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억새풀 가을바람에 흰머리 날리며 (달) 우는 소린가 너털웃음인가 (심) 으악새는 새인가 갈대인가 (돌) 잎새 슬피울어 하얘진 넋들 (초) ... 25.9.19. 불한시사 합작시 1970년 이전에 태어난 세대들은 가을이면 문득 떠오르는 노래 가사가 있다. 박영효 작사, 손목인이 작곡하고 고복수가 부른 <짝사랑>이다. 바로 이 노래에는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사람들 대부분은 으악새가 쓸쓸한 가을숲에서 저 혼자 울고 있는 '새(鳥)'를 연상한다. 어른들이 부르는 대로 따라 흥얼거렸을 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왜 가을이 되면 슬피 우는지 젊을 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으니까. 80년대 부산에 살 때였다. 예총부산지부 부회장을 지내던 천봉이라는 연예분과 원로에게 "으악새는 어떤 새인가?" 물었다. 그는 <앵두나무 우물가에>, <엽전열단냥> 등 히트곡을 수없이 작사한 분이었다. 그로부터 돌아온 답은 실망스럽게도 새가 아닌 갈대과의 '억새'풀의 사투리였다. 마른 억새잎들끼리 바람에 서걱이며 부딪치는 소리를 소쩍새 슬피 울듯 '슬피 운다'라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드넓은 하늘이라는 그림종이에는 날마다 다른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 위를 떠다니는 구름도 때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요. 오늘은 그 수많은 구름의 모습 가운데 가장 작고 어여쁜 이름을 지닌 토박이말, ‘구름송이’를 만나 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구름송이’를 ‘작은 구름 덩이’라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구름이 작게 뭉쳐서 이루어진 덩이’라고 풀이합니다. 하지만, 이 말의 참멋은 ‘송이’는 낱말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여쁜 꽃이나 소담스러운 열매를 셀 때 ‘한 송이, 두 송이’ 하고 부릅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하늘에 작게 피어난 구름 덩이를 보며 마치 한 송이 꽃을 보듯 어여쁜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말집(사전)에 실린 보기들에서도 그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꽃처럼 피어오르는 구름송이.《표준국어대사전》 산머리에 하얀 구름송이가 함박꽃처럼 피어올랐다.《고려대한국어대사전》 어떤가요? 그저 ‘작은 구름’이라고 할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지 않은지요. ‘구름송이’라는 이름이 베풀어 준 도움에 하늘의 구름은 땅 위에 핀 함박꽃처럼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것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맑게 갠 하늘을 올려다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6년 초 일본이다. 지운영이 고종의 위임장과 단도를 소지하고 일본에 와 있다. 김옥균을 암살하려 함이다. 김옥균의 심복 유혁로 등 세 사람은 지운영에 접근하여 위임장과 단도를 손에 넣는다. 그런 다음 경시청으로 가서 위임장과 단도를 증거로 제시하며 지운영을 고발한다. 경시청은 아연 긴장한다. 우선 김옥균에게 동경을 떠나도록 조치한다. 김옥균은 요코하마의 영국 조계지에 있는 그랜드호텔로 거처를 옮긴다. 그는 유혁로 등에게 지운영을 사로잡을 방안을 알려준다. 유혁로 등은 지운영을 찾아간다. 지운영에게 김옥균이 동경 체류를 금지당하여 요코하마로 이동했다는 것, 요코하마에는 치외법권이 있어 일본의 경찰권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 그러므로 김옥균을 암살하기 편리한 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꼬임에 빠진 지운영은 요코하마로 들어간다. 그의 동정을 유혁로가 일본 경시청에 밀고한다. 거리를 두리번거리는 자운영을 일본 경찰이 체포한다. 구속된 지운영은 암살 밀명을 받고 도일한 사실을 자백하고 만다. 1886년 4월 29일 김옥균이 일본 외무대신 이노우에에게 보낸 편지가 전해온다. 편지에서 김옥균은 지운영의 거동을 알리고 자신의 신변보호를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 토박이말은 '구름사다리'입니다. ‘구름사다리’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배곳(학교)의 뛰노는 마당이나 마을 놀이터에서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매달렸던, 아슬아슬한 놀이틀을 떠올리실 겁니다. 오늘은 우리의 어린 날과 오늘을 잇는 재미난 토박이말, ‘구름사다리’를 만나보려 합니다. 《고려대한국어사전》에서는 ‘구름사다리’의 첫 번째 뜻으로 ‘사다리 모양에 매달려 오고가도록 만든 놀이용 기구’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땅에 발이 닿지 않는 아슬아슬함을 즐기던 그 때, 그 쇠로 된 사다리가 왜 ‘구름사다리’였을까요? 