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 주세페김 팝페라가수] 올해가 한일수교정상화 50주년이라고 한다. 다양한 행사들이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11월, 우리 부부는 오사카를 거쳐 교토를 방문할 예정이다. 오사카에서는 재일동포의 원류 오사카 민단 1~2세대 원로 어르신들이 모이는 만찬이 예정되어있고, 교토에 있는 용곡대학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관한 학술회의가 열리는데 우리 부부는 공연팀으로 초대받았다. ▲ 교토 용곡대학에서 열리는 안중근동양평화학술회의 마침 동행하게 될 국회의원이 있어 우리는 그의 보좌관의 안내로 인천공항 의전실을 통하여 출국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잘 꾸며진 의전실에서 대기하며 담소를 나누다가 귀빈 대접을 받으며 출국했다. 수속이 빨라 좋기도 했지만 이런 공간이 은근히 외교와 소통에 큰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 인천공항 의전실에서 (듀오아임)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여 시내로 향하면서 보이는 가을 오후의 하늘에는 구름을 태우는 듯한 태양이 따갑다. 한일 양국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갈등 속에서 늘 마음 졸이면서도 꿋꿋이 일본 사회에 뿌리를 내려 한인사회를 이끌어오신 분들의 노고와 애환을 생각하니 벌써 경의가 표해진다. ▲ 오사카의
[한국문화신문 = 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누가 제보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10년 전에 KBS 아침마당에서 4대가 함께 사는 부부성악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나와 온 가족이 한동안 마음 설렌 적이 있었다. 유학에서 갓 돌아온 무명가수 시절이라 아침마당에 나가면 음악 속에서 사랑하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듀오아임부부가 이 기회에 유명해지겠다는 바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나와 4시간의 꼼꼼하고 지루한 취재 끝에 우리 가족의 성향이 온화하고 조용하며, 특별히 화제가 될 만한 이색적인 사건이나 불화도 없다는 것을 알고 TV 출연은 결국 성사되지 않았었다. 그때의 아쉬움을 나는 아내 구미꼬에게 이렇게 농담했다. 이참에 아이들을 빨리 장가보내 손주를 보고 5대가 함께 산다면 방송에 확실히 나갈 것이고, 그래도 부족하면 내가 이것저것 사고를 치고 죽일 놈이 될 테니 당신은 잘 참고 며느리로서 시부모님 봉양 잘하면 아침마당 특종이 될 거라고.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이 아침마당에 못 나간 것이 오히려 보이지 않는 담백한 행복의 징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범가족들의 모습과 눈물겨운 인생역전의 드라마를 TV에서 보고 감동과 부러움을 느끼지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두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함께 공연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공연이 끝나면 의례 받았던 꽃다발들을 차에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던 말이다. 아빠, 엄마! 공연을 하면 사람들은 돈은 안주고 왜 꽃다발만 주나요? 꽃만 받아서 어떻게 살아요. 차라리 돈이나 과자 아니면 장난감으로 주면 더 좋을 텐데요 그렇다. 우리 부부는 꽃을 먹고 산다. 오래 전 아내가 독창회를 했었을 때는 화환과 꽃다발이 하도 많이 들어와 연습실 1층 유리문 주위의 안팎으로 빼곡히 진열해 놓았더니 어떤 여인이 앞을 지나다가 화원인 줄 알고 꽃을 사러 들어왔던 적도 있다. 공연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음악가로서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경제적으로 실속이 없는 공연 의뢰도 참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문화 행사들이 예산이 열악한 상황에서 준비되다 보니 소위 재능기부를 청하는 경우가 많고 작은 거마비가 미안하니 꽃다발이라도 큰 것으로 준비하여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적절한 일이겠다. 그러다 보니 어린 두 아이들도 어느새 분위기를 파악하고 예술가 부모의 애환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꽃만 먹고 어떻게 사느냐고 투덜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럴 때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어린이와 함께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방송으로 보면서, 나도 4~5살 때쯤 지학순 주교가 집전하던 대미사 중에 내가 뒷짐을 지고 제대 위에 올라와 여기저기 활보하는 바람에 다들 놀라 노심초사했다는 얘기가 생각 난다. 