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리를 위하여는 목숨도 기꺼이... ▲ 설산동자가 투신하는 모습 ▲ 마귀인 나찰이 기다리는 모습 [한국문화신문 = 최우성 기자] 한국의 사찰에는 벽화가 많이 있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절에 가 본 사람은유난히 한국의 사찰 건물 벽이 벽화로 가득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국 절에는 사찰의주요전각인 대웅전뿐 아니라, 여타 다른 전각들에도 건물의 안과 밖에 그림들이 빼곡하다. 그 그림들은 전각에 모신 부처나 보살과 관계 있는 이야기이고, 부처님이 설법했던 경전의 이야기거나, 부처님의 전생이야기, 중국이나 한국의 고승들의 일화들을 한폭 또는 여러폭의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또 주제는 같은 이야기이지만,사찰마다 벽화를 그린 화사(畵師)에 따라 다양하고 재치있게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림을 보면, 시대에 따라 유행하던 그림도 느껴볼 수 있다. 벽화 말고도 단청은 한국 절에 필수지만이웃 일본의 절에는 단청도 없고 벽화도 없다. 뿐만아니라 대웅전에 불상이 없는 곳도 있고 있다해도 협시불 없이 불상만 달랑 모셔놓은 곳이 있어을씨년스럽끼까지 하다. 한편중국의 절에는 불보살상이 모셔진 전각의 내부에 들어가보면 더러 벽화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네 사찰에서처럼
[한국문화신문=최 우성 기자] 절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알리는데 꼭 필요한 불전 도구로 4물이 있다. 그 4가지 소리를 내는 음향도구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다. 그런데 탁발 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으로 바랑속에 필수품이 목탁이다. 목탁은 본래 목어에서 유래한 것으로,물고기 형태를 간소화하여 만든 것이다. 목탁은아이들 머리통처럼 둥근 통에 손잡이를 달아서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에작은 방망이를두들겨서 소리를 낸다. 목어는 말 그대로 '나무로 만든 물고기'라는 뜻으로 그 원형은 '물고기'에 있다.목어가 만들어진 유래는, 다음과 같다.옛날 중국에 큰 스님으로 유명한스님의 제자로 말썽만 부리고, 공부를 게을리하던 제자가 있었다. 제자는 공부를 게을리하고, 수행도 하지 않아 스승의 애를 태웠다. 그러자스승은 제자를 일깨우기 위하여 잠시 벌을 주어 그 말썽꾸러기 제자를물고기로 변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 제자는 스승의 체벌에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처음 보는 물속 세상이 너무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리되자벌을 주어 제자가참회하기를 바랐던 스승은 물고기가 된 제자에게더 큰 벌로 물고기 등에 나무가 자라게 하였다. 그리되자 물고기는 다니기도 어렵고
▲ 1.심우(尋牛): 소를 찾아 산속을 헤매는 장면 ▲ 2.견적(見跡): 산속에서 소가 지나간발자국을 발견함. ▲ 3. 견우(見牛): 동자가 멀리에 있는 소를발견함 ▲ 4. 득우(得牛): 힘겹게 소를 붙잡아 소코에 고삐를 꿰어 길들이는 모습 ▲ 5. 목우(牧牛): 거친소를 완전히 길들여 자연스럽게 놓아두어도 동자의 마음대로 됨 ▲ 6. 기우귀가(騎牛歸家): 길들인 소를 타고 동자가 한가롭게 집으로 돌아옴 ▲ 7. 망우존인(忘牛存人): 집에 돌아와서 보니 소는 간데 없고, 혼자만 남아있음. ▲ 8. 인우구망(人牛俱忘): 자기 자신도 잊어버림. ▲ 9. 반본환원(返本還源)은 이제 주객이 텅빈 원상 속에 자연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보임 ▲ 10. 입전수수(入廛垂手): 바랑과 지팡이를 들고 중생구제를 위하여속세로 나오는 모습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사찰의 벽화 가운데서 가장 많이 그려지는 벽화가 십우도(十牛圖) 또는 심우도(尋牛圖)이다. 본래 십우도는 불교의 선종에서 자신의 본성을 소에 비유하여 그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중 그 수행의 단계별로나타난 깨달음의 경지를 소를 찾아 길들이고 돌아오는 과정에 비유하여 그린 선종화의
