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이제 슬슬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다가온다. 우리나라처럼 음력을 세시풍속에 쓰지 않는 일본에서는 모든 것이 양력 기준이다. 설날도 마찬가지다. 설날이라고 해야 우리처럼 차례를 지내는 것도 아니어서 그 분위기 또한 사뭇 다르다. 한국과 새해 풍습이 가장 다른 점은 일본인의 신사참배 모습일 것이다. 같은 신사참배라고 해도 설날에 하는 신사참배를 특별히 하츠모우데(初詣)라 부른다. 하츠모우데란 새해 정초에 신사나 절에서 한 해의 운수대통을 빌며 건강히 소원성취를 이루기를 비는 행사이다. 그래서 이맘때쯤이면 인터넷에서는 전국의 유명한 신사(또는 절)를 소개하느라 야단법석이다. 2006년 경찰청 집계를 보면 1위가 메이지신궁(明治神宮, 도쿄, 310만 명), 2위 나리타산 신승사(成田山新勝寺, 치바현, 275만 명) 3위 후시미이나리대사(伏見荷大社, 교토, 269만명)..... 8위 다자이부천만궁(太宰府天宮, 후쿠오카, 200만 명) 등으로 순위를 매기고 있다. ▲ 2015년 일본 전국의 유명한 하츠모우데 신사(또는 절) 안내 누리집 경찰청에서 발표한 새해 하츠모우데(신사참배)한 인원을 다 더해보면 2006년 통계로 9,373만 명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슬슬 연말이 되면 일본 상점가에는 연말연시 집안을 장식하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와 이방인의 눈을 사로잡는다. 집 대문에 다는 시메카자리(しめ飾り)를 비롯하여 시메나와(注連, 금줄), 카도마츠(門松, 대문 앞에 세워두는 장식 소나무), 카가미모치(鏡餠, 집안에 진설하는 찹쌀떡) 따위가 일본의 연말연시에 집 안팎을 장식하는 물건으로 이것들은 모두 나쁜 액운을 막아주는 신성한 부적 구실을 하는 물건들이다. ≪일본민속사전(日本民俗事典)≫에 보면, 시메나와(注連)를 특히 신성한 장소를 구분하려고 치는 줄로 다양한 모양이 있다고 나와 있다. 말하자면 시메나와는 굵은 새끼줄 모양의 금줄로 흔히 신사(神社)의 신전 입구에서 많이 보는 것이지만 가정에서는 가미다나(神棚, 신전) 또는 도코노마(床の間, 족자를 걸어두는 신성한 곳)등에 걸기도 한다. 이때는 굵기가 가는 금줄을 쓴다. 군마현(群馬縣) 적성산(赤城山) 서쪽 산록지방에서는 마을 입구에 금줄(注連繩)을 쳐두고 이곳을 통과할 때는 항상 언행에 조심하도록 하는 등 지역에 따라서는 금줄 신앙이라고 할 만한 흔적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 시메카자리, 카가미모치, 시메나와, 카도마츠(왼쪽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대한한공 조현아 부사장의 봉지 땅콩 서비스 사건에 대해 일본 언론들이 신이 났다. 지지통신(時事通信)을 비롯한 일본의 많은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한 언론은 영국 가디언 8일자를 인용하여 조현아 부사장은 객실승무원의 서비스 매뉴얼을 문제로 삼았으나 그 보다 더 큰 문제가 불거졌다. 앞으로 대한항공은 절대 안탄다. 차라리 북한의 고려항공을 타는 게 낫다.고 보도하기 까지 했다. 그러면서 한국 누리꾼의 반응도 상세히 보도했다. 이런 부끄러운 일은 일찍이 없었다. 능력 없는 인간이 대한항공의 부사장을 하고 있다는 게 국제적인 창피다., 왜 하필 지을 이름이 없어서 코리언에어(대한항공)라 지었냐? 대한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 이름으로 바꿔라., (조현아) 신한류스타 탄생 등 뿔난 누리꾼들의 반응을 여과 없이 보도하고 있다. ▲ 일본 언론들은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행동을 대대적으로 보도히고 있다. 한국의 언론보도만으로도 부끄러운데 시끄러운 일본의 언론들이 신이 난듯 보도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자초지종이야 알려진 그대로지만 업무상 비행기를 종종 타야하는 사람들은 이번 조현아 부사장의 봉
[한국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일본에서 붓글씨로 유명한 스님을 들라하면 홍법대사 쿠우카이(弘法大師 空海 774-835)를 들 수 있다. 홍법대사도 붓글씨를 실수할 때가 있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학문이 깊고 붓글씨도 잘 썼던 쿠우카이 스님은 일본에서 유명한 스님이지만 그의 스승인 곤조대덕(勤操大德, 754~827)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곤조대덕이 우리에게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이 스님이 고대한국계 출신이기 때문이다. 곤조스님은 신라계로 알려진 하타(秦)씨 출신으로 12살에 나라 대안사(大安寺)에서 출가한 이래 삼론종의 거장으로 알려진 분으로 당시 사가천황(嵯峨天皇)은 곤조스님을 대극전(大極殿)에 초청하여 법회를 가질 정도로 왕실의 신임이 두터웠던 스님이다. 곤조스님에 대한 이야기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곤조스님이 한 절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그 절에는 영호(榮好)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영호스님은 늙고 병든 어머니를 절 아래에 살게 하고는 끼니때가 되면 항상 자기의 먹을 것을 동자를 시켜 갖다드리게 했다. 그리고는 동자로부터 어머니의 근황을 듣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영호스님이 이름 모를 병에 걸려 갑자기 죽게 되자 더 이상 아랫마을