다행히도 지학순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아무 말 안 하셨기에 나는 제대 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그냥 내려왔다. 8월의 교황 방한의 여운을 간직하기 위해 요즘 나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로 시작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간단한 기도(Preghiera Semplice, 평화의 기도를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초연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성프란치스꼬는 13세기에 돈과 권력 속에서 타락하는 교회를 경계하며 청빈과 겸손을 실천한 참으로 위대한 성인이다. 내가 이 노래를 작곡을 한 때는 2002년 11월 말. 이태리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바로 전날 이태리 작곡가 친구 라파엘레와 함께 작곡한 이별기념곡이다. 이번에 방문한 교황의 이름도 프란치스코이기에 이번 공연에서 성직자들의 이야기를 공연 관람객들과 공감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 구상하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준비하는 중에 지인 양승국 변호사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오후 4시 경. 서울 남산 중턱에 자리 잡은 남산도서관 버스정류장 앞에 이색적으로 가슴에 안중근의사의 유묵을 어깨띠로 두른 대학생들이 등장한다. 내 동지들이다. K-문화독립군 청소년들이 K-문화독립운동을 위하여 안중근의사기념관 상설문화공연을 안내하는 것이다. ▲ K-문화독립군으로 나선 청소년 로타렉트3650 학창 시절 내 별명 중에 하나가 돈키호테였었다. 친구들은 내 이름 김 동규를 변형하여 동큐호테=돈키호테라고 불렀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정말로 돈키호테가 된 느낌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진해서 기사도를 발휘하며 남산에자리 잡은안중근의사기념관을 돕기 위하여 한가지 좋은 일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과 내가 인연을 맺는 것은 지난 3월 26일 안의사 서거일에 내가 작곡하여 부부가 함께 부르는 안중근 의사의 옥중편지 아들아 아들아(Dear My Son)를 순국기념식에서 노래하면서이다. 그날 기념식에는 여러 방송들이 취재를 나왔고 우리 노래를 방송에 내보내겠다고 미리 저작권 허락을 구하는 전화까지 주고받았었다. 그런데 당일 우리가 노래를 부를 때 그만 무선마이크에 방해전파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시(詩)는 죽었다고 마음 아파하던 이상백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09년으로 기억된다. 이 시인과 우리 부부는 뭐가 그리 잘 통했었는지 음악을 통하여 세상에 해주고 싶은 얘기들을 아름다운 우리말 시로 만들고 노래의 날개를 달아보기로 하였다. 그중에 우리가 함께 만든 곡 하나가 추념곡이었다. 이태리에 있었을 때는 모든 장례식이 성당에서 이루어지기에 우리 부부는 레퀴엠(=진혼곡)을 비롯하여 장례미사에서 성가를 부른 적이 꽤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장례식장에서 들려주는 노래가 적절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가장 아픈 이별인 죽음에 대한 노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하는 천의 바람이 한창 유행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는 이 시인에게 죽은 이가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추념곡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한달 쯤 지나 2010년 초, 도곡동에서 해지는 매봉산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상백 시인이 전화로 방금 완성한 해후를 내게 읽어주었다. 울지 말아요. 언제나 그랬듯이 / 내 이름 불러봐요. 천천히 소리 내어그대들의 가슴속에 나 다시 살아 / 강을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몇 년 전 11월 중순. 한국의 한 사교단체와 이태리 대사관이 서울 중심가의 한 대형 호텔에서 유럽의 각국 대사와 가족들 그리고 한국의 인사들을 초대하여 이태리를 알리는 문화의 밤 행사를 했는데 우리 부부는 거기에 공연을 하러 간 적이 있다. 나와 아내는 음향 리허설을 위하여 3시간 일찍 도착하였는데 무대장치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설치에 분주한 틈을 이용하여 호텔 로비를 둘러보며 잠시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다. 계단이 많은 로비 한 가운데에는 놀랍게도 20 미터 높이는 족히 될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이미 장식되어 있었고, 각 나라의 산타클로스 인형들도 수백여 개가 양쪽 벽면을 메우며 전시되어 있었다. 