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문맹(文盲)이란 글을 해독할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0%에 가깝습니다. 세종대왕이 만들고 발전시킨 한글의 영향이 크지요. 하지만 글을 읽고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률은 75%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인류 보편 교육이 없었던 시절엔 글을 해독한다는 것이 특권층에만 해당하는 소통 도구였을 것입니다. 유럽에 조각상이 그리 많은 이유는 글을 해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신화나 종교, 지식을 설명하기 위함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윤장대(輪藏臺)가 있습니다. 내부에 경전을 넣어두고 회전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인다고 하지요. 이 또한 글을 해독할 수 없는 일반 백성을 위한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글이란 인간의 사고를 시각화해서 생산, 저장, 유통하는 도구입니다. 어쩌면 만국 공통어는 그림입니다. 회화는 그 어떤 언어의 프레임을 씌운 사전 지식이 필요 없으니까요. 훈민정음 창제 당시 최만리 등 많은 신하가 반대합니다. 그 까닭은 한자(漢字)로 된 문화와 예악, 학문 등이 한글로 풀이되면 그 품격이 천박해진다는 논리였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 나오는 말처럼, 오래, 그리고 자세히 볼수록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우리 옛집도 그렇다. 한옥 지붕 처마의 유려한 곡선에서, 강건한 주춧돌에서, 야트막한 담장에서 문득, 아름다움을 느낄 때가 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인 지은이 구본준도 그런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쓴 《별난 기자 본본, 우리 건축에 푹 빠지다》에는 우리 옛집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사실 그도 처음에는 전통 건축을 취재할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동료 기자가 갑자기 출장을 가면서 동료가 기획해두었던 기사를 얼떨결에 대신 쓰게 됐다. 가끔은 이런 예기치 못한 일이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길이 된다. 지은이는 처음에는 너무나 막막했지만, 신기하게도 건축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 옛집이 좋아졌다고 한다. 어느새 우리 옛집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그는 전국을 돌며 취재했고, 발로 뛰며 찾아낸 우리 건축 이야기를 누구나 읽기 쉬운 재밌는 글로 풀어냈다. 이 책에는 한옥에 대해 나름 안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이건 몰랐을 것 같은‘ 몇 가지 대목이 있다. 우리 옛집에 다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은 기업들이 지구촌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하여 기업 내에서 쓰는 전력을 모두(100%)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협약이다. RE100은 영국에 기반을 둔 비영리단체인 ‘더클라이밋그룹(The Climate Group)’이 공동 주관하여 2014년부터 시작한 일종의 사회운동인데, 명목상으로는 구속력이 없다. 또한 이 운동은 연간 100 GWh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중소기업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지구촌 기업인 구글, 애플, GM, 이케아, 마이크로소프트, BMW 등 모두 370개의 기업이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어서 그 파급력이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2022년 7월 기준으로 SK계열사, 현대차 계열사 등 21개 기업이 RE100 협약에 가입하였다. RE100을 달성하려면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 모두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조달해야 한다. 기업에서는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짓거나, 재생에너지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서 쓰면 된다. 기업으로서는 RE100 협약을 무시할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세상의 모든 음악을 주유한 김진묵 선생님이 《새》라는 수필집을 내셨습니다. 그런데 표지의 제목 옆에는 ‘김진묵 다큐멘터리 에세이’라고 되어 있네요. 