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눈깜짝할 사이에 답을 건네는 지은슬기(인공지능)과 눈길을 사로잡는 짧은 움직그림들이 넘쳐나는 요즘, 우리는 저도 모르게 '빠름'이라는 홀림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보다 앞서지 못하면 뒤처질 것 같다는 마음졸임에 쫓겨 설익은 열매들을 서둘러 거두느라 스스로를 들볶기도 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서두르지 않아도 철은 어김없이 바뀌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 고요한 흐름 속에서 저마다의 빠르기로 부지런히 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조급한 발걸음들을 잠시 멈추고 내 삶의 소중한 조각들을 가만히 붙잡아둘 낱말 하나를 꺼내 봅니다. 바로 '적바림'입니다. 본디 '적바림'은 나중에 참고하기 위하여 글로 간단히 적어 두는 일, 또는 그 기록을 뜻합니다. 이는 대단한 외침이나 시끌벅쩍한 소문 없이도 세상의 밑바탕을 바꾸어 놓는 '시나브로'의 힘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한 번의 투자로 큰 부자가 되거나 짧은 공부로 실력이 부쩍 늘기를 바라며 '한 방'이라는 끝에만 목을 매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삶의 무르익음은 그렇게 벼락처럼 찾아오지 않습니다. 수많은 깨달음이 시나브로 쌓여 커다란 흐름을 만들듯, 오늘 내가 읽은 글 한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꽃샘잎샘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어느덧 짙어진 봄기운이 땅의 틈새마다 삶의 숨결이 차오르는 요즘입니다. 차가운 겨울을 지나온 탓에, 세상이 건네는 다정한 손길 하나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곤 하지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과 사람들 사이에는, 사실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살가운 온기가 가득합니다. 오늘은 닿는 것마다 정겨운 숨결을 불어넣는 우리말, '살갑다'를 통해 우리 삶의 결을 다시금 톺아보려 합니다. '살갑다'는 참으로 여러 가지 낯빛을 지닌 낱말입니다. 먼저 마음씨가 부드럽고 상냥할 때 우리는 이 말을 씁니다. 살가운 정을 나누는 사이란, 상대의 허물을 탓하기보다 그 마음의 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깊이에서 피어납니다. 또한 물리적으로 닿는 느낌이 가볍고 부드러울 때도 살갑다고 말합니다. 살랑이는 봄바람이 뺨을 스치듯, 그 촉감이 마음에 닿을 때 우리는 비로소 평온을 느낍니다. 때로는 오랫동안 머문 집이나 물건처럼, 정이 듬뿍 든 대상에게도 이 말을 건넵니다. 더 나아가 속이 너르고 넉넉한 대상에게도 쓰이니, 결국 살갑다는 것은 바깥의 차가움을 이겨내고 내면의 따스함을 밖으로 길어 올리는 모든 정성을 뜻하는 셈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멧자락(산자락)을 따라 흐르는 냇물은 곧게만 나아가지 않습니다. 때로는 큰 바위를 만나 비껴가고, 때로는 넓은 들판을 만나 느릿하게 춤을 추듯 흘러갑니다. 우리가 사는 삶도 언제나 반듯한 큰길이기를 바라지만, 참된 자람은 굽이진 길 위에서 더 깊게 무르익곤 합니다. 날마다 마주하는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어쩌면 우리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빚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굽이돌다'는 길이나 물줄기가 굽어서 돌아 나가는 모습을 뜻하는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메(산)나 들을 따라 길게 뻗은 길이 한 번씩 꺾이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뒤를 돌아보거나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여유를 얻습니다. 그저 나아가는 쪽을 바꾸는 움직임을 넘어, 이 말 속에는 거친 세상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슬기가 담겨 있습니다. 억지로 곧게 펴려 하면 부러지기 쉽지만, 굽이치며 흐르는 물은 그 어떤 막힘도 거스르지 않고 끝내 바다에 닿습니다. 막다른 길이라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더 넓은 풍경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이 바로 이 낱말 속에 녹아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멈추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는 마음에 쫓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세상이라는 커다란 톱니바퀴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닳고 깎이며 살아갑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멍든 마음을 제대로 살필 겨를도 없이, 누군가에게는 칭찬받기 위해, 또 누군가에게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마음이 고단해져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날이면, 우리는 어디서 위로를 찾아야 할까요. 