마구간처럼 보이는 집의 지붕 위에는 대형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굴뚝 옆에 누워있었다. ▲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된 11월의 호텔에서 (팝페라부부 듀오아임) 11월 중순의 대한민국 서울 백화점과 호텔의 풍경이 이렇다. 11월에 크리스마스트리라니........ 이건 아직 아닌데 너무 오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다음 달이 12월 아기 예수가 오실 달이구나 하는 연말의 설렘도 잠시 생겼다. 대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실감 날 것이다. 특히 띠부르띠나(Tiburtina) 길은 로마에서 출발하여 유럽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로마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든 길이어서 북부 도시에서 쉽게 도로 표지판을 찾을 수 있다. 로마가 최초로 만든 큰 길은 로마에서 나폴리 근교까지 뻗어 있는 압삐아 가도(Via Appia)로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길들이 시작된 지점은 현재 로마의 중심부에 위치한 로마의 발생지이며 가장 많은 관광객이 지나가는 고대유적지인 포로 로마노(Foro Romano)이다. 로마는 기원전 공화정이라는 원로원 정치제도와 로마인으로서의 긍지가 대단했던 일등 시민들 덕분에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그 힘이 막강해졌고 로마제국은 전 유럽을 쉽게 다스릴 수 있었다. 길이 좋아서 로마는 서양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고 식민지의 노예들도 쉽게 데려다 건축에 동원하였을 것이다. 티토 황제는 로마의 번영을 상징적으로 볼 수 있는 건축물로 콜로세움(원형경기장)을 만들었는데 유대인 노예들을 데려다 지었으며 노예들의 처형장이자 검투사들에게 경기를 시키고 놀음을 하던 경마장 같은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요즘 남자의 자격 프로로 더 유명해진 음악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와 관련하여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한가지 있다. 이 노래는 영화 미션(Mission)의 음악 중에서 가브리엘 오보에(Gbriels Oboe)가 원작인데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화음악일 것이다. 오보에가 연주하는 이 기악곡에 가사가 붙여져 노래가 되어 불리고 있는 것이 바로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다. 가사의 내용이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는 것이 참 좋다.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giusto 환상 속에서 나는 정의로운 세상을 봅니다Lo tutti vivono in pace ed in onesta 모두들 평화롭고 정직하게 사는 세상을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chiaro 환상 속에서 나는 밝은 세상을 봅니다Gli anche la notte meno oscura 밤에도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 세상을Nella fantasia esiste un vento caldo 환상 속에는 따뜻한 바람이 붑니다Che soffia sulle citt, come damic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가을, 특히 10월이면 여기저기서 많이 듣게 되는 노래들이 연대별로 몇 곡 있다. 피아노 경음악 장르에서는 70-80년대 시낭송과 어우러져 유행했던 리차드 클레이더만 (Richard Clayderman) 의 가을의 속삭임일 것이다. 그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연주로 유명하며 낭만적인 피아노 경음악의 장을 열었고 요즘 뉴에이지 음악의 모태라고도 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다. 그런데 가을의 속삭임의 원제는 A Comme Amour, 사랑처럼인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제목이 바뀌어 불리고 있다. 리차드 클레이더만 (Richard Clayderman)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7080가요의 가을 노래 1위는 아마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하는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리라. 중년과 장년층의 잊혀진 가을 사랑 이야기가 애절하여 이용 씨의 노래도 참 좋지만 경음악으로 들어도 좋다. 최근에는 크로스오버 부문의 노래로 나와 동명인 바리톤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당당하게 젊은 층을 대상으로 10월 한 달을 정복하고 있다. 아니 1년 내내 불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