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위의 시는 일본 문학의 한 장르인 센류(川柳)로 센류란 5.7.5조의 일본시를 말한다. 5.7.5조란 일본어를 기준으로 하는 것으로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는 5.7.5가 지니는 리듬과 맞지 않아 센류의 맛을 느끼기는 쉽지 않으나 대강의 뜻은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센류는 에도시대(1603~1867)에 생겨난 것으로 지금의 도쿄를 중심으로 유행한 정형시다. 우리나라의 시조처럼 일본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센류는 가라이 센류(柄井川柳)라는 작가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내용은 풍자성이 짙은 것들로 이뤄졌다. “살 빼야지 이거 먹고 나서 빼야지(やせてやる コレ食べてから やせてやる)”와 같은 센류는 거의 일본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시다. 이는 음식을 앞에 놓고 다이어트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부터’가 아니라 ‘이것까지 먹고 다음번부터’라는 식으로 다음번 음식을 앞에 두고는 또 역시 ‘다음부터’라고 말하는 사람들, 곧 의지가 약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다이어트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딱한(?) 마음이 들어 있는 내용이다. 센류는 짧지만 시사하는 내용이 때로는 해학적이며 사회의 이슈나, 현대인들의 고민 따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부디 한 톨의 쌀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는 하지 마옵소서. 부디 또 곰발바닥 같은 진미에도 물릴 정도로 부유하게도 하지 마옵소서. 부디 뽕밭 매는 아낙네를 싫어하지 않게 하소서. 부디 궁궐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사랑하게도 마옵소서. 부디 콩 보리도 구분하지 못하는 숙맥처럼 우매하게 마옵소서. 부디 우주를 점칠 정도로 총명하게도 마옵소서.“ 이는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1892~1927)의 “난장이의 기도”에 나오는 말이다. “난장이의 기도”는 사람들이 일상을 살면서 가슴에 새겨들을 만한 일종의 격언이나 금언 같은 말로 가득 차 있다. 35살의 나이로 음독자살한 아쿠타가와는 “어떤 옛 친구에게 보내는 수기”에서 자살 동기를 '막연한 불안'이라고 썼는데 그것은 육체, 생활, 문학, 사상과 관련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불안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라쇼몬(羅生門)〉의 작가로 한국에 알려져 있는 아쿠타가와는 주로 작품의 소재를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92)의 설화집에서 구하고 있으며 〈코〉, 고구마죽, 〈지옥변〉, 〈덤불숲〉같은 작품들이 있다. 1935년 친구이며 문예춘추사 사주였던 기쿠치 간에 의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몇 해 전 일본의 한 언론에서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 가운데 “일본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을 물은 결과 ‘교토’가 단연 1위로 꼽힌 적이 있다. 교토 가운데서도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기요미즈데라(淸水寺)’라는 답이 나왔지만 기요미즈데라와 같은 문화유산 말고 무형의 문화유산을 꼽으라면 교토의 3대 마츠리를 꼽을 수 있다. 천년고도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祇園祭), 10월 22일의 지다이마츠리(時代祭)를 꼽는다. 오래된 순서로는 아오이마츠리 (서기 567년), 기온마츠리(서기 863년), 지다이마츠리(서기 1895년) 순으로 꼽을 수 있다. 성격으로 따지자면 아오이마츠리는 궁정에서 시작한 마츠리(국가의 제사 형식)로 볼 수 있고 기온마츠리(전염병 퇴치의 제사)는 서민층에서 향수하던 마츠리다. 그런가 하면 10월 22일에 열리는 지다이마츠리는 명치정부가 나라(奈良)에서 교토(京都)로 수도를 옮긴 것(헤이안 천도, 794년)을 기념하여 명치28년(1895)에 시작한 비교적 역사가 짧은 마츠리다. 명치정부는 교토 천도 당시의 간무왕(桓武天皇)을 모시기 위한 사당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바야흐로 만산홍엽이 고운 계절이다. 우리나라의 단풍 명소를 꼽으라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9월 하순부터 시작되는 설악산 대청봉 단풍을 시작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꼽는 사람들이 꽤많다. 