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몇 시간 동안 부담 없이 즐겁게 지냈다. 술값은 공통 경비에서 부담하고 팁은 각자 알아서 주기로 했다. 기분이 좋으면 많이 주고 아가씨가 그저 그러면 기본만 주고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유성은 서울에 비하여 팁값이 좀 싸서 기본이 5만 원이라고 한다. 김 이사는 최 진희와 헤어지면서 “오늘 진희와 즐거웠어요”라고 말하면서 흰 봉투를 주었다. 그러면서 봉투를 나중에 열어보라고 말했다. 최 진희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봉투를 받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아가씨가 봉투를 열어보니, 봉투에는 현금 5만 원과 5천 원짜리 도서교환권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유성에 다시 내려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김 교수는 아가씨의 전화번호를 묻지 않았다. 아가씨에게 명함을 주지도 않았다. 아가씨도 김 이사의 전화번호를 묻지 않았다. 가벼운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밤늦게 호텔로 돌아와 집 떠난 남자들은 모두 오랜만에 잘 잤다. 이튿날 아침에 햇님이 동쪽 창을 두드릴 때쯤 일어나 유성에 있는 군인휴양소(일반에게도 공개되고 있었다)에 가서 사우나를 했다. 사우나에서 벌거벗고 목욕을 같이 하니 교수들 사이의 친목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우리나라는 남자들이 집에서 술 마시는 습관이 발달하지 않고 술집(옛날 같으면 기생집)에서 술을 먹기 때문에 술 시중을 드는 직업여성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술집 여성과 남자 손님 사이에 여러 가지 형태의 남녀관계가 가능하지만 가정 파탄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의 외도를 ‘바람’이라고 표현하였다. 남자의 바람은 일시적인 객기 정도로 취급하여 가정 파탄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바람이란 잠시 불다가 시간이 지나면 멈추는 것이니까.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 남자의 바람을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독특한 술 문화가 오랫동안 전통으로서 내려오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문화권이다. 기독교의 10계명에서는 남자의 바람을 죄라고 간주한다. 기독교 윤리에서는 남자의 바람을 용인하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파티 문화가 발달해 우리나라의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같은 형태의 술집이 나타나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남자들이 퇴근한 뒤에 직장 동료와 함께 여자 있는 술집에 가서 한잔 한다는 그런 풍습이 없다. 특히 미국 남자들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모처럼 집을 떠난 남자들은 새장에서 벗어난 새 같은 기분이 되었다. 가장의 책임과 교수의 의무를 벗어나 모두 홀가분한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저녁식사 뒤에 집을 떠난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술집에 갔다. 서울에서 술집에 가면 룸에 들어온 아가씨가 혹시 학생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러한 불안감은 사실 근거가 있다. 장 교수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사업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자기가 술집에서 만나 사귀던 아가씨가 너희 학교 학생인데 요즘은 잘 만나주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아가씨의 이름을 대면서 전화번호를 알아봐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하더란다. 김 교수도 그런 비슷한 말을 주변의 몇 사람에게서 들었다. 술집에 갔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자기를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면서 학교와 학과까지도 스스럼없이 밝히더라는 것이다. 요즘 대학생은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술집에 나가는 사람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교수 처지에서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가 자기 강의를 듣는 학생이 우연히 술자리에서 옆에 앉게 된다면? 술맛 떨어지는 이야기이다. 교수라는 직업이 다른 것은 다 좋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섯 번째 만남 김 교수 학과 교수들은 한 학기가 끝나면 수련회를 가는 전통이 있다. 교수 사회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대학이다. 