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팔천(八賤)! 조선에는 흔히 ‘팔천(八賤)’이라 불리는 여덟 가지 낮은 신분이 있었다. 바로 사노비, 승려, 백정, 무당, 광대, 상여꾼, 기생, 공장이었다. 이들은 갖은 설움을 받으며 인간보다 못한 대접을 받기도 하고, 억울해도 호소할 곳도 없이 그저 타고난 신분을 탓하며 울분을 삼켜야 했다. 조선의 백성들은 태어나면 양반, 중인, 양인, 천민 이렇게 네 가지 신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조선 초기만 해도 신분제도는 상당히 유동적이었고 신분 간 이동도 빈번했으나 점차 제도가 굳어지면서 한 번 양반은 영원한 양반, 한 번 천민은 영원한 천민이 되었다. 이 책, 《나도 조선의 백성이라고!》는 천민으로 태어나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여덟 부류의 천민을 각각 짧은 동화와 설명으로 보여준다. 흔히 조선시대를 떠올릴 때 열심히 농사짓는 농부나 글을 읊는 선비를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이야말로 그런 양민들의 삶을 죽을힘을 다해 떠받친 조선의 백성이었다. 특히 천민 가운데 가장 수가 많았던 사노비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주인에게 짐승 취급을 받기 일쑤였고, 어떤 때는 말이나 소보다 싼값에 매매되기도 했다. 승려 또한 조선이 유교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바다에 떠다니는 배들은 대부분은 짐을 싣고 있습니다. 만약에 무거운 짐을 싣지 않으면 배가 불안정하여 높은 파도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선원들은 빈 배로 항해해야 한다면 밑바닥에 평형수를 채웁니다. 그래야 외부의 높은 파도나 조류에 의해 선박이 심하게 흔들릴 때 복원력을 발휘하여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배가 전복되는 주요 원인 가운데는 하나는 평형수를 잘 못 관리한 까닭입니다. 평형수란 배에 짐을 싣지 않은 상태에서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배 안의 탱크에 바닷물을 채우거나 바다로 물을 배출하는 것을 뜻하는데 쉽게 말하면 오뚜기가 하단부의 무게로 넘어지지 않듯이 평형수도 물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한 장치라고 보면 됩니다.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어느 정도의 걱정과 고통 고뇌는 항상 필요한 것입니다. 선장은 경험이 중요합니다. 선장 대부분은 거친 바다에 풍랑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다는 것과 높은 풍랑이라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린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재난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럴 때 놀라고 두려운 마음에 좌초의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평형수가 채워진 사람은 재난의 풍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청나라가 들어선 이후 천하의 사대부들을 안정시킬 방법이 필요했다. 지식인들을 장악해야 안정적인 통치와 국정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청나라는 먼저 어떤 학문을 따르는 사람이 많은지 몰래 살폈는데 주자학이었다. 그리하여 청나라는 주자를 공문십철(孔門十哲, 공자의 문하에서 나온 학덕이 뛰어난 열 명의 제자들)의 반열에 올려 제사 지내고 섬기며 주자의 도학을 황실이 대대로 이어온 가학(家學)이라고 선포했다. 주자가 중국을 받들고 오랑캐를 배척한 인물인데도 황제는 천하의 선비와 도서를 모두 모아 《도서집성》과 《사고전서》 같은 방대한 책을 만들어 주자의 말씀이고 뜻이라고 했다. 중국의 대세를 살펴서 주자학을 먼저 차지하고, 천하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서 아무도 감히 자기를 오랑캐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황제는 걸핏하면 주자를 내세워 천하 사대부들의 목을 걸터타고 앞에서는 목을 억누르며 뒤에서는 등을 쓰다듬으려 하고 있다. 그런데도 천하 사대부들은 그런 우민화 정책에 동화되고 협박당해, 형식적이고 자잘한 학문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주자의 학문에 흡족하여 기뻐서 복종하는 자가 있는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부산은 참 특별한 도시다. 바다가 있어 다양한 풍경과 체험을 할 수 있기에 연중 관광객들이 넘치는 곳이지만 험준한 산기슭에 들어서다 보니 땅이 좁아 도시가 산비탈을 따라 위로 조성될 수밖에 없었다. 부산의 도심은 용두산을 끼고 형성돼 있는데 그러다 보니 전망탑이 있는 용두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기 이를 데 없다. 예로부터 40계단이 만들어져 그 이름이 지금도 남아있다. 중앙동이라는 데에 하룻밤을 잘 기회가 있어 아침에 나와서 걸어보니 보지 못하던 부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곧 용두산 쪽으로 다닥닥닥 위로 가며 붙어있는 집들을 연결하는 길과 계단들이 구경하는 것으로도 색다른 볼거리가 되더라는 것이다. 