장에는 용이 조각되어있다. 비각을 보호하려는 듯! ▲ 비석의 앞면 ▲ 비석의 뒷면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사찰로 알려져있는 경남 양산시 통도사의 적멸보궁(대웅전)뒤 금강계단에 모셔진 석가모니(세존)의 사리(捨利)와 의발(衣鉢)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비각이다. 이름하여 '세존비각'이다. 유래를 모르는 사람들은 금강계단의 담장옆에 지어진 한칸짜리 비각이라 도대체 그게 무슨 비석이며 또 비석에 별도의 집까지 지어진 연유가 궁금할 것이다. 주변에 설명도 없어지나치기 쉽지만, 통도사에 가장 중요한 보물인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금강계단에 모셔지게 된 사연을 비석의 양쪽면에 빼곡히 적어놓은 것이다. 통도사의 창건역사부터 그동안의 우여곡잘 역사유래를 기록한 통도사 사적기의 기록에 따르면자장율사는 신라 왕족중 진골 출신으로 통일전 신라에서 당으로 불교의 진수를 얻고자유학한 학승이었다. 그는 화엄불교의 진수를 얻고자문수보살이 상주한다고 믿던 청량산으로 들어가서 문수보살의 소상(塑像)에 지극정성으로 예배했다.그런 정성 끝에 꿈속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투박스럽지만 정감이 넘치는 석등이다. 사찰의 석등은.그 형태가 만들어진 시기별로 특징이 있다.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는 크기도 웅장하고 상세하게 조각된 장식이 무척 아름답지만, 조선시대에 들면서는 크기도 줄어들고 간략화 되고 투박스럽기 까지 하다. 본 석등은 통도사의 경내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석등이다. 본래 석등의 의미는 어두운 사찰의 경내를 밤새 밝히기 위함이라 생각하지만, 사찰에서 석등의 의미는 등을 밝혀 경내를 환하게 한다. 초생달도 없는 칡흙처럼 어두운 밤이면 작은 촛불이라도 하나 밝히면 세상이 얼마나 밝아지는지 그리고 그 빛의 고마움을 잘 알 수 있다. 작은 촛불이지만그 빛을 의지하면 어두운 밤길을 두려움없이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원리를 불교의 가르침에 비유하는 것이다. 또한 석등에 밝히는 불은 자신의 깨침을 의미하여,쉬지말고 열심히 공부하여진리를 깨치고 이를 통하여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겠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등불을 비유하여 진리를 말한 적이 있다. 그는열반에 들기 전에많은 제자들이 모인 장소에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登明)이라 하였다. 자기 안에 있는 불성을
▲ 용화전 앞에 있는 관음전과 봉발탑 ▲ 봉발탑-1 ▲ 봉발탑-2 ▲ 봉발탑-3 ▲ 봉발탑-4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여러 방향에서 담아본 봉발탑. !!!. 통도사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모양의 탑이다. 봉발탑의 구성은 납작한 기단석과 그 위에 세로로 길쭉한 탑신석 그리고 탑신석 위에납작한 받침석이 있고 그 위에 밥그릇(바루)모양의 돌과 뚜껑돌로 이루어져 있다. 바루는 불교에서 스님들이 가지고 다니면서 공양을 받아 식사하는 밥그릇을 뜻하는데, 이는 부처님 당시부터 수행자는 신도들이 제공하는 식사를 받아서 연명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쉴새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뜻도 곁들여 있다. 봉발(奉鉢)이란 밥그릇인 바루를 받들어 모신다는 뜻으로, 불교에서는 스승이 제자의 깨침을 인정할 때 스승이 제자에게 내려주는 전통이 있다. 통도사의 봉발탑은 관음전 뒷편과 용화전 앞에 있는데, 용화전에는 다음 세상에 부처님이 될 미륵보살(미륵불)이 있고 그 미륵불이 그다음 세상에부처님으로 올 것이라는 수기를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받았기 때문에 수기를 받고 미륵보살이 가사와 바루를 전해 받았다는 의미로 미륵전(용화전) 앞에 봉발탑을 세운 것이다. 전국의 수많은 절
▲ 자장매가 피어있는 통도사 ▲ 통도사 자장매.. 홍매화를 찾아서 ▲ 나도 한 번 멋지게 작품하나를 위하여... ▲ 화사한 매화를 담고자.. ▲ 조금 올려볼까?? ▲ 여기가 좋겠네... ▲ 뭐가 잘못 되었는지... ▲ 하나의 작품을 위하여 ▲ 이리저리 다시 보고 ▲ 찍힌 사진을 확인하고.. ▲ 또 다시 촬영하는 진사님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해마다 3월이면 통도사에는 봄의 전령인 매화를 보기 위해 전국의 사진가들이 몰려든다. 매화도 백매화가 있는가 하면 붉은 홍매화가 있는데, 통도사에는 붉게 피어난 홍매화가 화사한 봄을 알려주기에 유명하다. 그런데 올해는 그 홍매화가 예년에 비해서 너무도 일찍(약 1달가량) 피는 바람에 많은 사진가들의 애를 태웠다. 왜냐하면, 사진을 좋아한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번 출사를 위해서는 미리 꽃피는 때를 알아봐야하고 함께 갈 사람들을 모아야하는 등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닌데 이렇게 해서 떠났다해도 자칫하면 꽃이 먼저 피어버리거나 아직 몽우리 상태라먄 헛걸음이 되어버리고 나니 아름다운 꽃 한송이와 만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이번 통도사 홍매화를 보기 위해서도 출사 날짜를 3월 초순
