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다람살라 공항에서 승용차로 30분을 달려 드디어 다람살라 윗동네에 도착하였다. 병산이 묵고 있는 호텔 앞에서 내리면서 나는 로버트에게 살짝 귓속말로 말했다. 운전사에게 팁을 주고 싶다고. 그러자 로버트는 적극적으로 그럴 필요 없다고 말렸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로버트와 헤어졌다. 병산이 머물고 있는 숙소는 New Vanuri House라는 이름의 호텔이었는데, 시설도 비교적 깨끗하고 방도 큼직하고 남향이었다. 병산을 만나 반갑게 악수했다. 병산은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목소리가 크고 에너지가 넘쳐 났다. 우리는 토스트와 달걀 프라이 그리고 커피를 주문하여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였다. 병산은 2층에 방이 있고, 내가 머물 방은 3층에 있었다. 나는 다람살라에서 4일 동안 병산과 함께 지내다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귀국할 예정이다. 호텔에서는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이 가까이에 보였다. 병산의 말에 따르면 어제 큰 눈이 내려서 히말라야 경치가 더 선명하고 아름답다고 한다.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가까이에 보이지만 거리로는 20km 이상 떨어져 있다. 다람살라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고개를 들면 눈 덮인 히말라야를 쉽게 볼 수가 있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그는 미국에서 왔는데 이름을 물어보니 로버트라고 한다. 나이는 50 정도 되어 보이는데 고향은 뉴욕이며, 다람살라에 간다고 대답한다. 그는 달라이 라마 제자로서 다람살라에 산 지가 6년 된다고 했다. 다람살라에 살고 있는 한국 스님인 청전스님이 생각나서 혹시 청전스님을 아느냐고 물어보니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세상이란 넓고도 좁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청전스님을 거치면 바로 로버트와 연결되는 것이다. 조금 있다가 시간이 되어 우리는 프로펠러 비행기에 탔다. 좌석은 한 60석이나 될까? 프로펠러 비행기는 작년 2월에 네팔을 여행할 때도 타 보았는데, 프로펠러 소리가 시끄럽기는 하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하였다. 다람살라까지 비행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1시간 정도 지나자 창 너머로 멀리 히말라야의 하얀 설산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설산은 띄엄띄엄 보이는 것이 아니고 쭉 이어져 있었다. 참으로 멋진 광경이었다. 계속 이어지는 산들이 모두 흰 모자를 쓴 듯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오전 8시쯤 다람살라 공항에 도착하였다. 다람살라는 인도 북서부 히말라야 산맥 기슭에 있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인도 사람들은 영화를 많이 본다고 한다. 인도 전역에는 1만 2천 개의 영화관이 있으며 입장료가 싸서 영화 보러 가는 것은 가장 대중적인 문화 활동이라고 한다. 인도 영화 제작의 중심지는 인도 서쪽의 항구도시 봄베이(Bombay)인데, 미국 영화의 중심인 헐리우드를 빗대어 볼리우드(Bolllywood)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민지 이전의 도시 이름을 되찾자는 운동이 일어나 1995년에 봄베이가 뭄바이로 개칭되었다. 이때에 인도 동쪽의 항구도시 캘커타 (Calcutta)는 콜카타로 바뀌었다. 인도는 해마다 영화를 헐리우드의 10배가 넘는 1,000편 이상을 만드는데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다. 인도에서 2016년 기준 자국 영화 점유율은 85%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아서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가 힘을 쓰지 못한다. 인도 사람들이 인도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 독립의 주역 마하트마 간디는 1906년에 '스와데시 운동'을 시작하였다. 영국에서 수입한 옷을 사 입지 말고 물레를 돌려 옷을 짜서 입어야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간디는 스스로 물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평소처럼 아침 3시에 잠이 깨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잠이 줄어들더니 요즘에는 하루에 4~5시간만 자도 충분하다. 밤 11시에 잠이 들면 아침 3시 또는 4시면 어김없이 잠이 깬다. 예전에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때 내가 아침에 아무리 일찍 일어나더라도 할아버지는 항상 깨어나 계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늘상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고 말씀하셨는데, 요즘 내가 그렇다. 나도 이제는 손자가 4명이나 있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잠이 줄어든 것이다. 호텔에서 공항까지는 5분만 걸으면 되었기 때문에 아침 6시 30분 비행기를 타기까지에는 여유 시간이 많았다. 손말틀(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이것저것 검색해 보았다. 검색하다가 나중에 방문기 쓸 때에 필요하겠다고 생각되는 자료를 발견하면 인터넷 주소를 복사한 후에 카톡을 이용하여 저장해 두었다. 연필과 수첩을 꺼내어 기록할 필요가 없이 그냥 손말틀에 기록하면 된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손말틀로 할 수 있는 일이 참으로 많아졌다. 나의 현재 위치를 구글 지도로 알아보면 도로망 외에도 근처에 있는 음식점, 호텔, 커피점, 관광명소, 술집, 공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인천공항 제2터미널을 낮 1시 20분에 출발한 비행기에는 승객이 꽉 차지는 않았다. 좌석을 둘러보니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아마도 인도와 우리나라와는 아직은 교역이 활발하지 않은가 보다.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도 아직은 많지 않은 것 같고. 비행기는 8시간을 서쪽으로 날아가 인도의 서울 델리공항에 저녁 무렵에 도착했다. 한국과 델리와 시차는 3시간 30분. 도착하니 현지 시간으로는 저녁 6시 무렵이다. 해는 지고 있었고 사방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짐을 따로 부치지 않았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도착비자를 신청하였다. 작년 10월 이전에는 인도 비자를 받으려면 한국에서 여행사를 통하여 신청하고 수수료가 20만 원 이상이나 들었다. 그런데 인도와 비자 협정이 개정되어 이제는 인도의 공항에 도착한 뒤에 도착비자를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비자신청서 양식을 내려 받아 미리 작성하여 왔기 때문에 비자수수료 2,000루피(한화로는 35,000원 정도)를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비자를 받고서 입국장으로 나오다가 환전소를 발견하고 달러 200불을 인도 루피로 바꾸었다. 큰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병산(竝山) 이원영 교수는 큰 꿈을 꾸는 사람이다. 병산은 한국의 돈키호테이다. 그는 서울에서 로마까지 장장 9,000km를 걷고 있는 21세기의 순례자이다. 병산이 순례를 하는 목적은 전 세계에 있는 450개 핵발전소의 방사능 유출과 사고위험을 감시하는 새로운 민간 기구를 종교인들이 연합하여 만들자는 것이다. 1979년 미국의 쓰리마일 원전사고, 1987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이어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에서 원자로가 녹는 엄청난 사고가 났다. 원전 사고는 대기를 오염시키고 바다를 오염시키고 토양을 오염시키고 사람들과 다른 생명체들은 강력한 방사능을 쬐고서 죽어간다. 원전 사고가 나면 국경선을 넘어서 전 지구의 생태계에 피해를 준다. 그러므로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이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UN이 나서야 하는데, UN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속수무책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UN이 미국, 소련, 중국 등 강대국에 의해서 휘둘리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수립되자 에너지 정책으로서 ‘탈원전’을 선언하였다. 공식적으로는 ‘에너지 전환’이라고 표현을 바꾸었지만 내용은 똑같다. 주변에서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