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고등학생 중학생까지 거리에 나와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목 놓아 외쳤으나 박근혜 정부는 기어이 국무총리 황교안과 교육부총리 황우여를 내세워 쫓기듯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라는 글을 읽었고, 텔레비전들은 그것을 온 국민에게 알뜰히 보여주었다. 게다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김정배는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과녁과 걸음이며 글 쓸 사람 모으는 일까지 발도 빠르게 기자들 앞에서 밝혔다.
▲ 황교안 국무총리 현행 역사교과서에 붉은 칠을 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그래서 이제는 뒷북치는 꼴이 되었으나, 아직은 첫발을 온전히 떼어놓은 것도 아니기에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청와대에서 나오자 여러 언론들이 시끄럽게 다루었지만, 설마 끝까지야 갈까 하면서 지켜보았으나 이제는 더 지켜볼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현실 문화의 흐름조차 도무지 가늠하지 못하는 박근혜 정부
무엇보다도 나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 교육의 첫 디딤돌인 인류 문명의 흐름은커녕 우리나라 현실 문화의 흐름조차 도무지 가늠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이길 수가 없다.
온 세상 사람이 모두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에 사회, 경제, 문화에서 세계 다섯째 나라 안에 들어섰다. 사회 쪽으로는 거듭된 독재 정권에 맞서 목숨 걸고 싸우며 백성이 임자인 나라를 이루었고, 경제로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열아홉 차례나 종합우승을 하고 지난 다섯 해 동안은 잇달아 종합우승을 독차지하며 경제 대국을 이루었고, 문화 쪽에서 체육은 세계인이 겨루는 동ㆍ하계 올림픽과 월드컵과 그밖에 온갖 겨루기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나라가 되었고, 예술은 노래와 춤과 드라마와 영화에서 이른바 한류를 일으키며 온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렇게 나라를 눈부시게 일으켜 세운 주인공은 이제나 저제나 모두 십대와 이십대 젊은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거의 한자를 배우지 않은 이른바 한글세대로서 지금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육을 그르치게 했다는 바로 그 검인정 교과서로 배우고 공부한 세대들이다. 우리가 지난날 한자와 한문을 힘써 가르치고 국정교과서로만 교육하던 시절에 오늘처럼 온 천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사회ㆍ경제ㆍ문화를 일으켰던 역사가 없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교과서를 빌미로 정권 연장의 굿판을 벌이는 것은 아닌가?
▲ 11월 3일 밤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규탄 긴급 결의대회'모습
그리고 또 안타까운 노릇은, 역사교과서를 빌미로 정권 연장의 굿판을 벌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국무총리와 교육부총리가 한결 같은 목소리로 지금의 검인정 역사교과서는 99.9%가 ‘편향된 역사’를 가르치도록 만들었다고 꾸짖었다. 그리고 그 ‘편향’의 증거를 낱낱이 들었는데, 모두가 우리 겨레에게 가장 뼈아프고 부끄러운 상처를 건드리는 일들이다.
제이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을 원자탄 두 개로 무릎 꿇린 연합국들이 저들의 욕심에 사로잡혀 터무니없이 우리나라 허리를 잘라 남북으로 나누었고, 그처럼 터무니없는 남북 분단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미국과 소련의 점령군을 등에 업은 이승만과 김일성이 남북에 저마다의 정부를 세웠다.
게다가 북쪽의 김일성이 난데없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남쪽으로 밀고 내려왔고, 꼬박 세 해 동안 우리겨레는 남북으로 갈라져 총칼로 서로를 죽이면서 온통 불바다에 빠졌다가 북의 김일성과 남의 유엔군사령관이 ‘싸움을 쉬자는 글’에 이름을 나란히 적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남북 어느 쪽도 싸움을 쉬자는 글은 찢어버리고, ‘싸움을 그치고 서로 사랑하며 복되게 살아가자’는 글을 만들어 남북의 책임자가 이름을 나란히 적자고 나서지 않았다. 이런 예순다섯 해의 현실 역사가 우리 겨레에게 가장 뼈아프고 부끄러운 상처인데, 남북의 집권자들은 이런 상처를 건드리면 정권을 굳힐 수 있다는 신비로운 비밀을 깨달았다. 정권이 흔들린다 싶으면 때를 잘 골라 흔들면서 사람들의 말에서 꼬투리를 잡고, 북에서는 그들이 남쪽을 돕는다 하고 남에서는 그들이 북쪽을 돕는다 하여 정권을 굳히고자 했다.