▲ 담배를 피는 호랑이 산신 ▲ 세심사 산신각 정면 ▲ 산신각의 뒤편 측면 모습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사찰의 전각 중에는 산신각이 있다. 본래는 산신과 부처님은 별 관계가 없는 것이나, 불교가 한국에 정착하면서 자연을 존중하던 우리 조상님들이 모시던토착신앙인 산신신앙도 포용하여 산신을 모신 집인 산신각도 불교의 전각 중에 하나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이나 신(神)만이 구원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바른 도를 닦는다면 성불할 수 있다고본다. 그래서 부처님을 전혀 모르고도 득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혼자 도를 닦아서 성인이 되었다고 하여 '독성'이라 부르며, 이런 분도 독성각에 모신다. 또하늘에 수많은 별들 중에는 북두칠성이 있고, 그 북두칠성과 모든 별이 어떤 별 하나를 가운데 두고서 빙빙 돌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 별을 북극성이라부른다. 그 북극성이 하늘의 중심이라고 보고 이를 '치성광여래'라부르고, 북두칠성은 치성광여래의 제자로 본다. 또 한편 절이 있는 곳에는 크고 작은 산들이 있는데, 그 산에는 어디건 산의 주인인 산신이 있다고 본다. 절이 의지하고 있는 산의 산신은 어디를 막론하고
▲ 고양시 원당동 공양왕릉 전경 ▲ 아래쪽 측면에서 본 공양왕릉 ▲ 능의 뒤에서 본 공양왕릉 ▲ 2기의 봉분이 있는 모습 ▲ 석인 사이로 장명등이 있다. ▲ 석인(문인석인 듯)과 석견상이 있는 모습 개모양의 돌조각상은 공양왕이 마지막까지 데리고 다니던 개를 새긴 것이라 함. ▲ 능 앞으로 동물형상의 조상이 있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기구한 운명의 고려 공양왕(1345~1394)! 475년 동안 이어오던 고려왕업을더 이상 잇지 못하고,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에게 나라를내주고 쓸쓸히 죽어간 왕..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 자신은 왕이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왕이 되는 것이 영광이 아니란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성계 일파는 공민왕의 뒤를 이은 우왕이 공민왕의 실제 아들이 아니고, 신돈의 아들이라주장하였다. 우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므로 우왕의 아들인 창왕 또한 고려왕의 직계가 아니라며, 창왕을 폐하고 고려왕족으로 자신들이 좌지우지 할수 있는 사람을 왕으로 앉히게 되었다. 그게 공양왕이다. 공양왕은 고려 20대 신종의 7세손인 정원부원군 균의 아들이다. 그런데 기구하게도 620여년이 지닌 지금에 와서는 그
▲ 화암사 9층석탑과 쌀바위 ▲ 종루와 쌀바위 ▲ 요사채와 쌀바위 ▲ 쌀바위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고성에는 화암사라는 절이 있다. 설악산 시령에서 가까이 있어 속초에 가는 길이면 마음만 먹으면 찾기 쉽지만, 산길로 한참을 가야 만날 수 있다. 눈이라도 내리게 되면 가기 어렵지만 그래도 금강산 줄기에 붙어있기에 화암사의 일주문에는 금강산 화암사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보는 바와 같이 쌀바위는 화암사가 있는 계곡의 맞은 편에 우뚝 솟아있다. 그 형태를 보면 마치 큰 쌀알이 엄청나게 뻥튀기 된 듯한 모습이 포개져 있다. 첩첩산중에 이러한 큰 바위가 있으니 그 바위에서 뿜어내는 힘이 있어, 그 힘과 부처님의 힘이 합해졌는지, 이곳에 화암사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곳 화암사에는 쌀바위와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전설은 크게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쌀바위의 맨 꼭대기에는 바위에 작은 못이 있고 그 못에는 언제나 물이 고여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뭄이 들어 고통을 겪을 때면, 이곳에 고여있는 물을 주변에 뿌리면 비가 왔다고 하는 전설이 있고. 또 하나의 전설은, 첩첩산중인 이곳에 스님들은 시주하러 마을로 오고 가기도 힘들어서 불도를 닦는데
▲ 해변과 천사바위 ▲ 바다에 우뚝솟은 천사바위 해변에는 늘 소용돌이치는 파도가 일렁인다. ▲ 섭지코지에서 추억으로.... 제주도 온 기념사진으로.. ▲ 사랑의 벤치.. 등대섬을 배경으로 추억사진을 찍는 장소 ▲ 유채꽃이 피어나는 등대앞에서 ▲ 섭지코지 유채밭에서 본 성산일출봉 [한국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제주도 동쪽 성산일출봉 곁에 있으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는 섭지코지는 이제 누구나 꼭 가보아야 할 제주의 명소가 되었다. 섭지코지라는 말의 뜻도 '섭지=좁은' '코지=곶' 이라는 제주토박이 말이라고 하니, 이국적이면서도 더욱 멋져보인다. 그동안 그 아름다움을 몰라 거의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던 이곳이 해안가로 빙 둘러서 도로가 개설되고 드라마 '올인'촬영셋트장으로 유명한 작은 성당건물이 생겨나고, 빈땅에 유채꽃이 가꾸어지면서 이제는 제주도 그 어디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된 것이다. 바닷가에 검은 화산석 해변과 하얀 등대가 있는 경관도 아름답고, 또 바닷속에 불끈 솟아올라 있는 천사와 용왕의 아들이 변했다는2섬도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섬들에는 애뜻한 사연의 전설도 있다. 옛날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