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세월 빠르다. 시간 빨리 지나간다는 말은 하면 바보인 것 같다. 엄연히 뻔한 진리인데 새삼 읊조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일 터. 그래도 현실인 것을 어떻게 하나.
누구처럼 새해가 되었다고 희망을 노래한 것이 언제던가, 벌써 일 년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새해를 맞아하려고 했던 몇 가지 일들은 반의반도 시작도 못 하고 또 어영부영 살다가 다 써버렸으니, 여름 장미꽃잎처럼 팽팽하고 빛나던 나의 꿈은 어느새 시들었고 다시 찬 바람에 가시마저도 숨구멍을 닫아야 하는 때가 되었다.
내일모레가 섣달그믐이다. 우리가 양력을 쇠니 양력으로 따져볼밖에.
섣달그믐이 어떤 밤인가? 해가 바뀌는 밤이다. 절서(節序)의 빠름은 전광석화와 같고, 시간의 흐름은 달리는 말이 문틈을 스쳐 가거나 뱀이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과 같단다. 시인은 해가 저물어 간다고 자신의 감회를 부쳐 읊고, 공자(孔子)는 세월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음을 탄식하며 한숨을 쉬었다.
평생을 내 집으로 생각하며 살던 회사를 나온 지도 벌써 해로 보면 두 자릿수에 가까워진다. 그전에는 선배들이 하던 대로 여행도 가고 놀기도 놀고 또 선배들의 도움으로 개인적으로 좋은 일도 없지는 않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1년을 아무것도 못 하고 후딱 보내고 나서 앞으로 남은 시간을 생각해보니 그 시간들도 이렇게 지나고 말 것인가 하는 걱정이 엄습한다.
忽寒忽暖已歲晏 추웠다 따뜻했다 어느덧 연말
乍雨乍雪何時晴 비 아니면 눈 오는 날 어느 때나 맑아질꼬
幽窓掩翳落照色 창문에 드리우는 떨어지는 해그림자
遠林號怒顚風聲 먼 숲엔 미친 듯 부르짖는 바람 소리
... 안타까운 마음[悶], 장유(張維, 1587~1638)
시간이 이다지도 빨리 흐르는 것은 우리가 시간에 이정표를 만들어놓지 않기 때문이라고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지만 사실 우리 선조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이정표를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이처럼 지난 시간에 관한 후회를 하는 것일 게다
곧 제야인데 다들 어떻게 맞을까?
悠悠疇昔事 유유하도다 지나간 옛일이여
忽忽此時情 뒤숭숭하도다 오늘날의 정세여
可耐他鄕裏 타향에 있는 이 몸 어찌할거나
仍將別歲爭 한 해도 시시각각 저물어만 가는데
... 제야(除夜). 최립(崔岦, 1539~1612)
獨閱塵編過夜半 먼지 낀 책 홀로 열람하며 야반을 넘기노라니
一燈分照兩年人 하나의 등불이 두 해의 사람을 나누어 비춰 주네
... 제야(除夜)에 홀로 앉아서, 이곡(李穀, 1298~1351)
하나의 등불 밑에서 한 해가 순식간에 엇갈리는 순간을 이리 멋지게 표현하다니.
하여간에 해를 헛되이 보내니 다시 내가 바보가 된 것 같다. 이 바보를 누가 사가지는 않을까?
街頭小兒呌 거리에서 소년들 외치고 다니면서
有物與汝賣 팔고 싶은 물건이 하나 있다고
借問賣何物 무엇을 팔려느냐 물어보니까
癡獃苦不差 끈덕지게 붙어 다니는 바보를 팔겠다고
翁言儂欲買 늙은이가 말하기를 내가 사련다
便可償汝債 값도 당장에 너에게 치뤄 주지
... 바보를 파는 아이(賣癡獃), 장유(張維, 1587~1638)
옛날 중국 오(吳)나라 풍속에, 제야(除夜)가 되면 어린아이들이 거리를 누비면서 “바보 사려” 하고 외치고 다녔다고 하는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꼭 필요한 새로운 일자리 아이디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저러나 코로나로 다니기나 할 수 있을는지.
한참 전에 맞은 60이라는 나이에서 60이란 숫자를 과거로 묻어버리고 나이를 새로 세어보자고 했는데, 그것은 그동안의 삶은 과거로 돌리고 다시 삶을 시작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일본의 민권운동가인 우에키 에모리(植木枝盛 1857~1892)가 그랬다고 하지 않는가?
