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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청산리 영웅 홍범도, 카자흐스탄에 묻혀

티무르, 내가 일어나면 전 세계가 공포에 떨리라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1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티무르는 죽은 뒤에도 초자연적인 저주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20세기 초에 중앙아시아를 병합했던 소련의 고고학자들은 1942년 티무르의 무덤을 파헤쳐 그의 관을 열기로 결정했다. 이중으로 밀봉된 관 앞면에는 아랍어로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 새겨져 있었다.

 

“내가 일어나게 되면 전 세계가 공포에 떨게 되리라.”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이 경고를 무시하고 관의 첫 번째 봉인을 열었다. 그러자 두 번째 경고문이 나왔다.

“누구든지 내 무덤을 여는 자는 나보다 더욱 무서운 침략자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이 경고도 무시했다. 그리고 관을 열어 키가 180cm에 달하는 건장한 투르크인의 유골을 확인했다. 이로부터 불과 몇 시간 뒤, 결과적으로 티무르가 평생 살해한 수준(1,700만 명)의 소련인들이 불과 3년 만에 목숨을 잃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치 독일이 전격적으로 소련 침공 작전을 개시한 것이다.

 

우리는 티무르 박물관을 둘러본 후에 걸어서 인근에 있는 타슈켄트 자연사 박물관을 찾아갔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아랄해 사진이다. 아랄해에 두 개의 큰 강이 정상적으로 흘러들었을 때 아랄해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호수였다. 세계 3대 진미에 속하는 캐비어를 만드는 철갑상어가 아랄해에서 많이 잡혔다. 그러나 상류에 있는 목화밭에 관개용수를 과다하게 공급하면서 강물의 양이 줄어들었다.

 

소련 당국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사막에 아무다리야 강물을 공급하여 목화밭을 만들려고 1954년에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길이가 1,375km나 되는 운하는 1988년에 완공되어 목화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물이 줄어든 호수는 쪼그라들기 시작하였다. 자연사 박물관에 있는 아래 사진은 1987년, 1999년 그리고 2015년의 아랄해 크기를 보여준다. 강물이 줄자 염분이 높아진 아랄해에서 철갑상어는 사라져버렸다. 농업을 살리다 보니 어업이 죽어버린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오늘 타슈켄트 거리를 걷다 보니 거리에는 씨에로, 누비라 등 옛날 대우 자동차 종류가 많이 눈에 띈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타슈켄트 거리를 돌아다니는 차량 10대 가운데 8대는 옛 대우자동차 또는 한국GM 로고를 달고 있다고 한다.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외환위기(IMF) 전인 1993년부터 세계경영 방침을 추진하였다. 대우는 루마니아,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 동구권과 중앙아시아에 완성차 조립공장을 세우고 세계 자동차 시장 공략에 나섰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대우는 1996년부터 르망, 티코, 다마스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김우중 회장에게 반한 고 카리모프 대통령이 특별법까지 만들어서 대우 자동차의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버스는 대우차인 다마스다. 거의 모든 버스가 다마스로 운행하기 때문에 ‘다마스’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버스’라는 뜻으로 쓰일 정도라고 한다. 대우 자동차가 GM 쉬보레로 바뀐 지금은 쉬보레가 우즈베키스탄의 국민차가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은 북쪽에 있는 카자흐스탄과 경제적으로 협력은 하지만 한국-일본처럼 맞수 의식이 강하다고 한다. 소련 시절만 해도 중앙아시아 경제와 문화의 중심은 우즈베키스탄이었는데, 2000년대 이후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다양한 광물 자원, 활발한 제조업, 대외 개방 정책에 힘입어 카자흐스탄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하여 중앙아시아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2013년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기록하였다. 현재 카자흐스탄은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경제 발전에 가장 성공한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지난 2019년 4월 21일 우즈베키스탄 국빈 방문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가서 재외동포 간담회를 열었다. 그 뒤 문대통령은 카자흐스탄 수도인 누르슬탄에 도착해 나자르바예프 국제공항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계봉우 지사와 배우자, 황운정 지사와 배우자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시는 유해봉환식을 직접 주관했다. 나라밖에 묻힌 독립유공자 유해를 봉환하는 행사를 대통령이 주관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계봉우(1880~1959) 지사는 한글학자로서 상하이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고, 독립신문에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글을 게재했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뒤에도 민족 교육에 전념해 조선문법, 조선역사 등을 집필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황운정(1899~1989) 지사는 함경북도 종성과 온성 일대에서 3.1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이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무장 부대의 일원으로 대원 모집과 조선독립군 부대에 참여해 일본군과 전투를 하는 등 항일 무장독립투쟁을 하여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두 분 모두 카자흐스탄에서 숨을 거두었다. 국군은 이날 봉환식을 위해 전통의장대를 비롯해 군악대 75명을 카자흐스탄으로 파견하였다.

 

우리 정부는 카자흐스탄 측과 논의해 장차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을 추진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대첩의 주인공인 홍범도 장군은 원래 포수 출신의 의병장이었다. 그는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한 뒤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연해주에 정착하였는데 1937년 카자흐스탄 땅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 가까운 키질로르다에서 살다가 노년에는 고려인이 운영하는 고려극장에서 수위장으로 일하였다. 1942년에 그가 일하던 극장이 우스또베로 옮겨간 뒤에는 공장 노동자로 일하였다.

 

그는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43년에 노환으로 75살의 삶을 마감하였다. 너무나도 초라한 독립운동가의 말년이었다. 홍범도 장군의 묘지는 지금도 키질로르다 공동묘지에 있다. 스탈린이 죽고 소수 민족 탄압이 중지된 뒤에 그의 항일운동 업적은 인정을 받고 복권되어 지금은 키질로르다에 홍범도 거리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