▲ 빈두설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전남 강진 백련사 대웅전벽화 [한국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이 이야기는 빈두설경이라는 불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옛날 어떤 사람이 들판에 나가서 놀다가 미쳐 날뛰는 코끼리 한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놀라서 뒤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도망치다가 코끼리를 피하기 위하여 들판에 있던 옛 우물터로 뛰어들었다. 우물 안에서 그는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한동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숨을 돌리고 보니그곳에는 또 다른 적이 있었다. 우물 바닥네 구석에는 네 마리의 독사가 기다리고 있었고 우물 한 복판에는 무서운 독룡이 독기를 내품고 있는 것이었다. 위에서는미친 코끼리가 내려다 보고 있고, 밑에서는 독룡과 뱀이 혀를 날름거리니,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나그네는 등나무 넝쿨에만 몸을 의지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흰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서 서로 번갈아 그 나그네가 붙잡고 있는등나무 줄기를 갉아먹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머리 위의 큰 나뭇가지에는 몇 마리의 꿀벌들이 꿀을 따다 나르고 있었다. 그 꿀벌의 집에서는 그때마다 꿀이 한방울씩떨어져서 지친 나그네의 입안으로 똑똑 떨어져들어 갔다. 그는 절체절명의 힘든 상황에서도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위 사진은 의정부 도봉산 원효사의 천연 동굴 나한전에 있는 석상들이다. 한국의 사찰에 들러보면 많은 건축물들이 자기만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그 이름들을 살펴보면 어떤 건물은○○전, 어떤 건물은○○각 이라 현판이 붙어있다. 이처럼 건물에도 건물 나름대로 위계가 있어그 이름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사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축공간은 부처님을 모신 건물로 사찰의 규모에 따라건물이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지만, 그 이름만은 어느 건물이나 모두가○○전(대웅전, 극락전, 비로전, 미륵전, 대적광전 등등)이라고 이름하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이 아닌 보살상을 조각상으로 모신 건축물에도 역시○○전이라 하고 있는데이런 건물로는 관음전 문수전 보현전 원통전, 나한전등등이 있고,○○각이라 이름붙은 건물도 있는데, 이는 부처님과 보살이 아닌 사람의 형상을 모시거나, 아니면 부차적인 건물이다. 그 ○○각이라 이름하는 건물들을 살펴보면 삼성각, 칠성각, 산신각, 종각 등이 있다. 오늘 보는 의정부 원효사나한전은 불교에서 부처남이나 보살의 위치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사람으로서는 많은 수련을 통하여 불보살의 버금가는 경
▲ 차탁에 놓여있는 찻잔들이 정겹다. ▲ 차탁에 놓여있는 찻잔들 ▲ 찻잔에 우려낸 차를 따르는 모습 ▲ 찻잔을 정리하는 중 ▲ 스님이 찻잔을 닦으시는 모습 ▲ 차담(차를 마시면서 대화하는 장면)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다성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가 스승 혜장스님으로부터 차를 배우고 다산 정약용선생이 자주 찾던 강진 백련사에서 백련사 주지스님으로부터 차를 대접받았다. 소박한 차탁은 본래 떡판으로 인절미를 쳐대던 넓적한 판자였다고 한다. 소박한 차탁을 사이에 두고, 아침일찍 스님께서 내려주시는 녹차 한 잔을 마시며, 차에 대한 이야기, 백련사와 초의선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정한 모습에 정성으로 내려주시는 시원한 차는 마음의 묵은 때를 씻어내는 듯 청량감이 느껴졌다. 불교에서는 선사들의 선문답에 '차나한잔 마시고 가게'라는 말이 있다. 이를 끽다거(喫多去) 어려운 화두를 들고 인생이 무엇이며, 진리가 무엇인지 끙끙대며 고민하다가스승을 찾아가 고민을 해결하고자, 심각한 표정으로 물으면, 스승은 편안한 얼굴로 끽다거 한다는 것이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3월 말, 남쪽 강진에서
▲ 계단과 뜰앞에 떨어진 동백꽃잎을 카메라에 담으며.. ▲ 한송이 빨간 동백 물확에 떠있고, ▲ 스님의 부도탑 주변에도 동백꽃잎은 떨어지고, ▲ 승탑과 주변에 떨어진 동백에 머리숙이고..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남쪽나라 강진의 백련사에 피어난 동백꽃. 겨울을 지나고 봄이오니 흐드러지게 피었던 동백이 이제는서서히 지고 있다. 강진 백련사는 다산 정약용선생이 18년간 귀양와서 살았던 다산초당이 바로 옆에있다.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는 산길로 800m 떨어져 있다. 백련사는 다산을 통하여잊혀졌던 조선의 차맛을 다시금 되찾게 해준 인연이 있는 사찰이다. 당시 다산이 귀양와서 있을 때, 이곳 백련사에는 혜장스님이 있었는데, 다산은 혜장스님을 통하여 조선의 차맛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다산'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곳 만덕산 주변에는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기후를 가지고 있다. 서기 43년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지고 왔던 차가 자리잡아 토종으로 야생화가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 들어서면서부터 선비들은 차를 마시는 대신 술을 마시기 좋아하게되면서 차는 한국인의 삶에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리하여 사찰 이외
