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인 형제,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와 아사카와 노리타카 (1884∼1964)는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한 사람들이다. 고향인 일본 야마나시에서 떠나와 한국에서 산 형제는 누구보다도 조선문화에 매료되었고 조선인의 진정한 친구였다. 특히 동생 아사카와 다쿠미가 마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조선인들은 서로 그의 상여 메기를 자청했을 정도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지금 망우리공원 묘지에 잠들어 있으며 해마다 한국인들은 그의 ‘조선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그가 죽은 기일에 무덤에서 모여 추모제를 연다. 6월 18일 도쿄 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기사에 따르면 “주일한국문화원(원장 공형식)이 한일 우호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 아사카와 형제 답사 행사를 형제의 고향인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18일 열었는데 이를 위해 30명의 정원을 모집한바 있다. 그런데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412명(일본인 387명·재일 한국인 25명)이 신청해 추첨으로 참가자를 선정했다.”고 문화원 측의 발표를 토대로 보도했다. 아사카와 다쿠미 형제에 대한 한·일 간의 엄청난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정된 30명은 야마나시현 호쿠토시에 있는 아사카와 형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심산유곡에 피어있어 누구도 보아주지 않는 꽃도 그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꽃은 인간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자손을 후대에 물려주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벌과 나비, 곤충에 관심이 있을 뿐이지요. 관심 밖에 놓인 인간의 찬양은 꽃의 처지에서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누가 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지요. 자연을 보면 인간사에서 느낄 수 없는 멋짐을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인간 사회를 봅니다. 기업은 이윤을 위하여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익을 창출합니다. 노동자는 적게 일하고 많이 받으려 노력하고 사용자는 많이 시키고 적게 주려 노력합니다. 그것이 상충하여 물리적 충돌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꽃은 그러지 아니합니다. 달콤한 꿀과, 기분 좋은 향기, 먹거리인 꽃가루를 아낌없이 내어주고 받는 것은 단순한 꽃가루받이인 수정인 셈이니까요. 또한 동물의 위장을 빌려 씨앗을 먼 곳까지 이동하는 수고로움을 끼칠 때도 상큼한 과육을 넉넉히 제공하는 걸 마다하지 않습니다. 배려와 나눔이 있는 유혹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듯 자연은 더불어 살아가는 모범을 보이고 있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이 《삼킴곤란,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우리문화 지킴이인 김 소장님은 인터넷신문인 <우리문화신문> 발행도 하면서, 그동안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아무도 들려주지 않는 서울문화 이야기》 등 우리 문화에 관한 책들을 많이 내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낸 책은 제목부터 독특합니다. ‘삼킴곤란’이라니? 《삼킴곤란,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은 김 소장님이 자신의 투병기를 책으로 낸 것입니다. 김 소장님은 지난해 9월 11일 뇌졸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었는데, 후유증으로 음식물을 삼키지 못하는 장애 곧 ‘삼킴곤란(연하장애)이 왔습니다. 그리하여 대학병원에서 그해 10월 25일까지 치료를 받다가 재활병원으로 옮겨 같은 해 12월 23일까지 거의 100일 가까이 입원치료를 받았지요. 그리고 올해(2022년) 3월 3일까지 집에서도 열심히 치료를 하여 삼킴곤란을 극복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치료받기에 급급한데, 소장님은 그때그때 치료일지를 기록하였다가 이를 책으로 내셨네요. 역시 매일 매일 독자들에게 <얼레빗>이라는 번개글(이메일)을 보내주시는 분이라, 이러한 투병생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52) 향안에게 나 지금 들어왔어요. 아까까지 먹었던 것이 금방 또 배가 고파요. 아이스박스를 열어보니 (이 아이스박스는 아주 조그만데 참 실속이 있어. 우리 이런 거라도 서울서 하나 가졌더라면) 핑크빛 포도 한 송이가 남아 있어요. 참, 포도를 보면 포도를 먹으면,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1963년 11월 13일 1944년, 두 사람은 혼인했다. ‘곱게 살자’는 약속과 함께. 