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강점기 격렬했던 수원 지역 저항의 역사는 1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구도심 곳곳에 남아 있다. 총칼 앞에서도 독립을 향한 굳게 의지를 지켰던 의인들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근대 건축물과 공간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광복 80돌을 맞아 수원지역 독립운동의 길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수원시가 만든 근대 인문기행 가운데 대한독립의 길을 따라 걸어보는 것이다. 모두 4.5㎞가량을 둘러보는 데 넉넉하게 3시간가량이 소요되니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수원의 독립운동 핵심지와 독립운동가의 숨결이 머물렀던 공간들을 돌아보길 추천한다. 만세운동을 기억하며, 연무대~방화수류정 독립의 길 코스의 시작은 ‘연무대’다. 지금의 평온한 모습과 달리 100여 년 전 이곳 연무대에는 독립을 염원하는 민초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수원 장날이었던 1919년 3월16일 일본의 침탈로 핍박받던 상인을 중심으로 모인 수백 명의 수원사람이 창룡문 안 연무대부터 만세를 외치며 팔달문과 종로 방향으로 번져 나갔다. 연무대는 정조대왕의 친위대인 장용영 군사들이 무예를 연마하던 훈련장으로 사용된 넓은 공간으로, 푸른 잔디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사시사철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용인 수지청소년문화의집(센터장 홍영표)에서는 지난 4월 26일(토), 초ㆍ중학교 학생 30여 명을 대상으로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1926-2024) 관련 강의와 자료(생전시 대담 '나의 어머니는 독립운동가', 최태성의 역사 읽어 드림)를 시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특강은 오희옥 여성독립운동가 후손 초청 특별 강연으로 '13살 소녀의 독립이야기'라는 주제였으며 강사는 오희옥 지사의 아드님인 김흥태 선생이다. 오희옥 지사는 ‘용인 출신의 3대 독립운동을 한 일가(一家)’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명포수 출신인 오인수 의병장(1867-1935)이고, 중국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아버지 오광선 장군(1896-1967), 만주에서 독립군을 도우며 비밀 연락 임무 맡았던 어머니 정현숙 (1900-1992), 광복군 출신 언니 오희영(1924-1969)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령(參領)을 지낸 형부 신송식(1914-1973)등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집안이다. 오희옥 지사는 1939년 4월 중국 유주에서 결성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 1941년 1월 1일 광복군 제5지대(第5支隊)에서 광복군으로 활약했으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윤 화백님~~, 빼꼼히 열린 작업실 문을 열면서 나는 큰소리로 윤 화백을 불렀다.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커다란 작업실에서 항상 클래식 음악을 틀고 작업하던 평소와는 달리 어제(21일)는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이제 나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음악 소리를 꺼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스런 생각을 하면서 작업실에 들어서자 윤 화백은 작업 중이던 작업대에서 허리를 펴고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어서와요, 이 선생” “지금 그리는 이분은 누구세요?” “맞춰 봐요, 누구인가?”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그림 이야기’로 시작되어 ‘그림 이야기’로 끝이 난다. 윤석남 화백은 올해 나이 여든여섯이지만 여전히 왕성한 대작(大作)을 그리는 현역 작가다. 윤 화백이 그리는 대상은 역사의 조명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이다. 이러한 소재로 윤 화백은 4년 전인 2021년 3월, 서울 학고재갤러리에서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역사를 뒤흔든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전(展)을 연 바 있다. 그 무렵 윤 화백이 그린 여성독립운동가 작품은 28점이었으나 당시 전시 공간의 문제로 절반만 전시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삼형제 아들이 모두 죽어 이제 며느리들이 독신이 되었다. 큰아들은 병으로 죽고 둘째 아들 상옥(김상옥 의사)은 객지로만 다니다가 밥 한 그릇 못해 먹이고... 왜 왔드냐? 왜 왔드냐? 거기(상해) 있으면 생이별이나 할 것을...” 