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용산 대통령실을 과거 청와대 자리로 옮기겠다고 공약하였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 두 달이 지나, 일반인에게 공개되던 청와대는 2025년 8월 1일부터 관람이 중단되고 보수작업과 보안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공사가 늦어지면서 청와대 복귀는 2026년 상반기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 10월 2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색적인 시위가 열렸다. 녹색연합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환경단체는 용산 어린이정원 폐쇄 촉구 1인 릴레이 시위를 시작하였다. 참여 단체들은 윤석열 정부 시절 제대로 된 오염 정화 없이 미군 반환 터에 졸속으로 조성된 용산 어린이정원이 이재명 정부에서도 그대로 개방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재명 정부의 책임있는 결단을 촉구했다.
용산 어린이정원이 있는 터는 과거 미군 기지의 일부였다. 미군은 1945년 광복 직후 일본군이 사용하던 용산 기지를 접수하고 주둔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며 1953년 미8군 사령부가 용산으로 이전하였다. 오랫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던 금단의 땅은 넓이가 약 60만 평(200만m2)에 달하였는데, 넓은 잔디 마당은 미군이 야구장으로 사용하였다.
용산 미군기지는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반환이 시작되었는데, 2022년 11월 15일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가 이전했다. 그러나 환경오염 정화 책임 문제와 잔류 시설 이전 문제 등으로 반환이 지연되고 있다. 정부는 반환받은 기지를 용산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미군은 70년 넘게 용산 기지를 사용하면서 환경오염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 같다. 그동안 지하 송유관과 유류 저장탱크의 빈번한 기름유출사고, 폐기물의 무분별한 매립 등으로 환경오염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미군이 평택기지로 이전한 이후 환경부에서 반환된 터의 오염 상태를 조사한 결과 토양오염과 지하수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벤젠, 톨루엔, 다이옥신 등 발암물질로 알려진 오염물질이 국내 기준치의 수십 배, 수백 배로 검출되었다. 미군기지와 가장 가까운 녹사평역의 지하수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의 농도는 기준치의 1,170배에 달할 정도로 오염이 심각하다. 오랫동안 예상했던 우려가 구체적인 현실이 되었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청와대 대신 용산의 대통령 집무실로 출근하였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 반환된 기지의 일부(약 9만 평)를 용산 어린이정원으로 만들어 2023년 5월 4일에 임시 개방하였다. 정부에서는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미군이 반환한 터를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오염된 토양의 정화사업 없이 국민에게 개방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환경단체의 우려를 ‘오염 괴담’이라고 깎아내리면서 ‘임시 개방’을 강행하였다. 개방에 임시라는 말을 붙인 것은 토양오염도가 기준치를 초과하기 때문에 정식 개방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용산 미군기지의 토양오염은 매우 심각한 수준인데, 오염 정화 책임을 둘러싸고 한국정부, 서울시, 그리고 미군 사이의 법적 공방이 20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2003년 한미합동회의에서 ‘기지 내부는 미군, 외부는 서울시 정화’로 합의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SOFA(주둔군지위협정)를 근거로 환경정화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SOFA 제4조 1항 (시설과 구역의 반환)
“미국 정부는 시설과 구역을 대한민국에 반환할 때 제공 당시의 상태로 원상복구 하거나 보상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미군은 원주와 부평 동두천 등 23개 미군 기지를 반환할 때도 이 조항을 내세우며 오염정화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 정부에서는 반환받은 기지의 토양오염을 정화하기 위하여 약 4,582억 원을 부담해 왔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인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산업 재해사고 사망률을 OECD 평균 수준으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여러 가지 안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토양이 기준치 이하로 정화되지 않은 용산 어린이정원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폐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임시 개방된 용산 어린이정원의 토양오염이 기준치를 초과한다고 해서 당장 어린이가 암이나 피부병에 걸려서 입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 눈에 띄는 환자가 나타나지는 않았어도 오염물질이 체내에 축적된 어린이는 언젠가 피해를 볼 것이다. 용산 어린이정원의 폐쇄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한 환경단체 회원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이재명 대통령이 대표로 있던 시절, 민주당은 윤석열표 용산 어린이정원 문제에 전방위적으로 대응해 왔다. 그렇기에 이재명 대통령이라면 이른 시일 안에 오염된 용산 어린이정원을 폐쇄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국내 토양오염 우려기준을 월등히 초과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공간을 계속 개방 운영하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정말로 이재명 정부가 시민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 집무실 이전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오염된 용산 어린이정원을 조속히 폐쇄해야 한다”
토양오염은 땅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공사 현장의 재난 사고처럼 눈에 띄지 않아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언론에서도 잘 보도하지 않는다. 토양오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리 없이, 매우 느리게 작용하는 살인자다. 새 정부에서는 용산 어린이정원을 즉각 폐쇄하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