[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술 사케를 좋아하십니까? 예라고 한다면 사케로 유명한 니가타의 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도 좋을 법하다. 명술의 탄생에 필수 조건으로는 쌀, 물, 기후, 기술을 꼽는데 제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술의 재료가 좋지 않고는 당해낼 재간이 없음을 말해준다. 일본의 북부에 있는 니가타는 곡창지대로 고시히카리라는 쌀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니가타현의 사케(일본술)는 술을 빚기 위한 술쌀(酒米)을 따로 재배할 만큼 이 지역사람들의 사케 사랑은 각별하다. 이곳의 사케는 니가타산 쌀로만 빚으며 고햐쿠만고쿠(五百万石)는 대표적인 술빚기용 쌀이다. ▲ 벌써 내년 술축제 포스터가 나왔다. 쌀에 이어 니가타의 물을 보자. 니가타에는 땅속에 칼슘과 마그네슘이 거의 없고 강수량이 많은데다가 경사가 급하고 짧은 냇물이 많은 관계로 지하수 체류 시간이 짧아 사케에 좋은 물이 공급된다. 연수는 술을 장기간 발효 시키는데 좋다. 자, 다음의 명주 조건인 기후를 보자. 니가타의 기후는 여름에는 기온이 높고 맑은 날이 이어져 쌀 재배에 좋은 날씨다. 뿐만 아니라 겨울에 산간부를 중심으로 내리는 눈은 너무 춥거나 덥지 않게 적정한 기온을 유지시켜 효모 같은 미생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일본인은 인물은 부드러우나 능히 굳건하고, 굳건하지만 또한 오래 가지 않는다. 약하지만 능히 인내하며 인내 하지만 또한 떨치고 일어나지는 못한다. 총명하지만 지식이 편벽되고 민첩하고 예리하지만 기상이 국한되어 있다. 능히 겸손하지만 양보하지는 않으며 능히 베풀지만 사물을 포용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기이한 것을 숭상하며 가까운 것을 기뻐하고 먼 것은 소홀하다. 고요한 곳을 즐기고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것을 싫어한다. 본업을 편안히 여기며 분수를 기쁘게 지킨다. 일정한 규율을 지키며 감히 한 치도 나아가거나 물러나지 않는다. 이는 조선후기 시인이자 저술가였던 원중거(元重擧, 1719-1790)가 제11차 조선통신사(1763)로 참가했다가 지은 화국지(和國志) 인물 편에 나오는 글이다. 화국지는 18세기 조선 선비의 눈으로 일본의 지리와 역사, 학문과 생활문화, 제도와 한일관계 등을 저술한 백과사전이다. 당시 조선통신사로 함께 일본에 갔던 조엄(1719-1777)이 일본의 문화와 학술에 대하여 일본의 학술은 암흑이라 해도 좋으며, 일본의 문장은 소경이라 할 수 있다.고 평한데 견주면 원중거의 시각은 좀 더 세밀하고 폭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천신만고에 아동들은 시험에 합격은 되었으나 오늘의 경제생활에서 이 거대한 돈이 어디에서 나와 안심하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것이냐? 첫 고개의 시험걱정은 넘어섰으나 둘째 고개의 크나큰 이 걱정이야말로 참으로 그들 빈한한 부형들의 가슴을 암담케 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여기서 학교 입학비 내용을 살펴보면 입학금, 수업료, 교복, 교과서, 학용품, 운동화, 란도셀, 기타 위는 한성일보 1950년 5월 19일자 기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없는 집 자식은 시험에 합격해도 곧바로 입학금 등 학비 마련이라는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어 부모들의 애를 태우게 했다. 여기서 재미난 품목은 란도셀이다. 란도셀(가방)은 당시 입학금에 속해 있던 품목이다. 그 만큼 귀했던 물건이기도 하다. 그런 란도셀이 지금 전 세계에서 인기라고 한다. 특히 유럽에서는 어른들이 란도셀을 패션으로 들고 메고 다닌다니 참으로 희한한 이야기다. 일본의 시사통신이 11월 1일자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초등학생이 등장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해외에 보급됨에 따라 어린이용 란도셀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이야기다. 중국에서는 튼튼하고 단순한 디자인이 인기라고 한다.