"미래가 가슴에 있는 자, 그를 청년이라고 하고 과거가 가슴에 있는자 그를 노년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든 미래를 열어보자고 나이에서 60을 빼고 새로 나이를 세어가자는 것인데 그것이 그렇게는 되지 않는 것 같다. 60에다 다시 7, 8을 더 묻고 나이를 세어야 하겠다. 그래야 매년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마치 어린애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친구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는 것이 즐거웠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나이를 새로 세어보자. 초등학교에서 대학을 거쳐 배워온 자신의 전공과 자신의 직업을 과거 속에 묻어버리고 전혀 새로운 과목을 공부해보자.
전반의 생에서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을 새로 시작하는 거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은 너무 힘드니까 가슴으로 불 수 있는 관악기, 혹은 우쿠렐레 같은 악기를 배워 혼자만이 아니라 여러 명이 협주를 하는 것은 어떨까? 멋진 스텝으로 주위의 부러운 시선을 독차지할 수 있는 댄스를 배우는 것은 어떨까? 등산 등 운동도 과격하면 안 되니 쉬운 것으로 함께 하자. 그러나 기왕이면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그런 일을 찾아 친구들과 함께하면 더 좋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는데 결국 그게 생각 속에 머물고 말았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하루를 새로 맞는 것이 해마다 연초에는 즐겁고 기뻤지만 이제 되돌아보니 결국에는 또 허무한 시간만 보낸 셈이 되었다. 물론 책은 몇 권을 더 썼지만 다른 일은 하지 못했다. 오늘은 어제 세상을 하직한 그 많은 분이 그토록 바라던 바로 내일이라는데, 우리 앞에 놓였던 그 많은 내일을 그 사람들을 대신해서 값지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게 실천이라는 덕목으로 넘어가면 또 아니었다. 시간을 그냥 멍하니 보낸 것이 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지는 저녁 해를 보며 아쉬움과 탄식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희망과 의욕을 다시 가슴 속에서 만들어내자고 했지만, 타성 속에서는 그냥 하루하루를 보냈다. 코로나 핑계를 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결국엔 자신의 게으름과 무책임의 소산이다.
결국, 해는 기울었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절망해야 하는가?
아니다. 어쩌면 이제 지혜를 탐내거나 자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꾀 많은 사람이 여전히 설치지만 지혜가 많다고 자랑하던 사람들이 결국 다 시간의 변덕 앞에 굴복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지 않은가? 정치인들은 어떤가? 말로가 깨끗한 사람들이 그리 드문 우리나라 아닌가? 서로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서로 뭔가를 빼앗으려고 여전히 난리를 친다. 새해는 더 그럴 것 같다. 그럴 때 우리는 여기에 휩쓸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人生不願智 인생살이 지혜는 필요치 않아
智慧自愁殺 지혜란 원래 근심만 안기는걸
百慮散冲和 온갖 걱정 만들어 내 평화로움 깨뜨리고
多才費機械 별의별 재주 부려 책략을 꾸며내지
古來智囊人 예로부터 꾀주머니 소문난 이들
處世苦迫隘 처세는 어찌 그리 궁박했던가
膏火有光明 하게 빛나 기름 등불 보게나
膏火有光明 자신을 태워서 없애지 않나
... 바보를 파는 아이[賣癡獃], 장유
오히려 내가 다른 사람들의 바보를 사오겠다. 대신 나의 교활한 꾀를 건네주리라. 이제 웬만큼은 보이는 나이가 되었으니, 들으면 대충은 알아듣는 나이가 되었으니 교활한 욕심 버리고, 차라리 바보가 되어 세상을 낮은 데서 새로 시작해보리라.
“새해가 되었다. 군자는 새해를 맞으면 반드시 마음과 행동을 한번 새롭게 해야 한다.”
歲新矣 君子履新 必其心與行 亦要一新
... 두 아들에게 부치는 편지(寄兩兒), 정약용
어떻게든 다시 시작해보자.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곧 시간을 적분(積分)하지 말고 미분(微分)을 하면, 정말로 시간이 길어지고 온갖 아름다운 즐거움도 그 속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다시 시간을 재보고 시간을 새롭게 대하는 것이다. 그게 연말이라는 시간의 분기점을 만들어놓은 까닭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