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
놀이가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인간은 놀이를 즐기며 서로 친해지고, 고단함과 긴장을 풀며 삶의 애환을 녹인다. 이렇듯 놀이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다.
옛사람들에게도 놀이는 고단한 삶을 잊을 수 있는 큰 즐거움이었다. 지금처럼 슬기말틀(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없던 시절, 놀이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사람들과도 재미있게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사교수단이기도 했다.
서해경이 쓴 이 책, 《들썩들썩 우리 놀이 한마당》은 우리 전통놀이를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힘겨루기’, ‘지능겨루기’, ‘기술겨루기’, ‘한데 어울리기’라는 주제로 다양한 놀이를 소개하고, 어떻게 사람들이 이를 즐겼는지 차근차근 일러준다.
책에 소개된 여러 가지 놀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승경도 놀이’다. 승경도는 조선 태종 때 정승을 지낸 하륜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중일기》에도 이순신 장군이 비가 오는 날 장수들과 승경도를 했다고 적혀있을 정도로 양반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놀이였다.
양반의 가장 큰 꿈은 높은 벼슬을 하는 것이었던 만큼, 재밌게 놀이를 하면서 복잡한 관직명을 익히고 높은 관직까지 올라가는 기분도 낼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어릴 때부터 양반 도령들은 이 놀이로 관직 생활을 미리 체험하며 과거급제의 꿈을 키웠을 것이다.
놀이 방법은 우선 큰 종이에 140개에서 400개 정도의 칸을 그리고, 아래쪽부터 위로 갈수록 더 높은 관직을 적었다. 놀이를 시작하기에 앞서 문관, 무관, 군졸 등 각자의 신분을 정했고, 번갈아 순서대로 주사위를 굴려서 나온 숫자만큼 자기 말을 이동시켜 가장 먼저 제일 높은 관직에 도착하는 사람이 이겼다.
물론 단순히 나오는 칸만큼 이동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 다양한 재미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어떤 관직에 도착하면 특권을 얻고, 사헌부와 사간원에 말이 놓인 사람은 미리 정한 수가 나오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관직에서 파직되거나 낮은 관직으로 좌천될 수도 있어, 한평생의 관직 생활을 미리 체험해보는 것 같은 현실감을 더했다.
이런 승경도 놀이와 비슷한 것으로 ‘남승도’ 놀이가 있었다. 놀이 방식은 비슷했지만, 내용은 사뭇 달라서 관직에서 승진하는 대신 전국의 이름난 장소를 구경하며 한 바퀴 도는 방식이었다. 명승지를 유람하는 그림판을 그려놓고, 놀이하는 사람들은 시인, 무사, 미인, 승려, 농부 등 각자의 역할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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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부터 숫자 팽이를 돌려서 놀이를 시작하지. 그런데 각 역할마다 어떤 명승지에서는 특권을 행사할 수 있어. 예를 들면 무사가 임진왜란 전투로 유명한 진주의 촉석루에 도착하면, 다른 사람이 숫자 팽이를 돌려서 얻은 수를 다 합친 것만큼 앞으로 나갈 수 있어서 경기에 아주 유리하게 됐지. 또 미인이 있는 칸에는 승려가 갈 수 없어. 승려는 여자를 멀리해야 하기 때문이지.
남승도 놀이는 나라의 명승지를 익히고 풍물을 이해할 수 있어 교육 효과가 퍽 높았다. 책으로 딱딱하게 인문지리를 배우는 대신, 이렇게 놀이를 하면 자연스럽게 팔도를 유람한 것 같은 상쾌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
한편 명절 때 한국민속박물관 마당에 가면 볼 수 있는 투호 놀이는 생각보다 복잡한 놀이였다. 옛사람들에게는 투호가 투호병에 긴 막대를 던져 넣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고 예절을 익히는 수단이었다.
그렇기에 예절에 관해 정리한 책인 《예기》에도 ‘투호 편’이라는 제목으로 투호 놀이 방법과 이름, 점수를 계산하는 방법이 자세히 실려 있었다. 이를테면 막대를 던지는 사람은 양쪽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막대를 투호병의 구멍과 투호병의 양쪽 귀에 던져넣는 것이 서로 점수가 달랐다.
투호가 생각보다 노는 방법이 복잡했기에 현대에 와서는 점차 사라져갔지만, 요즘에는 고궁이나 민속박물관에서 누구나 쉽게 투호를 즐길 수 있다. 앞으로 투호에 막대를 던질 때 예를 갖추는 마음으로 좀 더 진지하게 던져보는 것도 좋겠다.
이렇듯 우리 놀이는 단순히 놀이의 뜻을 넘어 심신을 수양하고, 학습효과도 겸한 것들이 많았다. 사실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 몸으로 익히는 것이 훨씬 더 빠를 수 있고, 놀이를 통해 파란만장한 관직 생활과 절묘한 균형감각을 배우는 편이 훨씬 더 재밌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놀이는 명절 때나 한 번쯤 윷놀이판도 꺼내고, 박물관에 가서 투호도 해보는 정도로 일상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그 명맥은 계속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우리 놀이에서 옛사람들의 지혜와 염원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까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