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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토인비가 칭찬한 한국의 효(孝)란?

입신양명에 매몰된 유교적 가치관이 한국을 병들게 해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여름에는 살인적인 더위와 홍수로, 겨울은 혹한으로 시련과 절망의 강이었지만 중국인들은 이 시련에 맞서 적응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황하문명을 이룩했다. 로마인들은 풀 한 포기 없는 자갈밭과 역병이 들끓는 황야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1934년에 저술을 시작해 27년 만에 12권의 책으로 나온 아놀드 토인비의 위대한 저작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는 이처럼 한 나라나 민족을 넘어서서 한 문명이 탄생하고 발전하는 원동력으로 그들이 처하게 되는 도전을 어떻게 극복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설명을 함으로써 역사학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가 아쉬운 것은, 비록 당시 대작을 쓰기 시작할 때 우리가 일본의 통치 아래 있었고 일본은 강국으로서 그 힘이 나날이 커지는 상황이었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일본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문명에서 분명 한국인들의 역할과 긴 문명을 이어온 특별한 힘을 토인비가 주목할 수 있었을 것인데도 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이었다.

 

토인비는 1954년에 이 책을 완성한 이후 내용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1956년 2월에 중남미를 기점으로 해서 중미, 남미, 북미 등을 돌며 자료를 수집했고 그 과정에서 10월부터 11월까지 두 달 동안 일본을 여행한 소감과 기록을 《East to West》라는 책에 남기고 있지만(이 책은 《토인비의 역사기행》이란 이름으로 2004년에 우리나라에도 번역출판됨), 거기서도 역시 한국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

 

 

그런 토인비가 세상을 뜨기 2년 전인 1973년에 국회의원을 지낸 임덕규 씨의 방문을 받아 한국의 '효 사상과 경로사상, 가족제도'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이때 86세의 노인이었던 토인비는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한국의 효 사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니 이는 인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사상"이라며 "한국뿐 아니라 서양에도 '효' 문화가 전파되었으면 좋겠다"라며 개인적인 희망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이미 그 이전부터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대략 5,000년 전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면서 건국이념으로 설정한 ‘홍익인간’과 ‘재세이화’, 곧 '널리 두루두루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것과 '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서 그 이치에 맞게 다스린다'는 의미에 주목하고 "21세기에 세계가 하나 되어 돌아가는 날이 온다면 그 중심은 동북아시아일 것이며, 그 핵심사상은 한국의 홍익인간 사상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라고 1973년 1월 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게 토인비가 인정한 한국의 효문화는 확실히 한국인들에게 유난히 강하게 내려오는 전통이지만, 과거에는 그것이 너무 지나치게 개인을 얽매이는 나쁜 측면이 강조돼 반발도 많았고, 또 현대에 와서는 그것이 너무 쉽게 무너졌다고 해서 많은 이들이 탄식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효에 대해서는 《논어》나 《중용》, 《대학》 등 유교의 주요 경전에서 대체로 언급하고 있으므로 자연스레 그 개념을 알 수 있지만, 효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쳐준 것은 《효경(孝經)》이다. 《효경》 은 유가(儒家)의 주요 경전인 십삼경(十三經)의 하나로서 ‘효도(孝道)’를 주된 내용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孝經(효경)》이라고 하며, 십삼경 가운데에서 처음부터 책 이름에 ‘경(經)’ 자를 붙인 것으로는 유일한 것으로, 그만큼 중요한 대접을 받았다고 하겠다. 그 《효경》은 공자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앞부분을 시작한다.

