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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나는 돈도 싫고, 눈 뜨기도 싫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5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심청이가 떠나야 하는 마지막 날의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반야진관에 맹상군”이 아니어든,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라는 혼잣말의 의미를 소개하였다.

 

한밤중, 진나라 관문은 막혀 있고, 뒤에서는 군사들이 쫓아오고 있는 다급한 상황이다. 일행 중,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사람이 있어서 그 소리를 흉내 냈더니, 성(城)안의 모든 닭이 잠에서 깨어나며 한꺼번에 울었고, 그 바람에 성문을 지키던 병사도 날이 샌 줄 알고, 문을 열어주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슬픔이 가득 찬 계면조의 소리 속에서도, 분위기 반전을 위한 대목은 필요한 법이다.

 

공양미 300석에 몸이 팔린 심청, 드디어 선인(船人)들과 약속한 날이 밝아오니, 사당에 하직 인사를 마치고, 아버지와도 이별한 다음, 선인들을 따라나서는 약속 시간이 된 것이다. 아무 물색도 모르고 있던 아버지가 어딜 가느냐? 물으며 답답하다고 말하라고 재촉한다. 더는 아버지를 속이는 것도 자식 된 도리가 아니어서 심청은 눈물로 그간의 상황을 고백한다.

 

“아이고 아버지, 공양미 300석을 누가 저를 주오리까? 남경 장사 선인들에게 몸이 팔려 오늘이 죽으러 가는 날이오니 저를 망종 보옵소서.”

 

 

《예기(禮記)》제 19편, <악기(樂記)> 편에서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각기 다른 느낌이 형성된다고 하였다. 기쁜 감정이 생기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슬픈 감정이 일어나기도 하고, 즐거운 감정이나 분노의 감정, 또는 공경하는 마음과 사랑의 감정 등이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본인이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싶다고 해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이렇게 느끼게 되는 것은 대상에 따라 내 느낌이 좌우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슬픔을 당해 내가 느끼게 되는 마음의 소리, 곧 애심감자(哀心感者)는 그 소리가 타들어 가는 듯하면서도 힘이 없게 된다.

 

반면에, 기쁜 마음이 느껴질 때(喜心感者)는 그 소리가 높아져서 널리 흩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즐거운 마음이 느껴지는 낙심감자(樂心感者)는 그 소리가 명랑하면서도 여유가 있고, 분노의 마음이 느껴지는 노심감자(怒心感者)는 그 소리가 거칠고도 사납다고 했다. 공경하는 마음의 경심감자(敬心感者)는 그 소리가 진지하면서도 분별하는 뜻이 있고, 사랑하는 마음의 애심감자(愛心感者)가 느껴질 때는 그 소리가 화평하면서도 유순하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되는 느낌의 변화라 하겠다.

 

그러므로 이 여섯 가지. 곧 슬픔, 기쁨, 즐거움, 성냄, 공경, 사랑의 느낌은 각 개인의 성품이 아니다. 대상이나 사건, 경우. 기타, 물건에 느껴진 다음, 마음의 상태가 움직이게 되어 있다는 점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곧 그들의 느낌을 어떻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대답이 분명해 진다.

 

그렇다.

음의 상태를 내 원하는 바, 그대로 만들어 내 느낌을 좋은 상태로 유지한다는 점은 불가능하다. 하루 종일 웃으며 명랑하고 기쁘게, 그리고 즐겁고 유쾌하게 살겠다고 결심한 뒤, 집을 나서도, 곳곳에 방해꾼들은 하나둘이 아닌 경험을 우리가 수없이 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심청가 이야기로 돌아온다.

공양미 300석에 몸이 팔려 죽으러 가는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청천병력과 같은 말을 아버지 심봉사가 듣는 순간. “나는 돈도 싫고, 쌀도 싫고, 눈 뜨기도 싫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뱃사람들을 향해 욕을 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상태고,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을 !! 300석에 몸이 팔린 심청과 이별하기 직전, 분을 참지 못한 심봉사, 심청이가 떠나간다고 하니, 아버지가 뱃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설득해 보기도 하는데,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에이, 천하 상놈들아,! 옛글을 모르느냐.? 칠년 대한(大旱) 가물 적에 사람 잡어 빌라 허니, 탕 임금 어지신 말쌈, 내가 지금 비는 데, 사람을 위해 비가 내리길 비는 것이니, 사람 잡어 빈다고 허면 몸으로 희생이 되어, 신영백모 전조단발, 상림 뜰 빌었더니 대우 방수천리라.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가 흉년이 들 것이고, 흉년이 들면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정든 고향을 떠나게 마련이다. 백성들을 위해 농사가 잘 되어야 한다, 그런데 백성들을 위해 비는 일에 사람(백성)을 제물로 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사람을 잡아 빌어야 한다면 내 몸을 희생하겠다고 생각한 탕 임금이 스스로 손톱과 발톱, 머리카락을 잘라 죽은 뒤에 묻게 하고, 상림 뜰에 나가 풀로 몸을 감싸고 기우제를 지냈더니 사방천리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심봉사가 이 일을 들어 ‘나는 돈도, 쌀도, 눈 뜨기도 싫다!’라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모든 욕심은 허사가 되어 버린 채, 심청은 뱃사람들을 따라가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