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궁중의 나례(儺禮)의식, 곧 잡귀를 몰아내는 의식에 쓰였던 처용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처용무는 궁중정재의 하나로 신라 때 처용설화와 관계가 깊다는 이야기, 처음엔 한 사람이 검은 천으로 만든 사모, 흑포사모(黑布紗帽)를 쓰고 추다가, 후에 청(靑), 홍(紅), 황(黃), 흑(黑), 백(白) 등 오방(五方)의 화려한 옷을 입은 5명의 춤꾼이 추는 춤으로 정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주로 연산군 이후에는 잔치의 끝맺음을 하는 파연(罷宴)의 악무(樂舞)로 채택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순조 때의 《진찬의괘》나 《진작의괘》의 그림에는 5방의 원무 외에 4명의 협무(協舞)도 들어 있다는 이야기, 1800년대 이후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는 점차 처용무의 등장이 줄어들고 대신 새로 창작된 춘앵전이나 선유락, 무고, 검무 등이 많아졌다는 이야기,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원기로도에 포구락과 처용무가 함께 들어 있다는 점은 곧 이 그림이 1600~1800년대의 잔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처용설화나 처용가(處容歌)에 대한 국문학적인 연구는 정병욱의 문학으로 본 처용가」를 비롯하여 여럿 논문이 발표되어 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넷째인 “처서(處暑)”입니다.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만큼 여름은 가고 본격적으로 가을 기운이 자리 잡는 때입니다. “處暑”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더위를 처분한다.”라는 뜻이 되지요. 하지만 아직 찌는 듯한 더위는 처서를 무색하게 합니다. 처서 무렵엔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고 하는데 모기 입이 삐뚤어지기는커녕 아직 매미만 신이 난 듯합니다. “처서에 창을 든 모기와 톱을 든 귀뚜라미가 오다가다 길에서 만났다. 모기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귀뚜라미가 그 사연을 묻는다. ‘미친놈, 미친년 날 잡는답시고 제가 제 허벅지 제 볼때기 치는 걸 보고 너무 우스워서 입이 이렇게 찢어졌다네.’ 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모기는 귀뚜라미에게 자네는 뭐에 쓰려고 톱을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귀뚜라미는 ‘긴긴 가을밤 독수공방에서 임 기다리는 처자ㆍ낭군의 애(창자) 끊으려 가져가네.’라고 말한다.” 남도지방에서 처서와 관련해서 전해 오는 재미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처서 때의 세시풍속 가운데 가장 큰 일은 포쇄(曝曬)라고 해서 뭔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 연변대학에 이어 연길시 조선족예술단을 방문하여 교류한 이야기를 하였다. 직업 악단과의 세미나를 통해서 레퍼터리의 확장방안, 관객의 확보방안, 그리고 음악의 내용, 춤과 악의 안배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눈 후, 양쪽에서 2~3절목의 교류 공연이 이어졌다는 이야기, 예술단 측에서는 젊은 여가수의 경기민요 풍년가와 잦은방아타령의 발표가 있었고, 대금 산조가 연주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 쪽에서는 김병혜, 송효진, 김보배의 심청가 중 범피중류를 들려주었다는 이야기, 그 젊은 여가수의 선생이 연변 예술대학의 김순희 교수이고, 김순희교수의 스승이 바로 묵계월 명창이라는 이야기, 그래서 그 여가수의 창법이나 발음, 발림 등이 편안하고 낯설지 않았다는 이야기, 대금 산조의 경우는 북한의 저대에 키를 부착하여 개량하였으며 대금음악을 확산시키기 위해 소학교에서 400여 아동들에게 소금을 지도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도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가 진심어린 마음을 들어내며 뿌듯한 교류였으며, 이러한 결과는 오랫동안 교류를 이어온 그간의 만남이 원동력이 되었고, 이러한 교류회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서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예전 명절로 지냈던 백중(百中)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백종(百種), 머슴날(칠석), 망혼일(亡魂日), 머슴의생일, 중원(中元), 호미씻는날, 축수한날, 머슴명일(전라북도전주), 상놈명절(경상남도함안)도 있다. 백중은 음력 7월 15일로 세벌김매기가 끝난 뒤 여름철 농한기에 휴식을 취하는 날이다. 