지난 30여 년 동안 선생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펼쳤기에 다큐멘터리 에세이라고 하는군요. 수필집을 펼치니 1982년 5월의 출근길을 잠깐 언급하고는 1988년 5월 아카시아 향기 자욱한 아침부터 다큐멘터리는 펼쳐집니다. 그런데 왜 1988년 5월부터일까요? 이날 선생의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선생은 38살의 나이로 음악잡지 《월간 객석》의 기자가 되어 한창 정력적으로 활동할 때였습니다. 선생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침 9시’ 이는 지상명령이다. 오랜 세월, 아침 9시를 위해 단잠을 포기하고 허겁지겁 과속을 했다. 충혈된 눈의 눈곱을 찬물로 닦아내고 9시를 향한 질주가 계속되었다. 매일 아침 9시까지 굴러 내린 돌을 정상에 올려놓아야 했다. 파도가 지속적으로 몰려오듯 9시를 향한 질주가 반복되었다.” 저는 김 선생님을 뵐 때마다 ‘자유로운 영혼’을 봅니다. 그런 자유로운 영혼이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을 계속하였으니, 마음 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달'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달이 바뀌었다고 카톡에 날아오는 계절 축하카드를 뒤로 하고 우리, 곧 나와 집사람은 김밥이랑 물이랑 과일을 배낭에 넣어지고는 버스와 전철을 바꿔타고 멀리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10시 대공원 입구에는 어린아이들 손을 잡은 젊은 부모들로 벌써 인산인해입니다. 사흘 연휴인 데다가 날씨가 너무 좋고 공기도 깨끗해 마치 5월 초 느낌입니다. 이들을 따라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근 40년 만에 다시 보는 대공원은 수목이 울창하고 곳곳에 그늘과 쉼터가 있는 아주 좋은 공원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1980년대 초 몇 년 동안 과천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 때 어린이였던 두 아들을 데리고 몇 번 온 적이 있는데 근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다시 보니 서울대공원은 막 개장했던 당시의 썰렁한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풍성한 수목원 같았습니다. 그리고 느티나무 등 몇몇 나무의 잎들은 벌써 가을을 맞는 기쁨을 뺨에 내보이고 있었고요. 동물원 한 가운데를 빙 도는 큰길 바깥쪽으로는 식탁 겸용 야외용 의자들이 많이 마련돼 있어서 어린이들을 동반한 젊은 부부들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탐할 ‘람(婪)’, 질투할 ‘질(嫉)’, 질투할 ‘투(妬)’, 싫어할 ‘혐(嫌)’, 아첨할 ‘녕(佞)’, 허망할 ‘망(妄)’, 요망할 ‘요(妖)’, 노예 ‘노(奴)’, 기생 ‘기(妓)’, 노는계집 ‘창(娼)’, 간사할 ‘간(奸)’, 매춘부 ‘표(婊)’, 음탕할 ‘표(嫖)’ 여성이 부정적이고 혐오스러운 표현과 결부되어 ‘여(女)’ 자가 부수로 되어있는 한자들입니다. 사람들에게 여성을 경시하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어서 말입니다. 그것을 고쳐 쓰자는 학자의 주장이 있습니다.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속담에도 그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편네 팔자는 뒤웅박 팔자다." "계집은 밖으로 돌면 못 쓰고, 그릇은 밖으로 돌리면 깨진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제맛이다." "계집은 남의 계집이 더 예뻐 보이고, 술은 장모가 따라도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 난다." 이 밖에도 한자를 파자(破字)하면 의미가 선명해지는 글자도 있지요. 의미라는 것이 비하의 생각을 담고 있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 아내 ‘처(妻)’ 자는 의복을 짓는 여자를, 아내 ‘부(婦)’ 자는 청소하는 여자를, 계집 ‘첩(妾)’ 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아파도 아파도 그대만을 사랑하리라 나 아파도 나 아파도 영원히 그대만을 사랑하리라 끝없이 펼쳐진 아득한 인생이란 그 길 위에서 나 그대의 손을 잡았어 영원히 함께일 줄 알았어 계절은 바람 따라 가고 태양은 노을 따라 가는데 나는 얼만큼 얼마나 기다려야 그대와 함께 갈 수 있나 혹시나 오는 길 잊어버렸나 정녕 되돌아오는 길 잊어 버렸나 - 임형주 작사/ 이상훈 작곡 <영원(永遠)> - 임형주가 장희빈을 목놓아 불렀다. 그리고 책까지 펴냈다. 왜 이 사실을 여태 알지 못했을까? 장희빈을 주제로 장편 에세이를 펴낸 그의 열정을 이제야 알게 됐다. 우연히 책방을 둘러보다 발견한 수확이다. 이 책, 《임형주, 장희빈을 부르다》는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인 임형주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 장희빈 이야기다. 