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마침내 그 불상이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처음 일본 쓰시마(對馬島)의 간논지(觀音寺)라는 절에서 우리 국내 절도단에 의해 강제로 한국으로 옮겨진 지 13년 만이고, 이 불상의 소유권에 대해 우리 법원이 마지막으로 일본 쪽 손을 들어 준 뒤에도 1년 반이 지나서이다. 알려진 대로 우리 국민 몇 사람이 2012년 10월 초 일본 쓰시마(對馬島)의 간논지(觀音寺)에 들어가 절에 모셔져 있던 높이 50.5cm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을, 가이진(海神) 신사(神社)에서는 38.2cm의 동제 보살입상을 훔쳐 부산을 통해 국내에 밀반입하였다. 도난 사실을 안 일본의 수사 의뢰를 받은 우리 정부는 석 달 만인 이듬해 1월 범인들을 검거하고 마산의 한 창고에 보관 중이던 불상들을 회수했다. 범인들은 징역 1년에서 4년 형을 선고받았다. 두 점의 불상 가운데 가이진 신사 보살 입상은 국내에서 소유권을 주장한 사람이 없어 2015년 반환되었지만 14세기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어 일본에서 1973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충남 서산 부석사가 “원래 우리 불상이니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소유권 분쟁이 시작됐다. 부석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선화예술중·고등학교(이하 선화) 개교 50돌을 맞이하여 전공별 공연과 전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선화국악동문회는 지난 2월 2일 저녁 5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50돌 기념 공연으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선화는 ‘태극기를 세계로’라는 기치 아래 1962년 창단된 ‘리틀엔젤스예술단’을 시작으로 1974년 선화예술중학교를 설립하고 이어서 선화예술고등학교를 1977년에 개교하였다. 이번 선화국악동문회는 선화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175명의 동문들과 재학생들이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며, 명실상부 예술계의 산실임을 여지없이 증명하였다. 필자는 선화예술고등학교 20기 거문고 전공 출신이다. 광진구에 있는 선화예술고등학교에 들어서면 “이 문은 세계로 통한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날마다 등교하며 그 글귀를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정문 왼편에는 유니버설발레단과 유니버설아트센터(옛 리틀엔젤스회관)가 자리하고 있다. 재학 당시 필자는 언젠가는 리틀엔젤스회관에서 연주하고 이 문을 지나 세계를 향해 갈 것이라며 마음을 새긴 적이 있다. 돌이켜보니 이제까지 예술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 글귀 덕이다. 선화인들은 이 글귀를 모두 기억
[우리문화신문=임세혁 교수] 해가 바뀌고 새해 인사를 하느라 바빴던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나버렸다. 시간에 금을 그어놓고 새해를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한해가 지날수록 떨어져 가는 체력을 보면 아예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새해에는 덕담도 많이 나누고 계획도 많이 세운다. 뭔가 새로운 한 해를 내 인생의 전환기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해마다 들어서 그런지 ‘올해는 이런 걸 하겠다.’ 하는 계획들을 세우곤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다. 초심. 참 좋은 말이면서 동시에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기본적으로 잘 까먹는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거쳐서 위로 올라가면 꼭대기에 앉아서 좋은 경치를 즐기기에도 바쁜데 굳이 그 어려운 과정을 곱씹어보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그러고는 내려와야 할 때 길을 찾다가 깨닫는다. “아... 어디로 어떻게 올라왔지?” 하고 말이다. 물론 이 상황에서 초심을 끊임없이 상기했던 사람들은 바로 길을 찾아서 안전하게 내려가겠지만 그게 아니면 산길에서 헤매기 딱 알맞다. 초심이 그래서 중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저고리. 흔히 ‘한복’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복식이다. 저고리와 치마는 누구나 쉽게 떠올릴 만한 조합이고, 특히 상의인 저고리는 그 변천사 자체가 하나의 복식사가 될 만큼 변화무쌍한 발전 양상을 보였다. 한복 패션 디자이너 김혜순이 쓴 이 책,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는 ‘저고리’에 집중하여 마치 화보집처럼 각종 저고리를 조명한 책이다. 