쉼 없이 몰아치는 삶의 물결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 다독이는 아주 값진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다독이다'는 흩어지기 쉬운 물건을 모아 가볍게 두드려 누르는 손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또한 아기를 재우거나 달래고 귀여워할 때 몸을 가만가만 두드리는 살가운 몸짓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이는 남의 모자란 점을 따뜻이 어루만져 감싸고 달래는 마음의 움직임을 뜻하기도 하지요. 마치 흐트러진 나뭇짐을 정성껏 매만져 단단히 묶어두듯, 헝클어진 마음의 결을 바로잡는 정갈한 마음이 이 말 속에 녹아 있습니다. 거친 세상을 살며 날카로워진 마음의 모서리를 이 낱말로 둥글게 갈고, 지친 영혼에 온기를 불어넣는 귀한 매듭을 지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잣대에 맞추느라 정작 가장 소중한 제 속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공공기관에서 길나무(가로수) 가지치기를 할 때 '전정'이라는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을 꼬집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이는 단순한 용어의 문제를 넘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소홀히 여기는 행정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앙상하게 잘려 나간 나무들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성과라는 잣대에 맞춰 삶을 조급하게 다듬으려 했던 마음과도 닮아 있습니다. 오늘은 겉모습은 조금 볼품이 없을지라도, 바뀌지 않는 됨됨이로 삶의 자리를 지켜온 여러분에게 '그루'라는 말을 조용히 건네고 싶습니다. '그루'는 본디 풀이나 나무를 베어 낸 뒤 땅에 남아 있는 그 아랫동아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비록 윗부분은 사라졌을지라도 그 안에는 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나이테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다시금 새순을 틔울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이 숨어 있지요. 우리는 흔히 무언가 온전히 남아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덜어내고 남은 그 자리에서야 비로소 진짜 내 모습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한 그루, 두 그루처럼 수를 세는 하나치(단위)로 쓰일 때 이 말은 저마다의 생명이 가진 고유한 값어치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바람 끝에 묻어나는 냄새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차가운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던 마음이, 어느덧 다가온 봄기운에 녹아내리는 듯한 요즘입니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것은 어느 하나 홀로 머물지 않고,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며 흐릅니다. 멈춘 듯 보여도 저마다의 빠르기로 제 자리를 바꿔가는 자연의 순리처럼, 우리네 삶 또한 그렇게 서로 어우러지며 이어지는 법이지요. 오늘은 이렇듯 세상의 다정한 엇갈림을 담은 ‘갈마들다’라는 말을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갈마들다’는 본디 ‘서로 번갈아 들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흔히 쓰는 '교대하다'와 비슷한 말인데, 한 사물이 가고 다른 사물이 그 뒤를 이어 들어오는 모양새를 뜻하는 이 말은, 마치 썰물과 밀물이 바닷가에서 조용히 자리를 맞바꾸는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자가 섞이지 않은 우리 토박이말 속에는 이처럼 ‘교체’나 ‘교대’라는 딱딱한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깃들어 있습니다. 앞서간 이가 길을 터주면 뒤따르는 이가 그 길을 걷고, 다시 그 뒤를 새로운 희망이 채우는 흐름 말입니다. 억지로 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갈마들며 세상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눈앞의 열매를 쫓느라 옆 사람의 낯빛도 살피지 못하고,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차가운 말들만 주고받는 풍경이 익숙해진 요즘입니다.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거리두기에 바쁜 모습들 속에서, 우리가 정말로 놓치고 있는 값어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서른 해 가까이 우리말의 숨결을 지켜온 저는, 오늘 이 삭막한 바람빛 앞에서 아주 보드라운 낱말 하나를 꺼내 봅니다. 바로 '곰살궂다'입니다. '곰살궂다'는 "태도나 성질이 부드럽고 친절하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요란한 친절이 아니라, 남이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살뜰히 챙겨주는 마음의 결을 말합니다. 