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07년 전인 1919년 오늘(1월 21일) 고종황제는 묘시(卯時, 아침 5시부터 7시까지)에 덕수궁 함녕전에서 갑자기 세상을 떴습니다. 일제는 고종의 죽음이 뇌일혈 때문이라고 발표했지만 《윤치호일기》에 따르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매우 건강한 상태였던 황제는 죽은 뒤 혀와 이빨이 타 없어지고 온몸이 퉁퉁 부어오른 주검으로 발견되어 수의로 갈아입히기 위해서 입은 옷을 찢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독살당한 주검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하지요. 고종이 ‘강제 양위식’을 당한 뒤 채 3년이 지나지 않아, 대한제국은 일본과 병합되었습니다. 고종은 그 뒤 을사조약이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임을 알리기 위해 특사를 네덜란드 헤이그로 파견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자주와 독립’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고종이 일제로서는 눈엣가시였을 것이고 이 때문에 독살했을 것이라는 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후 고종의 장례식이 3월 3일로 결정되자 명백한 황제 독살 정황을 전해 들은 백성들은 태극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황제가 만든 탑골공원에서, 황제의 궁궐이었던 경운궁 대안문 앞에서, 그들은 식민지 백성이 아닌 이미 망해버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20세기 초 일제의 야욕으로 대한제국이 위기에 처하자, 당대의 많은 지식인, 유학자들은 항일구국운동에 나섰다. 당대에 영남에서 명망을 얻고 있었던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1851~1926)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석영은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주요 조선인들의 회유를 목적으로 제공한 은사금을 단호히 거절하였으며, 항일 운동가들과 함께 만주와 시베리아를 답사하고 《요좌기행》을 남기기도 하였다. 장석영은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파리장서(巴里長書)’의 초안문을 작성하였으며, 성주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다. 장석영은 석방된 이후 성주지역 독립운동의 전개와 옥중 생활을 정리해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이 바로 《흑산일록》이다. 그런데 후일 기억에 상당 부분 의존하여 작성된 까닭인지 《흑산일록》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거나 소략한 내용들이 있다. 인동장씨 남산파 회당고택에서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에 기탁한 《회당부군유묵》에 포함된 장석영의 옥중 편지가 그중 하나다. 일제를 척결하려다가 투옥된 노년의 유학자 회당 장석영은 인동장씨 29세로, 여헌 장현광의 증손 만익의 여섯째 아들 대해의 후손이다. 장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05년 전, 기미년(1919) 3월 1일을 기해 일제침략에 맞서 당당히 빼앗긴 나라를 찾고자 만세운동을 벌였던 선열들의 투지를 기념하는 행사가 어제(21일) 용인에서 있었다.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근현대미술관담다(관장 정정숙)에서 낮 2시부터 열린 <3.1운동 105주년 특별기획전> 개막식은 105년 전 3월 21일, 용인지역 첫 만세운동을 기려 해마다 이날을 잊지 않고 선열들을 기리는 추모행사로 이어지고 있으며 특별기획전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어제 막을 연 용인지역의 3.1만세운동 기념 <3.1운동 105주년 특별기획전>은 “기록ㆍ기억ㆍ기념”을 주제로 한 '예술로 승화된 특별기획전'으로 매우 의미있는 개막식을 열었다. 개막식에서 정정숙 관장은 특별기획전을 여는 인사말로 “용인지역에는 3대(代) 독립운동가 오광선 장군님 가족, 2대(代) 독립운동가 홍재설 지사님 가족, 그리고 신민부 집행위 원장이셨던 김혁 장군님 등 수많은 분이 계십니다. 올해는 특별히 독립군가, 광복군가, 애국가, 국치가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노래 악보와 가사 등도 전시되며 한국 첫 여성 의병 윤희순 지도자가 직접 쓴 가사집도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