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에서 영시암으로 오르는 계곡에 놓여있는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들 ▲ 백담계곡의 초가을단풍, 주변에는 저마다의 소원을 담은 돌탑들이 가득하다. 백담계곡에 비친 돌탑들 ▲ 영시암 근처 단풍이 물든 백담계곡 ▲ 단풍드는 영시암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가을이 물들어가는 설악의 서쪽에는 백담사가 안겨있다. 백담사는 본시 신라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이라 알려지고 있는데, 그 창건시기는 봉정암과도 관련이 있다. 그 동안 많은 스님들이 거쳐갔던 백담사는만해 한용운 스님이 머물렀던 절로도 유명한데만해 스님은일제의 총칼에 당당히 맞서서 붓으로 항거했으며 당시 왜색에 물들어가는불교계의 잘못됨도 서슴지 않고 지적했던 스님이다. 또 백담사는 1980년 5월 18일 광주 시민의 민주화항쟁을 탄압한전전두환 대통령이 사법부의 판결에 따라 한동안 감옥대신귀양(?)왔던 곳이다. 이런저런사연으로 작은 암자로알려졌던백담사가이제는 전국민이 찾는명소가 되었다. 백담사 일원에는 만해마을이 들어서고,해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문학축제가 열리고 있다. 또한 불자들의 기도처로 이름난내설악 봉정암으로 가기 위한 가장 무난한 산길이 바로 백담계곡을 거쳐가는
▲ 비가 내리는 가운데 부처님 사리탑을 향해서 기도하는 모습. 오르기도 힘든데 비가 온다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올라온 의미가 없어서 일까? 우산을 쓴채 기도하는 모습. ▲ 부처님 사리탑을 향해 기원하는 모습. 새벽에 산안개가 드리운 가운데 절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 적멸보궁(부처님의 사리가 있는 경우 부처님 모습의 상을 만들지 않고 사리가 있는 곳을 향하여 창을 냄)의 법당 내부 ▲ 대웅전 위에 부처님 모습을 한 바위 ▲ 봉정암 전경 ▲ 적멸보궁 위에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부처님형상의 바위가 솟아있다.무릇 형상에 매이지 말고 그 본성을 보라고 부처님은 늘 가르쳤지만, 미약한 중생은 어디서나 형상을 찾아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속에서 소원을 빌고 기쁨을 구한다. [그린경제/알레빗=최우성 기자]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초. 남한에서 가장 먼저 가을 소식을 전하는 설악산 속 깊이 자리한 해발 1244m(사리탑이 위치한 곳의 높이)봉정암에 올라보았다. 봉정암은 신라시대 644년자장율사가 중국 청량산에서 구해온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받아온 뒤 그 사리를 5곳에 나누어 봉안했는데, 그 5곳 중 한 곳이 바로 이곳 설악산 봉정암의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 안개낀 소청산장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어김없이 변하는 산천초목의 생명시계 들판의 벼이삭만 노랗게 변하고 사과 배 감 밤만 익어가는 게 아니라 산과들의 풀과 나무도 찬 이슬을 맞고 서서히 겨울맞이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봄은 남풍을 따라 보지만 가을은 반대로 찬 이슬이 알게 해주니 북에서 부터 내려온다. 이제 설악의 봉우리에는 찬 이슬을 맞고서 대청봉 공룡능선부터 울긋불긋 단풍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 여름내 푸른 잎을 볼 때는 언제쯤 지려나 싶었는데 찬바람 찬이슬에 풀과 나무는 당연한 듯 제 모습을 바꾸어주니 이제 농부들 일손만 더욱 바빠지고 있다. 여름내 햇볕과 병충해와 싸운 결과를 이제 알찬 수확으로 마무리 짓고 풍년에 두둑한 소득으로 보답받길 빌어본다. 남한에서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 설악산, 그 설악 소청봉 봉정암에 올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봉정암석가사리탑까지 가슴에 담아본다.