참으로 귀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긴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내 이익과 손해만을 따지며 관계를 맺다보니 상대의 곁을 조용히 지켜주는 그 살가운 마음은 자꾸만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이제 '곰살궂다'는 넘쳐나는 경쟁 속에서 잊혀 가는, 어쩌면 조금 느리고 서툰 사람들만 가진 것이 되어버린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온봄달 3월 들어 처음으로 일터로 나가는 날이자, 새 학기가 시작된 학교는 마치 이제 막 먼바다로 떠나려는 배처럼 시끌벅적하고 분주할 것 같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기대로 눈을 반짝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보이지 않는 걱정도 조금씩 있을 거예요. 처음 앉아보는 자리, 새로 만난 동무들과 선생님. 아직은 잘 모르는 낯선 것들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이 마음을 그저 '긴장된다'거나 '떨린다'라고만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 마음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첫날을 맞은 여러분께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은 말은 바로 '설레다'입니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자꾸 들떠서 두근거리다. '설레다'라는 말은 '설다(낯설다)'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설레는 까닭은 그것이 '낯설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설렘은 그저 기분이 좋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만났다는 신호입니다. 참으로 생명력 넘치고 두근거리는, 예쁜 말이지요.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곧 자라나는 시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이 '설렘'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곤 합니다. 조금만 낯설어도, 조금만 서툴러도 '불안하다'거나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세상이 온통 ‘빠름’이라는 홀림에 걸린 듯합니다. 인공지능이 눈 깜짝할 새 답을 내놓고, 짧은 움직그림들이 우리의 눈길을 훔쳐가는 때입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지 못하면 뒤처질 것 같은 마음졸임에, 우리는 늘 숨 가쁘게 열매만을 쫓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바뀜이 없으면 허탕이라 단정 짓고, 어제와 같은 오늘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들볶곤 합니다. 서른 해 가까이 토박이말의 숨결을 지켜온 저는, 오늘 이 조급한 발걸음들 앞에 아주 고요한 낱말 하나를 놓아두려 합니다. 바로 ‘시나브로’입니다. 본디 ‘시나브로’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쌓였던 눈이 햇살에 녹아 흐르는 소리, 철이 바뀌며 나뭇잎의 빛깔이 옅어지는 모습처럼, 온누리가 일구어내는 가장 참된 속도를 말합니다. 거창한 외침도, 요란한 소문도 없이 세상의 밑바탕을 바꾸어 놓는 끈덕진 힘이 이 말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바뀜’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시나브로’가 일구는 놀라운 일을 믿지 않습니다. 한 번의 투자로 큰 부자가 되길 꿈꾸고, 한 달의 공부로 실력이 부쩍 늘기를 바랍니다. 거치는 길이 켜켜이 쌓여야 비로소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날마다 보거나 듣는 기별 가운데 이웃 사이의 험악한 다툼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립니다. 위층에서 들리는 쿵쾅거림, 앞차의 갑작스러운 끼어들기에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날을 세웁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정이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살피기보다 내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거친 말을 쏟아내기 바쁩니다. 서른 해 가까이 우리말을 갈고닦아 온 저는, 오늘 이 메마른 누리에 함께 생각해 볼 낱말 하나를 다시 꺼내 봅니다. 바로 '알뜰하다'입니다. 우리는 흔히 '알뜰하다'고 하면 돈을 아껴 쓰는 것만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말의 참 알맹이는 '정성이 지극하고 속이 깊다'는 데 있습니다. 옛 어른들은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도 "참 알뜰하게 챙긴다"는 말을 쓰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겉치레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 구석구석까지 정성을 다해 살핀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내 지갑 속 돈은 '알뜰하게' 아끼면서,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알뜰하게' 살피는 데는 너무나 짭니다. 이웃의 사정을 깊이 이해하려 들기보다 내 불편함을 먼저 내세우고, 상대의 처지를 정성껏 헤아리기보다 내 화풀이를 먼저 합니다. 사람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