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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제비말, 지지지지ㆍ주지주지ㆍ거지연지ㆍ우지배요

[국악속풀이 31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비노정기를 소개하였다. 강남 갔던 제비가 박씨를 물고 흥보집까지 오는 행로를 기록한 대목으로 사설이나 음악적 구성이 잘 짜인 대목이라는 이야기, 스님이 집터를 잡아 준 자리에 집을 짓고 살아가던 어느 날, 제비 한 쌍이 날아들어 새끼를 까고, 그 중 한마리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흥보가 정성껏 치료해 주었더니 강남으로 돌아갔다가 이듬해 봄 보은표 박씨를 물고, 만리 조선을 나오는 대목이 바로 <제비노정기>라는 이야기를 했다.

 

강남으로부터 중국의 요동, 압록강, 의주, 평양, 개성, 서울을 거쳐 흥보의 집까지 오는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으며 이 대목은 고종때 서편제의 명창 김창환의 더늠으로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 그 시작은흑운 박차고, 백운 무릅쓰고 거중에 둥둥 높이 떠 두루 사면을 살펴보니 서촉 지척이요, 동해창망 허구나”<중략>로 시작해서 끝부분에 박씨를 입에 물고 <중략> 거중에 둥둥 높이 떠 흥보집을 당도, 안으로 펄펄 날아들어 들보 위에 올라 앉어 제비말로 운다.”로 진행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 대목은 사설도 잘 짜여 있고, 적당한 빠르기에 가락도 흥겨우며 부침새가 일품이어서 판소리뿐 아니라, 가야금 병창으로도 널리 불리고 있는 대목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가 그들의 언어로 흥보에게 무슨 말을 전했다고 하는데, 이 제비말이란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강남으로부터 중국의 요동을 거치고 압록강을 넘어서 의주와 평양, 개성을 지나고 서울을 거쳐 흥보의 집까지 당도한 제비는 흥보를 보고 매우 반갑다고 짖어댄다. 이를 판소리 흥보가에서는 제비말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지지지지, 주지주지>, <거지연지, 우지배요>. <낙지각지, 절지연지>,

<은지덕지, 수지차로> <함지포지, 내지배요.>

 

이 표현이 무슨 뜻일까? 제비가 그저 다시 흥보네 집을 찾아 왔다는 울음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의미를 붙여보는 것도 재미가 있어 이를 한자(漢字)풀이로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지지지지(知之知之)>는 알 지()와 갈 지()로 풀 수 있는데, ()알다, 깨닫다, 분별하다의 의미가 될 것이고 지()는 별 의미가 없는 조사로 아시지요, 알아보시겠지요? 라며 제비가 흥보에게나를 기억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물음이 되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지주지(主之主之)>의 주()는 주인이라는 의미이니 주인님, 주인님이시어, 즉 흥보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지지지지 주지주지>는 제비가 흥보에게 자신을 기억하는가, 못하는가를 확인하는 울음으로 볼 수 있겠다.

 

다음에 이어지는 <거지연지(去之年之)>는 갈 거()와 해 년()으로 풀어 지난해에 떠났던 제비라는 의미이고, <우지배(又之拜)>는 또 우()자와 절하다, 인사하다, 의 의미인 배()자를 썼으니다시 인사드린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거지연지 우지배>는 작년에 강남으로 떠났던 제가 다시 와서 인사 드립니다로 해석된다.

 

그 다음 <낙지각지(落之脚之)>에서 낙은 떨어진다는 의미의 락()이고, ()은 다리, 정강이의 뜻이니떨어져 다리가라는 의미일 것이고, <절지연지(折之年之)는 절()은 부러지다, 꺽이다의 뜻이고 년()은 그 해가 될 것이니 그 해에 다리가 부러져의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낙지각지 절지연지>는 작년에 제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었지요로 해석된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은지덕지(恩之德之)는 은혜와 덕망을 뜻하며 수지차(酬之次)에서 수()는 갚다, 보답하다의 뜻이 됨으로 <은지덕지 수지차>는 흥부와 같이 후덕한 분의 은덕을 입어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라는 뜻이 된다.

 

마지막 <함지포지(啣之匏之), 내지배(來之拜)>라는 말에서 함()은 머금다, 마음에 품는다는 의미이고, ()는 박이라는 뜻이니박씨를 물고 돌아와 인사를 드린다는 울음이다.

 

그러므로 이 제비의 울음, 즉 제비말을 종합해 본다면

아시지요, 주인님, 작년에 떠났던 제가 다시 와서 인사를 드려요. 그 때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을 때, 후덕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은혜를 갚기 위해 박씨를 물고 찾아와 인사를 드립니다로 풀이가 가능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능력없고 게으른 흥보가 운이 좋아서 갑자기 부자가 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운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대가를 바라지 않은 선행이 그를 부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부러진 제비 다리를 치료해 주면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내심 바라고 한 일이 아닌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 비록 미물이라도, 날기 연습하다가 뚝 떨어져 다리를 다친 제비가 가엾게 보였기에 최선을 다해 치료해 준 마음이 그를 생각지도 못한 부자로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한다.

 

어렵고 힘든 생활속에서도 착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소 사람을 대하거나 미물을 대할 때,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 하는 착한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있지 않으면 이러한 결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인간사에는 나보다 못한 상대에게 정성껏 베풀고 이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은혜를 입고도 이를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 늘 시끄럽기 마련이다. 제비의 보은표 박씨 이야기가 인간 세상에 시사해 주는 바가 적지 않은 것이다.


다음은 박타령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흥보 앞에 떨어뜨린 박씨를 동편 처마 끝에 심었더니 수십일 만에 박 세통이 열렸는데, 때는 마침 팔월 추석이지만 먹을 것이 없기에 흥보부인이 자식들을 데리고 가난 타령으로 울다가 박을 타기 시작한다. 흥보가의 또 다른 별칭이 바로 <박타령>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이 <박타령>대목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