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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것이 좋은 것이다

평창강 따라 걷기 제2구간 – 계속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평창강은 삼거리에 있는 유포교 아래로 흘러 도로의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유포교 중간 지점이 봉평면과 대화면의 경계가 된다. 유포교를 지나면 대화면 개수리다. 나중에 개수리의 어원을 《평창군 지명지》에서 찾아보았다. 마을에 둘레 약 2.6m의 큰 소나무가 외따로 떨어져 서 있는데, 이 소나무를 외솔배기 또는 독송정이라고도 부른다. 그 옆을 흐르는 큰 갯가에 소(沼)가 있어 개소라고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을 하면서 개수리(介水里)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물 사이에 끼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끼일 개(介)자를 써서 개수리라고 이름 붙였다고도 한다.

 

유포교를 지나 오른쪽을 바라보니 강가에 무리 지어 서 있는 갯버들에 물이 오른 모양이다. 버들강아지를 피우려고 준비하는지 가지 끝부분에서 옅은 초록색이 뚜렷하게 보인다. 개울가에서 잘 자라는 갯버들은 버드나무과에 속하는데, 키가 2~3m 정도로서 크게 자라지 않는 나무다.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데, 기다란 꽃이삭을 흔히 버들강아지라고 부른다. 조금 지나면 이곳 평창강가에도 사방에서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고. 화려한 봄이 곧 올 것이다. 봄이 기다려진다.

 

유포교를 지나 300m쯤에 금당교라는 조금 긴 다리가 나타난다. 강물은 금당교 아래에서 다시 길의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평창강은 구불구불 흐르는 대표적인 사행천이다. 평창강 시점에서 종점까지 직선거리로는 60km인데 길이로는 무려 220km나 된다. 금당교 지나 조금 내려가니 오른편에 ‘원경펜션’이 나온다.

 

 

원경펜션은 벽에 노란색 페인트를 칠해서 금방 눈에 띈다. 나는 오늘 걷는 도중에 여기에 들려서 차 한 잔 마시기로 주인장과 어제 통화를 했다. 주인장은 유상민 선생인데 작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대화면에서 열린 저녁 회식 자리에서 이분은 우연히 내 옆자리에 앉게 되어 명함을 주고받았다. 명함에는 직함이 ‘하서문학회장’으로 되어 있었다. 하서(河書)는 용평면 재산리에 사는 유명한 원로 수필 작가인 김시철 선생의 호이다.

 

유상민 회장은 대화에서 태어나 대화고등학교를 졸업한 이곳 토박이다. 유회장은 경찰 공무원으로 33년 근무하다가 2011년에 명예퇴직을 하였다. 이분은 퇴직 후에 금당계곡 평창강가에 있는 펜션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고 있다.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2016년에 월간 한국수필 3월호에 ‘겨울 초입의 금당계곡’과 ‘긴밤 지새우기’ 2편의 수필로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하서문학회는 출석 회원이 30명 정도인데 평창군의 대표적인 문학 동호인 모임이라고 한다.

 

유 회장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차를 대접하는 대신에 요즘에 많이 나오는 고로쇠물을 우리에게 두 잔씩이나 따라주셨다. 유회장님은 우리 네 사람에게 2018년에 출판한 <살살가>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사인해 주셨다. ‘살살가’는 노래가 아니다. 빨리 가지 말고 ‘살살 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게 살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도시에 살면서 바쁘게 살지 않으면 뒤처진다. 그러나 은퇴 후 시골에 살면서 바쁘게 살 필요는 없다. 은퇴 후에 바쁘다고 말하면 그는 잘못 사는 것이다. 은퇴 후에 바쁘게 사는 사람은 아직도 욕심이 있는 사람이다. 평창에서 살면서는 천천히 변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느리게 사는 것이 좋다. 차 운전도 느리게 하는 것이 좋다.

 

원경펜션에는 특이하게도 빙 둘러서 돌탑이 있다. 유 회장님은 2018년에 열리는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집 울타리에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2017년부터 만 1년 동안 그는 배낭을 메고 산과 강을 돌아다니며 돌을 주어다가 정성스럽게 돌탑을 쌓았다. 현재 원경펜션에는 작은 돌탑들이 모두 134개 있다고 한다. 2018년 2월에 평창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기간에는 날씨가 평년보다 매우 춥고 또 눈이 많이 와서 세계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아마도 하늘이 유 회장님의 기원을 들어주셨나 보다.

 

 

은곡은 분위기가 좋아서인지 판소리를 한번 해보겠다고 한다. 은곡은 춘향가 가운데 한 토막을 멋들어지게 들려주었다. 은곡은 특이하게도 의자에 앉아서 소리를 한다. 소리북도 의자에 올려놓고 친다. 내가 판소리를 배운 지 10년이 되는데 소리북을 의자에 올려놓고 하는 공연은 처음 본다. 은곡은 나에게도 소리를 한번 해보라고 청한다. 유 회장님이 잔디밭에 자리를 깔아주었다. 나는 북을 치면서 사철가를 불렀다. 석주가 나의 판소리하는 모습을 사진 찍었다.