[그림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도저히 그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흑룡강성 평방 지역의 731부대는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전율이 느껴진다. 일본이 패전 뒤에 이 부대를 폭파하고 떠나기 전에는 교도소를 능가하는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을 뿐 아니라 이곳의 모든 정보가 새나가지 않도록 이곳은 철저히 외부 세계와 차단된 하나의 거대한 왕국이었다. 731부대에 들어선 139개의 건물에는 각종 세균실험을 할 수 있는 시설물들과 함께 이곳에 근무하는 일본군의관의 숙소와 군인가족 사택, 학교, 세탁소, 예배당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부대 안에 비행장까지 갖추고 중국내 세균전을 위한 생체실험이 이뤄진 곳이다. 현재 중국정부는 731부대를 복원하여 이곳에서 자행한 일본군의 만행을 그대로 재현해놓고 있다. 이곳에서는 모든 실험대상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 것으로 팔에 세균을 주입하는 밀랍인형을 비롯하여 잡아온 여성의 배를 가르는 모습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천인공로할 일이 벌어졌음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 중국 하얼빈 731부대유적지 전시관의 이시이시로 모형(왼쪽), 악명높은 생체실험의 대부 이시이시로의 731부대 시절 모습 그 가운데서 눈에 띄는 곳은 731부대에서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때는 서기 758년, 일본 조정의 관리 오노노타모리(小野田守)는 발해대사로 임명되어 발해땅을 밟는다. 사신의 임무를 다 마친 뒤에는 발해사신 양승경(揚承慶)과 함께 귀국하는데 이 이야기는 일본의 정사인 《속일본기(續日本紀)》 천평보자(天平寶字) 2년 9월 18일자에 기록되어 있다. 서기 758년이면 일본은 나라시대(奈良時代)의 중반기이며, 발해(渤海)는 698년에 건국하여 60년이 지날 무렵이다. 일본과 발해사신의 왕래는 발해가 일본을 34차례 방문하였고, 일본 역시 발해를 13차례 방문 할 만큼 교류가 컸다. 비행기로 다니는 지금도 중국 흑룡강성에 있는 발해 동경성을 가려면 쉽지 않은 데 당시 해상으로 왕래를 해야 했던 것을 감안하면 발해와 일본의 교류는 매우 밀접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중국 흑룡강성 발해 유적지 예전에《속일본기(續日本紀)》에서 일본과 발해의 교류 이야기를 읽으면서 1천여 년 전의 역사가 바로 어제의 일처럼 느껴졌던 적이 있는데 지난 9월 말 흑룡강성에 있는 발해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나는 또 다시 발해의 건재를 실감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황금들판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발해 동경성터는 그 넓이가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19세기 많은 조선 난민들이 연변지역에 이주해 와 도문강 연안에 정착하였다. 1905년 일로전쟁(러일전쟁)후 조선은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되었다. 1907년 8월 일본은 소위 조선사람의 생명 안전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용정촌에 기어들어 불법적으로 통감부간도파출소를 세우고 중조변계분쟁을 일으켰다. (가운데 줄임) 그뒤 1909년 11월 2일 간도일본총영사관을 세워 산하 5개 영사분관을 두고 방대한 경찰 기구를 설립하여 간도를 포함한 동북지방의 침략 발판으로 삼았다. 전시실은 진실한 물증과 역사자료를 이용하여 간도일본총영사관의 내막을 폭로하고 있다. (필자가 문구를 읽기 쉽게 수정) ▲ 악명 높은 용정 시내의 간도총영사관 건물, 지금은 용정시인민정부 청사로 씀 이는 길림성 용정 육도하로(六道河路 869)에 있는 옛 간도일본총령사관 터에 있는 간도일본총영사관 죄증 전시관 앞에 있는 안내문이다. 1909년에 세운 건물 치고는 제법 튼튼해 보였는데 옛 간도일본총사령관 터에 여러 채의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중앙 건물은 룡정시인민정부 청사로 쓰고 있으며 청사 건물 뒤에는 일본의 잔학성을 전시하고 있는 중국식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