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한글을 사랑하는 단체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지난 10월 식품 대기업들이 “과자나 라면 등 식품의 이름을 포장지에 적을 때는 외국문자나 한자가 한글보다 커서는 안 된다는 기준” 폐지를 국무조정회의에 건의했는데 감사원에서는 식약처가 규제개혁에 소극적이라고 감사 결과를 내는 통에 다시 이 조항을 없애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요구는 한 마디로 상품 포장에 한글보다 영어나 한자를 더 크게 쓰겠다는 의미다.
이미 2014년 초에 에스피시라는 제과 업체가 규제개혁위원회에 외국 문자를 한글보다 크게 쓸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민원을 넣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한글단체와 소비자단체의 반대 여론에 귀를 기울여 이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식품 대기업들이 나서서 기준 폐지를 요구한 것이다.
* ‘식품 등의 표시 기준’ 제5조 2항
“표시는 지워지지 아니하는 잉크·각인 또는 소인 등을 사용하여 한글로 하여야 하나 소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자나 외국어는 혼용하거나 병기하여 표시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한자나 외국어는 한글표시 활자와 같거나 작은 크기의 활자로 표시하여야 한다. 다만, 수입되는 식품 등과 상표법에 의하여 등록된 상표 및 주류의 제품명은 한자나 외국어를 한글 표시 활자보다 크게 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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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게에 진열해놓은 수입과자, 온통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계 없음) |
한글을 사랑하는 단체는 말한다. “식약처에서는 식품 대기업들의 탐욕스런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결코 안 된다. 이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협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 가운데 하나인 한글을 짓밟는 짓이다.”
한국 땅에서 판매하는 식품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소비자 권리를 생각한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다. 그런데도 이미 외국 문자를 혼용, 병기하도록 허용한데다가 한글과 같은 크기로 쓸 수 있도록 규정하였으니, 이 정도면 기업이 국내에서 활동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더구나, 예외 조항까지 두어 상표로 등록한 경우에는 외국 문자 표시가 한글보다 커도 이를 막지 않는다.
그런데 상표를 등록하면 한글보다 외국 문자를 크게 쓸 수 있는데도 왜 이런 요구를 들이대는 것일까? 식품 기업들은 업 활동에 장애가 되는, 불필요한 규제라는 논리를 내세워 어차피 그렇게 할 수 있는 바에야 상표 등록에 비용과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만일 식품 이름에서 한글보다 외국 문자를 크게 쓸 수 있도록 무조건 허용해준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어느 나라 과자인지도 모를 상품이 시장에 넘쳐날 것이다.
기업 활동의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이처럼 규제를 하는 까닭은 우리 헌법 36조에서 정한 대로 국민의 보건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에 식품위생법 13조에서는 1항에서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오인·혼동시킬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 등 식품의 허위 표시를 금지하였고, 이에 따라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8조 1항에서는 허위 표시 및 과대광고의 범위 중 하나로 “외국어의 사용 등으로 외국제품으로 혼동할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 또는 외국과 기술제휴한 것으로 혼동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표시·광고”를 지정하였다.
그래서 ‘식품 등의 표시 기준’에서 외국문자나 한자를 한글보다 크게 쓰지는 못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식품 기업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 기준을 고친다면 이는 상위법에 어긋나며, 식약처의 월권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 편의점에 진열된 국산과자들. 앞으로 ‘식품 등의 표시 기준’ 제5조 2항이 수정된다면 저 과자들에서 한글은 찾아보기 어려울 듯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계 없음)
한글을 사랑하는 단체는 “누가 봐도 식품 기업들은 처음부터 상품 이름을 외국문자로 크게 써서 외국 제품처럼 보이겠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이런 눈속임을 마케팅이라고 우긴다면 기업이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조차 이행하지 않겠다는 심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식품 업체들의 주장이 참으로 뻔뻔하고 탐욕스러우므로 당장 물리쳐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식품은 사람의 건강에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규제할 수밖에 없으며, 외국에 수출할 상품에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외국문자를 크게 쓰겠다고 하지만, 수출비용 줄여서 이윤 키우려는 기업을 국민이 돕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한글을 사랑하는 단체는 또 주장한다. “식품 대기업의 이윤이 한글의 가치보다 더 소중할 수 없다. 식품 등의 표시는 일반 국민, 그 가운데서도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이 매우 자주 접하는 문자환경인데, 여기에 외국 문자가 크게 부각될 경우에 우리 생활 어느 곳에서나 외국 문자를 마구 남용하는 문화를 부추기고 한글은 우리말을 적기엔 기능이 부족한 글자라는 편견을 부를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 전반의 의사소통에 혼란을 주어 장기적으로는 공무 행정이나 기업 활동, 보건의료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소통을 위한 추가 비용을 지출하게 할 것이다. 당장 몇몇 식품 기업 이윤 챙겨주다가 온 국민이 고생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한글을 사랑하는 단체는 식약처에 다음의 것들을 요구했다.
“1. 식약처는 식품 표시 기준 개악을 당장 중지하라.
2. 축산물 등의 표시기준에 한글 크기 기준을 살려내라.
3. 식약처는 한글 우선 표시로 소비자 안전을 지켜라.
4. 대기업에 놀아나고 있는 국무조정회의와 감사원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라.“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단체 갈물한글서회,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운동본부,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국어순화추진회, 밀물무용예술원, 생활국어연구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세종대왕나신곳성역화국민위원회, 세종한글서예큰뜻모임, 세종한말글연구소, 외솔회, 우리말글사랑행동본부, 우리말로학문하기,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짚신문학회, 참교육위한전국학부모회, 참여연대민생희망본부, 토박이말바라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한겨레말글연구소, 한국국어정보학회, 한국글꼴개발연구원, 한국땅이름학회, 한국어문기자협회, 한국켈리그라피디자인협회,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한국폰트산업협동조합, 한국폰트협회,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한글문화세계화추진본부, 한글문화연구회, 한글문화연대, 한글문화원, 한글문화협회, 한글바른말연구원, 한글빛내기모임, 한글사랑운동본부, 한글사용성평가위원회, 한글서예사랑모임, 한글서체연구회, 한글이름펴기모임, 한글재단, 한글학회, 한말글, 한말글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훈민정음연구소, 흥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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