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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길 옆의 아름다운 부활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17]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릇 생명이 죽었다가 살아나면 그것을 부활이라고 부를 것이다. 생명이 아닌 무생물의 경우는 어떤가? 돌이나 나무나 금속이나 생명이 없는 것이 마치 죽은 것처럼 묻혀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오면 그것도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돌이나 금속이 어떤 형태를 띄고 있다가 그것이 다시 세상에 나온다면 그것은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것은 분명 부활일 터이다.

 

 

북한산 둘레길 은평구간에 부활의 좋은 소식이 있다. 필자가 아침마다 오르는 등산로겸 산책길로 북한산 둘레길 제8구간 구름정원길 중에는 은평뉴타운 4단지 뒷편쪽 길이 있다. 아파트 뒷쪽으로 난 길이어서 그리 높지 않은 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곳인데 아파트단지에서 올라가는 가까운 곳 비탈에서 얼마 전부터 엎드려 있는 석상이 하나 있어서 그곳을 지나면서 늘 안타까운 마음이었었다. 그 전에는 땅 속에 묻혀있었지만 길 옆 살짝 비껴난 곳이어서 눈에 띄지 않다가 올 여름 비가 계속 온 다음에 노출되어, 머리가 밑으로 향해 엎어져 있었는데 지난 목요일 아침에 보니 어떤 남자 분이 삽을 들고 옆 흙을 파내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 두고만 볼 수 없기에 자신이 나섰다는 것이다. 그것을 본 우리 부부는 "수고하신다"는 격려를 보내고는 내려왔는데 그 다음날 궁금하기 이를데 없어 서둘러 그곳에 가보니 앗, 석상이 땅에서부터 벌떡 일어나 길 옆 그 자리에 멋지게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석상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도 아주 잘 웃고 있었다. 이러한 돌은 무덤 앞에서 무덤의 주인공을 호위하는 문인석, 혹은 문관석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동안 이러한 문인석들의 사진과 실물을 몇 건 본적이 있지만 이렇게 잘 웃는 얼굴은, 필자가 알기로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알고 지내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의 이랑 연구원에게 말했더니 자기도 이렇게 웃고 있는 문인석은 처음으로 생각한단다. 36년 전에 필자가 한국인의 웃음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도 보지 못했던 우리 조상들의 밝게 웃는 마음이다. 이 문인석은 키가 그리 크지는 않고 아담한데 머리에 관을 쓰고 있고 손에는 홀을 잡고 있다. 보통 문인석은 무인석과 같이 서 있는 경우가 많고 아무래도 무덤을 호위하는 역할이기에 무인석은 약간 무섭게, 문인석은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문인석은 입도 크게 만들고 입술의 양 꼬리가 올라간 것이 아주 큰 웃음을 웃고 있는 것이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활짝 풀어주고 있는 얼굴이다.

 

북한산 둘레길의 8구간부터 10구간은 예로부터 궁궐에서 근무한 내시, 나인, 궁녀들의 무덤이 많이 있어서 산 자락의 동네 이름도 제각말(무덤에 제를 올리는 비각이 있는 마을), 재말(재를 올리는 마을)등의 이름이 붙어 있는 곳이었고 산 기슭을 따라 많은 무덤들이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가면서 돌보는 사람이 없어 무덤은 무너지고 거기 세워진 석물들은 깨지거나 흩어져 흙에 묻혀 있었는데 은평뉴타운을 조성하면서 석물들을 수거해서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 모아 전시하고 있고 내시 상약 신공(申公)의 비석 등 일부는 현장에 다시 세우거나 누운 상태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나온 문인석은 그동안 지표의 흙에 살짝 덮혀 비탈길에 거꾸로 엎어져 있다가 그 남자분의 노력으로 다시 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나가는 분들이 이 문인석 석상(石像)을 아주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다시 세워진 뒤 첫날엔 그냥 깨끗하게 막 나온 그대로 서 있었는데 그 다음날에는 석상 앞 옷자락에 사탕이 한 봉지 올라가 있었고 그 다음날에는 물과 대추 등이 올라가 있었는데 그 다음날에는 아예 평평한 돌로 된 상(床)을 앞에 놓고 그 돌상 위에 마치 차례상처럼 이런 저런 음식물들이 올려 있더라는 것이다. 그런 돌상을 갖다 놓을 정도면 등산객이라기 보다는 동네의 주민일 가능성이 높은데 주민 중 누군가가 이 웃는 석상에게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을 그렇게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석상이 그 전에 어느 누구의 무덤을 위해 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젠 이 둘레길의 마스코트로 부활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던 이 석상이 적어도 근세 이후의 역사 속에서 땅 속에 묻혀있다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부활한 과정을 보면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큰 기쁨이다. 우리가 늘 다니던 길에 묻혀 있거나 누워 있는 석물들을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지나치는데 길에 밟힐 까봐, 발길에 채일까 봐 흙을 파고 다시 세우신 그 남자분의 마음이 고마운 것이고, 다시 선 석상에게 우리들의 마음을 전하는 주민이 있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그리고 이 길들이 늘 휴지하나 없이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고, 또 비가 와서 계단 밑의 흙이 떠내려가 계단이 높아진 곳에 어느 틈에 새 나무발판을 받쳐 안전하게 걷도록 해주는 관리소 측의 배려가 고맙고...

 

 

그래서 이 둘레길 구간의 아침 산책은 늘 기쁨의 연속이다. 한 바튀 도는데는 약 40분 정도의 길지 않은 코스지만 우리 부부는 아침마다 이곳을 돌면서 이런 좋은 환경이 남아있고 유지된 것을 감사하고, 이곳에 와서 살며 이를 즐길 수 있는 것을 감사하고, 무엇보다도 서울 시내 중심부에서 30분도 안 걸리는 이곳이 이렇게 청정한 환경으로 맑은 공기와 우거진 숲과 시원한 바람과 새들의 신나는 지저귐을 들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하며, 그리고 이런 환경을 지켜나가는 우리 주민들의 마음이 또 고마운 것이다.

 

 

우리들 사는 것이 이렇게 맑고 고운 마음으로 가득차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저 멀리 시내 중심가와 여의도 등에서 벌어지는 매일매일의 살벌한 정치전쟁의 소식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우리들 세상도 마음 여하에 따라 재미있는 세상이 될 수 있는데 서로 배려하는 마음, 아껴 주는 마음 대신에 어떻게 하든 상대방을 흠집 내어 거꾸러뜨리려는 마음만이 횡행하는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다. 우리의 이웃, 자연, 환경을 아껴주는 마음들이 자주 여러 군데에서 부활하기를 소망해본다.