그렇게 김환기와 김향안은 부부가 되었다. 장차 한국 현대미술사에 길이 남을 대화가와 그를 세계적인 화가로 키워낸 문인의 결합이었다. 이 두 사람의 여정을 담아낸 책,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는 두 사람의 만남부터 이별, 그리고 남겨진 향안의 행보를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책에는 수화 김환기가 아내 김향안에게 썼던 다정한 편지와 그림, 그리고 지은이가 시적으로 풀어낸 두 사람의 서사가 차곡히 담겨 애잔한 정취를 자아낸다. 지은이는 이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 파리로 떠났다. 이들이 3년 동안 파리에 살며 걸었던 공원, 첫 전시를 했던 화랑, 함께 보러 다녔던 미술관을 찾아다닌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행복한 파리 생활이 손에 잡힐 듯 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요즘처럼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역사는 없었던 듯합니다. 지금은 극단적 핵가족화로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같이 사는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예로부터 참 묘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을 빼앗겼다는 서운함일까요? 아니면 질투일까요. 특히 홀로되어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기른 어머니일수록 갈등의 깊이가 깊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같은 여인으로 가장 가까워야 할 관계인데…. 고부간의 갈등은 풀리지 않은 영원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꽃엔 며느리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것들이 있습니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꽃이 그러한데요. 이들 모두 구박당하는 며느리의 현실과 관계가 깊습니다. 반면에 꽃 이름 가운데 시어머니가 들어가는 예는 없지요. ‘며느리밥풀꽃’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집니다. 옛날 어느 가난한 집에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흉년이어서 끼니를 잇기 힘들었는데. 시아버지 생신이 되어 며느리는 귀한 쌀 한 줌으로 밥을 짓습니다. 며느리는 솥을 씻으려다가 솥뚜껑 안에 붙은 밥알 두 알을 보고 얼른 입에 넣었는데, 마침 시어머니에게 걸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괘씸하게 여겨 내쫓아 버립니다. 억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월세로 카페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꿈을 물어보면 하나같이 자신의 건물을 갖고 영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예컨대 1층은 레스토랑 2층은 까페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3층에 수경채소를 기르는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면 어떨까? 수경농장에서 재배된 신선하고 청정한 채소를 레스토랑의 재료로 쓴다. 아울러 이러한 채소를 원료로 해서 만든 케잌이나 요리를 레스토랑에서 파는 방식이다. 말만 들어도 흥미롭고 왠지 장사가 잘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러한 멋진 생각을 실현하고 사람이 일본에 있어 화제다. 요코하마시의 기비카요(吉備カヨ) 사장(56)이 그 주인공이다. 기비카요 사장은 3층의 수경재배 농장에서 10종류 정도의 허브 등 잎채소를 키워 이를 재료로 한 케잌과 요리를 만들어 1층 카페 겸 레스토랑 아이코닉 스테이지에서 판다. 기비카요 사장은 5층 규모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데 3층을 수경재배 농장(1차 산업)으로 개장하고 2층에서 요리나 과자 등으로 가공하여 (2차 산업) 1층의 매점이나 카페에서 판매(3차 산업)하고 있으며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이런 발상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북촌한옥마을. 오다가다 한 번쯤 지나쳐 본 적이 있을 이곳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 일본인이 경성에 몰려와 살며 조선인들은 점점 외곽 변두리로 내몰리는 것을 염려한 건축왕 정세권이 한 평 두 평, 땅을 사들여 조선인들의 보금자리를 지켜낸 곳이다. 오늘날 보는 북촌한옥마을의 풍경은 거의 이 건축왕, 기농 정세권이 만들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건양사’라는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살기 편하고 값싼 ‘조선집’, 곧 한옥을 대거 지어 보급했고, 덕분에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이 잠식해 오는 가운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정세권을 알고 있는 이들은 별로 없다. 