그런가하면 같은 지리산이라해도 핏빛보다 붉다는 피아골 단풍도 곱기로 소문난 곳이다. 오죽하면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까? 같은 지리산이라 해도 뱀사골은 계곡과 단풍이 어우러진 곳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내장산 단풍은 호남 으뜸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또한 백암산 백양사 단풍, 협곡과 기암괴석과 어우러지는 주왕산 단풍, "춘마곡 추갑사(봄에는 마곡계곡, 가을에는 갑사계곡)"라 일컬어질 만큼 계룡산 단풍도 아름답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떠할까? 명산이 많은 일본도 전국적으로 단풍명소가 즐비하지만 고색창연한 고찰들이 즐비한 교토의 경우는 절 경내에 심어놓은 수 천 그루의 단풍나무들이 오래된 고찰 분위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야후 제팬에서 조사한 2106년 교토 단풍 명소 순위 10위를 보면 모두 절과 신사(神社)에 집중되어있다. 그 가운데 1위는 단연코 천년고찰 기요미즈데라(清水寺)다. 일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번 노벨상의 영광은 돌아가신 부모님과 늘 곁에서 응원해준 아내 마리코에게 돌리고 싶다.” 이 말은 2016년 노벨 의학ㆍ생리학상을 받은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大隅良典, 71살) 교수가 수상 소감의 말미에 한 말이다. 그제(3일) 도쿄 메구로에 있는 도쿄공대캠퍼스 기자 회견장에는 100여명이 넘는 보도관계자들이 몰려 뜨거운 취재 열기를 보였다. 덥수룩한 수염의 오스미 교수는 “소년시절 노벨상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지만 연구자의 길로 들어서서는 완전히 잊고 지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를 목표로 꾸준히 연구해온 결과 이번에 노벨 의학ㆍ생리학상을 받게 되어 더없이 기쁘다고 했다. 수상소감 자리에서 특히 그는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로써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는 25명으로 늘어났다. 자연과학 부문에서만 22명이 상을 받았으며 2001년 이후에만 16명이 수상해 미국에 이어 역대 2위다. 오스미 교수의 노벨 의학ㆍ생리학상이 발표되자 일본은 잔치 분위기다. 언론도 대서특필 했으며 특히 3일 밤 9시 NHK에서는 ‘뉴스워치 9’에서 가나카와현 오이소에 있는 오스미 교수 집을 찾아가 부인인 마리코 씨와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조선의 여성독립운동가로서 한국에 널리 알려져 있는 분은 유관순 열사로 그 밖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윤옥 시인은 여성독립운동가를 널리 알리기 위헤 현재 120명의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추적하여 세상에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14년 시화전에 이어 이번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30명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합니다. 역사 속에 묻혀있는 여성들을 시와 그림으로 배워 보지 않으시렵니까?” 이것은 일본 고려박물관에서 올 11월 2일부터 2017년 1월 29일까지 전시 예정인 “2016년 기획전 침략에 저항한 불굴의 조선여성들(侵略に抗う不屈の朝鮮女性たち)(2) -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시 이윤옥에 적혀 있는 글이다. 필자는 지난 8월 말, 도쿄 고려박물관 조선여성사연구회를 찾았다. 이들은 일제의 조선침략의 역사를 반성하는 모임으로 일본의 양심 있는 시민단체이다. 이곳에서는 2014년 1월 29일부터 3월 30일까지 제1회 시와 그림으로 보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을 연바 있다. “1회 전시회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하루 평균 19명 정도가 전시회장을 찾았지요. 그러나 이곳 고려박물관이 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라쇼몽(羅生門)은 헤이안시대 헤이죠쿄(平城京)에 있던 큰 문이다. 궁성을 드나들 때 거쳐야하는 큰 문으로 나성문(羅城門)이란 한자를 썼던 것인데 훗날 나생문(羅生門)으로 바뀌었고 이 문이 유명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芥川龍之介, 1892~1927)의 단편소설 《라쇼몽(羅生門)》 덕일 것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라쇼몽》말고도 《코》 등 많은 단편소설을 남겼는데 이들 소재는 12세기 작품인 《곤자쿠모노가타리(今昔物語集)》에서 얻고 있다. 