농민들의 여름철 잔치로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백중놀이를 즐기면서 하루를 보냈다. 백중은 원래 불가에서 부처의 탄생, 출가, 성도, 열반일을 합한 4대 명절에 더하여 우란분재(盂蘭盆齋, 불교에서 사후에 고통 받고 있는 자를 위해 음식을 공양하는 의식)가 행해지는 5대 명절에 속한다. 백중에 관한 기록들은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17세기 김육(金堉)의 《송도지(松都志)》, 조선 후기의 학자 조재삼의 《송남잡지(松南雜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규합총서(閨閤叢書)》, 《이운지(怡雲志)》, 《용재총화(慵齋叢話)》,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따위에도 기록이 보인다. 백중은 한마디로 먹고 마시고 놀면서 하루를 보내는 날인데 이 날의 놀이는 두레먹기가 두드러진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복날의 마지막 말복(末伏)입니다. 복날에는 보신(補身)을 위하여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먹지요. 특히, 개를 잡아서 개장국을 만들어 먹거나, 중병아리를 잡아서 영계백숙을 만들어 먹고, 또한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하여 팥죽을 먹거나 시원한 참외나 수박을 먹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탁족(濯足)이라 하여 계곡에 들어가 발을 씻으며 더위를 피하기도 하고, 해안지방에서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했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입추와 말복 무렵이 되면 날씨가 좋아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벼가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복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라고 하여 귀가 밝은 개는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이 속담은 벼가 쑥쑥 자라기를 바라는 농사꾼들의 마음과 닿아 있지요. 한편 ‘복날에 비가 오면 청산 보은의 큰애기가 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충청북도 청산과 보은이 우리나라에서는 대추가 많이 생산되는 지방인 데서 유래한 속설입니다. 대추나무는 복날마다 꽃이 핀다고 하는데, 복날에는 날씨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 연변대학에서 가졌던 한 중 학술 및 실연교류회에서 한국 쪽이 보여준 공연을 소개하였다. 박문규 명인의 편락을 시작으로 10여 종목이 선을 보였다는 점, 이기옥과 김인숙이 부른 송서 율창 중 등왕각서, 송서란 한 마디로 글 읽기이며 밋밋하게 글자만을 읽지 않고, 고저와 강약, 시가(時價)를 구별하면서 음악적으로 구성지게 표현하는 장르라는 점을 얘기했다. 또 추점순의 경기민요와 고향임과 제자들의 단가와 판소리, 정효정의 가야금 독주 영목, 남도 명창들의 성주풀이외 유춘랑 외 2인의 난봉가류, 박준영의 배뱅이굿을 얘기했는데 배뱅이굿은 서도식 창법으로 부르는 1인 창극조라는 점을 말했다. 공연 마무리는 김병혜와 서편제소리사랑 팀의 창극조 뱃노래였으며 박수나 추임새를 아끼던 그들이 마지막 순서에는 앞을 다투어 무대 앞으로 나와 함께 춤도 추고, 목소리도 높였으니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연변 체류시 안내원이 “연변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최고의 연주자, 유명한 성악가들이 다 모여드는 걸 보니 한국에서 오신 여러분들이 대단한 분들임을 알 수 있었다.”며 말투나 행동이 공손해 지고, 우리를 대하는 태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임금이 수라상을 밀어 이광좌에게 주니 그는 동료 신하들과 나누어 먹기를 청했다. 임금이 ‘경이 먼저 먹고 난 다음에 우의정에게 주고, 또 나머지를 싸서 좌의정에게 전해주라. 경들이 이 밥을 먹으면 어찌 차마 잊겠는가? 그릇을 자손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하여 오늘 음식을 하사하고 그릇을 나눈 일을 알게 하여 대대로 내 자손을 보필하게 하라’고 일렀다.” 이는 《영조실록》 13년(1737) 8월 14일치 기록입니다. 이렇게 임금이 수라를 들고 난 뒤에 남은 음식은 “퇴선(退膳)” 곧 “상물림”을 합니다. 상물림이란 임금이 수라를 들고 남은 음식을 신하나 아랫사람들에게 내려주어 먹을 수 있게 한 것을 말하지요. 수라상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차려진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임금이 혼자 먹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이 상물림은 궁궐뿐 아니라 감영 등 관아에서도 있었지요. 