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758년 아름다운 비례를 지닌 쌍탑이 김천 갈항사(葛項寺)의 경내에 세워졌습니다. 발원자는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의 어머니인 계오부인(繼烏夫人) 박씨(朴氏)와 그녀의 오라버니,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간절한 염원을 담아 탑을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탑을 세우 뒤 27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계오부인은 황태후가 되었고 그 이후 발원자였던 세 사람은 탑에 기록되었습니다. 석가탑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비례미 신라의 삼국통일은 석탑의 모습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기존 신라와 백제로 대표되던 각기 다른 양식의 석탑이 하나의 모습으로 재창조되었습니다. 7세기 말 무렵, 경주의 감은사(感恩寺)와 고선사(高仙寺)에 세워진 삼층석탑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탑들은 마치 통일 왕조의 권위와 위용을 상징하는 듯, 안정적이면서도 압도하는 웅장함이 돋보입니다. 초층 탑신석 상단 중앙까지는 밑변이 긴 삼각형 구도로 안정감을 더하였고 층간의 높이와 지붕의 비례를 일정하게 체감시켜서 그러한 시각적 효과를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 초기 석탑의 안정감과 웅장함은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발전과 변화를 거듭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봄비처럼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제주, 거기에 바람까지 불어대는 게 음산하기 짝이 없다. 출발하는 날부터 궂은 날씨는 이삼 일간 계속 흐린다는 비 예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주에 올 때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대정이다. 공항에서 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대정에는 추사유배지가 있는 곳으로 지금은 추사기념관이 번듯하게 들어섰지만 기념관 뒤편 초가집으로 발길이 먼저 가는 것은 왜일까? 대문을 들어서면 ㄷ자로 배치된 초가집 가운데 문간 오른쪽, 채 한 평이 될까말까한 좁은 방안에 밀랍 인형 둘이 앉아있는데 이들은 추사와 초의선사다. 차를 마시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다보고 있자니 이들이 살던 18세기의 한 끝자락을 보는 듯 가슴이 아련해온다. 고향의 가족과 공적인 업무에서 배제된 채 유배(流配)의 삶을 살아야했던 당시 선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쇠처럼 단단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추사와 초의 친구사이의 매우 두터운 우정을 '금란지교' 라 한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와 초의 의순(草衣 意恂, 1786~1866)의 우정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1815년 처음 만난 추사와 초의 이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서한범의 우리음악이야기’는 판소리 <심청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젊은 소리꾼, “어연경의 심청가 발표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고 성창순(成昌順) 명창의 판소리 사랑 이야기, 그리고 판소리로 듣고 부르는 <심청가>는 슬픈 애심감자(哀心感者)의 소리로 계면소리라는 이야기, 까마귀의 반포지은(反哺之恩)이야기와 새벽을 알리는 반야진관에 있던 맹상군 이야기, 돛을 단 배가 넓은 바다 위로 유유히 떠가는 범피중류(泛彼中流) 이야기를 해 왔다. 소리 자체도 힘들고 어려운 것이 판소리라고 하지만, 대목마다 어려운 사설의 내용이 또한 많은 공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판소리의 유익한 감상을 위해서는 사설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심청가>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이번 주에는 지난해 10월 26일,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기획공연으로 열린 ‘일이관지(一以貫之)’ 이야기를 한다, 일이관지의 딸림 제목은 ‘조선 춤방’인데, 여기서 하는 공연 곧 조선 8도에서 춤 방의 맥을 이어 온 작품들이 선을 보이는 기획된 공연이었다. 당일의 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보 <청자 참외모양 병>은 고려청자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병입니다. 