지은이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사상, 미감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표적인 복식이 바로 저고리’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지은이는 ‘저고리 600년 변천사’라는 전시회를 3년에 걸쳐 기획, 2003년 선보인 바 있다. 이때 복원하고 재현한 70여 점의 저고리를 이 책에 담아, 저고리에 담긴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습관, 문화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한자어로는 ‘적고리(赤古里)’라고 표기하는 저고리는 포(袍)와 견주어 길이가 짧은 윗도리를 뜻한다. ‘적고리’라는 표현은 세종 때 처음 쓰였으며, 태종의 비 원경왕후의 《선전의(選奠儀)》에 치마를 뜻하는 ‘쳐마(赤亇)’라는 말과 함께 등장한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저고리의 종류도 정말 많다. 봉제기법에 따라 안감을 넣은 겹저고리와 한 겹으로 만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옛날엔 종다리(대오리나 싸리 따위로 엮어 만든 작은 바구니) 들고 앞 개울만 나가도 가재가 지천으로 있었습니다. 요즘엔 전기의 영향인지 아니면 1급수가 적어서 그런지 가재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엊그제 두륜산 중턱에서 가재를 보았으니 유년 시절의 기억이 소환되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가재는 게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긴 것이 비슷하니 같은 편이라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게걸음과 가재걸음은 차이가 큽니다. 게는 오직 옆으로만 걸어 다닙니다. 어미 게가 나처럼 똑바로 걸으라고 시범을 보일지라도 그 똑바름이라는 것이 옆으로 걷는 것이지요. 그에 비하여 가재는 앞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닙니다. 그러다가 위험에 직면하면 꼬리를 이용하여 쏜살같이 뒤로 물러나 자신을 보호합니다. 가재가 뒤로 가는 모습은 역행하고 퇴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존을 위한 최적의 선택입니다. 어쩌면 가재걸음이 아니라 가재의 회피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재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인터넷서핑이나 사진 자료를 통하여 설명해 주는 것이 대부분인데 가재의 생활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재도 아가미가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대한민국에서 그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어떤 ‘구라’ 고수가 말하길, 황석영 앞에서는 자기도 한풀 꺾인다고 한다. 나는 20대 젊은 시절에 황석영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70대가 되어 그의 민담 시리즈를 네 살배기 손주에게 사준 것이 엊그제다. 손주에게 읽어 주었더니, 손주가 듣고 나서 “이것보다 할아버지 이야기가 더 재밌어요” 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 죽으면 못 보니까 둘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 아이가 찍은, 죽으면 다시 못 볼 모습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개화기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황석영의 소설 《여울물 소리》에서 판소리 명인이 제자에게 이렇게 썰한다. “평조(平調)가 소리의 기본이니라. 한밤중에 달이 중천 하늘에 높이 떠 있는 것처럼, 또는 한들 바람이 잔잔한 수면을 스쳐 가듯이 맑고도 시원한 소리다. 우조(羽調)는 맑고 격하고 장하고 거세며 엄한 가락이니라. 사납게 들어올리기 때문에 맑고 장하고 격동하여 한 말이나 되는 옥이 부딪혀서 깨어질 때 옥 부스러기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것과 같도다. 계면조(界面調)는 처절하고 슬픈 소리니 아득하게 멀고 숙연한 가락이다. (…) 그리고 여음이 있으니 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은 사람마다 모두 생일이 둘이라고 말한다. 한 번은 각별한 생각으로 축하를 주고받는 자기의 생일이라는 날이고 다른 하나는 새해의 탄생이란다. 이날을 기점으로 누구나 자기의 시간을 셈해보고 남은 날을 헤아리기에 이날이 우리 인류 공동의 생일이란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설이 두 번이 있다. 양력으로 1월 1일 새해가 그것이요, 음력으로 1월 1일 설날이 그것이다. 