▲ 국민들이 외면하지 말길 바라는 세월호 유가족 모임 현장 ▲ 광화문 광장의 흰천막 ▲ 할머니의 하소연! ▲ 어렵고 힘들어도 포기할 수도 없네.. ▲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지만,, 이것이라도 할 수 있으니 부지런히 노란 리본을 접고 있다. ▲ 잊을 수 없다는 유족들의 맹세 ▲ 힘들다 국민단식장 ▲ 끝없는 벽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어느 덧 애절하고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지 6개월이 되어간다. 그런데 지금도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이 10명에 이르고, 거대한 배의 몸체는 물속에 가라앉은 채, 소식도 없다. 불의의 객이 되어버린 가족들을 잃고, 유가족들은 하루 한시도 마음을 놓고 쉬지 못하고, 도대체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그 원인이라도 제대로 알고, 잘못된 그 원인에 대한 처방이라도 제대로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사건이 발생한지 6개월이 되어가는 오늘까지 원인도 명확하지 않고, 책임지는 사람도 별로 없어보인다. 다만 세월호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섰던 유병언과 그의 일가들만 천인공로할 죄인이 되었고( 그들이 죄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 배를 잘못 운행했던 선장과 선원들만이 재판
▲ 서울전망대(서울타워)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면서 서울을 관조한다. ▲ 남산 전망대에서 본 서울의 일몰경 ▲ 사랑은 좋은 것이여 !!!모두가 한번쯤 사진을 찍어놓고 싶어하는 사랑탑 ▲ 사랑의 맹세로 꽁꽁 묶인 전망대 계단난간 ▲ 서울전망대의 북쪽에는 서울의 옛 도심과 남산공원이 있다. ▲ 남산의 등성이에는 서울성곽이 이어져 있고뒤로는 멀리 한강이 감싸고 돌고 있다.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500년 조선의 도성이었던 한양성 외곽으로는 조선초부터 숙종때까지 석성을 쌓아서 관리한 한양성이 둘러있다. 일제를 거치는 동안 길을 내고 건물을 짓는다고,많은 부분들이 훼손되어서 더러는 그 형체도 알 수 없이 파괴되었지만, 근년에 들어 문화재청과 서울시에서 서울성곽복원공사를 꾸준히 진행하여 많은 부분들이 제모습을 되찾았다. 한양성의 중심은 경복궁이었고, 그 앞으로는 관아와 사대부 세도가들이 모여사는 양반가옥들이 있었고, 외곽으로는 시장과,크고 작은 민가들이 비탈진 곳까지가득했으며, 그 외곽으로는 한양성이 둘러쳐있어, 새벽이면 종을치고, 또 야간에도 종을 쳐서 들고 나는 것을 관리하였기에,한양도성은아무때나 또 누구나마음대로드나들지 못하였다.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신라시대 쇳물을 녹여서 만든 미소짓는철부처님이다. 정교한 조각술과주물기법에 감탄사가 절로 나는 아름답고 당당한 부처님이나, 본래 서산 '성주사'에 모셔졌던 부처님이 조선조 500여년 불교의 탄압으로 성주사절은 폐사가 되고, 불상과 불탑만 폐허속에 나뒹굴다가 1918년 일본인들에 의해서 수습되어, 여기 저기 거쳐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오게 되었다. 모든 생명있는 존재는 그 무엇이든 성주괴공(成住壞空 어떤 인연에 의해서 생겨나서, 한동안 머물다, 상황이 변하면 파괴되고, 결국 본래자리 공으로 돌아간다)한다는 불법(佛法)의 진리 과정 중에 한 장면임을 생각하게 한다. 언젠가 현재의 모습마저도 사라질 날이 있을 것이지만, 가능한 그리 되지 말고한민족의 부처님으로 당당한 모습 오래오래볼 수 있길 빌어본다. 이런 생각 또한 어리석은 중생의 짧은 생각이겠지만 ... !!!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 대리석 불감, 상 중 하 3단으로 구분된 불감 ▲ 불감의 상부 , 천상의 세계를 지키는 상서로운 동물 ▲ 불감의 몸통, 부처님과 좌우에는 보살과 제자가 협시하고 있는 모습 ▲ 불감의 하부. 부처님을 호위하는 역사가 좌우에 있고, 불감에 대한 설명이 새겨져 있다. ▲ 금동보살 서있는 모습 ▲ 작은 속불들로 발해의 서울인 상경성에서 발굴된 불상들 ▲ 2불이 함께 있는 모습(석가불과 다보불)으로 법화경을 설법하는 석가불의 설법이 맡다고 증명하는 다보불이 함께 앉아있는 모습이다.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중인 발해유물임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발해는 한민족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고조선과 부여를 거쳐 형성된 고대왕조로,한반도 내에 있던통일신라와 오랫동안 공존하였었다. 그러나우리는 오랫동안발해가 우리와 같은한민족의 형제왕국이었다는 것을 잊고 살아왔다. 발해는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군으로 공격하여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고구려의 유민들과 그 지역의또다른 한민족 계열의 사람들이 고구려의 영토위에 다시 세웠던 왕조로698년~ 926년까지 고조선과 고구려의 고토인 남만주일대에서 한반도 북부지방에서 광대한 영토와 한민족의 문화를 계승하면서