제17대 임금인 인종의 장릉(長陵)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특히 '황통육년(皇統六年)'(1146)이라는 정확한 연대가 있는 시책과 함께 전해져 고려왕실의 청자에 대한 심미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려의 비색을 대표하는 병 여덟 잎의 꽃 모양으로 만들어진 주둥이(구연)와 긴 목, 여성의 치마 주름처럼 생긴 높은 굽다리, 농익은 참외 형태로 만든 병의 몸통이 유려하면서도 우아합니다. 참외 모양의 몸통은 상하 수직선으로 눌러 오목하게 골을 표현하였고, 각각의 곡면에는 팽팽한 양감이 드러나 있습니다. 높직한 굽의 예리한 직선과 몸통의 곡선이 대치를 보이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어 긴장감과 함께 경쾌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을 줍니다. 몸통을 중심으로 목과 굽다리의 연결부위에서 확인되는 돌대는 금속기에서 빌린 듯하며, 병목에 가로선이 세줄 오목새김(음각)되어 있을 뿐 다른 장식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오직 형태와 유색으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굽바닥에는 유약을 닦아내고 내화토 받침을 일곱 곳에 받쳐서 구운 흔적이 있습니다. 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심청이 죽으러 뱃사람들을 따라 떠나가고, 심봉사는 공양미 300석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서 뒤늦게 후회하나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심청은 힘겹게 뱃사람들을 따라가고 있다가 강변을 당도하니, 선두에 도판을 놓고. 심청을 인도하기 위해 선인들이 북을 두리둥, 두리둥 치기 시작한다. 곧, 배가 출발을 하게 되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대목이, 바로 그 유명한 ‘범피중류(泛彼中流)’, 일명 소상팔경 대목이다. 이 대목은 심청이가 배를 타고 인당수로 가며 좌우의 산천경개를 읊는 부분으로 매우 유명한 대목으로 알려져 있다. 느린 진양 장단 위에 얹는 사설이나 이어지는 가락이 조화있게 짜여 있어서 소리꾼들은 이 대목을 즐겨 부르고 있다. <심청가> 전 편을 통해, 이 부분의 사설이 비교적 잘 짜여 있고, 가락 또한 유려하고 멋스러우며 또한 장단 끝에서 합창으로 받는 소리, 곧 <어허~ 야하, 어기야~어, 야 하>”를 넣어 합창곡으로 편곡한 노래들도 적지 않아 널리 알려진 대목으로 유명하다. 이 대목은 비교적 자주 들어온 사설의 내용이어서 친근감이 있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보 <기마인물형토기(騎馬人物形土器)>는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문화재입니다. 1924년 발굴될 때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지금도 신라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관람객의 사랑을 받습니다. 주인과 하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각각 말을 탄 모습으로, 말 탄 사람의 옷과 각종 말갖춤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신라인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입니다. 어떻게 발굴했을까? 이 기마인물형토기는 경주시 노동동에 있는 금령총(金鈴塚)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5월 30일이었습니다. 금령총은 6세기 초, 다시 말해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쯤의 신라 무덤입니다. 금령총 주변에는 신라의 초대형 무덤이 모여 있습니다. 금령총의 북쪽에 약 15m 떨어져서 단일 무덤으로는 신라의 가장 큰 무덤인 봉황대가 있고, 서쪽에는 금관총, 서봉총, 남쪽에는 황남대총, 천마총이 있습니다. 금관이 처음으로 발견된 금관총은 금령총과 불과 50여 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1920년 금관총에서 금관이 발견되었을 때 당시 언론은 ‘동양의 투탄카멘’이라고 특필하였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금관총은 집을 짓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심청이 죽으러 뱃사람들을 따라 떠나가고, 심봉사는 공양미 300석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서 뒤늦게 후회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음을 알게 되면서 기절하게 된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한걸음에 눈물짓고, 두 걸음에 한숨 쉬며”라는 심청이가 뱃사람들을 따라가는 목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가는 길이 즐겁고, 신이 나는 행차가 아니다. 