나는 사진 전문가도 아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위로만 뻗어올라갈 수밖에 없는 부산이란 지형적인 조건에 따라 형성된 수직도시의 몇몇 얼굴들을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그것이 바다와 생선회와 영화제와 해수욕장 등 수평적으로 이뤄진 화려한 얼굴의 뒤편에 있는 부산의 대조적인 속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동 책방거리에서 봄이 오는 길목의 부산 아침산책은 끝난다. 닫혀있던 책방들이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채비를 한다. 개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글은 어떤 점이 우수할까? 일상에서 늘 쓰는 한글이지만, 한국인이라도 막상 이 질문을 받으면 서너 개도 말하기 어렵다. 배우기 쉽고 소리내기도 쉬운데, ‘뭔가 머리로는 아는데 말로 설명이 안 되는’ 느낌이다. 이 책, 《한글이 우수할 수밖에 없는 열두 가지 이유》를 보고 나면 그 까닭을 열두 개나 말할 수 있게 된다. 한글의 우수함을 어린이들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작가가 정성스럽게 만든 이 그림책은, 우수한 것은 알지만 왜 우수한지 선뜻 말하지 못했던 어른들에게도 꽤 유용한 책이다. 한글이 우수한 까닭은 첫째, 세종 대왕이 만든 글자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만든 우리 글자, 그것이 바로 한글이다. 전 세계의 많은 글자 가운데 임금이 백성을 위해 직접 만든 글자는 한글밖에 없다. 둘째,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아는 글자다. 알파벳이나 한자, 다른 나라의 글자는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한글은 세종대왕이 1443년에 창제하고, 2년 9개월의 검증 기간을 거쳐 1446년에 만백성에게 반포한 것이 명확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한글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자, 창제 동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산에는 참나무도 존재하지 않고 들국화도 없습니다. 참나무는 떡갈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를 아울러서 말하는 것이고 들국화도 산국, 감국, 뇌향국, 구절초, 갯국화, 개미취, 쑥부쟁이를 아울러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말에 ‘참’이라는 접두사는 명사 앞에 붙어 진짜 또는 참이라는 뜻을 나타내니 진짜 나무라는 의미입니다. 참나무는 목재로서의 값어치와 도토리를 구황 식량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사랑받아 온 나무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만난 곳도 도토리나무 밑에서였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도토리를 식용으로 하는 나라는 매우 드믄데, 남북한만 해당한다고 하니 우리 식문화의 다양성이 대단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을 보면 생활 밀착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큰 잎으로 떡을 싸서 쪘다고 해서 떡갈나무, 짚신 깔창으로 사용했다고 해서 신갈나무, 가을 늦게까지 단풍잎을 볼 수 있다고 가을 참나무인 갈참나무, 껍질을 굴피집 재료로 썼다고 해서 굴참나무… 흉년엔 도토리가 풍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세월이 사람을 길러낸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하지만, 5월 모내기 철에 비가 많이 오면 풍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며칠 전 도자기를 하는 작가의 집을 방문했더니 응접실 나지막한 옛 가구 위 화병 속에서 맑은 매화꽃들이 보시시 웃으며 인사를 한다. 뒤에 걸린 화가의 검은 색 바탕의 그림에 어울려 마치 영창(映窓)에 비치는 듯한 선명한 아름다움을 풍겨준다. 작가의 작업장이 있는 부산 기장 쪽에서 핀 매화란다. 꺾어 와서 작가가 만든 달항아리 옆 화병에 꽂힌 것인데 고결한 자태로 겨우내 잊고 살았던 화신(花信), 곧 꽃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입춘이 지나고 계절이 우수를 넘고 있으니 이제 봄이라 해도 누가 시비하지 못할 때가 되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 살았던 옛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간절히 기다렸다. 이즈음에 추위 속에서도 가장 먼저 피는 매화를 보면서 이어 다른 꽃들이 피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때에는 5일마다 꽃이 피는 것을 보고는 그 꽃을 몰고 오는 것이 바람이라는 생각에 일일이 이름을 붙이며 반겼다는 것이 아닌가? 이름하여 ‘이십사번 화신풍(二十四番 花信風)’, 그것이 줄어서 ‘화신풍(花信風)’이라는 것인데, 양력 1월의 소한에서부터 5일마다 기후가 바뀌고, 그것을 일후(一候)라 계산하면 4월의 곡우까지 4달 120일에 24개의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초등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 어찌나 많은 지 한 반에 보통 70명이 넘었다. 