 

身體髮膚受之父母(신체발부수지부모)

不敢毁傷孝之始也(불감훼상효지시야)

立身行道揚名於後世(입신행도양명어후세)

以顯父母孝之終也(이현부모효지종야)​

 

 

이 문장은 우리가 일찍부터 배운 것이다. 우리 말로 보면 첫 두 행의 문장은

 

"우리 몸과 피부와 터럭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는 것이다. 곧 부모님에게서 받은 우리 몸을 다치거나 상하면 부모가 걱정하니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다음 세 번째와 네 번째 행의 문장은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이름을 후세에 날린다. 그렇게 해서 부모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효의 끝이다."라는 뜻이다. 세상에 나아가서 바른 도를 행하여 이름이 올라가면 그것으로써 부모가 드러나니 그게 곧 효의 완성이란 뜻이 된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효경의 원문 대신에 약간 고쳐 4행시로 만든 것을 배웠는데, 세 번째 줄이 조금 다르다. 첫 번째, 두 번째 행은 같은데 세 번째 행이 '입신행도양명어후세(立身行道揚名於後世)'가 아니라 '입신이양명어후세(立身而揚名於後世)'라고 배웠다. '행도'가 없어지고 대신 어조사 '而(이)'가 들어가서 입신과 양명이 붙게 되었다. 이것은 효경에 있는 공자의 중요한 말씀을 8자 4행시로서 기억하기 쉽게 고친 것이어서 이렇게 되니 글자 수와 행이 딱 떨어져 보기도 외우기도 훨씬 좋다. 그래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 시를 배웠고 그것을 자주 인용했다. 그런데 이렇게 바꾸고 나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원래 효경에 있는 문장 안에 있던 '行道(행도)'가 사라지니 입신과 양명이 곧바로 연결되어 '몸을 세워 이름을 후세에 날린다'라는 개념으로 되었다. 다시 말하면 원래 효경은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이름을 후세에 날림으로서 부모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효의 끝이다."라는 뜻인데 그것이 '입신양명'이 두드러져 원래의 가르침은 사라지고, 오로지 입신양명, 곧 출세해서 이름을 드날리는 것으로 효가 완성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효에 대한 개념, 아니 삶의 자세에 대한 인식을 잘못 가지게 된 가장 근본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앞의 문장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한 것도 자식의 몸을 함부로 굴리어 몸이 상하거나 아프면 부모가 힘들 테니까 몸을 잘 보중하라는 뜻으로 새겨야지, 이를 마치 모든 터럭까지도 부모가 준 것이니까 조금도 손상시키면 안 된다고 해서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그대로 틀어올리고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바른 해석이 아니다. 그렇다면 손톱은 왜 자르는가?

 

그런데 여기에 자식의 행실로서 가장 중요한 ‘도를 행한다’는 개념은 없어지고 오로지 출세하는 것만이 효도를 완성하는 것이라는 식의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만연하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효의 개념을 막연히 노인을 공경하고 늙은 부모를 잘 봉양한다는 차원으로만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 조선시대 우리 사회는 효를 출세 지상주의로만 인식해온 것이라는 탄식이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을 읽되 그것의 본뜻, 참뜻을 읽지 않고 그 껍데기만 읽으면 그것이 한 사회를 잘못 가게 할 수도 있다는 사례를 《효경》의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신적인 어른 중의 한 분인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한 강연에서 말했다.

 

"입신양명(立身揚名)에 매몰된 유교적 가치관이 한국인을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지나친 경쟁심과 사회 불공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불행한 국가'라는 오명을 영영 벗지 못하겠지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입신양명'은 이렇게 행도가 빠짐으로서 출세 지상주의의 근본 뿌리가 되었다. 아마도 토인비는 이런 문제까지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근래에 우리 사회에 도덕이 무너지고 양심이 가려지고 오로지 권력을 잡고 출세하는 것만이 지상목표가 되어 있는 이 현실의 바탕에 이처럼 효경의 첫머리가 왜곡되어 가르쳐진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제 5월이다. 5월은 가정의 달, 자라나는 자녀를 생각하고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를 생각하고 다시 효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늙으신 부모를 잘 봉양하는 것은 당연한 효도고, 더 중요한 효도, 진정한 효도는 세상에 나가서 거짓된 길을 가지 않고 올바른 길을 가서 이 세상을 바른 세상으로 만드는 데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