헤이안시대에 만들어진 이 책 속에는 당시에 나돌던 1200여 가지의 설화가 들어있는데 《라쇼몽》은 이 설화집 세속부 권 29화의 이야기를 소재로 쓴 것이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는 왕조의 부귀영화가 절정에 달하던 시대로 말기에 이르면 잦은 화재와 흉년, 굶주림 따위로 백성들의 곤궁한 삶이 드러나는데 설화집의 나성문(羅城門) 이야기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때는 헤이안 말기, 한 사내가 나성문을 어슬렁거리다 2층 누각으로 올라간다. 2층에 올라가보니 한 노파가 죽은 여자의 시체에서 머리카락을 뜯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노파는 이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전시(戰時) 상황에서 물자 특히 무기 생산에 필요한 금속자원이 부족하여 그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민관이 소유하고 있던 금속류의 회수가 시작되었습니다. 1941(소화16)년 8월 30일 공포하여 같은 해 9월 1일 시행된 국가총동원법에 기초한 ‘금속회수령’이 그것입니다. 금속회수는 관공서, 직장, 가정을 불문하고 어린이들의 완구를 포함한 모든 금속류를 회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아이치현(愛知縣)에 있는 “이누야마고등학교(犬山高等學校)의 역사”에 나오는 일부분이다. 금속류 곧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두 전쟁 물자로 쓰기에 바쁘다 보니 이누아먀고등학교는 철제 교문까지 뜯겨 빼앗기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때 상황은 듣기 좋은 말로 ‘금속류 회수’이지 이건 숫제 공출을 넘어 ‘갈취’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쟁 중에 일본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부인들은 “목숨을 다 바쳐 나라를 위해 몸에 지닌 것을 모두 내놓자”는 구호로 제국주의 정부의 ‘금속류 회수’ 작업에 동참했다. 1943년(소화18) 4월에는 ‘비상회수’ 조치가 내려졌고 11월에는 ‘강제회수’로 까지 진전하고 있었다. 이 무렵의 강제 회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은 태풍의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해마다 여름이면 초비상이다. 글쓴이가 8월 20일 무렵 일본에 가 있을 때도 태풍 제9호와 10호의 상륙으로 일본열도가 긴장을 늦추지 않더니 9월 6일 기상청 일기예보에는 어느새 발달한 제13호 태풍이 오키나와 남쪽 나하시(那覇市) 180km 부근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보도다. “태풍 제13호는 6일 18시 북동쪽으로 매시간 35km 진행하고 있으며 중심기압 1000hPa、중심부근의 최대 풍속은 20m/s이다. 이 태풍은 7일 18시에는 무로토미사키(室岬) 남쪽110km에 도달할 예정이니 태풍주변 해역 및 태풍의 진로로 예상되는 부근에서는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일기예보가 하루 종일 TV와 라디오, 신문 따위에서 반복해서 일본 국민에게 알려주고 있다. 같은 시각 한국의 일기예보는 태풍 이야기가 없다. 예부터 일본에서 “210일 날 큰 태풍이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는데 210일이란 새해 1월 1일부터 세어서 210일째 되는 날로 9월 1일이나 2일이 이에 해당하는 날이다. 약간 210일설은 벗어나지만 1954년 9월 26일은 일본 태풍 관측사상 가장 큰 태풍이 몰아쳐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라에는 오래된 절들이 많다. 도다이지(東大寺), 다이안지(大安寺) , 호류지(法隆寺), 고후쿠지(興福寺)등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을 만큼 고찰들이 있다. 이러한 고찰이 메이지(明治)정부의 훼불로 수난을 받은 이야기는 익히 들어온 바와 같다. 그것은 마치 조선시대의 훼불을 보는 듯 한데 안타까운 것은 절의 문화재가 한순간에 날아갈 뻔 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때는 1871년(메이지4년) 11월의 일이다. 원래는 절과 신사가 한 경내에 나란히 있었지만 불교를 폐한다는 정책이 발표되고 곧 시행에 들어가자 천년고찰 고후쿠지(興福寺) 승려들은 승직을 박탈당하고 신사(神社)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고후쿠지(興福寺) 경내에 있던 오중탑의 운명이다. 승려들이 사라진 절 경내는 이내 황폐해지기 시작했는데 이곳에 있는 오중탑과 삼중탑 역시 임자를 찾아 판매에 부쳐졌다. 오중탑은 당시 돈으로 250엔, 삼중탑은 30엔에 미사브로(彌三郞)라는 사람이 사게 되었는데 미사브로는 이 탑을 불태워 없애고 그 대신 탑에 사용된 금붙이를 거둘 요량이었다. 그러나 주민의 반대로 무산되어 다행히도 아름다운 오중탑을 오늘날 보게 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