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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백빈주 갈매기, 홍요안으로 날아들고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6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심청이 죽으러 뱃사람들을 따라 떠나가고, 심봉사는 공양미 300석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서 뒤늦게 후회하나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심청은 힘겹게 뱃사람들을 따라가고 있다가 강변을 당도하니, 선두에 도판을 놓고. 심청을 인도하기 위해 선인들이 북을 두리둥, 두리둥 치기 시작한다. 곧, 배가 출발을 하게 되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대목이, 바로 그 유명한 ‘범피중류(泛彼中流)’, 일명 소상팔경 대목이다.

 

이 대목은 심청이가 배를 타고 인당수로 가며 좌우의 산천경개를 읊는 부분으로 매우 유명한 대목으로 알려져 있다. 느린 진양 장단 위에 얹는 사설이나 이어지는 가락이 조화있게 짜여 있어서 소리꾼들은 이 대목을 즐겨 부르고 있다. <심청가> 전 편을 통해, 이 부분의 사설이 비교적 잘 짜여 있고, 가락 또한 유려하고 멋스러우며 또한 장단 끝에서 합창으로 받는 소리, 곧 <어허~ 야하, 어기야~어, 야 하>”를 넣어 합창곡으로 편곡한 노래들도 적지 않아 널리 알려진 대목으로 유명하다.

 

 

이 대목은 비교적 자주 들어온 사설의 내용이어서 친근감이 있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도 있고, 부분적으로는 난해한 한문 문구도 만나게 된다. 이 대목은 느린 진양 장단으로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참고로 사설을 따라 진행해 보면서 간단한 해설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범피중류(泛彼中流), 등덩 둥덩 떠나간다.

    망망헌 창해(蒼海)이며 탕탕헌 물결이라.

    백빈주 갈매기는 홍요안으로 날아들고,

    삼강의 기러기는 한수로 돌아든다.

    요량헌 남은 소래, 어적(漁笛)이언마는

    곡종인불견에 수봉만 푸르렀다.

    애내성중만고수는 날로 두고 이름이라.

    장사를 지내갈 제, 가태부는 간 곳 없고

    굴삼려 어복충혼 무량도 허도던가” (아래 줄임)

 

범피중류‘(泛彼中流, 汎彼中流)’란 말에서 범(泛)이란 물 위에 뜬다는 의미이니, 곧 돛을 단 배를 의미한다. 피(彼)는 저쪽이란 뜻, 중류(中流)는 흐르는 물의 중간쯤이 되겠다, 그러므로 돛을 단 배가 넓은 바다, 저쪽으로 유유히 떠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말이 된다.

 

그 뒤로 이어지는 백빈주(白蘋洲)는 물가 섬의 지명이다. 이곳에는 주로 하얀 꽃이 많이 피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이곳 갈매기들은 이 섬의 홍요안(紅蓼岸)이라고 하는 언덕을 날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섬의 언덕을 갈매기들이 여유 있게 날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가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삼강(三江)은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송강, 전단강, 포양강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다른 사설에는 삼상(三湘)으로도 쓰고 있다. 이곳의 기러기들이 한수(漢水), 곧 양자강의 지류로 알려진 강으로 돌아드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앞에서 홍요안으로 날아드는 갈매기와 함께 한수로 돌아드는 기러기의 모습이 마치, 한 포기 그림과 같은 멋진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요량(嘹喨)한 남은 소래’란 표현에서 요량이란 맑은소리, 어적(漁笛)은 어부들이 부는 ‘피리 소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곡종(曲終) 인불견(人不見)이란 말은 곡조는 끝났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강물 위에 산봉우리(數峯)만 푸르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 뒤로 이어지는 “애내성중만고수(欸乃聲中萬古愁)”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의미는 노를 젓는 한숨 속에, 만고의 근심이 들어 있다는 심정으로 풀이된다. 아마도 이는 심청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일 것으로 생각된다.

 

“장사를 지내갈 제, 가태부는 간 곳 없고”라는 표현에서 장사(長沙)는 중국 호남성의 중심지, 곧 도시 이름이고, 가는 가의(賈誼)라는 사람 이름, ‘태부’는 벼슬 이름이다. 이어지는 “굴삼려 어복(漁腹) 충혼(忠魂) 무량도 허도던가”라는 말에서는 굴원(屈原)이 물에 빠져 죽은 곳을 지나면서 글을 지어 물속에 던져 그의 넋을 위로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이야기라고 알려졌다.

 

《심청가》 가운데는 들을 만한 명대목, 소위 눈 대목들이 많은 편이다. 그 가운데서도 <범피중류> 대목은 판소리 명창들에겐 도전해 볼 만한 명작으로 누구나 즐겨 부르는 대목이다. 또한 이 대목을 좋아하는 애호가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이 대목이 가락의 선율의 진행면에서나 여유 있는 장단과 호흡면에서, 그리고 특히 강약의 대비를 살려서 진행되는 가락의 특징적인 표현법, 그리고 소위 음악성으로 평가되는 떨고, 밀어 올리거나 내리는 창법, 그리고 꺾어 내는 다양한 시김새의 처리가 강약과 함께 독특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대목은 누구나 소화하기 쉽지 않은 소리임은 분명하다. 이론적인 설명으로는 한계가 있는 특징적 표출력을 어떻게 들어내야 하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라 할 것이다. 또한 장단과의 일체를 이루는 호흡도 절대적이다. 국악의 성악 장르가 대부분 그러하듯, 사설의 이해와 발음이 무엇에도 우선되지 않으면 감상의 묘미가 떨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판소리 <심청가> 가운데 범피중류 대목이, 많은 소리꾼에게 도전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사설 치레가 어렵기는 하나, 시(詩)적인 표현들이 돋보이는 노랫말들이어서 그 의미와 배경을 이해하고 부르고 또한 듣는다면, 심청가 감상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은 분명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