 

 

 

유 회장님과 재회를 약속하며 헤어진 뒤, 평창강을 따라 계속 내려갔다. 조금 내려가자 왼쪽에 정자가 하나 보인다. 정자 건너편으로 별로 높지는 않은 절벽이 평창강과 어우러져 그럴듯한 경치를 보여준다. 정자에 다가가 보니 바닥은 흙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기와가 아니고 플라스틱 같다. 정자라기보다는 지붕이 있는 쉼터라고 불러야 적당할 것 같다.

 

 

쉼터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자 왼쪽에 다리 일송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덧개수터널을 지나 대화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 우리는 평창강을 따라 계속 직진하였다.

 

 

금당계곡로를 조금 더 내려가자 오른쪽에 ‘어름치캠프학교’라고 쓰인 커다란 간판이 나온다. 뒤로는 폐교 건물이 살짝 보인다. 폐교를 이용하여 여름에 캠프학교를 운영하는 모양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어름치는 잉어과의 물고기다. 길이는 약 12~14cm까지 자라는데 한반도 고유종으로서 한강 임진강 금강에서만 분포가 보고되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 근처 평창강에서 어름치가 사나 보다.

 

 

 

어름치캠프학교에서 강쪽을 바라보면 시멘트로 만든 작은 다리가 보인다. 차가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매우 좁고, 큰물이 나면 쉽게 잠길 것 같은 낮은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마을이 있다고 한다. 은곡은 평창에서 36년이나 살았기 때문에 이곳 지리를 잘 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걷고 있는 424번 도로가 지금처럼 2차선 차도가 된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이다. 그전에는 차도 사람도 모두 앞에 보이는 시멘트 다리로 건너다녔다고 한다.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손말틀(휴대폰)로 카카오맵을 검색해보니 시멘트 다리의 이름이 ‘개수1교’라고 표시되어 있다.

 

강물소리를 들으면서 길 따라 한참 내려가자 오른쪽에 작은 쉼터공원이 나타난다. 긴 의자 몇 개가 보이고 장승이 6개 서 있다. 장승 밑에 펼침막이 걸려 있어서 가까이 가보니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군요~~ 이제 마을 수호 업무를 마감하고 후임 장승에게 물려주려 합니다. 기력이 소진되어 힘이 없으니 다가오지 마세요~~ (위험주의) -봉황장승 올림-”이라고 쓰여 있다. 읽어보니 빙긋이 웃음이 나는 문구였다.

 

 

길은 왼쪽으로 구부러지면서 개수교 다리가 나타나는데 오른쪽 강가로 작은 흙길이 나 있다. 작은 길로 내려가면 강가로 걸을 수 있고 저 아래에서 다시 지방도로로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개수교 다리를 건너지 않고 흙길로 들어섰다. 작은 길은 400m 정도 계속되는데 걷기에 아주 편하다. 중간에 활터 과녁이 하나 나타났다. 과녁은 있는데 활을 쏘는 장소가 어디인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간이 활터인가 보다. 작은 길이 끝나는 지점에 근사한 바위가 우뚝 솟아있고 바위 위에는 소나무가 몇 그루 자란다. 이 바위가 봉황대다. 커다란 바윗덩어리 위에 소나무는 어떻게 뿌리를 내렸을까? 신기하다.

 

 

봉황대 바위 위의 소나무를 바라보자 얼마 전에 각시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나는 불행히도 60이 넘어 상처하고, 그 뒤 다행히도 젊은 각시를 만나 재혼을 하였다. 나는 아들만 둘을 두었는데, 딸 가진 사람이 항상 부러웠다. 딸 키우는 재미가 그렇게 좋다는데 궁금했다. 그래서 뒤늦게 딸을 낳아 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임신이 되지를 않는다. 친구에게 고민을 이야기하자 밭을 바꿔보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 각시가 들으면 펄쩍 뛸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날 각시가 기분이 가장 좋은 때를 골라서 친구의 조언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각시는 화를 내지 않고 다음과 같이 조용히 말하였다. “당신은 환경학 교수라면서 자연환경을 그렇게도 모르느냐. 등산하다 보면 커다란 바위 위에 자라는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씨가 좋으면 바위 위에서도 소나무가 자랄 수 있다. 밭이 문제가 아니라 씨가 문제다.” 아이고, 나는 우리 각시를 말로써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봉황대 옆에는 아담한 정자가 하나 서 있다. 현판에 봉황정이라고 한문 이름이 쓰여 있다. 시계를 보니 저녁 4시. 원경펜션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나 보다. 답사 시작점을 출발한 지 2시간 15분이 지났다. 우리는 정자에서 쉬면서 각시가 아침에 싸준 군고구마 간식을 먹었다. 고구마가 달고 맛있었다. 봉황정에 앉아 봉황대를 바라보면서 내가 준비해 온 커피를 마시니 더는 바랄 것이 없다. 사돈 논이라도 사주고 싶은 심정이다.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시인마뇽은 몸무게가 80kg인데도 잘 걷는다. 그는 빨리 걷지는 못하지만 오래 걷는다. 하루에 27km를 걸은 적도 있다고 한다. 그와 함께 산행할 때는 느리게 걷는 그를 앞세우고 나는 뒤따라간다. 시인마뇽은 5년 동안에 남한의 백두대간과 9정맥 합쳐서 2800km를 걸었어도 느리게 걷기 때문에 다리가 아직도 건강하다. 느린 것이 좋은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