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친정 가는 길 - 김경숙 보물을 찾으러 가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마음은 벌써 우슬재를 넘어 친정집 대문을 들어서고 있다 눈앞에 전개되는 정겨운 오월의 풍경 어줍은 표현으로 감당하기 벅차다 오전 11시 휴대폰이 울린다 오메 어디쯤 오고 있냐 머나먼 길 힘들 텐데 어버이날 안 오면 어쩐다고 일부러 시간 내서 온다냐 나야 딸들 오니께 좋기는 하다마는 어쩌든지 운전 조심하고 천천히 오니라 오후 12시 30분 전화를 받으신다 어디냐 겁나 시장하것다 니그들 오면 같이 묵을라고 밥 안 묵고 기다리고 있다 읍내 장날 가서 좋아한 것 사다 국도 끓이고 낙지 초무침하고 게장도 만들어 놓고 맛나게 점심 준비해 놨응께 조심해서 오니라 오냐 오냐 뚜 뚜 뚜...... 동네 어귀 노송 한 그루, 버팀목에 의지한 채 흔들리며 서 있다 고향 들녘 보리밭, 눈 안에 잠긴다. 조선시대는 “처가와 변소는 멀어야 좋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사돈 사이 왕래가 거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때는 여성 특히 며느리의 나들이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특히 예전 전통사회에서는 집안일은 물론 농사까지 함께 해야 했기에 며느리들이 며칠씩 집을 비우며 친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바늘 - 황여정 입에 발린 말 가식을 빼고 나니 너무 깡말라 여유가 없구먼 그래도 올곧기는 제일이라 콕 찌르듯 한 땀이 지나간 자리 툭 터진 곳도 스윽 봉합이 되고, 조각조각 맞추니 포근하게 감싸주는 이불도 되고 치마저고리 바지 적삼까지 또박또박 지어내는 일침의 미덕 뒤끝, 참 깔끔하다. “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한 품질과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물중(物中)의 명물(名物)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추호(秋毫)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능라(綾羅)와 비단(緋緞)에 난봉(鸞鳳)과 공작(孔雀)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神奇)함은 귀신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人力)이 미칠 바리요.” 위는 조선 순조 때 유씨(兪氏) 부인이 지은 수필 <조침문(弔針文)>에 나오는 바늘 부분 일부다. 겨울에는 솜을 두둑이 대고 누비옷을 만들어 자식들이 추위에 떨지 않게 해주시고 겨우내 식구들이 덮을 이부자리를 손보느라 가을철이 되면 낮에는 밭에 나가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늦은 밤까지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하시던 모습을 이제는 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