아이들에게 그 사다리는 정말 구름에 닿을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칸 한 칸 나아갈 때마다 하늘과 가까워지는 느낌, 누리(세상)를 발아래 둔 듯한 뿌듯함이 그 이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놀이터에서 일어나는 사고 가운데 구름사다리에서 떨어져서 생기는 것이 거의 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글을 보면 아찔했던 일이 떠오르는 것과 함께, 그만큼 씩씩했던 우리들의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구름사다리’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아주 높은 곳까지 닿을 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오징어게임’이란 프로그램이 세계적으로 히트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우승자에게 주는 엄청난 상금도 상금이지만 그것이 ‘서바이벌’, 곧 살아남기라는 형식을 갖추지 않았으면 그리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상대방을 거꾸러트리고 올라가는 방식이 너무 잔인하다는 비판에도 오로지 살아남아 어마어마한 상금을 차지하는 그 과정이 세계인들의 생존력과 승부욕을 자극했기에 그런 큰 반응을 얻었다고 보인다. 서바이벌 게임, 그것은 지금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가장 흡인력 있는 예능방식이 아닌가? 한국이란 현실에서의 우리들의 날마다 삶이 그처럼 서바이벌 게임을 방불하기에 자연스레 이런 형식이 흥행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수많은 트로트 프로그램이 여러 방송 채널에서 수시로 경연형식으로 펼쳐지지 않는가? 시청자나 관중들은 거기에서 승자에게 갈채를 보낸다. 그런데 이런 서바이벌 방식이 트로트에서 K팝으로 넘어서고 한국의 스타나 아이돌만이 아니라 세계 K팝계의 스타 혹은 아이돌과 함께 경쟁시킨다는 발상이 다시 세계인들을 새롭게 끌어드리는 현상을 보게 된다. 바로 ‘KPOPPED’라는 영어 이름의 프로그램이다. 영상물 배급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새로운 하루의 맑은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이 때, 누리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는 이들의 부지런한 삶터를 떠올리게 하는 토박이말 ‘구름밭’을 만나 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구름밭’을 ‘산꼭대기에 높이 있는 뙈기밭’이라고 풀이합니다. ‘구름’과 ‘밭’. 언뜻 어울리지 않는 듯한 두 낱말이 만나, 가장 높고 깨끗한 곳에서 비롯되는 하루의 땀방울을 이야기합니다. 밭은 단단한 땅에 뿌리내린 삶의 터전이고, 구름은 하늘을 떠도는 나그네죠. 구름과 가까이 있는 밭이라고도 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구름같은 밭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생각해 보면 ‘구름밭’은 그저 아름다운 바람빛(풍경) 속 밭이 아닙니다. ‘뙈기밭’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가파른 뫼(산)에 올라 힘겹게 일군 작은 땅입니다. 말집(사전)에 실린 보기를 보면 그 꿋꿋한 삶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는 산속으로 들어가 구름밭을 갈며 살았다.《표준국어대사전》 수동이네 할머님은 시골에서 구름밭을 갈며 혼자 사신다.《고려대한국어대사전》 이리저리 얽힌 삶을 벗어나 자연에 기대어 하루를 여는 씩씩한 발걸음을 보여줍니다. 때론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맑은 하늘과 함께한 해가 더욱 빛나 보이는 새 아침입니다. 밤새 내린 이슬이 풀잎 끝에 송골송골 맺혀 아침 햇살을 기다리는군요. 오늘은 이렇게 하루가 비롯되는 첫머리에, 저 하늘 한쪽을 채우고 있는 구을 만드는 가장 작은 씨앗인 ‘구름방울’이라는 말을 함께 만나보려 합니다. ‘구름방울’은 ‘하늘 속에 떠다니면서 구름을 이루는 아주 작은 물방울’을 일컫는 말입니다. ‘구름’과 ‘물방울’이라는 맑은 낱말이 만나 참으로 싱그러운 느낌을 줍니다. 우리 눈에는 그저 커다란 솜뭉치처럼 보이는 구름이지만, 그 속을 아주 작게 들여다보면 셀 수 없이 많은 구름방울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물 알갱이들이 하늘로 올라가, 먼지 같은 아주 작은 알맹이를 씨앗 삼아 서로 엉겨 붙어 피어나는 것이 바로 구름방울입니다. 이 작은 구름방울 하나하나는 너무나 가벼워서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둥실둥실 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이 구름방울들이 수없이 모이고 모여, 마침내 우리 눈에 보이는 아침 하늘의 흰 구름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일 때는 보이지 않지만, 함께 모여 비로소 눈부신 풍경을 만들어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어느 날 밖을 내다보았는데 달도 별도 보이지 않고 하늘이 온통 구름에 덮여 있다면 우리는 어떤 밤을 맞게 될까요? 