큰 사업을 일군 자본가로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독립운동을 하다 1942년 일제에 체포, 갖은 고문을 받고 건축 면허와 재산을 모조리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 책 《일제에 맞서 북촌 한옥 마을을 만든 건축왕 정세권》의 지은이는 정세권이 지은 북촌과 익선동, 창신동과 같은 한옥마을이 오늘날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아무도 일제에 맞서 조선집을 지켜내던 정세권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그의 삶을 동화로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구성원을 무생물,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분류하였다. 그에 따르면 무생물이라는 질료(형식을 갖춤으로써 비로소 일정한 것으로 되는 재료)에 나서 자라고 번식의 능력을 갖춘 것이 식물이다. 식물의 속성에 추가로 운동과 감각의 능력을 갖춘 것이 동물이고, 동물의 속성에 이성을 추가로 갖춘 것이 인간이다. 인간을 식물이나 동물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로 보는 이러한 자연관은 인간의 자존심을 만족시켰다. 이러한 자연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며 서양 철학의 원조 격인 플라톤을 거치고, 신약성서의 서간문들을 쓴 바울을 통하여 기독교에 흡수되었다. 유태교에서 비롯된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영혼을 가졌기 때문에 강과 산은 물론, 다른 동물과 식물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기독교 사상은 오랫동안 서양인의 자연관을 지배했다. 현대의 환경위기가 기독교의 잘못된 자연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매우 도전적인 견해가 미국의 역사학자인 화이트(L. White) 교수에 의해 1967년 Science 지에 발표되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본래 유럽 사람들은 물활론(세상 만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3) 1923년, 마침내 내가 완성됐어. 멋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지. 산 아래 마을 사람들도,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도 나를 구경하러 왔단다. 메리는 내게 ‘딜쿠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어.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한다 하더구나.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 아주 특별한 집이 한 채 있었다. 누가 지었는지, 언제 지었는지, 왜 지었는지 베일에 싸여 있던 곳. 사람들은 그곳을 광복 뒤 보금자리로, 전쟁 중 피난처로, 전쟁 뒤 공동주택으로 썼다. 태풍에 무너질 뻔하고 화재로 불에 탈 위기도 있었지만, 이 은행나무 아래 집은 행촌동 언덕 위에서 거의 100년을 버텼다. 이 책 《딜쿠샤의 추억(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 아주 특별한 집)》은 2017년 8월 8일,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공식 등록되어 2021년 시민들에게 개방된 ‘딜쿠샤’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독립문역에서 약 10분만 가면 쉬 닿을 수 있는 이 저택은, 그 이국적인 이름만으로도 무한한 추측과 신비를 자아낸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하는 ‘딜쿠샤’는 주인을 잃은 뒤, 오랫동안 진짜 이름은 잊힌 채 ‘붉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기 전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한국인인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할까? 결코 쉽지 않은 주제지만 이러한 주제에 도전하여 하나하나 질문을 하고 그 답을 구하는 매우 의미있는 강좌가 있다. 바로 서울특별시교육청 동대문도서관과 한일비교문화연구소 (소장 최재철)가 공동 주최(한음출판 협력)로 열고 있는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2)> 강좌가 그것이다. 강좌 (2)는 5월 2일부터 시작해서 매주 월요일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제 다음 주 월요일(30일)이면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1)(2)> 10강좌가 모두 마무리된다.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2)>에서 진행된 강좌 내용을 보면, 5월 2일: 국제사회와 일본의 아이덴티티 /장인성 서울대교수 5월 9일: 장기불황의 원인과 실체-일본의 경쟁력-/김도형 전 계명대 교수 5월 16일: 일본인의 커뮤니케이션 방식-메뉴얼화된 대화 전략- / 임영철 중앙대 명예교수 5월 23일: 요괴의 나라 -일본 괴담과 에도(江戶) 문화- /김경희 한국외대 교수 가 진행되었고 다음 주(5월 30일)에는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