양력의 설은 (요즘엔 그냥 새해 첫날이라고만 부르고 설은 음력에만 쓰는 것이 보통이지만) 글자 그대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365일 만에 맞는 새날이요, 음력으로 맞는 설은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해서 마음으로 맞는 새해다. 우리는 이미 한 달 전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덕담했지만, 다시 음력의 설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을 나눈다. 어릴 때는 뭐 새해를 두 번이나 맞고 인사를 두 번이나 올리냐고 쑥스러워했지만, 양력 1월 1일을 하루만 쉬게 하고 음력설을 앞뒤 사흘쯤 쉬게 하니 음력으로 맞는 1월 1일이 진정으로 새해의 기쁨을 가정과 이웃 친지들과 함께 나는 명절이자 잔치 날이 되고, 그러다 보니 새해 덕담을 두 번 하면
[우리문화신문=김순흥 교수] 남북분단으로 섬처럼 고립되어 육지이면서도 비행기나 배가 아니면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현실. 하늘길이나 바닷길이 아닌 땅길로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으로, 아프리카 땅끝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을 담은 노래 김순흥 작사, 주하주 작곡 <땅으로 가자>를 소개한다. 땅으로 가자 놀~부 김순흥 우리가 섬이냐 땅으로 가자 헤엄치지 말고 걸어서 가자 배타지 말고 버스로 가자 비행기 말고 기차로 가자 오늘 못 가면 내일 가자 이달에 못 가면 다음 달에 가자 올해 못 가면 내년에 다시 가자 하지만 끝까지 가자 서두르지 말고 가자 싸목싸목 가자 우리가 섬이냐 땅으로 가자 평양을 거쳐 가자 두만강을 건너가자 시베리아를 질러가자 땅으로 가자 베를린을 가보자 암스테르담도 가보자 안달루치아를 지나 땅끝 희망봉까지 땅으로 가보자 ▲ 김순흥 작사, 주하주 작곡 <땅으로가자> - 아쿠스틱 버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동의’는 당당하게 우뚝 선 우리나라 의학을 뜻합니다. ‘보감’은 보배로운 거울이란 뜻이지요. <동의보감>은 지금껏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보배로운 거울이 되었답니다. 우리 의학, 동의(東醫)! 중의학이 지배하던 조선 중기, ‘동의’라는 개념은 상당히 생소한 것이었다. 중국식 처방과 중국식 약재로 병을 치료하던 때, ‘우리식’ 처방과 약재를 담은 의학백과 《동의보감》은 획기적인 의서였다. 이지현이 쓰고 원혜영이 그림을 그린 이 책, 《동의보감》은 우리식 의학백과를 펴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으며, 얼마나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왔는지, 재미있게 보여준다. 그림책이라 쉬우면서도 알차게 내용을 담고 있어 아이들에게 우리 의학의 매력을 느끼게 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의서들은 대부분 중국책이라 약재 이름이 모두 중국 이름으로 되어 있어 불편했어요. 우리나라에서 흔한 도라지가 중국 의서에는 ‘길경’이라 적혀 있어서 도라지를 옆에 두고도 약재로 쓰지 못하는 일이 많았답니다. 또한 약재를 중국에서 들여와 써야 해서 약값도 비쌌어요. 가난한 백성들은 아파도 의원을 찾아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우리 백성이 중국 사람과 달라 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방총(龐蔥)이라는 고위 관리가 태자와 함께 조나라 서울 한단에 인질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떠나기 하루 전 방총이 임금을 찾아가서 묻습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시장 한복판에 호랑이가 나왔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아니요. 믿을 수 없소" "그러면 두 사람이 호랑이를 보았다고 이야기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글쎄요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믿을 수는 없을 것 같소." "그럼 세 사람이 호랑이를 보았다고 이야기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믿지 않을 수 없소." 방총은 시장에 호랑이가 나온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세 사람이 말하면 이처럼 그럴듯해 보인다고 임금에게 말하지요. 그리고 자신이 조나라에 가면 세 명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험담하게 될 것이지만 신경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임금은 알았다고 대답했습니다. 방총이 조나라로 간 다음 날부터 임금에게 방총을 험담하는 사람이 나타났고 훗날 태자는 인질에서 풀려나 위나라로 돌아왔지만, 방총은 결국 임금의 의심을 받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방총의 위처럼 비유로 말했음에도 자신을 스스로 구해내지 못한 것이지요. ‘증삼살인(曾參殺人)’이라는 고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