그러나 같은 학과 교수들끼리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야 않지만, 실력 있고 자존심이 높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사이좋게 지내는 집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이 있다. 사람은 배울수록 겸손해야 되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아서 그런 속담이 생겼을 것이다. 모든 세상사에는 양면성이 있다. “고개 숙인 벼”라는 속담도 있지만 “제 잘난 맛에 사는 게 인생”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박사 학위를 딴 으뜸 지성인들이 모두 제 잘난 맛에 살기 때문에 함께 어울려 사는 데에는 미숙한 곳이 교수 사회이다. 그럼에도 김 교수의 학과 교수들은 매 학기 마지막 성적처리가 끝나는 날에 1박 2일로 수련회를 간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그런 전통을 가진 학과는 드물 것이다. 기말고사의 성적처리가 끝나기 전에 학과 회의에서 교수 수련회를 유성 온천으로 가기로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7시가 되었다. 새로 나가는 술집은 강남에 있는 라마다 르네쌍스 호텔 근처에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거기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제안했고 미스 최는 “오빠, 고마워요.”라고 화답했다. 김 교수는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커피숍을 나섰다. 아가씨는 옆으로 오더니 자연스럽게 팔장을 끼었다. 김 교수는 속으로 걱정이 되었지만, 팔장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그날은 호텔 옆의 지상 주차장이 좁아서 뒤쪽 골목 건너편에 있는 3층짜리 주차건물에 주차했었다. 호텔 정문을 나와 뒤쪽 주차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어두워진 길에는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김 교수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하나라고 은근히 걱정되어 슬그머니 팔짱을 뺐다. 아가씨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로 가는 길은 벌써 퇴근시간이 되어서인지 길이 막혔다. 서울거리가 안 막힐 때가 있나? 계속 차가 가지 못하고 서게 되자 김 교수는 걱정이 되살아났다.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도 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연히 운전자끼리 눈이 마주쳤다. 대개는 남자가 운전을 하지만 차가 늘어나서인지 여성 운전자도 더러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미스 최는 그날 매우 화려한 털 코트를 입고 나왔다. 김 교수는 서양 풍습대로 아가씨가 코트를 벗는 것을 도와주었다. 코트 안에 미스 최는 초미니스커트와 가슴이 많이 파인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김 교수는 눈을 둘 데가 마땅치 않은 불안한 모습이었다. 상대방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지만 눈길이 자꾸 가슴 쪽으로 내려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가씨가 눈치를 채고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빠, 오늘 옷이 너무 야하지요?” “야하기는 예쁜 걸 뭐.” “대개는 옷을 보스에 두고 다니는데, 집에 가져왔어요.” “왜?” “오빠, 나 이제 보스에 안 나갈 것 같아요.” “왜,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니?” “제가 잘 아는 전무님이 계시는데, 명퇴하고서 술집을 개업했어요. 저보고 몇 달만 도와달라고 해서 오늘부터는 그쪽으로 나가려고 해요.” “그 전무하고는 어떤 사이인데?” “오빠, 질투하는가 봐. 자주 오시던 손님이에요.” “질투는 무슨 질투? 너에게 좋은 사람 생기면 그건 나에게도 좋은 일이지.” 두 사람은 전처럼 피자를 시켜 먹었다. 메뉴판을 보니 전통차로서 국화차가 다이어트에 좋다고 쓰여 있다. 차를 마신다고 무슨 다이어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쉽게 헤어진 지 열흘도 안 되어서 전화가 왔다. 미스 최는 《아리랑》 제3권은 산지 일주일 만에 다 읽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래, 아리랑 책 참 재미있지?” “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갑자기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과거로 돌아가다니?” “제가 여고 시절에는 연애 소설 같은 것을 밤새워 읽었거든요.” “요즘에는 밤에 일하니까 낮에 읽겠네.” “그래요, 오빠. 일주일 동안 다른 일은 모두 미루었어요. 조정래라는 사람 대단한 작가에요. 우리 고향 사람이라니 자랑스러워요.” 김 교수는 미스 최가 말을 꺼내기 전에 선수를 쳤다. “어쨋든, 또 아리랑을 읽었으니, 약속대로 한 번 만나야지?” “예, 오빠. 