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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제주 책방은, 더더욱 힘이 세다

《작은 책방은 힘이 세다》, 장지은, 책방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주에는 생각보다 책방이 꽤 많다. 물론 번화한 육지와 견줄 바는 아니지만, 책방만 찾아다니는 ‘책방올레’가 있을 만큼 섬 곳곳에 책방이 많은 편이다. 책방마다 개성도 뚜렷해 어디를 가든 그 책방만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작은 책방은 힘이 세다》의 지은이 장지은은 이런 제주 책방의 매력을 해녀의 물질 못지않은 ‘글질’로 건져 올린다. 스스로 소개하는 문장 역시 담백한 울림이 있다. ‘제주살이 3년 차. 걷는 것, 듣는 것, 읽는 일, 쓰는 일. 네 가지 정도면 나쁘지 않다며 오늘 사는 사람’. 간결하면서도 삶의 운치를 잘 표현해냈다.

 

 

이 책은 그녀가 혼인을 계기로 제주에 내려간 뒤, 책방 수십 곳을 직접 살피고 그 가운데 서른 곳을 엄선한 기록이다. 그녀는 새로운 책방을 들른 소식을 대학 선배인 편집자 박주연에게 보냈고, 편집자는 그녀가 보내온 기록을 책방 여행에 목마른 여행자의 마음으로 아껴 읽고 다시 읽다 마침내 책으로 펴냈다.

 

(p.6-7)

현재 제주의 책방은 마흔 곳쯤 된다. 내가 좋아하던 몇 곳이 문을 닫았지만, 또 새로운 몇 곳이 생겨났다. 어떤 책방은 하루에 몇 사람이 찾아오고 어떤 책방은 하루종일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책을 사러 오는 사람, 책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 책을 쓰러 오는 사람, 목적도 모두 제각각이다. 좌우지간 그들은 온다. 제주의 바다와 오름과 노을을 바라보다가 결국 온다. 골목 끝 작은 책방으로 오는 그들은 안다. 책방으로 가는 힘이 센 이유. 책이라는 문과 책이라는 목소리와 책 사이에 접힌 세계를 본 적 있으므로 그들은 책방보다 나은 장소 찾을 수 없어 그곳에 모인다.

 

지은이는 결국 사람들이 ‘속절없이’ 책방으로 모일 수밖에 없는 까닭을 이처럼 풀어낸다. 책이라는 문을 열면 작가가 건네는 목소리가 들린다. 책 사이에 접힌 세계는 넓고도 깊다. 이 세계가 뿜어내는 인력은 대단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의 바다와 오름과 노을을 바라보다가도, 결국은 책방으로 간다.

 

제주 삼양 검은모래해변에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책방 ‘나이롱’이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그 섬유 ‘나이롱’이 아니다. 어떤 나(那), 이로울 이(利), 희롱할 롱(弄) 자를 써서 ‘어떤 이로운 장난’이라는 뜻이다. 지은이는 ‘이로울 뿐만 아니라 느리고 편안한 장난, 그건 다름 아니라 역시 책’이라며 안전하고 따뜻한 장소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이어가는 책과의 장난이 주는 이로움을 일깨운다. 이처럼 ‘진지하지만 심각하지 않고, 장난스럽지만 소란스럽지 않은’, 그런 공간을 누가 마다하랴.

 

 

(p.15)

나이롱의 주인은 서울에서 배낭디자이너로 오랫동안 일했다고 한다. 여행자들을 위한 가방을 만들어오다가 이제 마음 여행자들을 위한 책방을 연 것이다. 진지하지만 심각하지 않게, 장난스럽지만 소란스럽지 않게 2018년 문을 연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이로운 다정함을 배운다. 누구든 꺼내먹을 수 있는 귤바구니에서, 책을 펴고 앉아 생각을 다듬을 수 있는 나무 테이블 위에서, 은은하게 공간을 감싸는 삼양의 햇빛 안에서 우리는 안심한다. 아무렴 세상은 바쁘고 험하다는데, 이곳에는 느리고 안전한 다정함이 쌓이고 있다니, 그런 장난 같은 이야기가 고마워서 우리는 안심한다.

 

제주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소심한 책방’도 제주 책방 순례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다. 책방이면서 ‘밑줄’이라는 출판사도 함께 운영하는 이곳은 2019년 봄, 두 번째 책 《당신은 당근을 싫어하는군요 저는 김치를 싫어합니다》를 펴냈다. 제주에서 양식당을 운영하는 조리사의 에세이를 담은 책이다. 도서뿐만 아니라 ‘요망진’ 솜씨로 직접 제작한 엽서와 달력, 포스터도 책방 한쪽을 빛낸다.

 

 

(p.76)

간간이 책표지 뒷장에 끼워진 추천사 종이. 하물며 이 종이조차 서점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소심한책방 스텝이 읽고, 살며시 알려주는 이 책 이야기>. 꼼꼼하고 차분한 어조로 쓰인 문장을 읽으면서,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곳곳에 붙여놓은 안내를 살피면서, 나는 이 서점을 요망지다고 느꼈다. 제주말 ‘요망지다’는 사람이나 물건이 실하게 야무지고 영특한 것을 의미한다.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일지언정 요망지게 굳세고 빈틈없을 때 그것은 거센 바람으로부터 소중한 것을 지키는 둑이 된다. 그러므로 ‘소심한 서점’이라는 밭담 아래 책과 마음은 나날이 덜 소심하게 튼튼해졌을 것이다.

 

지은이가 안내하는 요망진 책방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책장을 덮을 때쯤은 비행기를 타고 제주의 책방으로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바다도 보고 오름도 보다가, 책방으로 가서 느지막이 책을 보며 커피도 한 잔 마시는 하루는 얼마나 충만할 것인가.

 

지은이의 말마따나, ‘그들은 책방보다 나은 장소 찾을 수 없어 그곳에 모인다’. 시름과 시간을 잊기에 책방만 한 곳도 없다. 그만큼 책방은 힘이 세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인 ‘작은 책방은 힘이 세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제주 책방을 모아둔 책이니만큼 ‘제주 책방은 힘이 세다’고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아무튼 올해 제주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리고 제주는 가봤어도 제주에 있는 책방은 가보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꼭 들러보자. 제주 책방이 건네는 ‘어떤 이로운 장난’이 마음속 깊이 위안을 줄 것이다. 제주 책방은, 더더욱 힘이 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