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반갑습니다. 우리말의 결을 살려 마음을 보듬는 '토박이말 결지기'입니다.
그림 속, 차가운 새벽 물안개가 자욱한 바닷가에 홀로 선 남자의 굽은 등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수평선 너머로 이제 막 떠오르는 해는 수줍은 듯 온 세상을 귤색 빛으로 물들이고 있네요.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스치고, 모래톱 위 작은 노란 리본과 종이배는 그 바람에 실려온 듯 낮게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의 눈길은 저 먼바다, 어쩌면 그날의 기억이 멈춘 곳을 향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열두 번의 봄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이 계절의 바람은 누군가에게는 따스한 꽃내음이지만, 그에게,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시리고 아픈 기억의 조각들을 실어 나르는 바람입니다. 오늘은 그 아픈 시간을 건너온 우리 모두의 마음을, 그림 속 따스한 아침 햇살처럼 가만히 보듬어보려 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뚜렷이 '새기다'
열두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것은 우리가 그날의 약속을 잊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기억식에서 전해진 "국가가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과 희생자들을 향한 추모 소식은, 그림 속 떠오르는 해처럼 우리 사회가 여전히 그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 빛으로 나아가려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마음 나눌 토박이말은 '새기다'입니다.
'새기다'는 보통 글씨나 무늬를 단단한 나무나 돌에 파 넣는 것을 말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이름이나 교훈을 가슴속에 깊이 남길 때도 이 말을 씁니다. 단순히 머리로 기억하는 것을 넘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지워지지 않게 하는 정성스러운 몸짓이 바로 '새기다'입니다. 그림 속 남자가 바다를 바라보며 그날의 기억을 오롯이 가슴에 새기듯, 304명의 희생자가 남긴 못다 핀 꿈을 우리 가슴에 아프게 새기는 까닭은 다시는 그런 시린 봄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기억의 힘이 우리를 지켜줄 거예요
슬픈 기억을 마주하는 것은 참으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때로는 그 아픔이 너무 커서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림 속 노란 리본처럼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고 그 이름을 함께 새길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한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그 먹먹함은 결코 헛된 슬픔이 아닙니다.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당신의 그 착한 마음이,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의 손을 한 번 더 꼭 잡아주세요. 그림 속 어둠을 헤치고 떠오른 해처럼, 우리가 함께 새긴 기억들이 모여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줄 것입니다.
[마음 나누기]
그림 속 차가운 물안개를 헤치고 떠오르는 아침 햇살처럼, 매년 돌아오는 봄. 여러분이 잊지 않고 마음속에 꼭 새겨두고 싶은 소중한 약속이나 이름은 무엇인가요?
[한 줄 생각]
"아픔을 잊지 않고 새길 때, 같은 슬픔은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새기다
뜻: 잊지 않도록 마음속에 깊이 남기다. 또는 글씨나 무늬를 어떤 물체에 파 넣다.
보기: 그날의 다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집을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