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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에덴동산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아제르바이잔 1992년 한국과 수교, 재외동포 200명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1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은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를 떠나 아제르바이잔의 바쿠로 이동하는 날이다. 병산의 원래 계획은 배를 타고 카스피해를 건너는 것이었는데, 유람선이 운항을 중단했다고 해서 비행기로 이동하기로 했다. 우리는 간단히 아침 식사를 끝내고 숙소를 청소하였다. 우리는 타슈켄트 공항에서 낮 12시 30분에 출발하는 아제르바이잔 항공사 비행기를 타야 한다. 우리가 5일 동안 머물렀던 민박집 주인에게 열쇠를 반납하니 그녀는 친절하게도 우리를 공항까지 승용차로 태워다 주었다.

 

두 시간 비행 후에 우리는 카스피해의 연안 도시인 바쿠 공항에 도착하였다. 바쿠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수도로서 석유 생산기지로 알려져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인접한 아르메니아. 그리고 조지아와 함께 코카서스 3국으로 불린다.

 

 

여행사의 광고문을 보면 코카서스 3국을 ‘신화와 전설의 나라’라고 표현하였다. 왜 이러한 표현이 나왔을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코카서스(Caucasus)산맥이 이 세상 끝의 경계선이라고 생각했다. 코카서스산맥은 평균 고도가 유럽의 알프스산맥보다 더 높은데, 중부 코카서스에는 알프스의 최고봉인 몽블랑(4,807m)보다 더 높은 봉우리들이 12개나 솟아 있다. 이 산맥은 유럽의 흑해에서 시작되어 카스피해까지 장장 960km 길이로 뻗어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 간의 경계선을 형성한다. 과거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코카서스산맥을 경계로 남북간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반신반인(半神半人)인 프로메테우스가 속임수를 써서 하늘나라에서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전달하였고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의 분노를 샀다.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서스의 카즈벡봉(5,047m)으로 추방되고, 그 산의 암벽에 쇠사슬로 묶인 채 독수리들이 날마다 그의 간을 파먹는 형벌에 처해졌다. 훼손된 간은 매일 자라나 원상 복구되기 때문에 프로메테우스는 반복되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헤르쿨레스(제우스의 아들)가 프로메테우스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다고 그리스 신화는 말한다.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 푸슈킨이 코카서스에서 시적 영감을 얻기 위해 이곳까지 여행한 적이 있고, 프랑스 소설가 뒤마와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의 작품 속에도 코카서스가 등장한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아제르바이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정보가 나온다.

 

아제르바이잔은 코카서스산맥 남동쪽에 있다. 인구는 990만 명(2018년)이고 면적은 87,000 km2로서 남한(10만km2)보다 작다. 민족 구성은 아제르바이잔인이 90%를 차지하며 아제르바이잔 언어를 사용한다. 이슬람 인구가 93%를 차지하는데, 기독교 국가인 이웃 나라 아르메니아와 사이가 좋지 않다. 수도는 바쿠(인구 220만)로서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이다.

 

바쿠 유전은 19세기 초부터 소련의 중요한 석유 생산기지였다. 아직도 카스피해의 유전에서 상당량의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모든 교육이 무상으로 이루어지며 보건위생 수준도 매우 높다. 몇 세기 동안 이 지역을 두고 아랍ㆍ투르크ㆍ몽골ㆍ이란이 싸웠다. 수차례에 걸친 전쟁은 19세기 초에 러시아가 이란으로부터 아제르바이잔의 대부분 지역을 빼앗는 것으로 끝을 맺었지만, 아제르바이잔 남쪽에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이 남아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1991년에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뒤 1992년 3월에 한국과 수교했으며 한국은 2007년에 바쿠에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을 개설했다. 2006년 5월에 노무현 대통령이 아제르바이잔을 공식 방문했고 2007년 4월에 알리예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2017년 기준 아제르바이잔에는 200명의 재외동포가 있는데 바쿠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한국에는 2018년 기준 169명의 아제르바이잔의 등록 외국인이 살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에는 한글학교 5개가 설립되어 있어 교민과 아제르바이잔인의 한글교육에 이바지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을 여행한 한국 사람은 많지 않다. 인터넷에서 여행기를 읽어 보니 아제르바이잔 땅 어딘가에 에덴동산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에덴동산의 위치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았다.

 

창세기 2장 8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마련하시고 당신께서 빚어 만드신 사람을 그리로 데려다가 살게 하셨다.” 창세기 기자가 모세라고 볼 때 에덴은 팔레스타인의 동쪽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느님은 그곳에 자기가 만든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셨다는데, 그 에덴이 지금의 어디일까?