사람들이 흔히 ‘악녀’, ‘희대의 요부’라 알고 있는 장희빈에 대한 재해석은 그동안 누누이 시도되었지만, 이 책은 그 가운데 특별히 돋보이는 ‘장희빈 변론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장희빈이 과연 그토록 악녀였는지, 다만 남편과 아들을 지극히 사랑했던 여인이 권력투쟁에 비참하게 희생된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장희빈은 타고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리랑은 본조 아리랑이다. 이 곡을 흔히 경기민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사실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주제곡이다. 나운규는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철도 노동자가 부르던 아리랑에 영감을 받아 주제곡으로 사용하였다고 하였다. 당시 아리랑은 단성사에서 첫 상영을 하였고 크게 성공하였다. 단성사는 1907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묘동에 세워진 대한민국 첫 본격적인 상설 영화관으로 1917년 조선인이 운영하는 영화관들이 없어질 무렵 1918년 박승필에 의해 재개관 된 곳으로 조선인들에 의해 제작한 영화를 가장 많이 상영한 곳이다. 아리랑 영화의 주인공 영진은 서울로 유학하였으나, 3.1만세운동에 충격을 받고 정신이상자로 고향에 돌아오게 된다. 방학에 내려온 영진의 친구 현구와 그의 여동생 영희는 사랑하게 되는데 일본 경찰의 앞잡이자 악덕지주의 천가의 머슴이었던 오기호가 영희를 겁탈하려고 하자 영진이 낫으로 오기호와 맞섰고 결국, 영진에 의해 죽으면서 영진은 일본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영진은 큰 충격으로 정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문경 새재에 가본 사람들은 제1관문 앞에 넓은 잔디밭이 조성된 것을 보았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에 이 잔디밭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청사초롱이 걸린 것을 보니 혼례식인 모양이다. 이날 혼례식은 필자의 외사촌 딸이 이탈리아 신랑을 만나 한국에서 혼례를 올리는 것이었다. 보통 전통혼례도 요즈음엔 보기 어려운데 문경 새재 야외에서 펼쳐지는 행사라고 해서 필자는 친척의 일원으로서 정말 오랜만에 실제로 전통혼례를 관람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날 혼례식에 신부 쪽 축하객들은 거의 다 양복과 양장을 입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온 신랑 쪽 하객들은 모두 한복을 입고 나왔다. 이래도 되는가? 우리의 옷 한복을 이탈리아 사람들이 입고, 그들의 옷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입고 나왔다니. 여기 혼례가 벌어지는 곳이 이탈리아라면 이해가 되겠는데 한국이지 않은가?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현상이자 현실이지만 전통혼례로 치루는 그 자체가 우리는 반갑다. 이날 대례청은 주흘문 앞 넓은 잔디밭에 마련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봐야하기에 병풍을 치지는 않았지만 초례상에는 쌀, 대추, 생밤, 화병이 놓였다. 신랑이 신부에게 기러기를 바치는 전안례(奠雁禮)가 시작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채근담》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人知名位爲樂(인지면위위락) 不知無名無位最眞(부지무명무위지락위최진) "사람들은 명성과 지위를 얻어 사는 것이 즐거운 것인 줄만 알고 명예도 지위도 없지만 홀가분하게 사는 즐거움이 더 참된 즐거움인 것을 알지 못한다." 《논어》의 옹야편에도 공자께서 제자 안회에게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현명하도다, 안회여! 한 그릇의 거친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누추한 시골에 사는 것을 다른 사람은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안빈낙도의 자세를 변치 않으니, 현명하도다. 안회여!” 안회의 즐거움이란 빈한함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이 아니라 매일 깨우침에서 오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것은 결코 즐거울 수 없으니까요. 가을의 막바지, 열매를 맺을 시간적 여유도 없이 피는 꽃들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가꾸거나 꾸미지 않아도 스스로 아름다움을 뽐내지요. 꽃은 다른 누구를 위해 피지 않습니다. 꽃을 피우는 것이 존재이고 삶이기 때문에 피어나는 것이지요. 꽃은 옆의 다른 꽃을 부러워하거나 시샘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보아주지 않아도 좋지요. 그저 지나는 바람과 햇빛과 달빛, 별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