▲ 숲에 안긴 길상사 극락전 본래 전각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다. ▲ 길상사 경내로 들어오는 신도들 ▲ 극락전 앞에 핀 코스모스 ▲ 길상사의 아담한 석등 ▲ 법정스님의 초상화가 있는 진영각 올해 마지막 꽃무릇이 피어있다. ▲ 법정스님 초상화가 있는 진연각 현판 ▲ 법정스님의 진영각을 나오는 스님 ▲ 길상화보살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서울 도심에서 가까운 고즈넉한 절로 성북동에 길상사가 있다. 길상사는 최근세의 정치인들이 많이 드나들던 요정 대원각이라는 유명한 곳이었다. 이 요정은 길상화(김영한)이라는 노 보살이 무소유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글을 써오던 법정스님의참다운 수행승모습에 반하여 평생 갖은 고생과 역경을 이기고, 이룩했던 자신의 전 재산을 아무런 댓가없이 법정스님에게 기부하여 절로 다시탄생한 것이다. 요정이 절이 될 수 있다는 좋은 예이니, 본래부터 '어떠한 모습' 이란 존재하지 않은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길상사는 본래부터 절로 가꾸기 위한 것이 아니어서전각의 배치가 우리가 많이 보아오던 절의 격식에는 잘 맞지 않지만, 산과 계곡사이에 지어진 건물들을 모두 이용하여 절의 전각과 숙
▲ 늦게 핀 꽃무릇 ▲ 시들어가는 꽃무릇 ▲ 화려한 외출을 끝내고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매년 9월이면 전국의 많은 절들에는 꽃무릇이 빨갛게 피어난다. 잎과 꽃이 따로 피기에 서로 만날 수 없는 연인을 연상한다하여 상사화로도 불리우는 꽃무릇이절 주변을 한동안 아름답게 장식하고 이제 잎을 피우기 위하여시들어간다. 서울에서는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의 앞마당과 계곡쪽에도 꽃무릇이피어나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이제 그 화려함도 거두는 듯하고, 나무 그늘 밑에마지막 남은 몇송이의 꽃무릇을 보고, 또 시들어가는 꽃을 보며, 어김없이 변화하는 계절을 느낀다. 꽃무릇은 참으로 신비롭다. 지구상의 다른 꽃들은 봄이면 피어나고 가을이면 시드는데 꽃무릇은 봄에는 잎이 지고, 남들이 시들기 시작할 가을 초입이 되면 땅속에 숨겨두었던 뿌리가 서서이 깨어나 녹색의 꽃대를 올리고, 그 꽃대에서 새빨갛게 꽃이피어난다. 꽃잎도 다른 화초류들처럼 둥근 모양이 아니라 굽은 바늘처럼 날카롭게 피어나면서도 화려함을 자랑한다. 그 꽃잎에 햇빛에 비치면 더욱 화려한 자태를 보여준다. 이렇게 피어난 꽃은 10일 정도 피었다가 스르르 시들어간다. 하지만 시드는 꽃잎은그 아름답던
▲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치료하기 위한 영약을 담는 청자정병주전자 ▲ 용머리 형태의 입을 단 청자주전자. 흙으로 빗여만든 용머리 모양이 섬세하다. ▲ 몸통의 모양을 참외의 모양에서 차용한 청자주전자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고려청자 중에서 주전자를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첫번째 청자정병은 고려시대 불교의 의식에 주로 썼던 것으로 고려불화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늘 가지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정병에는 버드나무가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버드나무는 옛날부터 약재로 많이 썼던 까닭이며, 현재에도 버드나무잎에서 추출한 약재는 아스피린의 주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두번째는 용머리모양의 주둥이를 한 섬세한 청자주전자이다. 모습이 무척 깔끔하고 화려하다. 고려 귀족들의 화려한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이런 주전자에 술을 마신다면 그 맛 또한 더욱 일품이었을 것이다. 셋째는 몸통을 참외 모양을 한 주전자로 참외 줄무늬가 잘 표현되었다. 술을 담을 때에는 참외꼭지같은 뚜껑을 열고 술을 담았고, 주전자 입과 손잡이는 별도로 만들어 붙였다.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고려청자들로, 900년 전의 조상님들의 미적 감각과 기술을 보면서 새삼 감탄하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