예를 들면 감사가 밥을 먹고 나면 이 물림상은 이방, 호방 등 6방과 비장, 수청기생들이 번갈아 차례를 정해가며 받아갑니다. 우리 겨레의 아름다운 풍습입니다. 국어사전에서 “물림”을 찾아보면 “물려받거나 물려주는 일”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그 물림 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밤한울 구만리엔 은하수가 흘은다오 / 구비치는 강가에는 남녀 두 별 있엇다오 / 사랑에 타는 두 별 밤과 낯을 몰으것다 / 한울이 성이 나서 별하나를 쪼치시다 / 물건너 한편바다 떠러저 사는 두 별 / 秋夜長 밤이길다 견듸기 어려워라 / 칠석날 하로만을 청드러 만나보니 / 원수의 닭의소리 지새는날 재촉하네” 위는 《삼천리》 잡지 1934년 11월호에 실린 월탄 박종화의 <견우직녀> 시입니다. 오늘은 칠월칠석인데 흔히 칠석이면 내리던 비는 오지 않고 무더위만 기승을 부립니다. 흔히 칠석 전날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갈 수레를 씻는 '세거우(洗車雨)'라고 하고, 칠석 당일에 내리면 만나서 기뻐 흘린 눈물의 비라고 하며, 다음 날 새벽에 내리면 헤어짐의 슬픔 때문에 '쇄루우(灑淚雨)'가 내린다고 합니다. 또 칠석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를 만들려고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요. 장마가 끝나고 입추와 말복 무렵이 되면 날씨가 좋아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벼가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복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라고 하여 귀가 밝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한중학술 및 실연교류에서 중국 연변 쪽에서 발표한 종목 가운데 인상에 남는 신광호의 압록강2천이나 박춘희의 비단짜는 처녀와 일하기도 좋고 살기좋은 나라가 독특한 창법이나 음색, 박력적인 선율로 관객을 압도했다는 이야기, 이에 못지않게 인기를 끌었던 김순희의 태평가와 해란강 전설, 리홍관이 부른 긴난봉가 등 서도민요에 관한 이야기도 하였다. 연변땅에서 경기민요나 서도민요를 듣게 된 것은 1990년대 초, 전화자 교수가 한국서 유학을 한 다음, 연변에 돌아가 대학의 제자들을 지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이야기, 그 결실로 교류음악회에서 북한식 노래 일변도가 아니고 서서히 남한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음악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 리수련의 옥류금 독주 도라지는 다양한 주법으로 절찬을 받았는데, 옥류금은 연변 출신 김계옥 교수를 통해 한국에서도 종종 연주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국측에서는 가곡, 송서 율창, 경기민요, 판소리 흥보가, 가야금 창작곡 영목, 성주풀이를 비롯한 남도민요, 서도민요와 배뱅이굿, 창극 뱃노래를 열연했다는 이야기를 하였으며, 공연문화도 달라 연변에서는 아무리 흥이 나도 열연하는 사람에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셋째 입추(立秋)다. 입추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인데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고려사≫ 권84「지(志)」38에 “입추에는 관리에게 하루 휴가를 준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입추는 곡식이 여무는 시기여서 이날 날씨를 보고 점친다. 입추에 하늘이 맑으면 만곡(萬穀)이 풍년이라고 여기고, 이날 비가 조금만 내리면 길하고 많이 내리면 벼가 상한다고 여겼다. 또한 천둥이 치면 벼의 수확량이 적고 지진이 있으면 다음해 봄에 소와 염소가 죽는다고 점쳤다. 그런데 가을이 들어서는 때라는 입추가 왔어도 이후 말복이 들어 있어 더위는 아직 그대로인데 입추가 지난 뒤의 더위를 남은 더위란 뜻의 잔서(殘暑)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더위를 처분한다는 처서에도 더위가 남아 있는 것이 보통이다. 옛사람들은 왜 입추를 말복 전에 오게 했을까? 주역에서 보면 남자라고 해서 양기만을, 여자라고 해서 음기만 가지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조금씩 중첩되게 가지고 있다는 얘기인데 계절도 마찬가지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면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이 역할을 입추와 말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