천근의 몸으로 가기 싫은 길을 한걸음, 한걸음, 옮겨 놓는 상황임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 심청이가 죽으러 가는 길, 슬픔의 극치를 표현하고 있는 부분인데, 신나게 서두를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슬픔으로 가득 찬 계면조의 소리 일색이라고 해도, 분위기의 반전은 필요한 법이다. 한 시간 내내, 또는 그 이상을 눈물만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청가에도 맹상군 이야기도 나오고, 뺑덕어미 이야기도 그리고 다음에 이어질 <범피중류> 대목처럼 넓은 바다를 헤쳐 나가면서 주위의 경관을 감상하는 우조의 느낌도 나와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다, 《악기(樂記)》에서는 사람의 감정을 애심(哀心), 희심(喜心), 노심(怒心)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심청이가 떠나야 하는 마지막 날의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반야진관에 맹상군”이 아니어든,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라는 혼잣말의 의미를 소개하였다. 한밤중, 진나라 관문은 막혀 있고, 뒤에서는 군사들이 쫓아오고 있는 다급한 상황이다. 일행 중,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사람이 있어서 그 소리를 흉내 냈더니, 성(城)안의 모든 닭이 잠에서 깨어나며 한꺼번에 울었고, 그 바람에 성문을 지키던 병사도 날이 샌 줄 알고, 문을 열어주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슬픔이 가득 찬 계면조의 소리 속에서도, 분위기 반전을 위한 대목은 필요한 법이다. 공양미 300석에 몸이 팔린 심청, 드디어 선인(船人)들과 약속한 날이 밝아오니, 사당에 하직 인사를 마치고, 아버지와도 이별한 다음, 선인들을 따라나서는 약속 시간이 된 것이다. 아무 물색도 모르고 있던 아버지가 어딜 가느냐? 물으며 답답하다고 말하라고 재촉한다. 더는 아버지를 속이는 것도 자식 된 도리가 아니어서 심청은 눈물로 그간의 상황을 고백한다. “아이고 아버지, 공양미 300석을 누가 저를 주오리까? 남경 장사 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스물두째이며 명절로 지내기도 했던 ‘동지(冬至)’입니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곧 ‘작은설’이라 하였는데 ‘해’의 부활이라는 큰 뜻을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하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첨치(冬至添齒)’ 곧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동지는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부릅니다. 동지의 특별한 풍속을 보면 다가오는 새해를 잘 계획하라는 뜻으로 달력을 선물하는데 더위를 잘 견디라는 뜻으로 부채를 선물하는 단오 풍속과 함께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지의 또 다른 풍속에는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나 시할머니에게 버선을 지어 선물하는 “동지헌말(冬至獻襪)”이란 아름다운 풍속도 있었습니다. 이날 새 버선을 신고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으면 수명이 길어진다고도 믿었지요. 그런데 이날 가장 보편적으로 지내는 풍속은 팥죽을 쑤어 먹는 일일 것입니다. 특히 지방에 따라서는 동지에 팥죽을 쑤어 솔가지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말 못 하는 까마귀도, 반포지은(反哺之恩)을 한다는 이야기, 심청이가 장 승상 댁에 가 있는 동안, 심봉사는 오지 않는 딸을 찾아 나섰다가 개천에 빠져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다행히 몽은사 화주승이 목숨을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심청가 이야기는 바로 이 대목, 곧 심봉사가 화주승에 의해 목숨을 구한 뒤, 스님이 제시하는 ‘공양미 삼백석만 불전에 시주하고, 진심으로 불공을 드리면 눈을 떠서 대명천지를 보게 된다는 정보’를 듣게 되면서 크게 변화한다. 누구나 자기의 목숨을 구해 주고,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는 구원자가 나타나면 그의 말만 반겨 듣고, 앞뒤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될 때가 많은 법이다. 처음에는 심봉사도 눈을 뜨게 된다는 제안에 호기 있게 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기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앞뒤 사정이 이런데도 어린 심청은 어떻게든 공양미 300석을 마련해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는 효심을 포기하지 않는다. 심청이가 ‘어떻게 하면 공양미 300석을 불전에 시주하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도달해 있을 때, 때마침, 남경장사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