▲ 길가에 해골과 뼈 무더기에 절을 하는 부처님 ▲ 절하는 부처님을 보고 있는 제자(아난)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왼쪽에는 길 모퉁이에한무더기의 해골과 뼈가 뒤섞여있고, 이를 향하여 부처님이 오체투지로 절을 하고 있다. 그 뒤에는 제자(아난존자)가 합장한채 서있는 그림이다. 언듯 보기에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으나, 이그림은 불교의 경전중에 하나인 부모은중경의 처음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부모은중경의 첫장을 펴면 부처님이 제자들과탁발을 나섰다. 그런데 제자들과 길을 가다가, 길가에 모퉁이에모아져 있는 한무더기의 해골과 뼈를 만나게 되었다.그런데 부처님은 하챦게 버려진 그 뼈들을 향하여 정성껏 절을 하는 것이었다. 이를 본 제자 아난은 부처님께서 왜 무덤도 쓰지 못하여버려진천한 삶을 살고간해골들과 뼈들을 향하여,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부처님이 이렇게정성으로 절을 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 연유를 설명하였다. 지금은 저렇게 보잘 것 없이 나뒹굴고 있는 해골무더기 이지만, 저분들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는 먼 옛날이고,그분들은 바로 부처님 자신의 조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상이 될 수도 있는 저 해골들에 예를 드리
▲ 부처님과 제자가 탁발을 나섰는데 한 아이가 밥공양을 하는 모습. 키가 작은 때문에 다른 아이릐 등에 올라서서 공양을 올리고 있다. ▲ 공양물을 올리는 상세모습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이그림은 한 아이가 길에서친구들과 소꿉장난을 하면서 놀다가 탁발하러 가는 도중의 부처님을 만난다. 아이는 자신이 친구들과 놀면서 지은 모래밥을 정성껏 부처님의 바루에 올리려 한다. 이 그림에 나오는 아이는 부처님을 만난300년 뒤에인도의찬드라굽타가 세운마우리아 왕조의 3번째왕으로 환생하여 인도전국을 통일한 아쇼카왕이다. 이는 아쇼카왕의 일대기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부처님 당시 실제로 한 아이가 부처님께 자신이 소꿉장난하다가 모래밥을 부처님께 공양하게 되었다. 부처님은 그 아이의 정성을 알아보시고 그에게 축복의 수기를 내려주었는데 그 수기는 이생을 다하고 300년뒤 왕국의왕자로 태어나 전륜성왕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아쇼카왕의 재위연대는 기원전 265~ 238년. 그런데 까마득히 잊고 300년이 지난 뒤, 실제로 마우리아 왕가의 왕자로 태어난 아쇼카왕은 왕이 되어 수많은정복전쟁을 거쳐서인도를 통일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엄청난 살생이 있었다. 특히 카
▲ 혜능이 행자로 들어와서 절에서 방아를 열심히 찧는 모습 ▲ 홍인선사 법을 전수해줄 것을 암시하는 모습. 지팡이로 3번 탁 탁 탁 쳤다고 한다. ▲ 스승인 홍인선사가 혜능에게 자신이 쓰던 가사와 발우를 전해주는 장면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사찰의 건물 벽화 중에는 재미있는 그림이 많다. 그 중에 오늘은 선종이 교종을 능가하는 위세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던 스님인 혜능선사의 전법에 대한 그림이다. 혜능은 본래 공부를 전혀 하지 못할 형편의 가난한 집 아들이었다. 그는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하였지만 늙으신 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시면서, 날마다산에서 땔나무를 해서 이를 시장에 내다 팔아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탁발승이 시장에서금강경을 독송하는 독경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신심이 깊은불자였던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집을 떠나 한 절에서무진장스님이 열반경을 독경하는 소리를 듣고 그 뜻을 통하였고, 선종의 종가로황매산에서 달마의 선법을 전수받았던 5조 홍인선사의 법을 전수받고자 그의 문하에 들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언제 어디나 세상은 격식과 절차가 있는 법이라, 홍인선사의 문하에는 수많은 제자들이 법을 전수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