이는 독립운동가 탄압의 본거지인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조선총독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김상옥 의사의 어머니 김점순 지사(1861-1941, 1995년 대통령표창)의 이야기다. 1923년 1월 22일 밤 8시, 김상옥(1889-1923, 1962년 대통령장) 의사는 종로경찰서(현 장안빌딩 근처) 서편 동일당이란 간판집 모퉁이에서 창문을 향해 폭탄을 힘차게 던졌다. 순간 천지를 진동하던 굉음은 그간 일제의 탄압에 억눌린 조선인의 민족혼을 일깨우는 소리요, 피맺힌 절규와도 같았다. 김점순 지사의 금쪽같은 아들 상옥은 이렇게 조선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한목숨을 나라에 바쳤다. 막내아들 김춘원(1990, 애족장)도 그렇게 형 김상옥을 따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필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추적하여 나라 안팎을 찾아다니다가 오래전 김상옥 의사의 어머니가 김점순 지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동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는 제106돌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4월 11일)을 앞두고, 임시정부 활동을 돕는 온라인 게임 콘텐츠 ‘무궁화 꽃을 피워주세요’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무궁화 꽃을 피워주세요’는 국가보훈부와 지에스(GS)리테일이 공동 추진하는 광복 80돌 운동의 두 번째 콘텐츠로, 참여자가 백산상회*에 모인 독립운동 자금을 일본 순사의 감시를 피해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내용으로, 7일(월) 낮 3시 보훈부와 지에스(GS)25 누리소통망(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된다. * 백산상회 : 백산 안희제 선생이 1914년 설립한 민족기업으로, GS그룹 창업주인 허만정 선생 등이 참여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번 콘텐츠는 많은 인기를 모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화제가 된 전통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방식을 적용, 콘텐츠 참여자는 일본 순사가 등을 돌리고 있을 때 화면 닿기(클릭)를 통해 동포(캐릭터)를 임시정부로 한 걸음씩 이동시키며 독립자금을 전달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콘텐츠 참여를 통한 보훈 기부도 이뤄진다. 참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20년 주년 바로 오늘, 제 증조부모님인 라우레아노 리아스(이치원)와 마르타 페레즈(배 부인)는 네 자녀와 함께 부산을 떠났습니다. 큰아들은 여덟 살, 마리아(이갑녀)는 여섯 살, 호세 마리아(이광수)는 네 살, 후아나(이갑년)는 생후 6개월이었습니다. 여권 문제, 전염병 발생, 이민의 합법성 문제로 인해 출발이 두 달 동안 지연되었고, 혼란스러운 출항 당일 큰아들이 길을 잃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남겨졌습니다. 그 비극은 평생 가족들을 괴롭혔습니다. 증조모는 날마다 남겨두고 온 큰아들을 그리며 울었다고 했고 증조부는 슬픔을 달래기 위해 며칠씩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 고통은 자식을 잃은 슬픔뿐만 아니라 고향, 정체성, 그리고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잃은 데서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후손들을 찾고 있고, 어머니의 DNA 매치 결과를 기다리며 낯선 사람들에게 계속 연락을 취해볼 것입니다. 그들(잃어버린 큰아들과 후손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았고, 여전히 생각하며, 깊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제(4일) 한국이민사박물관(관장 김상열)에서 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두운 시대는 의인을 불러낸다. 나라의 명운이 흔들리던 구한말 수원지역에서 애국계몽활동가이자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발휘한 임면수(1874~1930) 선생도 그 가운데 하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놨다. 가족들 역시 그 뜻에 동참했다. 광복을 위해 헌신한 임면수 일가의 기록과 이를 기억하기 위한 수원의 노력을 들여다본다. 시대의 어둠을 밝힌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임면수는 151년 전인 1874년 6월 수원군 수원면 북수리 299번지에서 태어났다. 조선 말기 수원의 지역 유지 집안에서 2남으로 태어난 그는 전통적인 한문 공부를 하고 자랐다. 하지만 성인 이후에는 실용적인 근대 학문 수용에 뜻을 두었다. 서른 살 만학도로 1903년 수원 양잠학교를 졸업하고, 일어 공부를 위해 사립 화성학교를 다니며 1905년 4월 1회 졸업생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서울 상동교회에서 운영한 중등 교육기관 상동청년학원의 야간학교를 다닌 임면수는 수원지역 애국계몽운동가로 명망을 떨쳤다. 