만나고 싶어요!” “아이고, 이러다가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게 되겠다.” “그럼 어때요? 저도 오빠가 보고 싶은데. 보스로 한번 오세요.” “내가 무슨 재벌 아들이냐? 보스에 한 번 가려면 한 달 동안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면서 돈을 모아야지. 거기는 너무 고급이라서 나처럼 돈 없는 사람에게는 부담된다.” “그렇기는 해요. 그러면 오빠, 잠실에서 만나요.” 그날은 마침 교회에서 무슨 행사가 있어서 저녁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 교수는 마담과도 술을 한 잔 주고받았다. 마담은 성이 강 씨라고 했다. “강 마담! 그런데, 내가 미스 최하고 연애를 한번 할까 하는데, 강 마담이 볼 때 미스 최가 어떻소? 한 번 솔직히 말해 주시오.” “미스 최, 괜찮은 아가씨에요.” “어디가 괜찮아요?” “제가 미스 최하고는 1년 이상을 같이 있었는데, 무어라고 할까요... 미스 최는 한 마디로 뚝배기같은 여자에요. 화려하지는 않지만, 웬지 정이 가는 그러한 아가씨에요. 달리 표현하면 고려청자는 아니고 백자 같은 여자라고나 할까요? 사귀시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요. 강 마담의 추천이 그러하다면 꼭 한번 사귀고 싶네요. 그런데, 미스 최가 새침해서 잘 줄려고 하지를 않네.” “무얼 말이에요.” “선물을 받기만 하고 주지를 않는다니까.” “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보세요, 호호호.” 강 마담은 조금 있다가 방에서 나갔다. 마담의 하는 일이라는 것이 이방 저방 돌아다니면서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해서 한 방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미스 최가 뚝배기 같은 여자라니 뚝배기가 어떤지 한번 만져라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더 나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두 사람이 택시를 타고 보스에 도착하니 10시가 약간 넘었다. 이미 밤이 깊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골목길에는 이른바 삐끼들이 자꾸 말을 걸었다. 삐끼들은 늦은 밤거리에서 2차를 찾는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회장님, 좋은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회장님, 끝내 주는 곳이 있습니다. 아가씨들도 모두 영계고요.” 2차를 가는 손님들은 이미 술을 한잔 걸쳤기 때문에 맨정신이 아니고 판단력이 약해져서 자칫 삐끼를 따라갔다가 바가지 쓰기가 십상이다. 그전에는 삐끼들이 남자들을 모두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사장님이 너무 많아졌다. 조그마한 자영업자들이 많아지고 대기업의 자회사가 많아지다 보니 사장님이 흔해졌다. 그래서 모든 술꾼은 어느 사이엔가 슬그머니 ‘회장님’으로 격상되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봉급 받는 사장님이 무슨 힘이 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장이나 사원이나 대주주인 회장이 그만두라고 하면 내일이라도 그만두어야 하는 파리 목숨들인데. 그래서 요즘에는 회장님 정도 되어야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삐끼들도 이러한 세상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무조건 회장님이라고 불러서 사장님들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남자나 여자나 바람피우는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책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은 ‘최초의 불륜’ 또는 ‘최후의 로맨스’에 빠져드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불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주인공의 아내도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김 교수는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자만심에 빠진 현대의 아내들에게 다음과 같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잘 대해 주지 않으면 남편은 바람피울 생각이 나게 된다. 너무 방심하지 말아라.” 어느 날 김 교수는 그 책을 슬쩍 아내의 눈에 띄는 곳에 놓아두고 출근하였다. 그리고서는 결과를 기다렸다. 며칠 뒤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보니 지금까지 딴방에서 자던 아내가 바로 옆에 누워 있지 않는가? 그 책은 효과가 있었다. 몇 주 계속되던 별거는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김 교수는 궁금하여 이튿날 저녁, 자리에 누워서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왜, 아들이 아직 입시가 끝나지 않았는데 경건하지 못하게 내 곁으로 왔느냐고? 아내의 말인즉 어느 날 밤늦게까지 《아버지》 책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