그러고도 10반을 넘었으니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내려다보면 거짓말 안 보태고 새카맣게 보였다. 원래 4학년이 되면 남과 여반으로 나뉘었는데 내가 들어간 반은 남녀합반으로 6학년까지 그대로 갔다. 몇 학년 때인가 기억이 안 나는데 내 짝은 몹시 마르고 까무잡잡한 아이였다. 짝은 도시락을 한 번도 가져오지 않았고 옥수수빵을 받아먹었다. 그런데 그 빵도 다 먹지 않고 남겨서 가방에 넣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연필이나 공책도 없을 때가 많았고 그림 도구는 아예 준비해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 것을 많이 썼는데 정말 아껴서 잘 쓰려고 하는 것이 보여, 반쯤 쓴 크레용 세트와 도화지를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어느 날인가 그 애가 빵을 받아서 자리에 앉는데 그 냄새가 너무 좋아서 내 도시락과 바꾸어 먹자고 했다. 그래도 되느냐고 하면서 짝은 너무나 맛있게 도시락을 비웠고 나는 옥수수빵을 잘 먹었다. 내가 짝에게 앞으로 종종 바꾸어 먹자고 했더니 그 애는 그렇게 좋아했다. 나는 그 시절만 해도 빵순이었고 옥수수빵은 밥보다 훨씬 맛있었다. 아버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9)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불렀으니 군자 만년에 큰 경복일레라. -《시경》- 이렇게 좋은 의미를 지닌 집에서 사는 인생은 어땠을까? 하루하루 술에 취하고 덕을 베풀며, 큰 복을 누리며 살았을까? 이 집의 주인이 되어 하루하루를 보내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조선의 법궁, 경복궁에서 일상을 보내던 임금들이다. ‘경복(景福)’이라는 이름은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중국의 시집인 《시경》에 있는 말을 따서 지은 것으로, 임금의 큰 은혜와 어진 정치로 만백성이 아무 걱정 없이 잘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 책, 《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는 경복궁에서 흘러가는 임금의 일상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정겹고도 다정하게 들려준다. 어린이용 책답게 내용이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잘 담아냈고, 풍부한 그림도 함께 실려있어 우리 궁궐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임금의 하루는 익선관포를 갖추어 입고 차림새를 단정히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침 수라에 해당하는 자릿조반을 먹은 뒤, 어머니인 대비가 기거하는 자경전으로 가서 아침 문안을 드린다. 경복궁의 자경전은 고종 때 조대비(익종의 비 신정왕후)를 위해 지은 건물로, ‘자경’은 임금의 어머니나 할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지구상 모든 생명의 기원은 해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의 기운을 받아 필요한 양분을 공급해 주는 것이 식물이지요. 그 식물 기관의 하나로 줄기나 가지에 붙어서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고 모든 생명 활동의 기초가 되는 것이 잎입니다. 만약에 잎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초식동물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고 육식동물 역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니 지구는 무너진 먹이사슬로 인해 아무것도 살 수 없는 황폐한 행성이 될 것입니다. 우린 꽃에 주목하고 상대적으로 잎은 잘 보지 않습니다. 꽃은 화려하고 부드러우며 아름다움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감상에 아주 짧은 시간만 허락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물론 꽃도 중요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잎의 중요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유년 시절 과수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봄에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 아찔한 감동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는 잎에 주목해야 했습니다. 오갈병이나 마름병으로 잎이 병들면 열매의 수확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었지요. 어쩌면 잎은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묵묵히 일하는 수도자를 닮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도 그러하지 않을까요? 꽃처럼 화려하게 전면에 나서서 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