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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을 떠야만 비로소 볼 수 있다

늘 만나는 바람, 하지만 아무도 본 사람은 없다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22]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사람들은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한다. 백 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 이것은 사람들이 객관적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여러 가지 감각들 가운데서 시각 곧 보는 것이 차지한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시사해 주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의 많은 단어에는 “보다”라는 동사가 많이 곁들게 된다. 피아노 소리를 “들어+보다”, 아기 얼굴을 “만져+보다”, 꽃향기를 “맡아+보다”, 이밖에도 두드려 보다. 때려본다. 웃어본다, 울어본다. 밟아 본다, 핥아본다, 바쁜 척해본다. 예쁜 척해본다, 슬픈 척해본다, 놀란 척해본다… 본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다”라는 성구도 바로 장님이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생겨난 슬픈 옛이야기에서 온 말이다.

 

태초의 혼돈을 열고 한 주일의 시간으로 세상을 만드셨다는 그분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 눈을 띄워주어 아득히 펼쳐진 아름다운 들과 산과 강과 바다와 하늘을 보도록 하였으며 자신도 이 모두가 “보기 좋았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이 띄어준 눈은 다만 물체의 형태나 색깔 등을 가려보는 약 390미리 미크론에서 770미리 미크론 사이의 가시적인 시각만일 뿐 그보다 짧거나 긴 파장의 빛은 자외선이나 적외선을 알아차리는 기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더구나 감정이나 정서에는 퍽 인색하셨던지 감성의 눈, 지혜의 눈을 띄워주는 사과, “선악과”는 다치지 못하게 하였으며 사탄의 감언리설로 그 사과를 먹고 지성의 눈을 뜬 아담과 이브를 가차 없이 에덴동산에서 몰아냈다.

 

이렇게 우리가 눈을 떠 세상을 본다는 것은 아담과 이브의 맑은 눈동자에 서로 비껴진 건강한 골격과 근육 그리고 아름다운 몸매와 피부 그 자체뿐만 아니라 자기 몸의 그 어느 부분을 가리고 싶어 하는 부끄러움과 같은 마음의 눈도 함께 뜬다는 것이다. 이 마음의 눈을 더 크게 더 밝게 뜨기 위하여 우리는 때로 실제적인 눈을 감는 동작도 하게 된다.

 

 

 

어머님 보고플 때 눈을 감아보아라

해발 같은 웃음 안고 어머님 찾아오리

혼자서 외로울 때 눈을 감아보아라

잊지 못할 친구들이 하나둘 떠오르리

눈을 감아보아라

조용한 곳에 앉아

눈을 감아보아라

 

“눈을 감아라, 그러면 그대는 보게 되리라.”라는 유럽 격언을 우리의 아름다운 운율에 담아본 것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가 본다는 것이 시, 청, 촉, 미, 후 다섯 가지 감각 가운데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각으로 감각되는 것조차도 바닷물에 떠 있는 빙산의 일각 곧 사물의 절대 부분을 이루는 거대한 몸체는 감추어지고 27분의 1가량만이 조금 드러난 작은 부분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 창공에서 아스라히 빛나고 있는 수많은 별들, 우리의 꿈과 동경을 무한히 부풀게 하여주는 저 반짝이는 별들은 대체로 500광년, 1,000광년 그보다도 더 먼 거리 밖에 있다. 천문학에서 빛이 1년 동안 통과한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할 때 100광년 밖에서 지금 우리의 눈에 비쳐오는 저 별빛은 기실 그 별이 500년 전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500년은 하나의 왕조의 흥망성쇠를 기록한다. 조선왕조(505년)가 그렇고 그전의 고려왕조(474년)가 또한 그러하다.

 

이렇게 우리가 지금 본다는 것 그것마저도 정말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데 보이지 않는 것이야 또 어떻게 이를 수 있겠는가.

 

우리는 늘 바람과 만난다. 그러나 바람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저 바람이 흔드는 작은 나뭇잎과 바람에 밀려 흘러가는 한 조각 구름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릴 감싸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도 행복이라는 것도 그 자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다만 사랑이 가득 담겨 넘쳐나는 눈길과 행복으로 온 얼굴에 가득 피어나는 밝은 웃음을 볼 수 있을 뿐이며 그 따스한 손길로 이루어지는 사랑과 행복의 창조물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사랑이라든가 행복이라는 것은 한 줄기 바람과 같이 느낌으로만이 가늠할 수 있을 뿐이며 그 깊이와 크기는 다만 정감의 눈, 마음의 눈을 떠야만 비로소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마음의 눈을 떠서 바라보는 세계는 참으로 그 얼마나 더 넓고 더 크고 더 풍부하고 더 다채로운지 모른다.

 

우리가 본다는 것은 이처럼 마음의 눈에 띄어지는 그 순간부터일 것이다.

 

                                                                                        《연변일보》 1995년 7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