대한제국기 수원지역의 다양한 조직과 단체에 임면수의 이름이 포함됐다. 고향인 수원에서 인재를 기르겠다는 의지로 수원지역 유지들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금으로부터 106년(1919)전 3월, 이달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 소리가 끊이질 않았던 달이다. 특히 일제 군경이 저지른 ‘제암리교회 학살’ 현장 인근인 제암리 발안장터에서는 수천 명의 주민들이 모여들어 일제 침략에 항거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이날 곧, 1919년 3월 31일 정오, 발안장터에 몰려든 군중들의 선봉장이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결사적인 시가행진을 진두지휘하다가 일본 헌병의 총검에 복부를 난자당해 현장에서 순국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탄운 이정근(灘雲, 李正根 1863-1919) 의사(義士)다. 이정근의사는 복부에서 솟구치는 붉은 피를 움켜쥐어 일본 헌병의 얼굴에 흩뿌리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대한독립’을 절규하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아! 선열이시여! 어제(3월29일) 낮 11시, 향남읍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장짐리)에 있는 이정근의사창의탑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탄운 이정근 의사를 추모하는 “발안 3·1독립운동의 선구자, 탄운 이정근 의사 순국 106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제법 쌀쌀하다고 느꼈는데 추모제가 시작되고 얼마 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 80돌과 안중근 의사 순국 115주기를 맞아 안중근 의사의 독립 정신과 평화 사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작발레 공연이 열린다.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는 (사)안중근의사숭모회·안중근의사기념관이 오는 15일(토)과 16일(일) 이틀 동안 서울 예술의 전당 시제이(CJ)토월극장에서 안중근 의사를 주제로 한 창작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공연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안무 문병남, 대본·연출 양영은)은 안중근 의사의 유언인 “대한독립의 함성이 천국까지 들려오면 나는 기꺼이 춤을 추면서 만세를 부를 것이오”를 창작 동기로 2015년 창작됐으며, 죽음을 앞두고도 나라의 평화와 독립을 꿈꿨던 안중근 의사의 삶과 철학을 담아냈다. 특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일회성 창작작품에 그치지 않고 여러 해 동안 음악과 안무, 연출을 수정ㆍ보완하여 나라 밖 라이선스 작품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발레계에 새로운 축을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틀(15일 17시, 16일 15시) 동안 펼쳐지는 이번 공연에서 안중근 역에는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탁 발레리노와 윤전일 댄스 이모션(Dance Emoti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06년 전인 1919년 3월 1일은 우리 민족 모두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만세운동의 시작일이다. 총칼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독립을 열망한 선열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후손들이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음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특별히 되새겨야 하는 기회다. 당시 수원에서도 만세운동이 격렬했다. 기미년 3·1만세운동의 기획하고 실행한 핵심 인사를 일컫는 ‘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 사람인 김세환(1889~1945)이 수원 만세운동의 도화선을 만들었고, 이후 한 달 동안 20여 회에 달하는 만세운동이 격렬하게 이어졌다. 김세환의 업적과 1919년 수원, 그리고 이를 기억하는 수원을 확인해 본다. 김세환 선생, 수원 독립과 근대 교육 이끈 정신적 지주 김세환은 수원의 독립운동과 민족운동, 교육과 체육 발전에 56년의 삶을 헌신했다. 대한민국 독립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건국훈장 가운데 독립장 이상을 받은 인물은 1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특히 국가보훈부가 지난 2020년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할 정도로 공로를 높이 인정한 자랑스러운 수원 출신 인물이다. 김세환은 188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