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한 인물이 앉아 있습니다. 그는 붓을 잡고 있습니다. 두꺼운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데, 붓을 잡은 손을 보니 흔히들 쓰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입니다. 이제 그는 갈아놓은 먹물이 담긴 벼루에 붓을 쿡 찍습니다. 곧이어 툭툭 찍듯이 획을 시작합니다. 달 ‘월(月)’ 자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금세 비슷할 ‘사(似)’ 자와 붉을 ‘단(丹’) 자, 그리고 팔을 튕기듯 움직여 빛 ‘광(光)’을 만듭니다. 그렇게 그 인물은 오직 왼손에 쥔 붓 하나로 칠언(七言) 연구(聯句) 하나를 써냈습니다. 달은 불그레한 빛을 띠며 높은 고개서 나오고 月似丹光出高嶺 학은 매화나무가 있기에 앞산에 머무르는구나 隺因梅樹住前山 청나라 때 대학자 완원(阮元, 1764~1849)이 항저우[杭州] 갈림선원(葛林禪院)에 써 붙였다는 구절입니다. 그러고는 작은 붓을 들어 다시금 먹을 묻히고, 큰 글자 옆에 작은 글씨로 낙관(落款)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갑니다. 이 일련(一聯)은 시의 경지가 매우 높아 마치 우아한 사람을 대하며 그림을 읽는 것만 같다. 마침 초우(艸禺) 선생이 글씨를 부탁하기로, 검여(劍如)가 이에 응한다. 此一聯 詩境極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늦가을 인사동 거리, 못생긴 얼굴 같은 글씨로 서예전을 알리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한얼 이종선이란 분의 서예전인 모양인데, '七十而已'(칠십이이)라는 전시회 이름이 특이합니다. 개막식장에서 전시회의 주인공은 '칠십이이'라는 말은 "제 나이 칠십입니다" 혹은 "칠십이 되었군요"라는 뜻이랍니다. 고희를 맞아 그동안 작품활동 한 것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지나간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는 겁니다. 전시장 안의 글씨들은, 한자 한문도 있고요, 한글 서예작품이 많은데, 뭐 글씨가 삐뚤삐뚤, 들락날락, 흐느적 흐느적... 보통의 서예글씨가 아니라 마치 글자들이 춤을 추는 그런 작품이더라고요. 요즘 사람들이 많이 언급하는 말 메멘토 모리, "언젠가는 우리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런 무시무시한 말이 뭉툭 뭉툭한 채로 눈에 들어옵니다. 흔히 세로로 쓰는 작품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읽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은 왼쪽에서부터 읽도록 했고, 작은 글씨도 우리가 언젠가는 인생이란 역에서 내려야 한다는 내용을 깔고 있는, 제법 의미가 있는,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글귀를 마치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