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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남자가 뜻을 세워 고향문 나서는 마당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1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한문 시구를 하나 적어놓으셨다,

 

男兒立志出鄕關(남아입지출향관)하여

學若無成死不還 (학약부성사불환)이로다​

 

그리고 풀이를 해주시길 “남자가 뜻을 세워 고향문을 나서는 마당에, 배움에 성취가 없으면 죽어도 아니 돌아오겠습니다”란 뜻이란다. 그러고는 이 구절을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고 있으면서 어디 가든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서 성공해야 한다, 성공 못 하면 고향에 무슨 낯짝을 들고 돌아오겠느냐, 그러니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셨다. 그때가 1967년이었고, 당시 우리는 교육당국의 망설임 덕에 어려운 한자를 배우지 않고도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었는데, 나이 지긋하신 국어선생님은 굳이 한자로 된 시구를 적어놓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이 구절은 억지로 문장을 외우고 뜻을 새겼다.​

 

조금 더 커서 글귀를 조금 알아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시 형태로 된 이 말을 누가 했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원작자가 영 나타나지를 않아 사실상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최근 우연히 근대 일본의 정치가가 한 말이라는 주장이 있기에 관심을 두고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이 시가 일본의 도쿠카와 막부 말기에 겟쇼(月性)란 일본 스님이 쓴 것이란다.​

 

1817년에 태어난 겟쇼는 26살 때인 1843년에 시노자키 쇼치쿠(篠崎小竹)라는 스승을 찾아 동쪽에 있는 오오사카로 떠날 때 벽에다 써놓은 것(시의 제목이 ‘将東遊題壁’이다) 이라고 한다.

 

그리고 10년 뒤인 1853년 7월 8일에 우라가(浦賀) 앞바다에 미국 페리제독이 이끄는 미국 해군 동인도 함대가 증기선 2척을 포함하여, 함선 4척으로 들어오자 서양의 힘에 놀란 일본에서는 충격을 받아 천황을 지키고 외국인들을 막자(尊皇攘夷)는 운동이 벌어졌는데 이 때 겟쇼도 바다를 잘 막는 일이 중요하다는 건의서를 작성해 막부에 제출하는 등 활동을 했단다. 겟쇼스님의 고향인 야마구치(山口)현 하기(萩)의 쇼잉신사(松陰神社)에는 자필 시가 남아있다고 한다.

 

 

다만 이 시의 원문에 대해서는 앞에 두 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줄이 더 있다. 뒤의 두 줄은​

 

埋骨何期墳墓地(매골하기분묘지)

人間到處有青山(인간도처 유청산)​

 

바로 그것인데, 그 뜻은 “뼈 묻힐 곳이 어찌 그 고향 무덤뿐이랴.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푸른 산이 있느니라.”다. 여기서 푸른 산은 무덤 있는 산을 뜻하므로 고향을 떠나 살다가 어디에든 묻힐 수 있으니. 성공하든 못 하든 어디서나 열심히 노력해 성공하면 되는 것이란 뜻이 된다.

 

아무튼 이 시는 이처럼 근세 일본의 청년이 자기의 뜻을 세워 일생을 걸고 배움을 이루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멋진 한시가 되어 일본인들이 즐겨 인용하게 되었고. 2차 대전 때 일본인들이 거의 다 알고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필자의 중학교 국어 선생님도 바로 그런 뜻에서 일제시대에 전해진 이 시구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큰 뜻을 품고 열심히 하라는 뜻에서 가르쳐 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아무리 시가 좋다고 하더라도 뭐 우리가 원작자까지 다 찾아가고 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 이게 그냥 한 일본 청년스님이 쓴 글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니라서 조금 의미가 다르다. 중국의 모택동이 17살 때인 1910년에 이 시를 차용한 시를 아버지에게 써주면서 자신이 세상에 나가서 큰일을 도모하겠다고 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모택동은 당시 《新青年(신청년)》 이라고 하는 잡지에서 이 시를 보고 자신의 결심을 다진 것인데, 이 잡지에는 작자가 엉뚱하게도 일본의 무사이자 정치가였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로 소개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우리에게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일으키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무사로 알려져 있는데, 사이고 다카모리는 당시 존황양이 운동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된 친구 겟쇼(月性)의 이 시를 휘호로 써서 방안에 둔 것을 다른 친구가 이것을 사이고가 쓴 것인 줄 알고 주위에 잘못 전해서 이리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모택동은 이 시를 자신이 조금 고쳐서 이렇게 부친에게 써 보냈다.

 

『留呈父親』 부친께 드리니 보세요

 

孩兒立志出郷關 해아입지출향관

學不成名誓不還 학불성명서불환

埋骨何須桑梓地 매골하수상재지

人間無處不靑山 인간도처무청산​

 

대체로 비슷하지만, 첫머리의 남아(男兒)가 중국말로 아들을 뜻하는 ‘해아(孩兒)’로 바뀌었고 ‘사불환(死不還)’ 곧 ‘죽어도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이 ‘서불환(誓不還)’ 곧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서합니다’로 바뀌었다. 그리고 무덤을 나타내는 단어도 중국인들이 쓰는 말인 ‘상재지(桑梓地)’로 바뀌었으나 뜻은 같다. 그런데 모택동의 전기에는 이 시를 ‘서향융성(西鄕隆盛)의 시를 고쳐 부친에게 드리다(’七绝·改西乡隆盛诗赠父亲‘)라는 제목으로 수록하고 있어 이 시가 모택동이 스스로 쓴 것이 아니라 빌려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십수 년 전 중국 텔레비전에서 <소년 모택동(少年 毛沢東)>이란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했는데 여기에서 모택동이 고향인 호남성(湖南省) 소산(韶山)에서 아침에 산을 올라가면서 해를 향해 당당히 이 시를 낭송하는 장면이 나와 이를 본 많은 사람이 이 시를 모택동이 쓴 것으로 알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 시는 베껴 전하는 사람에 따라 표기법이 조금씩 달라져 여러 가지 판본이 있지만, 일제강점기 때 교육받은 분들은 이 시를 거의 많이 배웠을 것으로 보이고, 필자도 중학생 때에 국어선생님으로부터 이 시를 배울 정도였는데, 알고 보니 이 시가 일본과 중국에도 영향을 주었고, 문장이 쉬워서 많은 사람이 애송하는 구절이었음을 이제 알겠다.

 

누가 처음 말을 했던지 그 뜻이 간절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모택동이나 중국인들도 이 시가 담고 있는 높고 굳센 뜻을 자신도 받고 싶어서 그렇게 좋아했을 것 같다. 한 줄의 문장이라도 그 뜻이 깊으면 이렇게 동양 3국의 젊은이들에게 파고들 수 있다고 하는 점을 알게 되어 글이나 문장의 힘을 확인하는 사례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족)

 

일부 인터넷에는 의병장의 우국시(義兵將 憂國詩)라는 제목으로 해서 마치 안중근 의사가 쓴 것으로 비슷한 시를 소개하는 사례가 있다.​

 

男兒有志出鄕關 남아가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나니

埋骨豈其先墓下 죽어서 어찌 뼈를 선영 아래 묻으리오

生不成功死不還 살아서 공 못 이루면 죽어서 돌아오지 않으려니

人間到處有靑山 인간이 이르는 곳마다 모두 청산일세​

 

라는 것인데 이것은 근거가 없는 위작인 것 같다. 실제로 안중근 의사는 '유지(有志)'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다른 시를 쓴 것으로 나온다. 안중근 의사가 일본인이 쓴 시구를 바꾸어 쓸 이유가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