우리는 일찍이 정부가 그런 사람 “빨갱이”라 불렀고 그렇게 불린 사람들은 목숨을 빼앗겼다. 빨갱이’라는 말의 효험이 떨어지자 “용공분자”라는 말을 만들어 사람의 목숨을 빼앗더니, 요즘에 “종북좌파”라는 말을 만들어 겁을 주고 있다. 그런데 국무총리가 지금 쓰고 있는 검인정 역사교과서에 담긴 ‘편향된 역사’의 사례라고 짚은 것이 모두 북쪽을 돕는다는 것뿐이다. 일본이나 미국을 돕거나 중국이나 소련(러시아)을 돕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북쪽을 돕는 것만 그만큼 있다니 이것이 또 정권 연장 굿판의 길놀이가 아닌가 싶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기를 바랄 뿐이다.
박근혜 정부, 주입식 교육을 해보겠다는 건가?
▲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규탄 긴급 결의대회'에 등장한 손팻말
그보다도 더 안타깝고 한심한 노릇은, 박근혜 정부의 교육 일꾼들이 수를 헤아리지도 못할 만큼 많을 터인데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현장 사정에 이렇게도 어두운 사람들뿐이라는 사실이다. 국정교과서 하나만을 정부가 만들어 학교에서 교사들이 가르치도록 하겠다는 말은 그 한 책에 담긴 역사를 고스란히 아이들 머릿속에 집어넣겠다는, 이른바 주입식교육을 해보겠다는 뜻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유치원이든 초등학교든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그리고 그것이 어떤 과목이든, 책 한 권만 들고 주입식으로 읽고 풀이하고 외우고 시험 치는 그런 교육을 하는 교실이 어디에 있는가? 어쩌다가 어떤 단원이나 어떤 시간에 교사의 판단으로 주입식 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가물에 콩 나듯이 주입식 교육을 하는 때가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선생님 혼자 하세요.’ 하면서 모두 엎드려 자고 말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주입식 교육을 내버리게 만든 것은 교육부나 교육자들의 깨달음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 스스로의 본능이었다. 그들의 천부적 감각이 엎드려 자는 쪽이 더 유익하다고 판단해서 주입식 교육을 몰아냈는데, 그때 교육부나 교육 관료들은 그것을 보고 ‘교실이 무너졌다’ 떠들면서 아이들을 마치 죄인인 것처럼 나무랐다. 그러나 아이들의 그런 저항으로 우리 교육은 머지않아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묻고 답하거나 토론하고 토의하거나 창작하고 활동하는 교육으로 새로운 길을 열었다.
▲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 범국민대회”에서 한 고등학생이 "다각적, 공정한 역사교육!!, "국정화 반대"라고 쓰인 손팻말을 높이 들고 있다.
그뿐 아니라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면 인터넷 사이버 세상에 들어가 한없이 널려 있는 역사 지식을 얼마든지 입맛대로 받아들이고 비판하고 평가하는 세상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국정교과서라며 들고 주입식 교육을 하면 가만히 앉아서 듣고만 있겠는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느 교사가 이제 와서 국정교과서 하나만 들고 주입식 교육을 하여 아이들의 손가락질을 받겠는가? 학교마다 교육과정도 만들고 교사마다 교재도 만들어서 시대를 앞질러 나가는 교육을 하라고 국가수준 교육과정에서 권장한지가 언제인지나 알고 있는가 물어보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 역사의 웃음거리 되지 말기를
아직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첫걸음도 떼지 않았으니 박근혜 대통령부터 오늘 하루라도 밤을 새우며 가까이서 돕는 사람들과 더불어 깊은 토론을 벌여 역사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대통령, 새누리당 대표, 국무총리, 교육부총리, 국사편찬위원장 다섯 사람이 우리 현대사에 ‘역사 오적’으로 기록되지 않기를 참으로 빌면서 글을 끝낸다.
김수업 : 전 대구가톨릭대학 총장, 현 진주문화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