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시(詩)는 죽었다고 마음 아파하던 이상백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09년으로 기억된다. 이 시인과 우리 부부는 뭐가 그리 잘 통했었는지 음악을 통하여 세상에 해주고 싶은 얘기들을 아름다운 우리말 시로 만들고 노래의 날개를 달아보기로 하였다.
그중에 우리가 함께 만든 곡 하나가 추념곡이었다. 이태리에 있었을 때는 모든 장례식이 성당에서 이루어지기에 우리 부부는 레퀴엠(=진혼곡)을 비롯하여 장례미사에서 성가를 부른 적이 꽤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장례식장에서 들려주는 노래가 적절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가장 아픈 이별인 죽음에 대한 노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하는 <천의 바람>이 한창 유행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는 이 시인에게 죽은 이가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추념곡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한달 쯤 지나 2010년 초, 도곡동에서 해지는 매봉산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상백 시인이 전화로 방금 완성한 <해후>를 내게 읽어주었다.
울지 말아요. 언제나 그랬듯이 / 내 이름 불러봐요. 천천히 소리 내어
그대들의 가슴속에 나 다시 살아 / 강을 건너올게요. 아침이 되어
금싸라기 햇살을 가득 안고 와서, 기억의 텃밭에 따뜻한 흙이 될게요.
<해후>를 작곡했던 그 해 2월은 내게 삶과 죽음을 음악으로 관조해보는 참으로 진지한 명상의 시간으로 기억된다. 많은 지인들이 죽음에 관한 노래가 비록 슬프기는 하나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면서 자신의 주위 사람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는 좋은 평을 주셨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사건이 터진 것이다. 희생자들의 가족을 생각하니 온통 무거운 마음인데 어떤 지인은 이 <해후> 노래를 천안함 추모곡으로 띄우라는 것이었다. 고민거리가 생겼다. 분명 내용은 걸맞은 노래이지만 내가 이 사건에 편승하여 나의 음악을 띄우는 것이 과연 좋은 생각일까? 망설여졌다. 아마도 이 노래를 알릴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기회이겠지만 확신이 서질 않았다. 만약 내 가족이 그런 상황에 있다면 과연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권유에 떠밀려 상황이 거의 종료될 무렵 적극적인 홍보는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고 간단한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 개인 카페에만 조용히 올리고 말았다.
이런 천안함의 비극이 잊히기도 전에 이번에는 세월호 사건이 이 나라, 아니 전 세계를 흔들어 놓았다. 예정되었던 공연들도 거의 취소되었고 우리 부부 듀오아임은 추념곡 <해후>가 있어 추모행사에서 여러 번 노래를 했다. 그런데 이번 참사는 너무도 어이없고 침통, 분통하여 무대에서 제대로 노래하기는커녕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어 어쩔 줄 모르다 내려왔다. 참으로 힘들었다.
슬기전화(스마트폰)로 세월호 추모곡들이 여기저기서 발표되고 퍼지는 가운데 어떤 지인은 왜 추모곡을 만들지 않느냐고 또 묻는다. 노래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예술가로서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는 것은 좋은데 기회주의적인 의도로 어떤 사건에 편승하여 예술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서질 않기에 그냥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던 중 4월 24일, 늘 좋은 글들을 보내주시는 파워블로거 양승국 변호사의 메일에 박노해 시인의 <이별은 차마 못했네>라는 시 한 편이 실려왔다.
<이별은 차마 못했네>
- 박노해
사랑은 했는데
이별은 못했네
사랑할 줄은 알았는데
내 사랑 잘 가라고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차마 이별은 못했네
이별도 못한 내 사랑
지금 어디를 떠돌고 있는지
길을 잃고 우는 미아 별처럼
어느 허공에 깜박이고 있는지
사랑은 했는데
이별은 못했네
사랑도 다 못했는데
이별은 차마 못하겠네
웃다가도 잊다가도
홀로 고요한 시간이면
스치듯 가슴을 베고 살아오는
가여운 내 사랑
시린 별로 내 안에 떠도는
이별 없는 내 사랑
안녕 없는 내 사랑
▲ 박노해 시인의 '이별은 차마 못했네'를 노래하는 다문화 팝페라가수 구미꼬 김
시의 내용이 직설적이지 않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그리고 온 국민의 마음을 적은 듯하다. 읽자마자 이것은 노래시라는 느낌이 온다. 이 근성을 어쩔 거나, 어쩔 거나. 시를 읽으면서 마음속에 그려진 선율을 며칠 간직하다가 아내 구미꼬 김이 혼자 노래하기로 하고 악보를 그린 후 편곡을 마쳤다. 음악을 동료들에게 들려주니 고맙게도 악단 랑(Rang)의 동지들도 따뜻한 위로의 마음으로 녹음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준다고 한다.
이번에도 역시 노래에 대한 공식적인 홍보는 하지 않겠다. 그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모든 이가 욕심을 버리고 제 위치에서 제 할 일을 잘하는 좋은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큰 대가를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아닌지 하늘이 야속하기만 하다.
*** 김 동규 (예명_ 주세페 김Giuseppe Kim)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팝페라테너, 예술감독, 작곡가, 편곡가,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
▲ 주세페 김동규 |
소프라노 구미꼬 김(Gumico Kim)과 함께 팝페라부부 '듀오아임'이라는 예명으로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duoaim.com
유튜브검색(듀오아임) www.youtube.com/duoa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