 

에덴의 위치에 대한 단서는 창세기 2장 10~14절에 기록되어 있다. “에덴에서 강이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비손 강과 기혼 강과 힛데겔 강과 유브라데 강을 이루었다.” 힛데겔 강은 지금의 이라크 땅을 흐르는 티그리스 강을 말한다. 유브라데 강도 중동 땅을 흐르는 실존하는 강이다. 그런데 비손강과 기혼강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 그 위치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중동의 여러 국가는 서로 자기네 땅이 과거 에덴동산이 있던 곳이라고 주장했다.

 

첨단 과학에 힘입어 고고학자들은 중요한 단서를 포착했다. 중동지역을 인공위성에서 촬영하니 옛날에는 강이었을 것 같은 거대한 흔적이 나타난 것이다. 인공위성 사진에서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생각되는 두 개의 하상(河床) 자취가 발견되었다. 첨단 과학에 의해 사라진 두 강의 흔적이 드러난 것이다.

 

영국의 고고학자 데이비드 롤(David Rohl) 박사는 1998년에 자신이 펴낸 책 《문명의 창세기》에서 “성경에 기록된 에덴동산의 위치가 오늘날 이란 북서부에 있는 ’아드지 차이 골짜기’다.”라고 주장하였다. 현재 이 지역의 중심에는 타브리즈라는 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타브리즈는 이란령 아제르바이잔 지방의 중심 도시로서 행정구역상으로는 아자르바이잔에샤르키 주의 주도이다.

 

 

우리는 바쿠 공항에 도착한 뒤에 버스를 타고서 시내로 들어갔다. 버스에서 내려 기차역으로 걸어가 3일 뒤에 바쿠에서 국경을 넘어 조지아 티빌리시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자리를 구할 수가 없다고 인터넷에 있는 여행기에 쓰여 있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예약한 호텔을 찾아갔다. 바쿠의 지하철은 약간 낡았지만, 깊이가 엄청 깊었다. 에스컬레이터로 오르고 내리므로 힘들지는 않지만, 깊이가 100m는 넘겠다고 생각되었다.

 

지하철에서 올라와서 병산이 한국에서부터 예약한 호텔로 연락하자 호텔 직원이 지하철 입구로 나온다고 한다. 조금 있다가 젊은이 한 사람이 왔는데, 호텔까지 거리가 멀지 않아서 걸어가기로 했다. 짐을 끌고서 젊은이를 따라 구도심 지역을 걸어가는데 옛날 성곽이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런데 호텔 직원이 걸어가면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 지금 공사중이어서 호텔 방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물이 안 나오면 샤워를 할 수 없고. 그러면서 젊은이는 다른 호텔로 안내해 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병산은 경험이 많은 순례자이므로 즉각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강경한 어조로 예약을 취소하였다. 나는 은근히 걱정되었다. 그러면 오늘 밤은 어디서 자야 하나? 그렇지만 병산은 전혀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차를 주문하여 마시면서, 병산이 손말틀(휴대폰)로 다른 숙소를 알아보았다. 구글 지도로 현재 위치를 검색하면 주변의 숙박시설에 관한 정보가 뜬다. 병산이 여기저기로 전화하여 빈방이 있는지 알아보더니 조금 후에 다른 숙소를 찾았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거리가 1km 정도 되는데, 걸어가자고 말한다. 순례단원인 나는 순례단장의 말을 따를 수밖에.

 

그런데 가방을 끌면서 숙소에 도착해 보니 방이 없다고 한다. 뭔가 의사소통이 잘못되었나 보다. 다시 여기저기로 전화한 후에 병산은 조금 비싼 호텔을 찾아내 예약하였다. 이제는 캄캄한 밤이 되었으므로 택시를 타면 좋겠는데, 병산은 가까운 거리는 걸어간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내가 생각하는 가까운 거리보다 병산이 생각하는 가까운 거리가 훨씬 멀다는 데에 있지만, 나는 순례단장의 말을 따라야 한다.

 

다시 짐가방을 끌고서 번화한 거리를 1km쯤 걸어갔다. ‘바쿠 시티 호텔’이라고 간판이 붙어있는 그럴듯한 숙소에 도착하였는데, 또 문제가 생겼다. 조금 전에 예약한 방은 모퉁이 방으로서 침대는 2개가 놓여있는데, 너무 비좁았다. 큰 방으로 바꿀 수는 있다는데 값이 상당히 차이가 났다. 병산은 다른 숙소를 찾는 것은 너무 늦었으니 비용이 들더라도 큰 방으로 바꾸자고 결정을 하였고 순례단원인 나는 순례단장의 결정을 따랐다.

 

오늘은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또 호텔을 두 번이나 바꾸면서 바쿠 시내를 여행 가방을 끌면서 걸어간 매우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