이럴 때 쓰면 아주 좋은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바로 ‘구름밤’입니다. ‘구름밤’은 말 그대로 ‘구름이 끼어 어두운 밤’을 뜻합니다. 참 꾸밈없고 쉬운 말이지요? 하지만 이 짧은 낱말 속에는 깊고 아늑한 밤의 바람빛(풍경)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달빛이 환한 '달밤', 별빛이 쏟아지는 '별밤'과는 달리 '구름밤'은 누리의 모든 빛을 구름이 포근한 이불처럼 덮어버린 밤입니다.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는 다른 것들이 더욱 또렷해집니다. 풀벌레 소리가 마음에 더 가까이 와닿고, 멀리서 짖는 개 짖는 소리가 더욱 아련하게 들려옵니다. 온 누리가 조용히 잠든 듯한 고요 속에서 제몸과 오롯이 마주하게 되는 밤이기도 합니다. 옛 어른들은 이런 구름밤에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아마 아제(내일)의 날씨를 걱정하기도 하고, 어둠이 짙으니 일찍 잠자리에 들어 고된 몸을 쉬셨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구름밤이라 뜰 안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했다.” “모처럼 마실 가려던 걸음이 궂은 구름밤 때문에 멈칫했다.” “구름밤이 깊어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새벽 세 시, 부탄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다. 피곤에 지쳐 단잠에 빠져 있어야 할 몸은 오히려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창문을 여니, 싸늘하면서도 맑은 공기가 온몸을 감싸왔다. 순간, 몇 시간 전까지 쌓였던 피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이 낯선 나라가 지닌 청정한 공기의 힘을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부탄에는 굴뚝이 없다. 공장을 세워 산업을 키우는 대신, 오염원을 아예 차단해 버렸다. 담배마저도 공기를 더럽힐 수 있다는 까닭으로 금지해 버린 나라. 청정 자연은 이 나라가 지켜온 ‘삶의 조건’이자 ‘국가의 철학’이다. 그러나 부탄에서 느낀 신선한 숨결을 떠올릴수록, 역설적으로 병들어가는 지구의 현실이 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북극의 빙하는 녹고, 바다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기온은 산업화 이후 1.2도나 올랐고, 2도 선을 넘는 순간 식량 위기와 생태계 붕괴가 된다고 환경학자들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폭염ㆍ산불ㆍ홍수ㆍ가뭄이 전 세계를 덮치고, 해마다 수많은 목숨이 자연재해라는 이름 아래 스러져 간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천재지변’이 아니다. 결국 인간이 스스로 불러온 ‘자업자득’의 결과다. 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매창.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몇 안 되는 조선의 기생 가운데 한 명이다. 부안에 살았고, 허균의 막역한 지기이기도 했다. 황진이만큼 숱한 이야깃거리를 남기진 않았지만, 시인 유희경과의 사랑과 허균과의 우정, 그리고 《매창집》을 남길 만큼 출중한 문학적 재능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인생길을 차분하게, 또 서정적으로 담아낸 최옥정의 장편소설,《매창, 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는 매창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책이다. 단순히 부안의 이름난 기생으로 알았던 그녀가 유희경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적 환란을 온몸으로 겪어냈고, 허균과도 시를 주고받는 벗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매창은 부안현 아전의 서녀였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에게 글을 익히며 자라났다. 불과 서른여덟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부안현 아전들이 그녀의 시들을 모아 《매창집》을 펴냈다. ‘매화꽃 보이는 창’이라는 뜻을 담은 그녀의 호는 계랑이라 불리던 그녀가 자신을 향해 붙인 호였다고 한다. 매창은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지만, 거문고를 잘 타기로도 유명했다. 고을 기생이던 매창은 현감의 소개로 유희경을 만났다. 둘은 곧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